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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거장에서
대가大家로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연말에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이 농익은 기교와 성숙한 음악성으로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줄 예정이다. 이젠 젊은 거장에서 대가로 성장한 사라 장의 음악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본다. 천진난만한 소녀의 ‘신동’ 시절요즘 한국의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임윤찬,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등 많은 젊은 연주자들이 세계 유수 콩쿠르 석권하고 국내외에서 공연을 하면 금방 표가 매진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이보다 앞선 30여 년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동이 있으니 바로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이다. 4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사라 장은 6세에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전액장학생으로 입학, 8세인 1990년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의 데뷔 무대를 가져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아버지를 따라 갔다가 미국 최고의 음악학교 중 하나로 손꼽히는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들어가게 된 여섯살의 사라 장은 그 때를 이렇게 기억한다.“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 2층 벽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자판기에서 먹고 싶은 간식을 마음껏 사먹을 수 있도록 어머니가 용돈을 주셨던 것이에요.”9세 때 EMI와 계약을 맺고 녹음한 <데뷔> 앨범에서 이 천진난만한 소녀는 자신의 나이를 훌쩍 뛰어넘는 성숙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흠 잡을 데 없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맞게 톤과 완급을 조절하는 능력이 완벽해서 더 놀라웠다. 특히 조지 거슈윈의 ‘It ain’t necessarily so’에서 들려준 흥겨운 싱코페이션 리듬은 듣는 이들을 황홀한 행복감에 젖게 했다. 천재보다는 좋은 음악가 되고 싶었다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세계를 누비며 바쁘게 활동한 사라 장은 베를린 필, 빈 필, 뉴욕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으며 아이작 스턴, 요요마 등 수많은 거장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왔다. 커리어가 쌓여갈수록 사라 장 앞에 붙는 수식어는 점점 더 화려해졌다. 미 ‘뉴스위크’지 선정 금세기 10大 천재, 세계 경제 포럼 선정 ‘영 글로벌 리더’ 등의 칭호와 더불어 수상 경력도 어마어마하다.큰 상으로는 에버리 피셔 상, 그라모폰의 ‘올해의 젊은 음악가상’, 독일의 ‘에코 음반상’, 이탈리아 시에나의 ‘국제 키지아나 음악아카데미상’ 등이 있다. 그러나 20대 후반이 되면서부터는 늘 그를 따라 다녔던 ‘신동’, ‘어린 거장’이란 수식어는 자취를 감췄다.“그런 수식어가 사라지니 좋아요. 너무 어릴 때 시작해서 ‘천재소녀’라는 이야길 많이 들었는데 그런 수식어가 싫었어요. 나이가 아니라 좋은 음악가로서 윤기 나는 연주를 들려주고 싶을 뿐입니다.” 그런 바람에 따라 사라 장의 음악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무르익어갔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청중들은 그의 음악에서 완벽한 기교보다는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솔하고 깊이 있는 정서를 포착하고 한층 더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됐다. 인생에 대한 통찰이 더욱 깊어지다사라 장의 그러한 음악적 변화를 잘 느끼게 해주는 음반이 바로 2009년 그의 20번째 EMI 음반으로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와 드레스덴 필하모닉 협연으로 녹음한 <브람스 및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브람스의 음악은 어릴 때보다는 중년 이상의 나이에 들었을 때 더욱 절절한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한다. 그만큼 연주자에게도 인생과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필요한 작품이라 사라 장의 브람스에의 도전은 더욱 특별한 반환점으로 다가왔다. 