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이 부산 해운대에 있어 어렸을 때 여름방학마다 해운대 바다에서 수영했던 것이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는 한비야 교수. <부산은행 이야기>와 인연이 닿아 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너무 기쁘다고 말하며, 지나온 삶에 대한 회상, 그리고 ‘균형 잡힌 삶’에 대한 요즘의 생각 등을 들려주었다.삶의 방향을 바꾼 오지 여행 요즘 ‘빠니보틀’, ‘곽튜브’ 등 여행 전문 유튜버들이 세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우리가 잘 모르는 외국의 생활과 문화를 흥미롭게 알려주고 있다. 이들은 TV 방송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하며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그런데 유튜브도 없고, 지금처럼 여성 혼자 해외여행을 나가기 쉽지 않았던 30여 년 전에 세계의 각지를 육로로 여행한 후, 그 경험을 책으로 발간해 지금의 유튜버 못지않은 화제와 인기를 끌었던 인물이 있다. 바로 현재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특임고문을 맡고 있는 한비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다. 그의 책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덕분에 ‘여대생들이 존경하는 여성 1위’로 선정되기도 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 “오지와 분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고작 1~2천 원이 없어서 사람이 죽게 되는 현장을 많이 봤어요. 그래서 저는 이런 실태를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서 도움을 요청해 사람 목숨 구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결심을 이미 여행 중에 했지요. 여행을 다녀온 후 그런 내용으로 여러 군데서 인터뷰를 했더니, 그걸 보고 월드비전에서 연락이 와서 긴급구호팀장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좋은 습관은 하루아침에 내 것이 되는 게 아니랍니다.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을 몇 번만 넘어서면 평생 그 루틴을 계속 가져갈 수 있어요.”은퇴 유예기간 3년, 다시 현장 속으로 한비야 교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경험했던 첫 구호활동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탈레반을 피해 산속으로 피난을 간 마을 사람들에게 식량 지원을 하러갔는데, 수백 명의 마을 아이들이 꼬챙이처럼 말라서 굶어 죽어가는 참상을 목격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긴급 영양 급식으로 죽을 먹여서 한 아이라도 더 살려내려는 활동에 즉각 돌입했다. “그때 생후 6개월 된 아기가 있었는데 영양실조에 걸려 죽기 일보 직전이었어요. 다른 아이들은 저희가 준 죽을 먹고 어느정도 기운을 차렸는데 그 아이만 살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죠. 떠나는 날 마지막으로 간절히 기도를 하고 손을 그 애 입에 갖다 댔을 때였어요. 갑자기 그 아이가 조그만 앞니 두 개로 내 손가락을 힘주어 무는 거예요. 마치 ‘난 괜찮아요. 아직 살아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그런 아이들 때문에 제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는 지난 2022년 남수단에서의 구호활동을 마지막으로 ‘현장에서 은퇴했다’고 언론에는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사실은 아직 끝이 아니라고 한다. 