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인생의 때에 따라서,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어요. 특별한 계획 없이 그냥 건강하고 건전하게, 이 일을 할 수 있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아무 탈 없이 하는 게 소망이지요.강부자는 TV 화면을 통해서 ‘국민 엄마’로 친숙한 탤런트일 뿐만 아니라, ‘연극배우’로서도 지난 15년간 꾸준히 무대에 서왔다. 내년 초 부산 공연을 앞두고 있는 그를 만나, 자신이 사랑하는 연극 <친정엄마와 2박 3일>과 더불어 평소 소탈한 생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누적 관객 87만 명의 대기록 지난 15년간 단 한 해도 쉬지 않고 1,000석 이상 중·대형 극장 전국 투어를 이어오며 대한민국 연극 최초로 누적 관객 87만 명을 넘어선 작품이 있다. 바로 데뷔 61년 차 ‘국민 엄마’인 배우 강부자가 주연을 맡은 연극 <친정엄마와 2박 3일>이다.“어떤 사람은 이제 엄마가 무조건 희생하는 시대는 갔다고, 궁상맞은 신파라고 할지 몰라도, 딸내미들이 언제든 찾아와 펑펑 울 곳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하는 배우 강부자. 바쁜 스케줄을 쪼개어 초연부터 무려 795회씩이나 이 연극을 위해 꾸준히 무대에 오른 이유를 이 말에서 짐작할 수 있다.연극은 평소 엄마의 전화 한 통도 살갑게 받아주지 않던 바쁜 서울깍쟁이 딸, ‘미영(윤유선 역)’이 어느 날 연락도 없이 시골 친정엄마 집을 찾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미영은 전기장판에 의지해 겨울을 나는 궁상맞은 엄마 모습에 속이 터지고, 엄마는 갑자기 내려온 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속이 타기만 한다. 이렇게 2박 3일을 보내게 된 엄마와 딸은 치열한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거치며 슬픈 이별을 준비하는 가운데 마침내 서로의 사랑과 진심을 뜨겁게 받아들이며 극은 막을 내리게 된다.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를 좁히다 얼마 전 KBS 드라마 <진짜가 나타났다> 출연을 끝내고 난 후, 김해문화의전당을 찾아 이틀간 <친정엄마와 2박 3일> 공연 무대에 오르기 전 무대 세트장에서 배우 강부자를 만날 수 있었다. 먼저 궁금했던 것은 1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 연극이 꾸준히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핏줄이죠. 이 연극은 단순히 딸과 엄마 사이의 얘기만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마음을 건드리는 가족의 이야기예요. 이 연극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딸과 친정엄마가 같이 보러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같이 보러 오고, 아들과 아버지가 보러 오면서 마침내 전 가족이 함께 보는 연극으로 자리를 잡았지요.” 말하자면, 이 연극은 우리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뜨겁게 공감을 할 수밖에 없는 ‘가족’을 테마로 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든 자기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볼 수 있어서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다. 배우 강부자는 이 연극을 공연하면서 잊지 못할 관객 한 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서울에서 공연을 할 때 한 번은 어느 노부부께서 공연을 보시고 난 후 분장실로 찾아왔어요. 안동에서 이 연극을 보기 위해 서울까지 오신 분들이었는데 그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이 연극은 전국의 각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하게 하여 부모와 자식 간의 도리에 대해 가르치는 학습 교재로 삼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 말씀이 참 가슴에 뭉클하게 와 닿더라고요.” 또 한 번은 이 연극의 팬인 여대생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는 이 연극을 26번이나 봤다며, 연극을 보고 난 날은 집에 돌아가서 자신의 어머니를 꼭 끌어안고, “엄마, 내가 엄마한테 더 잘할게.”