또한 2007년에 발매한 비발디의 <사계> 앨범은 발매 후 국제적인 찬사를 이끌어냈는데, BBC 뮤직 매거진이 “그녀의 음반 중 이보다 더 훌륭한 음반은 없었다.”라고 평한 바 있다.“비발디는 연주하면서 좀 많이 꾸미는 편이에요. 그런데 레코딩에 들어가서는 다 뺐어요. 심플하게 하고 싶었거든요. 비발디는 악보에 연주 지시를 별로 쓰지 않았어요. 아티스트 공간을 남겨준 거지요. 스코어 자체에 가깝게 가려고 노력했어요.”이 <사계> 앨범은 그가 데뷔 15년 만에 낸 첫 바로크 앨범으로, 지금까지도 꾸준한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오는 12월 18일 부산의 청중들은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사라 장 & 비르투오지’ 공연을 통해 사라 장이 들려주는 <사계>의 향연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천부적이고 변함없는 음악에의 열정이번 공연은 사라 장의 솔로, 합주, 협주 등 다양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지만, 이제 ‘신동’에서 어느덧 ‘대가’로 성장한 그녀가 한국의 후배들을 이끌며 공연하는 무대이기에 더욱 감회가 새롭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유진, 비올리스트 이한나, 첼리스트 심준호,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 등 한국을 대표하는 솔리스트들로 이루어진 체임버 앙상블이 사라 장과 함께한 무대에 오른다. <사계> 외에도 비탈리의 <샤콘느 g단조>,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D장조, BWV1043> 등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바로크 음악의 명곡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어 연말을 앞두고 콘서트홀을 찾는 관객들에게 훈훈한 서정으로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8세의 사라 장을 콘서트 무대에 데뷔시킨 명 지휘자 주빈 메타는 그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완벽한 테크닉, 뛰어난 곡 해석 능력은 그녀를 천재의 반열에 들게 했다. 그러나 나는 천재라는 말만으로 그녀를 표현하는 데에는 뭔가 부족함을 느낀다. 그녀는 남다른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바로 열정이다. 이것은 학습이나 노력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주빈 메타의 말처럼 사라 장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음악에의 열정으로 청중들을 사로잡고 오랫동안 그의 음악이 주는 여운에 휩싸이게 한다. 나중에 한참 더 나이가 들면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의 레코딩에도 도전하고 싶다는 사라 장. 젊은 거장이라는 칭호를 벗고 이제는 명실상부 클래식 음악계의 대가로 우뚝 서고 있다. “사라 장은 내가 들어본 가장 뛰어나고 완벽한, 최고의 이상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다.” - 故 예후디 메뉴인

시간이 흐를수록 빛나는 가치
나주 소반
국가무형문화재 제99호 김춘식

사진 제공_ 나주반 전수교육관 어린 시절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 먹을 때 늘 사용하던 소반. 우리의 생활 문화를 그대로 담고 있는 소반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67년 동안 우리의 전통문화를 복원하며 전승하고 있는 김춘식 소반장의 장인 정신을 만나본다. 민족 생활양식에 밀접한 소반탄생 100일을 축하하는 돌상, 혼인 후 첫날 밤에 쓰이는 합환상, 제사를 위해 쓰이는 제사상. 상은 우리의 삶 전반에 밀접하게 연결된 전통 가구이다. 고구려 시대 무용총 벽화에서도 찾을 수 있는 만큼,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소반을 사용해왔다. 안채와 부엌이 분리돼 있는 생활방식 때문에 음식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소반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유교의 영향으로 독상 문화가 발달하면서 소반 제작이 활발해졌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부엌이 실내로 들어오게 되었고, 식탁이 등장하며 자연스럽게 소반은 일상 필수품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해주반, 통영반, 나주반을 모두 볼 수 있다. 해주반은 다리가 사각으로 되어 있으며, 통영반은 다리가 상판과 직결되어 있어 아주 튼튼하다. 나주반은 상판에 변죽을 돌려 물고 있고, 다리가 운각에 끼워져 연결이 튼튼하다. 운각1)은 곡선을 채용하되, 단순하고 담백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1) 소반의 천판을 받쳐주고 다리와 다리 사이를 고정시키는 구름·풀 무늬 모양의 판 _김춘식 소반장이 소반을 제작하는 모습 전통 기법을 그대로 재현하는 나주 소반나주는 예부터 여러 종류의 나무가 많아 다양한 재질의 나무를 찾을 수 있었다. 