앞으로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특임고문을 3년간 맡으면서 교육청을 비롯해 여러 기관에 강의를 나가야 하는데 현장 상황을 모른 채 강의를 할 순 없다는 것.“향후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이 세 군데를 다니면서 긴급구호가 필요한 지역의 상황을 파악한 후 그것을 강의 주제로 삼을 계획이에요. 그러니 은퇴가 3년간 더 유예가 된 셈이지요.” 새로운 결혼생활의 모델을 만들어나가다구호활동을 떠나서 ‘자연인’ 한비야 교수의 생활은 현재 어떠한 모습일지도 궁금했다. 더구나 지난 2017년 59세의 나이로 네덜란드 출신 긴급구호 전문가 안토니우스 반 쥬드판 씨(이하 안톤)와 결혼을 한 후 삶의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있을 것이라 추측되었기 때문이다.“저는 사람 살리는 일이 좋아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늘 현장에 있었는데, 어느덧 돌아보니 결혼해서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시기가 이미 지나버린 거예요. 그래서 결혼을 안 하겠다고까지 생각하진 않았지만 굳이 서두를 필요도 없다는 입장이었지요. 그러던 차에 같은 일을 하며 오래 전부터 잘 알던 사이였던 남편과 더 가까워지며, ‘아, 이 사람과 결혼하면 내가 좀 더 인간적으로 함께 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결혼을 결심했죠.”그의 남편 안톤은 한비야 교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고 ‘삶의 균형을 잡아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서로의 생활 영역을 존중하고 지켜주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이 부부는 1년에 3개월은 네덜란드에서, 3개월은 한국에서 같이 생활하고 나머지 6개월은 따로 살며 각자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몰두한다.“제가 한국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으니 보통 부부들처럼 1년 내내 같이 살 순 없잖아요. 처음부터 우리는 이런 조건하에서 어떻게 하면 최대한 풍요롭고 균형 잡힌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지 깊이 논의한 끝에 적절한 해답을 이끌어낸 것이죠.” 좋은 습관은 균형 잡힌 삶의 필수조건 이렇게 서로의 생활 영역을 존중하면서 물리적인 거리 차이를 극복하며 새로운 결혼생활의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는 두 사람.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앞서 말한 데서도 언급한 ‘균형 잡힌 삶’이다.“원래 제 삶의 모토는 ‘즐겁고 자유롭게 살자’였는데 거기에 이젠 ‘균형 잡힌 삶’이 더 추가되었어요. 옛날에 현장에서 일할 땐 잠도 안 자고, 계속 스트레스 받으면서 몸이 이 일을 감당 못할 때까지 해야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했죠. 등산을 좋아해서 산에 갈 때도 (백두대간 종주처럼)지치도록 했잖아요. 하지만 이젠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고 무릎도 자주 아파요. 그래서 이제 내 나이에 맞게,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한비야 교수에겐 요즘 매일 꼭 지키는 루틴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하루에 1시간가량 요가를 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이다. 이 같은 좋은 습관 덕분에 그는 일과 휴식, 그리고 결혼생활과 개인의 삶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한 가지 조언 드리자면, 좋은 습관은 하루아침에 내 것이 되는 게 아니랍니다. 