라고 말하더라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스포츠를 통해 건강과 젊음 유지 강부자는 우리에게 TV 드라마에서 어머니나 할머니 역할로 더 친숙한 편이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이처럼 꾸준히 연극 무대에 서 왔던 것은 연극 무대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연극을 할 때는 TV를 할 때보다 더 집중을 하고 긴장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TV는 NG가 나면 다시 찍을 수 있지만 연극은 라이브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실수해선 안 되기 때문이죠. 또 관객과 호흡하면서, 관객과 일체가 되어 연기한다는 것도 연극의 매력인 것 같아요. 그런데 TV나 연극 중 어느 쪽이 더 어렵다, 쉽다 얘기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이렇게 노익장을 과시하며 바쁘게 살아가는 그는, 쉬는 날에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며 충실히 재충전을 한다고 밝혔다. “저는 쉴 때 축구, 야구, 배구 등 스포츠 경기를 관전하는 것을 좋아해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응원하면서 우리 팀이 잘 할 땐 흥분하고, 모두가 뛸 땐 저도 같이 펄쩍 뛰고 그래요.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이 이 나이 들어서도 건강과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특히 열렬한 축구 팬으로 잘 알려져 있는 그는 이전에도 여러 인터뷰에서 축구 사랑을 밝힌 바 있다. 유럽 프로 리그의 축구는 보통 우리나라에선 새벽에 방송하는데 그걸 보기 위해 밤을 꼬박 샌 적도 많다고. 2019년에 출연한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국내외 많은 축구 선수들의 등번호만 보고 그 선수의 이름을 바로 맞히는 것은 물론, 어떤 팀의 벤치에 있는 후보 선수 이름까지 알고 있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부산 관객과의 만남 기대돼 <친정엄마와 2박 3일>은 2024년 2월 17~18일 양일간 소향씨어터에서 부산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강부자는 옛날부터 부산에 촬영을 하러 많이 와봤기 때문에 부산에 대한 추억이 많다며 부산 공연이 무척 기대된다고 밝혔다. “부산은 어렸을 때부터 제가 참 좋아하고 자주 갔던 도시예요. 한 번은 부산 대신동의 어떤 신축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홍보를 하기 위해 갔는데, 그 자리에서 화끈한 ‘부산아지매’들과 격의 없이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게 아직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내년 초에 다시 부산 관객분들을 만나게 되어 기대가 크고, 가족끼리 나들이 오신다는 기분으로 저희 연극 많이들 보러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향후 계획이나 인생 버킷 리스트를 물어보았다. 뭔가 대단한 것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맥 빠지게 들릴 수 있지만 “특별한 계획은 없다.”며, 대신, 인생이라는 고해의 파도를 오랫동안 슬기롭게 넘겨온 자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소박한 소망을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저는 그냥 인생의 때에 따라서,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어요. 저에게 또 어떤 일이 주어진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는 것이고, 특별한 계획 없이 그냥 건강하고 건전하게, 이 일을 할 수 있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아무 탈 없이 하는 게 소망이라면 소망이지요.”
19세기 영국의 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레이크 디스트릭트글·사진_ 이영철 여행작가, <여행과 영화> 저자 잉글랜드 북부 지방을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횡단하는 도보 여행길을 CTC라고 부른다. CTC 중에서도 인간이 발견한 가장 사랑스러운 곳이라고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칭송했던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걸어보자잉글랜드의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코로나가 극성인 동안에 경기둘레길을 오래 걸었다. 우리 땅에 대한 애정이 새삼 솟구치는 여정이었다. 한반도 역사가 응축돼 있는 중심 현장을 두 발로 누볐다는 자부심도 일었다. 