소반은 하루 세끼 음식을 올리고, 닦아내야 하기에 나무의 특성을 알고 소반으로 알맞은 나무를 찾아야 한다. 수분이 남아 있으면 변형이 일어나 쓸 수 없기 때문에 소반 제작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단계는 제재소에서 자른 나무가 뒤틀리지 않도록 건조하는 것이다. 최소 3년 이상은 지나야 비로소 쓸 수 있는 목재가 된다. 소반은 크게 그릇을 올려놓는 상판과 변죽, 네 개의 다리, 운각, 가락지로 이뤄져 있다. 특히 상판과 다리를 연결하는 운각은 다리 힘을 분산시켜주는 효과와 더불어 조각 장식을 넣어 조형미를 한껏 올려준다.소반은 상판부터 만들기 시작한다. 상판으로는 가볍고 뒤틀림이 적어 흠이 잘 나지않는 은행나무를 사용한다. 소반에서 상판이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기 때문에 흠이 나 있는지, 옹이가 있는지, 갈라져 있는지를 잘 따져야 한다. 보통 지름 45cm는 확보가 되어야 해서 나무토막 하나를 기준으로 40%밖에 쓸 수가 없다.목재를 고른 뒤에는 대패질로 상판을 곱게 다듬고, 치수에 맞게 모서리를 만든다. 나주반의 모서리는 변죽과 운각 다리를 한데 연결하는 핵심 부분이기 때문에 치수에 꼭 맞춰 반듯하게 재단해야 제대로 균형을 잡을 수 있다.상판 제작이 끝나면 운각을 조각한다. 장식하지 않는 나주반도 운각에는 문양을 새겨 넣는데, 수작업으로 해야만 운각의 아름다움과 입체감을 살릴 수 있다. 운각이 완성되면 상판 아래에 연결한다. 이때 운각을 휘어지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조금 심심할 수 있는 나주반에 아름다움을 더하고자 하는 것이다.또한 운각의 높이를 낮게 만듦으로써 들기 편하게 제작, 소반을 주로 사용하는 여인들을 배려하였다. 견고함을 더하기 위해 상판 변죽 운각을 한데 잇도록 대나무 못을 대각선으로 박는다. 소반 하나당 약 40여 개의 대나무 못을 사용함에도 대각선으로 쳐주어 상판에는 못 자국이 전혀 남지 않고 깔끔하다.마지막으로 조립이 끝난 소반은 먹어도 해가 없는 옻칠 과정을 거친다. 옻칠하고 말리고 사포질하는 과정을 여덟 번 반복하는 데 거의 한 달이 걸린다. 그래야 비로소, 나뭇결이 오롯이 살아있는 나주반이 탄생한다. _운각은 철저히 손으로 다듬어야 전통 그대로의 멋이 살아난다 탁본으로 복원한 전통 문양, 운각나주반의 특별함은 변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상판의 가장자리를 지칭하는 변죽은 통판을 그대로 파내는 것이 아니라 별도로 제작하여 끼워 붙이는 것인데, 조선 시대 말 소반을 대량 생산하면서부터 시작된 나주반만의 변죽 기법이다. 제작이 간편하고 나무를 절약할 수 있어 다른 지역에서 응용해 쓰기도 했다. 소반장 김춘식은 작은 상 하나에 담긴 수많은 비법을 알아내기 위해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변죽과 운각, 가락지의 비례감을 찾기 위해 연구할 과제가 많았다고 한다.“단절된 나주 소반의 제작 기법, 재료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복원해서 만들고 계셨어요. 남아있는 우수한 명품 소반을 보여드리면 그것을 그대로 그 비례를 맞추고 감각을 재현해내셨습니다. 조선시대 기법을 수공예로 재현하셨기 때문에, 전통 기법이 그대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소반 연구가 나선화)김춘식 소반장은 나주반의 원형을 찾기 위해 가방에 항상 먹지를 가지고 다니며 언제 어디서든 탁본할 수 있도록 준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특이한 문양은 눈으로 보고, 탁본하여 복원시킨다. 원형이 남아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문양을 탁본하고 혹시나 잊을까 밤을 새우며 재현해 보았다.끊임없이 연구하고 보러 다니는, 남다른 열정과 탐구 정신이 지금까지 나주 소반을 이어오게 한 힘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김춘식 소반장이 찾아낸 나주반 운각은 총 25여 개. 김춘식 소반장은 상 만드는 전통 기법을 변화시키지 않고, 전통 기술이 앞으로도 전수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_김영민. 완자호족반 느티나무-옻칠 48-48-30cm 우리가 사랑해야 할 전통문화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나주를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김춘식 소반장. 학창시절 친구들은 학교에 갈 때 나무를 하러 산에 올라가야 했다. 남들 넥타이 매고 다닐 때 까만 작업복을 입고, 남이 멋진 구두 신고 다닐 때 검정 고무신을 신고 손수레를 끌고 시내를 활보하고 다니며 상을 수리하며 그 만의 기술을 축척해갔다.어려운 가정 형편, 좌절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도 김춘식 소반장은 전통문화 복원이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그 기술을 인정받아 1986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 소반장으로, 2014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 김춘식이 되었다. 