요가나 일기도 내 몸에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하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외국어를 익히는 것과도 비슷해요. 많은 사람들이 어느 단계까지 갔다가 그걸 뛰어넘지 못해 외국어 공부나, 좋은 습관을 몸에 익히는 걸 포기하곤 하죠.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을 몇 번만 넘어서면 평생 그 루틴을 계속 가져갈 수 있어요.”하루 한 명씩 다른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남은 인생의 행동강령이라는 한비야 교수. 그는 앞으로도 ‘나 혼자만의 행복’이 아닌, ‘전 세계인과 함께 행복한 세계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다짐을 들려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무나카타 오시마 코스의 언덕길에서 만난 풍차 글·사진_ 이영철 여행작가, <세계 10대 트레일> 저자 규슈는 열도의 변방이지만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한반도와는 거리상 가장 가까워 임진왜란 때 조선 침략의 전진기지가 됐으므로 우리와는 역사적 악연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랬던 규슈가 지금은 정서적으로 우리와 아주 가까워졌다. 제주올레가 2012년 일본에 수출되어 규슈올레가 생기면서 ‘길’을 통하여 더욱 친숙해진 것이다.현해탄과 나란히 걷는 오시마 코스 규슈는 후쿠오카, 사가, 나가사키, 구마모토, 가고시마, 미야자키, 오이타라는 7개의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현마다 적게는 1개, 많게는 6개씩 총 18개의 올레 코스가 섬 전체에 분포되어 있다. 후쿠오카는 규슈의 관문이기에 관광도 좋지만 잠깐 짬을 내어 규슈올레 한두 코스라도 트레킹해 볼 경우 접근성이 좋다. 다른 여섯 개 현에는 올레 코스가 각각 1~3개씩인데 반해 후쿠오카 현에는 무려 여섯 개나 분포해 있다. 그중 한 코스를 추천한다면 규슈의 교통 중심 하카타 역에서 가장 가까운 무나카타(宗像) 오시마(大島) 코스가 좋다.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섬 중의 섬 코스, 후쿠오카현 무나카타 시에 속해 있는 조그만 섬 오시마를 걷는 코스다. 섬에 도착해 훼리선을 내리면 터미널 왼쪽으로 바로 올레길이 시작된다. 접근성도 아주 좋다. 태양신의 세 딸인 3대 여신을 모시는 나카미쓰야 신사를 만난 후 해발 224m의 미다케 산 정상까지는 땀을 한 줌 쏟아야 하는 오르막 숲길이다. 이후는 완만한 능선길, 풍차전망대로 향하는 내내 바람에 휘날리는 억새풀이 주변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멋진 장관을 선사한다. 한반도 남해와 일본 규슈를 잇는 대한해협 200km, 현해탄도 장쾌하게 펼쳐진다. ‘중앙대다원’이라는 이름의 야메 녹차 밭광활한 녹차 밭과 아담한 신사, 야메 코스 야메는 후쿠오카 시에서 남동쪽, 자동차로 1시간 걸리는 소도시다. 녹차로 유명한 이 지역의 야메(八女) 코스는 광활한 녹차 밭과 함께 고대의 고분들을 두루 만날 수 있는 시골길이다. 하카타역에서 JR열차를 타고 45분 뒤 하이누즈카 역에 내려 시골 버스로 갈아타고 25분 뒤 카미야마우치 마을에 내리면 그곳이 바로 트레킹 출발점이다. 아담한 신사가 있는 야마노이 공원을 지난 후 마을 뒷산으로 오른다. 도난잔 고분에 이르면 야메 시 카미야마구치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누오 성터부터 ‘중앙대다원’이라는 이름의 야메 녹차 밭이 나타나는데, 옵션 구간으로 왕복 700m 거리인 대다원 전망대까지는 필히 다녀올 가치가 있다. 광활한 녹차 밭을 다 지나면 시골 농가가 이어지다가 아담한 절 이치넨지를 만나고, 전원주택들 사이 훈훈한 시골길이 이어지다가 마루야마쓰카 고분에 이르면 야메 시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후쿠오카 여행 중 한나절 일정으로 가볍게 다녀오기에 접근성이 좋다. 나고야 성 박물관의 거북선 모형 / 하도미사키 해수욕장의 돌하르방역사의 현장을 되돌아보는 가라쓰 코스 후쿠오카현과 인접한 사가현에는 가라쓰, 우레시노, 다케오, 3개 코스가 있는데, 규슈올레를 이야기할 때 세 코스 중 어느 한 곳도 빠지는 경우가 없다. 