경기둘레길 860km 완주 마지막 날, 김포 대명항에 도착 즉시 해안 철책선 입구 나뭇잎 속을 헤쳤다. 1코스를 출발하던 날 묻어뒀던 작은 조약돌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다시 가지러 올 때까지 나를 잘 지켜달라’는 염원이 담긴 조약돌에 쓴 ‘Tims’라는 볼펜 글씨 역시 그대로였다. 영국 횡단 CTC 트레킹을 시작하던 날 영국인 팀스 씨가 나에게 건내줬던 조약돌이다. ‘북해 앞까지 가는 동안 이 조약돌이 당신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며 세인트비스 해변에서 하나 주워 내 손에 쥐어 줬었다. 원래는 다른이들처럼 15일 후 북해 앞바다에 훌쩍 던졌어야 했지만 어쩐지 아까워 가져왔었다. 섬나라 영국은 지형적으로 우리 한반도와 많이 닮았다. 한반도에는 차가운 군사분계선이 남과 북을 가르지만, 영국 섬의 허리에는 고대 로마의 성벽 흔적이 있어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구분 짓는다. 스코틀랜드 바로 아래쪽인 잉글랜드 북부 지방을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횡단하는 총거리 315km 도보 여행길을 ‘코스트 투 코스트(Coast to Coast)’, 줄여서 ‘CTC’라 부른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포 대명항에서 DMZ 접경을 가로질러 강원도 고성 앞바다까지 걸어서 횡단하는 개념이겠다.잉글랜드 북부의 해안 마을 세인트비스 전경 잉글랜드의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코로나가 극성인 동안에 경기둘레길을 오래 걸었다. 우리 땅에 대한 애정이 새삼 솟구치는 여정이었다. 한반도 역사가 응축돼 있는 중심 현장을 두 발로 누볐다는 자부심도 일었다. 경기둘레길 860km 완주 마지막 날, 김포 대명항에 도착 즉시 해안 철책선 입구 나뭇잎 속을 헤쳤다. 1코스를 출발하던 날 묻어뒀던 작은 조약돌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다시 가지러 올 때까지 나를 잘 지켜달라’는 염원이 담긴 조약돌에 쓴 ‘Tims’라는 볼펜 글씨 역시 그대로였다. 영국 횡단 CTC 트레킹을 시작하던 날 영국인 팀스 씨가 나에게 건내줬던 조약돌이다. ‘북해 앞까지 가는 동안 이 조약돌이 당신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며 세인트비스 해변에서 하나 주워 내 손에 쥐어 줬었다. 원래는 다른이들처럼 15일 후 북해 앞바다에 훌쩍 던졌어야 했지만 어쩐지 아까워 가져왔었다. 섬나라 영국은 지형적으로 우리 한반도와 많이 닮았다. 한반도에는 차가운 군사분계선이 남과 북을 가르지만, 영국 섬의 허리에는 고대 로마의 성벽 흔적이 있어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구분 짓는다. 스코틀랜드 바로 아래쪽인 잉글랜드 북부 지방을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횡단하는 총거리 315km 도보 여행길을 ‘코스트 투 코스트(Coast to Coast)’, 줄여서 ‘CTC’라 부른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포 대명항에서 DMZ 접경을 가로질러 강원도 고성 앞바다까지 걸어서 횡단하는 개념이겠다.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사랑했던 땅 CTC는 여행작가 알프레드 웨인라이트가 반세기 전에 개척하여 세상에 알린 길이다. 영국의 서해 바다인 아이리시 해의 세인트비스에서 출발하여 동쪽을 바라보며 15일 정도 걷고 나면 광활한 북해 앞 로빈후즈베이에서 길이 끝난다. 수백 년 전부터 있어온 여러 갈래의 길들이, 한 여행가의 열정 덕택에 하나로 묶여 CTC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이들의 발자국으로 다져지면서 더 좋은 길로 거듭났다. 영국을 대표하는 장거리 트레일로 유럽인들에게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영국을 걷는다는 건 런던 등 대도시 관광과는 차원이 다르다. 호수와 계곡을 가로질러 야트막한 산을 넘는다. 싱그러운 초원과 능선을 지나고 나면 19세기 유물 같은 시골 가옥들을 만나곤 한다.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사랑했던 땅 레이크 디스트릭트가 있고 소설과 영화 ‘폭풍의 언덕’의 배경지인 황무지 무어랜드를 걷는 길이다. CTC의 가장 큰 매력은 영국 정부가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한 세 개의 국립공원을 연이어 관통한다는 점이다. 잉글랜드 서부의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와 중부의 ‘요크셔 데일스(Yorkshire Dales)’ 그리고 동부의 ‘노스요크 무어스(North York Moors)’가 섬의 허리를 감싸며 두터운 벨트처럼 연결되어 있다. 세 국립공원 각각은 저마다의 자연 환경과 역사 문화가 담긴 독특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1. 잉글랜드 북부의 세인트비스 기차역 2. 아이리시 해안가의 영국 횡단 CTC 출발점3. 양떼가 풀을 뜯는 레이크 디스트릭트 초원 4. 