글_ 최주식
<오토카코리아> 편집장
어느 해보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온다. 노마드 감성이 살아나는 계절이다. 단풍이 물든 산하를 오프로드 SUV와 달리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은 이미 도시를 떠나 자유를 찾는다. 하지만 가을은 야속하게도 짧다. 그러니 미리 준비하는 게 좋겠다. 어떤 차가 좋을까? 요즘 SUV는 너무 도시화 되어서 정통 4×4라고 부를 만한 오프로더가 드물다. 먼저 떠오른 모델은 디펜더다. 그리고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 포드 브롱크가 있다.
새롭게 진화한 전설, 디펜더
오프로드의 전설로 불리는 디펜더(Defender)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차’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철학으로 세계 곳곳의 사막, 정글, 험준한 산악을 누볐다. 1948년 랜드로버 시리즈를 그 뿌리로 보지만 ‘디펜더’라는 이름이 공식 사용된 것은 1990년부터. 2016년 단종됐다가, 2019년 완전히 새롭게 진화했다. 신형은 국내에 2020년 가을 출시되었다. 이때 필자는 디펜더 110을 타고 유명산 정상에 오른 적이 있다. 영국에서 몰아본 구형 디펜더는 거의 군용차 감각이었다. 기본 레이아웃은 비슷했지만 한층 세련되고 편안해졌다.
디펜더의 핵심은 오프로드 성능이다. 접근각 38°, 탈출각 40°를 확보하기 위해 앞뒤 오버행을 최소화했다. 측면에서는 알프스 등반에서 영감을 얻은 루프 알파인 라이트 윈도가 개방감을 더한다. 후면은 풀사이즈 스페어타이어를 외부에 매달아 탈출각을 확보했다. 실내는 기능성과 실용성에 집중했다. 센터페시아를 가로지르는 마그네슘 합금 빔은 항공기 소재를 그대로 노출해 디자인 요소로 삼았다.
디펜더 110 D240은 인제니움 2.0L 4기통 디젤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240마력, 최대 토크 43.9kg·m를 발휘한다. 8단 ZF 자동변속기와 2단 로 기어가 맞물리고, 에어 서스펜션은 최대 145mm까지 차체를 높인다. 도강 가능 수심은 900mm. 하차 시 안전벨트를 풀면 자동으로 차체가 낮아진다. 해발 800m 정상에 도달했을 때 높게만 보였던 산봉우리들이 발아래 그림처럼 펼쳐졌다. 험로를 뚫고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면 마음속 길도 하나 여는 기분이 든다. 오프로드를 찾는 이유일 것이다.
아날로그 감성에 더해진 현대적 감각
또 하나의 전설은 흔히 ‘G바겐’(G-Wagen)으로 불리는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다. 1979년 크로스컨트리 차량으로 탄생해 오프로드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았다. 국내 시장에는 2012년 첫 출시되어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한국 시장은 전 세계 G-클래스 시장 중 다섯 번째로 큰 시장이기도 하다. 지난해 부분 변경을 거친 더 뉴 메르세데스-벤츠 G450d는 특유의 각진 외형과 아날로그 감성 디테일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디자인을 더했다.
실내는 원형 멀티빔 LED 헤드라이트를 본뜬 송풍구, 터치 조작 기능이 적용된 다기능 스티어링 휠, 앰비언트 라이트와 나파 가죽 소재가 고급스럽다. MBUX 증강현실 내비게이션도 사용할 수 있다. 6기통 디젤 엔진은 이전 대비 37마력 향상된 최고출력 367마력과 최대토크 76.5kg·m의 최대토크를 뿜어낸다.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적용되어 효율성을 더했다. 최대 700mm 깊이의 물을 건널 수 있고, 최대 35도의 측면 경사로를 안정적으로 지날 수 있다. 특히, 360도 카메라와 연동해 작동하는 투명 보닛 기능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험로 주행에서 시야 확보에 도움을 준다.
흥미로운 경험을 선사, 브롱코
오프로드의 야생마 포드 브롱코는 조금은 낯선 이름이다. 그도 그럴 것이 25년 만에 복귀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내에는 2023년 처음 들어왔다. 하지만 역사는 오래되어 머스탱이 1964년, 브롱코는 1965년 시장에 등장했다. 둘 다 야생마의 이름이다. 브롱코는 포드 F-150의 디자인을 따른 5세대 모델(1992년~96년)을 끝으로 단종되었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때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게 중요한 법.