나주반 전승교육관에서 끊임없이 소반을 연구하는 그의 뒤를, 아들 김영민 씨가 계승하고 있다. 대학교에 다니면서도 소반 제작을 한 그는 벌써 25년이 훨씬 넘는 세월동안 묵묵히 장인의 뒤를 따랐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군더더기를 다 쳐내기 때문에 더 세련되고 현대적인 상을 만든다는 이들자의 나주 소반은 간결하면서도 멋스럽다. 이제 김춘식 소반장의 바람은 많은 사람에게 전통을 알리는 것이다.“전통문화가 됐든 전통 공예가 됐든 전통소리가 됐든 우리 민족이 사랑해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사랑해주고 아껴주어야 예술이 꽃피는 법입니다.”_김춘식.죽절완자반 43-33-27 느티나무, 오칠 _김춘식. 호족반 은행나무, 옻칠36-36-26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글. 최원형 생태환경 작가, 서울시 에너지정책위원회 시민협력분과 위원 ‘2+1’이나 ‘할인’ 제품을 보면 막상 필요치 않은 물건임에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과소비로 인해 자원 낭비와 환경 오염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현대인의 무분별한 소비 습관을 반성하고 과소비가 가져올 후폭풍을 방지하고자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이 만들어졌다. 무분별한 과소비_무분별한 과소비로 집안 가득 쌓인 방치된 물건들. 우리의 거실 혹은 안방에는 날마다 수천 개의 가게가 좌판을 벌입니다. 이 옷이 당신을 멋지게 해줄 거라고 이 영양제가 당신을 건강하게 해줄 거라고 속삭이지요. 이 자동차를 타면 당신의 격이 올라갈 거라고 당신이라면 이 정도 아파트에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도 합니다. 놀랍고 신기한 물건을 처음 만나는 곳도 대체로 그 가게입니다. 이 가게는 바로 텔레비전 홈쇼핑 채널과 광고입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는 번거로움 없이 클릭 한 번이면 물건이 집 앞까지 배달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집안까지 들어와 있는 가게에서 판매하는 무수한 물건 가운데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면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즉흥적으로 사는 경향이 있지요. 그게 광고의 힘입니다. 한정판이라든가 큰 폭의 할인이라는 말이 더해지면 마음이 바빠집니다. 꼭 필요하지 않아도 일단 확보하고픈 마음이 들고 결국 구매로 이어집니다. 막상 물건이 배달된 후에는 굳이 없어도 되는 물건이라는 후회가 밀려올 때도 많지요. 이렇게 구매한 물건들로 집은 점점 좁아지면서 더 넓은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혹시 없던가요?집안을 한번 둘러보세요. 집을 채우고 있는 무수한 물건 가운데 정작 활용하는 물건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해보세요. 미국과 유럽에서 꽤 오래전부터 시작된 창고 대여업이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에서도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겨울옷, 캠핑 장비 등 부피가 큰 물건부터 특정 계절에만 필요한 물건, 당장 필요하지 않지만 버리기엔 어쩐지 아까운 물건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물건을 둘 장소가 마땅치 않은 이들을 위해 공간을 대여하는 사업인데요.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공간에 제약을 받지않기에 물건을 사는 데 주저함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집이 아닌 곳에 물건을 보관해두고 필요할 때만 가져와 사용한다면 굳이 소유할 필요가 있을까요? 소유냐 공유냐의 문제에까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지구 생물량을 넘어선 인공물질_바이츠만 과학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인공물의 총 질량이 전체 생물량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했다. 창고업이 성행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물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2020년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이스라엘 바이츠만 과학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이 만든 물질의 무게가 1900년대 초만 해도 자연에 존재하는 동식물을 모두 합친 생물 총량 무게의 3%였다고 해요. 이 무게는 2000년이 되면서 생물 총량 무게의 절반에 이릅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2020년에는 생물 총량과 무게가 같아졌어요. 인간이 만들어낸 물질이 불과 20년 만에 2배가 된 거지요. 