가라쓰는 임진왜란 때 왜군과 물자를 실어 나른 전초기지였다. 나고야성터 등 당시의 유적들이 가라쓰(唐津) 코스에 많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 관련 자료들을 모아놓은 나고야 성 박물관에선 이순신 장군 화상과 모형 거북선이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유물들과 대등한 위치에 배치되어 있어 은근한 감동을 준다. ‘일본은 조선에 불평등 조약을 강요해 1910년에는 조선반도를 식민지로 삼았다’로 시작되는 전시 안내문에도 역시 한국인 도보여행자들을 위한 규슈올레의 배려가 엿보인다. 하도미사키 해수욕장 백사장 끝에는 우리 제주도의 돌하르방 두 개가 반갑게 서서 맞아준다. 가라쓰 코스의 종점임을 알리는 상징물이다. 종점의 포장마차 촌에서 사먹는 소라구이의 맛이 쫀득쫀득하니 일품이다. 우레시노 코스의 메타세쿼이아 숲길 / 13개 보살상이 눈길을 끄는 우레시노의 산길메타세쿼이아 숲과 온천물의 촉감, 우레시노 코스 전국 차 품평회에서 5년 연속 최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녹차밭이 유명한 사가현 우레시노 마을은 차를 담는 도자기로도 유명하다. 그에 걸맞게 이 마을의 히젠요시다 도자기 회관이 우레시노(嬉野) 코스의 출발점이다. 코스 초입에 다이죠사와 요시우라 신사를 지나면 마을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산길로 들어가 급경사의 오르막을 오르고 나면 13개의 보살상이 모셔져 있는 곳을 지나간다. 깎아지른 바위 밑으로 샘물이 흐르는 가파른 골짜기에선 묘한 영적 기운도 감돈다. 100년 후를 기약하며 조성되었다는 메타세쿼이아 숲에는 ‘22세기 아시아의 숲’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다. 녹차 밭과 삼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하이라이트 구간이다. 쿠마노 신사에서 맛있는 샘물 한 모금 마시고 내려오면 3단 폭포인 두 줄기의 도도로키 폭포를 지나 한동안 고즈넉한 하천길을 누빈다. 코스 종점인 시볼트 족욕탕에서 무료로 담그는 온천물의 따뜻한 촉감이 오래 기억되는 코스다. 다케오 코스의 올레길 표지판 / 다케오 코스의 고즈넉한 대나무 숲길3천 년을 버틴 녹나무의 신비, 다케오 코스 사가현 다케오 시는 하카타역에서 기차로 1시간 걸리는 인구 5만의 작은 전원도시다. 이곳의 다케오(武雄) 코스는 2012년 규슈올레란 이름을 달고 세상에 처음 나온 코스로 유명하다. 현 18개 올레 코스들 중 개장 순서로 1번인 것이다. 시작점 다케오 온천역을 나서면 전원주택들과 시라이와공원을 가로질러 대나무 숲길을 걷게 된다. 일본식 전통 사찰 기묘사에는 조그만 연못이 있고 바로 밑에는 납골탑들이 즐비해 있다. 여섯 동자승 석상들 표정도 앙증맞다. 다시 전원주택 거리를 지나 이케노우치 호숫가에 이르면 A, B 두 개의 산길 옵션 코스가 기다린다. A코스를 올라 정상 지점에서 다케오 시 전체를 조망한 후 내려온다. 다케오 신사는 거대한 녹나무로 유명하다. 3,000년 동안이나 나무의 생명이 유지되어 왔다는 게 신비롭다. 로마 가도를 연상시키는 나가사키 가도를 지나 다케오 온천 로몬(樓門)에서 걸음을 멈춘다. 일본적인 요소들을 가장 많이 담아낸 올레 코스에서의 다섯 시간 피로를 따뜻한 온천욕 한 시간으로 말끔히 씻어낸다.
[그림 1] 모하메드 바 아바가 개발한 ‘항아리 속 항아리’ 냉장고 글_ 박헌균 ㈜솔라리노 대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시원한 음료수가 생각나는 여름입니다. 어디에서나 전기를 쓸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냉장고를 사용하기 쉽지만, 전기의 사용이 어려운 환경이라면 어떻게 음식이나 음료를 시원하게 보관할 수 있을까요? 냉장고는 아니지만 냉장고와 비슷한 원리의 적정기술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나이지리아의 ‘항아리 속 항아리’ 냉장고 냉장고는 전동펌프로 냉매 기체를 압축하여 액화시킨 뒤에, 액화된 냉매를 증발시킵니다. 보통 액체가 증발하면 주변의 열을 빼앗아 가기 때문에 주변이 시원해지는 것이지요. 