헨리 8세 시대 패쇄된 샤프 마을 수도원 터 윌리엄 워즈워스 시인의 고향 마을 그래스미어 레이크 디스트릭트거리 105km. 소요기간 5일. 최저해발 0m. 최고해발 784m.인간이 발견한 가장 사랑스러운 곳,레이크 디스트릭트인 이 지역을 ‘인간이 발견한 가장 사랑스러운 곳(The loveliest spot that man hath ever found.)’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레이크 디스트릭트 복판에 있는 시인의 고향 마을 그래스미어에는 시인의 생가인 ‘더브 커티지(Dove Cottage)’와 박물관이 있어 워즈워스 시인을 좋아하는 사람들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나 구름처럼 외로이 떠돌았네’로 시작되는 시 ‘수선화’의 제목을 딴 ‘수선화 정원’도 울창한 숲에 싸여 방문객들을 품고 있다. 여행 가이드북 ‘론리 플래닛’ 또한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걷기의 심장과 영혼(The heart and soul of walking) 같은 곳’이라고 소개한다.런던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까지 이어주는 고속도로와 종단 철길을 육교로 건너고 샤프 마을을 가로질러 벗어나면서 호수 지방은 끝이 난다. 잉글랜드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세인트비스 절벽에서 느낀 묘한 설렘 CTC를 시작하던 첫날 아이리시 해를 바라보며 세인트비스 절벽에 올랐던 날의 느낌은 여전히 생생하다. 새로운 길, 안 가 본 길 앞에 선 이들의 심정이 대체로 그러할 것이다. 은근한 기대와 막연한 두려움, 거기에 각자 나름의 의지가 섞인 묘한 설렘이 혼재되지 않을까. 그리곤 그 길을 걸어 목표했던 곳까지 이르고 나면 그 여정은 그에겐 새로운 역사가 된다. 각자의 인생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작은 인생’으로 쌓여지는 것이다. 우리네 삶의 질이 얼마나 풍성하고 윤택할지는 이런 소소한 역사나 작은 인생들이 얼마나 촘촘하게 쌓여 가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
형설지공의 고사는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적정기술을 활용한 친환경 조명의 완벽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태양열을 비롯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친환경적인 적정기술로 만든 조명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현대적인 형태의 적정기술 조명을 찾아서 옛날 중국 진(晉)나라의 차윤이라는 사람은 집안이 가난해서 등불을 켤 수 없어서, 반딧불을 잡아서 밤에 책을 읽는 조명으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또, 손강이라는 사람은 겨울에 쌓인 눈에 반사되는 달빛을 이용해서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노력하여 성공한다는 뜻으로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이 이야기를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 또한 당시의 환경에서 적정기술을 조명에 활용한 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보다 현대적인 형태로 적정기술을 조명에 활용한 예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기술과 산업의 발달로, 요즘에는 태양전지와, 충전지, LED 전구를 이용한 저렴한 조명기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 쇼핑몰에 ‘태양전지 전등’을 검색하면, 낮에 태양전지로 발생시킨 전력을 충전해서 밤에 어둠을 밝히는 수천 원 대 이하의 제품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지요.솔라카우 - 솔라밀크페트병에 LED를 부착해 만든 골목길 가로등저개발국 아이들의 교육에 기여하는 조명 이와 같이, 태양전지-충전지-전구의 조합이 이미 많이 보급되었지만, 보다 저개발국 어린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적용한 제품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스타트업 중 하나인, 요크(YOLK)에서는 ‘솔라카우-솔라밀크’라는 제품을 만들었는데요. 학교에 ‘솔라카우’라는 태양광 충전 시스템을 설치해두고, 학생들에게 ‘솔라밀크’라는 보조 배터리와 손전등이 있는 도구를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학생들이 솔라밀크를 들고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면서 충전을 하고, 충전된 것을 집에 갖고 가서 조명으로도 쓰고, 핸드폰을 충전하기도 하는 등 유용하게 사용합니다. 충전을 하려면 학교에 와야 하니까 자연스럽게 교육률을 높일 수도 있지요. 