오차를 감안하면 대략 2014년에서 2026년 가운데 어디쯤에서 인공물이 자연물의 무게를 넘어섰을 거라는 겁니다. 가히 ‘거대한 가속’이라 명명할 만합니다.그동안 생산한 도로, 집, 쇼핑몰, 자동차, 종이, 의류, 커피잔, 스마트폰, 그리고 우리 일상을 받쳐주는 여러 인프라의 무게를 모두 합치면 1조 1,000억 톤쯤 된다고 해요. 이 무게는 지구에 사는 동식물, 균류와 박테리아를 비롯한 모든 생명의 무게를 합친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인공물 가운데 절반이 콘크리트, 나머지 절반의 대부분은 자갈 같은 골재이고요. 그 밖에 인공물로 벽돌, 아스팔트, 금속, 그리고 플라스틱이 있어요. 결국 무언가를 짓고 건설하느라 쓰인 것들이 인공물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거지요. 물론 무게를 비교했을 때의 얘깁니다. 이 인공물에 폐기물은 포함되지 않았는데, 폐기물까지 포함시킨다면 2013년에 이미 인공물이 글로벌 바이오매스 무게를 초과했을 거라고 해요. 굳이 이런 연구 결과를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넘쳐나는 물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미 공급은 수요를 넘어선 지 오래지만, 공급을 멈추지 않으니 과잉 생산한 것들이 쌓이고 쌓여 남은 물건을 처리하려 아울렛 매장이 생기고 블랙 프라이데이가 생겼습니다. 블랙 프라이데이의 단면_블랙 프라이데이는 물건을 싸게 살 수 있기도 하지만,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기기도 한다. 추수감사절 다음 날부터 크리스마스까지 이어지는 쇼핑 시 즌인 블랙 프라이데이는 한 해를 마감하면서 그동안 쌓인 물건을 팔아 재고 비용 부담을 낮추고 한 해 매출 목표를 달성하려는 기업의 전략입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연중 가장 큰 규모의 쇼핑 시즌이지요. 이때 큰 폭으로 할인을 하면서 소비자를 불러들입니다. 소매업의 경우 이때 1년 매출의 70% 가까이 거두어들이기도 한다고 해요. 블랙 프라이데이가 이제는 전 세계적인 유행이 되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해외 직구가 활발해지면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범위가 지구 전체로 확장되었습니다.물건은 넘쳐나고 거기다 싸게 살 기회마저 생기니 블랙 프라이데이는 축복인 걸까요? 왕창 할인해서 파니 굳이 필요하지 않아도 왠지 안 사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은 불안감도 들고, 당장 필요는 없어도 있으면 좋을 것 같은 복합적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고민하게 된다면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은 어떤가요? 추수감사절 다음 날은 블랙 프라이데이지만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이기도 합니다. 1992년 캐나다 광고인이던 테드 데이브가 자신이 만든 광고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뭔가를 소비하도록 부추긴다는 자각에서 만든 날입니다. 광고는 없던 필요를 만들어 소비하도록 부추깁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광고의 홍수에서 벗어나기란 어렵습니다. 소비의 문제점을 알고 있어도 당장 갖고 싶은 물건을 싸게 판다면 유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지요. 이런 우리의 소비 습관이 지구를 박박 긁어 써버리고 결국 ‘생명의 끝’에 이르게 된다고 독일 빈 소재의 사회생태학연구소의 프리돌린 크라우스만은 이야기합니다. 소비 습관을 바꿀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_‘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캠페인에 참가한 사람들은 마트에서 그저 물건을 구경하거나 신용 카드를 자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물건을 구매하면 그 행복감이 얼마나 가던가요? 키마 카길은 ‘과식의 심리학’에서 “충돌과 사치를 부추기며 자기 절제와 절약 의지를 꺾는 소비자 중심 자본주의 사회가 ‘텅 빈 자아’를 만들어냈고 ‘텅 빈 자아’가 소비자 중심 자본주의에 내장돼 있다”라고 했습니다. 텅 빈 자아를 채워줄 물건을 욕망하지만 끝내 채워질 수 없다는 게 이 소비자 중심 자본주의의 핵심입니다. 자본은 소비가 우리의 불행을 해결해줄 거라고 환상을 심어줄 따름이니까요. 소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짜로 주는 물건 역시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쿨하게 거절해보세요. 마음이 허전해서 뭔가를 사고 싶다면 일단 밖으로 나와 걸으세요. 걸으면서 왜 사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자신에게 계속 묻다가 만나게 될 텅 빈 자아를 꼭 안아주세요. 명상이 혹시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을 늘려보세요.

라이벌은 본래
어디서 경쟁을 했을까요?