6세대는 디자인에서부터 1, 2세대의 초기 디자인 요소를 불러오고 강인한 섀시를 바탕으로 탈부착 가능한 도어와 지붕 등 오리지널 4×4로 돌아왔다.
브롱코를 운전하며 인상적인 것은 ‘트레일 턴 어시스트’ 기능이었다. 코너를 꺾어 나갈 때 공간 여유가 없을 경우, 여러 번 차를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이 기능은 진행 방향 뒷바퀴의 구동력을 잠궈 지지대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바로 그 자리에서 코너를 감아나갈 수 있게 한다. 회전반경이 상당히 짧아지는 경험은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작가 소개
최주식_ 오토카 코리아의 편집장. 오토카 코리아의 공식 웹사이트와 매거진에서 활동하며, 자동차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그는 또한 시인으로서 인터뷰, 북토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국 자동차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오프로드 SUV의 진수를 느끼는 가을 여행》
새로운 장소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일상의 피로를 날려버리고 숨겨진 열정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이 가을, 정통 오프로드 SUV와 함께 갈 만한 장소를 소개한다.
⊙ 강원도 : 인제 ‘비밀의 정원’ — ‘원대리 자작나무 숲’
잠에서 덜 깬 도시를 빠져나와 ‘비밀의 정원’을 만나러 가는 길은 어딘가 숨겨진 보석을 찾아 떠나는 설렘이 있다. 인제군 남면 갑둔리 ‘비밀의 정원’은 이름처럼 은밀하다. 서리가 내리고 아침 안개로 피어나는 숲속의 모든 풍경이 신비롭게 다가오는 곳이다. 비밀의 정원을 빠져나와 지방도와 국도를 갈아타고 북쪽으로 한 시간 남짓 달리면 자작나무가 숲을 하얗게 휘감고 있다. 탐방은 입구 초소에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약 3.5km의 임도를 따라 올라가는 코스다. 차에서 내려 걸으며 단풍과 자작나무의 대비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황홀하다.
Tip
매주 월, 화 휴무.입산 시간은 하절기 오후 3시, 동절기는 오후 2시까지.
가을철(11월 1일~11월 15일) 입산 통제 기간이 있으니 체크할 것.
자작나무숲 입구 안내소 033-463-0044
⊙ 경상북도 : 청송 주왕산 그리고 주산지의 추일서정
청송 가는 길은 멀고 깊다. 그런 만큼 오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주왕산을 둘러싼 국립공원 일대는 금빛과 붉은빛이 겹겹이 물들며 수채화 같은 풍경을 드러낸다. 신라고찰 대전사 앞 우뚝 선 은행나무를 찾아가자. 무수한 계절을 반복해온 세월의 성실한 무게 앞에 절로 겸허해진다. 시간의 통로를 지나 주산지를 들르면, 태고의 신비가 이런 것인가 하는 낯선 풍경에 사로잡힌다. 주산지의 상징은 물속에 뿌리를 두고 선 왕버들 군락이다. 김기덕 감독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촬영지로 유명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Tip
주산지는 가급적 새벽안개가 피어오를 무렵 방문하는 것이 좋다.상시개방. 절골분소 054-873-0019
⊙ 전라북도 : 마이산, 골짜기마다 서린 전설 속으로
국도에서 벗어나 마이산 주변 산자락의 작은 길로 접어들면서 흙 속에 간직한 오랜 이야기가 바퀴에 묻어오기 시작한다. 이곳은 우리나라 민간 신앙과 불교, 자연 경관, 예술이 융합된 하나의 상징적 문화유산이다.
마이산 탑사는 미국 CNN이 선정한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사찰 중 하나이자 미슐랭 그린가이드에서 별 세 개 만점을 받은 명소이기도 하다. 크고 작은 수많은 돌탑은 그 자체로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에 특히 추천한다.
Tip
탑사 일대는 오후 햇살이 봉우리에 닿을 때 가장 드라마틱한 색감을 보여준다.
하지만 단풍철에는 주차 대기 시간을 감안해서 일찍 도착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