냉장고의 냉매는 아니지만, 물도 증발할 때 마찬가지로 주변의 열을 빼앗아 갑니다. 더운 여름날, 마당에 물을 뿌리면, 주변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그림 1]의 ‘항아리 속 항아리(Pot in pot)’ 냉장고는 이처럼 물을 증발시켜서 시원하게 만드는 원리를 이용합니다. 나이지리아의 교사인 모하메드 바 아바(Mohammed Bah Abba)가 개발했다고 합니다. 습기가 투과하는 질그릇 항아리 두 개를 겹쳐두고, 그 사이를 모래로 채운 뒤에 모래를 물로 적셔 둡니다. 보관하고자 하는 음식은 안쪽 항아리 속에 보관합니다. 모래에 있는 물이 증발하면서, 항아리와 음식물을 식히게 됩니다. 물의 증발이 잘 될수록 냉각 효과가 높아지기 때문에, 항아리를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보관하고, 위쪽을 젖은 헝겊으로 덮어서 물이 더 잘 증발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림 2] 질그릇 소재로 만든 냉장고, 미티 쿨아인슈타인도 개발한 전기가 필요없는 냉장고 인도의 도예가 만수크 프 라 자 파 티 ( M a n s u k h Prajapati)는 이러한 항아리 냉장고와 같은 원리이지만, 보다 현대적인 냉장고 디자인의 미티 쿨(Mitti cool) 냉장고를 개발하였습니다. 미티(Mitti)는 힌디어로 흙이라는 뜻입니다. [그림 2]와 같이, 질그릇 소재로 냉장고 형태를 만들고, 투명 문을 부착해서 냉장고 속 내용물이 보이도록 하였습니다. 냉장고 위쪽에 물을 담는 부분이 있어서, 여기에 물을 담으면, 질그릇 소재의 냉장고 전체가 젖어 들고, 물이 증발되면서 식혀주는 방식입니다. 앞의 항아리 냉장고와 마찬가지로 물이 잘 증발할수록 냉각이 잘되므로, 바람이 잘 통하도록 하여 성능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적정기술이라고 하기에는 좀 복잡하긴 하지만,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도 실라르드 (Leo Szilard)와 함께 전기가 필요 없는 냉장고를 발명하기도 했습니다. 이 경우에는 냉매로 물 대신 액체부탄을 사용했고, 전기 대신에 열에너지를 사용했습니다. [그림 3]은 아인슈타인이 출원했던 냉장고 특허 도면입니다. 왼쪽 통에서 암모니아수를 가열해서 암모니아 기체를 내보내고, 이 기체를 오른쪽 통의 액체부탄에 통과시키면서 부탄을 증발시켜, 온도를 낮춥니다. 암모니아 기체는 가운데 통에서 다시 물속에 녹아들어가면서 암모니아수가 되어 재활용되지요. [그림 3] 아인슈타인이 출원했던 냉장고 특허 도면지금 바로 사용 가능한 적정기술은?혹시 아인슈타인 냉장고의 구조가 너무 복잡해서, 독자분의 머리를 덥게 해드렸나요? 그런데 하필이면 냉장고 속 음료수가 떨어져서 지금이라도 한 병 넣고, 빨리 식혀서 드시고 싶으신가요? 그런 경우라면, 음료수 캔에 휴지나 헝겊을 두르고 물에 살짝 적신 채로 냉동실에 넣어 보세요. 적신 물이 증발하면서, 열을 빼앗아 가기 때문에, 그냥 음료수병만 넣었을 때 보다 빨리 차갑게 됩니다. 현대적인 전기냉장고를 사용하는 우리들도 사용할 수 있는 적정기술이지요. 적정기술과 함께 독자 여러분 모두 시원한 여름 보내시길 바랍니다.
참고도서 : <예술을 사랑한 신사임당>, 레몬북스눈 여겨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작은 동식물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초충도. 단순한 구도와 구성, 여성 특유의 섬세한 묘사 등은 한국 회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다. 현모양처의 틀을 넘어, 이미 당대 최고의 화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던 신사임당의 예술세계를 들여다보자.살아 있는 듯 생동감 넘치는 그림 세계 5만 원 지폐에 등장하는 위인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대학자 율곡 이이(李珥)의 어머니이자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여류화가이기도 하다. 