글. 장한업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영어 라이벌(rival)의 어원은 라틴어 리발리스(rivalis)로, ‘같은 개천을 사용하는 사람’ 또는 ‘개천의 반대편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라이벌과의 ‘선의의 경쟁’을 통해 우리는 자존감을 높이거나 지금 하는 일에 애착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경쟁의식 탓에 노벨문학상 거절한 사르트르라이벌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같은 목적을 가졌거나 같은 분야에서 일하면서 이기거나 앞서려고 서로 겨루는 맞수”라고 나옵니다. 이런 라이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든 있었어요. 한국사에서는 견훤과 궁예, 김구와 이승만, 이병철과 정주영, 김대중과 김영삼이 대표적인 라이벌이었지요.이중에서 견훤과 궁예는 모두 신라 계통 출신으로 백제나 고구려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각각 백제와 고구려의 계승자임을 표방하며 치열하게 경쟁했지요. 서양사를 보면, 알렉산더 대왕과 다리우스 3세,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차르트와 베토벤, 카뮈와 사르트르, 히틀러와 처칠 등이 경쟁을 했어요. 이중에서 카뮈와 사르트르의 경우, 사르트르가 노벨 문학상을 거절한 이유 중 하나가 라이벌인 카뮈가 이 상을 먼저 수상해 자존심이 상해서라고 할 정도로 두 사람의 경쟁의식은 대단했던 것 같아요. 라이벌에게 모욕감을 안겨줬던 알렉산더 대왕_알렉산더 대왕과 다리우스 3세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과 다리우스 3세의 라이벌 이야기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요. 그들의 라이벌 관계는 알렉산더 대왕이 다리우스 3세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요. “앞으로 당신이 나와 대화를 하고 싶을 경우 그 수신인을 ‘아시아의 왕’으로 하시오. 내게 동등한 입장으로 편지하지 마시오. 당신이 소유했던 모든 것은 이제 나의 것이오.(중략) 만약 당신이 나의 왕위에 대해 이의를 품고 그것에 맞서 싸우려 한다면 절대 도망가지 마시오. 당신이 그 어느 곳에 몸을 피하든 내가 당신을 찾아낼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1) 이 편지를 읽은 다리우스 3세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엄청난 모욕감을 느꼈을 거예요. 그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였겠지요. 하나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비슷한 투의 편지를 써서 대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치욕스럽지만 참는 것이지요. 후자의 경우에는 라이벌 관계가 끝나겠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겠지요.1) 조셉 커민스 지음, 송설희, 송남주 옮김, <라이벌의 역사>, 말글빛냄 2009, p. 4.  같은 개천을 사용하면 싸우게 된다그렇다면 라이벌은 본래 어디에서 경쟁한 사람들이었을까요? 어원상으로 보면, 이 경쟁은 강가에서 시작되었어요. 영어 라이벌(rival)의 어원은 ‘개천’이나 ‘시내’를 가리키는 라틴어 리부스(rivus)였으니까요. 리부스에서 라틴어 리발리스(rivalis)가 나왔는데, 그 의미는 ‘같은 개천을 사용하는 사람’ 또는 ‘개천의 반대편에 사는 사람’이었어요. 이 단어에서 중세 프랑스어 리발(rival)이 나오고 이것이 영어로 들어가 라이벌(rival)이 되었지요.그런데 같은 개천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관계는 왜 좋지 못했을까요?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해요. 그중 하나는 물고기와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어느 날 아침 한쪽에서 물고기를 많이 잡아버리면 반대쪽에서는 잡을 물고기가 별로 없게 되지요. 또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말처럼 한쪽에서 물길을자기편으로 끌어들이면 반대쪽은 물을 사용하지 못하고 그 결과 농사까지 망치게 되겠지요. 또 개천을 사이에 두면 재산, 물건과 같은 물질뿐만 아니라 사람을 두고도 싸울 수 있어요. 넘어야 할 산 또는 자존감을 높여주는 계기라이벌은 대개 부정적으로 인식되지만 긍정적인 면도 많아요. 첫째, 라이벌은 나의 목표 추구에 도움을 줘요. 라이벌은 내가 넘어야 할 산인 동시에 내가 갈 길을 밝고 명료하게 비춰주지요. 둘째, 라이벌은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더 애착하게 만들어요.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일을 하는 라이벌을보면서 자기가 하는 일이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더욱 확신한다고 해요. 셋째, 라이벌은 나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어요. 누군가가 나를 라이벌로 생각한다면 그가 나의 실력이나 위치를 인정한다는 말과 같아요. 그러니 나의 자존감은 높아질 수 있지요.여러분의 라이벌은 누군가요? ‘선의의 경쟁’이란 말처럼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는 라이벌을 한 번 찾아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미술계 화제의 라이벌 레오나르도 다 빈치 VS 미켈란젤로1504년 피렌체 시 당국은 베키오 궁 대회의실 벽화 작업을 두 사람에게 동시에 의뢰해 경쟁을 붙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밑그림을 헐뜯으며 자기 작품이 더 낫다고 주장했지만 당대 사람들은 미켈란젤로의 편을 들어주었다. 벽화 작업은 여러 사정 때문에 중단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