한편, 조명이 꼭 밤에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창문이 별로 없는 건물의 경우에는 낮에도 어두운데요. 외부의 태양빛 중 일부만이라도 효율적으로 집 안을 비추게 하면,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빛이 안 들어오는 건물에 밖으로 통하는 구멍을 뚫고, 투명 플라스틱 페트병에 물을 담고, 빛을 난반사시킬 수 있는 표백제 등을 소량 섞어서 구멍에 끼워두면, 햇빛이 병 안으로 들어와 난반사되어 건물 안쪽을 밝혀줍니다. 물론, 태양 빛 대신 전구를 사용하면, 밤에도 활용할 수 있지요. 캠핑할 때도 유용한 적정기술 조명 이러한 기술은 정전이 되었을 때나 캠핑 갔을 때도 활용해 볼 수 있습니다. 밤에 스마트폰의 손전등 기능을 켜두고, 그 위에 투명한 페트병(또는 반투명한 플라스틱 병)에 표백제·세제(또는 물을 난반사 시킬 수 있는 탁한 물질)가 소량 섞인 물을 빛이 나오는 곳에 두면, 텐트 안을 환하게 밝힐 수 있습니다. 직진성이 좋은 손전등의 빛을 퍼트려서 주변을 밝혀 주는 것이지요. 한편 자연의 태양빛을 그대로 건물 조명에 활용하는 것은 현대인들에게도 흔한 일입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직사광선이 부담스러워서,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사용해서 은은한 실내 조명을 하지요. 방안이 창문으로부터 너무 깊어서 이러한 방식만으로는 내부를 충분이 밝힐 수 없을 경우에는 창문에 커튼을 치고, 안쪽에 전등을 켜는 경우도 있는데, 광덕트 자연채광 시스템을 이용하여, 자연광으로 건물 안쪽 깊숙이 밝혀주기도 하지요. 광덕트는 효과적이지만, 시공비가 많이 드는 문제가 있는데,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베네치안 블라인드의 표면에 미세한 반사 패턴을 넣어서, 햇빛을 방안의 천장 방향으로만 투사해서, 눈은 부시지 않고, 방 안을 깊숙이 밝혀주는 기술도 있습니다. 제가 십여 년 전에 했던 발명인데,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특허입니다. 베네치안 블라인드를 활용한 적정기술 조명 공간하우스 태양열 감지 센서등컴스마트 태양광 LED 정원등
변상벽, <참새와 고양이(猫雀圖)>, 60cm×124.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사진 제공 : 국립중앙박물관, 간송미술관 주변에 김홍도 같은 쟁쟁한 천재들이 널려 있던 도화서에서 기죽지 않고, 자신만의 장점을 살린 ‘고양이 그림’으로 승부해 시대를 풍미했던 화가 변상벽에 대해 알아보자. 변고양이라 불렸던 화가 변상벽(卞相璧, 1730~1775)은 조선 후기, 숙종과 영조 때 활동한 도화서 화원(圖畵署畵員)이다. 자는 완보(完甫), 호는 화재(和齋)이며, 현감 벼슬을 지냈다. 인물과 짐승 그림에 뛰어났는데, 특히 고양이와 닭 그림을 잘 그려 ‘변고양(卞古羊)’과 ‘변계(卞鷄)’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했다. 그의 고양이 그림은 일상생활 속에서 동물에 대한 깊은 애정과 면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세밀하고도 빈틈이 없는 묘사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작자 미상의 <진휘속고(震彙續攷)>라는 책에는 변상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화재(변상벽)는 고양이를 잘 그려서 별명이 변고양(卞古羊)이었으며 초상화 솜씨가 대단해서 당대의 국수(國手)라고 일컬었는데 그가 그린 초상화는 백(百)을 넘게 헤아린다.” 이 책에 적힌 대로 변상벽은 고양이 그림과 인물 초상화로 명성을 크게 떨쳤다. 그의 화실에는 그림을 주문하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아무리 돈과 권세가 있는 사람들이 그림을 부탁해도 아무에게나 그림을 그려주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쳐나는 인물이었다고 한다.변상벽, <국화 핀 뜰 안의 가을 고양이(菊庭秋猫)>, 22.5cm×29.5cm, 간송미술관 소장 천재들에게 대적할 비장의 무기를 찾다그가 왜 고양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알려면 정극순(鄭克淳)이라는 사람이 지은 <변씨화기(卞氏畵記)>라는 변상벽의 전기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 책의 기록에 따르면, 변상벽이 활동했던 시기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유행했고 너도 나도 산수화를 그리던 시절이었다. 변상벽은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수많은 화원들과 산수화로 경쟁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달았다. 대신 자신은 꼼꼼한 관찰력과 세밀한 묘사 능력에서는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장기가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분야는 바로 고양이나 닭 그림 같은 동물화였다. 특히 고양이를 평소 사랑하고 아꼈던 그는 고양이의 행동 양식과 특징을 자세히 관찰해 그림으로 그리고자 했다. 그러나 도화서에는 고양이 그림을 그려달라는 주문이 없었다. 그래서 낮에는 자신의 본업인 도화서 화원으로서 초상화나 십장생도 같은 그림을 그렸고 집에 돌아와서는 자신만의 고양이 그림에 매진했다. 밤낮으로 그렸고 코피를 쏟을 만큼 노력한 끝에 그는 20대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고양이 그림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부모님 생신 선물로 큰 인기 조선시대에는 고양이를 오늘날처럼 집 안에 들여 애지중지 키우는 문화가 없었다. 고양이는 그냥 쥐를 잡아주는 유익한 동물이거나, 닭이나 물고기를 훔쳐 먹는 도둑 같은 짐승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그저 고양이가 귀엽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변상벽의 그림을 원했던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체 왜 그의 고양이 그림은 인기가 있었을까?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고양이’와 ‘고양이 그림’은 별개로 취급되었다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고양이가 장수(長壽)의 상징이었다는 것. 이는 70세 노인을 뜻하는 모(耄)와 고양이를 뜻하는 묘(猫)가 발음이 비슷한 데서 착안한 일종의 언어유희였다.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은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연로하신 부모님의 생신 선물로 고양이 그림이 인기가 아주 높았다고 한다. 즉 부모님의 건강과 장수를 바라는 효심을 고양이 그림을 통해 표현할 수 있었기에, 유교사회의 선비나 양반들에게까지 변상벽의 고양이 그림이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이다. 귓속 실핏줄까지 생생하게 그려내 변상벽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참새와 고양이(猫雀圖)>는 서로 희롱하는 한 쌍의 고양이와 다급하게 지저귀는 참새 떼의 모습을 섬세한 필치로 실감나게 묘사하였다. 또한 새순이 돋은 고목의 연초록 나뭇잎을 먹을 듬뿍 찍은 붓으로 대담하고도 멋지게 그려내어 섬세하게 묘사된 동물들과는 대조적인 기운을 보여주고 있다. <국화 핀 뜰 안의 가을 고양이(菊庭秋猫)>는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오늘날까지도 전통 자수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이 그림은 가장 사랑받는 견본 중 하나라고 한다. 고양이가 소담하게 피어난 가을 뜨락을 배경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는 이 그림에서 주인공인 얼룩고양이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가을 햇볕을 즐기다 인기척에 놀라 잔뜩 경계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고, 먹잇감을 노려보며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상황 설정도 빼어나지만, 한 가닥 수염과 터럭 한 올의 묘사에도 조금의 소홀함이 없으며, 더 나아가 눈동자의 미묘한 색조와 귓속 실핏줄, 심지어 가슴 부분의 촘촘하고 부드러운 털과 등 주변의 성근 듯 오롯한 털의 질감까지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변상벽, <참새와 고양이(猫雀圖)>, 93.9cm×14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다 동물화를 이렇게 사실적으로 잘 그리니 인물 초상화 또한 잘 그릴 것이라는 기대가 그에게 쏠렸다. 그래서 당대 가장 유명한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홍도’와 함께 영조의 어진을 그렸는데, 변상벽은 주로 왕의 얼굴인 용안을, 김홍도는 왕의 몸인 용신을 나눠서 그렸다고 한다. 특히 1763년과 1773년 두 차례 영조의 마음에 쏙 드는 어진을 그린 공로로 중인 신분으로서는 파격적인 인사라 할 수 있는 현감 벼슬직을 얻기도 했다.‘변고양이’라는 비웃음까지 사면서 고양이 그림에 매달렸던 변상벽은 현대 마케팅 용어를 빌리자면 자신만의 ‘틈새시장’을 찾고, 그 시장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경쟁자들 틈에서 돋보이기 위해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지 않고 끈질긴 집념과 의지로 새로운 길을 개척한 그의 사례에서 현대인들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