경전에 밝아 학문이 깊고, 시, 글씨, 그림에 모두 뛰어났으며 자수도 잘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녀가 화폭에 즐겨 담은 것은 이른바 ‘초충(草蟲, 풀과 벌레)’으로, 잠자리, 벌, 나비, 개구리, 도마뱀, 매미, 쇠똥구리, 쥐, 메뚜기 등의 동물을 비롯해 포도, 수박, 대나무, 매화 등 다양한 식물을 즐겨 그렸다. 너무나도 생동감 넘치게 그린 나머지, 마당에 내놓아 그림을 여름 볕에 말리려 하자 닭이 와서 살아 있는 풀벌레인 줄 알고 쪼아 먹으려 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오늘날 남겨진 신사임당의 ‘초충도’는 여덟 폭의 그림과 두 폭의 발문으로 구성된 병풍으로 되어 있다. 원래는 화첩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측되나, 현재는 숙종 때의 문신 정호(鄭澔)의 발문 한 폭과 민태식이 옮겨 쓴 이은상(李殷相)의 발문 한 폭이 덧붙여져 총 열 폭의 작은 병풍으로 꾸며진 것이다. 각 폭에 그려진 내용을 살펴보면, ① 오이와 메뚜기 ② 물봉선화와 쇠똥구리 ③ 수박과 들쥐 ④ 가지와 범의 땅개 ⑤ 맨드라미와 개구리 ⑥ 가선화와 풀거미 ⑦ 봉선화와 잠자리 ⑧ 원추리와 벌 등이다. 수박, 생쥐, 나비 등의 표현에서 섬세한 필선, 선명한 색채, 안정된 구도 등을 보여준다. 신사임당, ‘초충도’ 중 ‘물봉선화와 쇠똥구리’종이에 채색, 33.2×28.5cm, 국립중앙박물관신사임당, ‘초충도’ 중 ‘가지와 범의 땅개’종이에 채색, 33.2×28.5cm, 국립중앙박물관신사임당, 초충도, 전체 10폭 병풍. 20여 가지의 풀과 벌레를 소재로 그렸다.조기 영재교육을 받은 신사임당 신사임당이 젊은 시절부터 예술과 학문을 깊이 닦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게 깊은 영향을 준 어머니와 외할아버지 이사온(李思溫)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사임당의 어머니는 무남독녀로 부모의 깊은 사랑을 받으며 학문을 배웠고, 혼인한 후에도 부모와 함께 친정에서 살았기 때문에 일반 여성들이 겪는 시가살이의 정신적 고통이나 육체적 분주함이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비교적 자유롭게, 그리고 소신껏 일상생활과 자녀교육을 병행할 수 있었다. 외할아버지로부터 학문을 배운 어머니로부터 다시 그 학문과 예술적 소양을 이어받은 사임당은, 여성의 예술 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조선시대에도 불구하고 천부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 또한 아내의 재능을 인정해주고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도량이 넓은 남자였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요소와 환경이 어우러져 신사임당의 예술혼이 활짝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신사임당이 처음 산수화를 그리게 된 것은 일곱 살 때부터의 일이다. 오늘날로 치면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산수화를 그렸다는 것인데 이는 당시로도 굉장한 일이었다. 산수화를 그리려면 그림뿐만 아니라 동양문화권의 시문(詩文)도 잘 알아야 하고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산수화의 화풍을 두루 알고 있어야 한다. 신사임당은 아마도 어릴 때부터 그러한 것들을 익숙하게 배우고 듣고 보며 자랐을 것이다. 그녀는 세종 때의 화가 안견(安堅)의 산수화를 놓고 그것을 교과서 삼아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조선 초기 산수화의 절정을 이룬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오늘날까지도 명화로 손꼽힌다. 일곱 살 난 여자 아이가 그런 안견의 그림을 놓고 그림 공부를 했다는 것은 부모들이 얼마나 자녀교육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였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신사임당, ‘초충도’ 중 ‘맨드라미와 개구리’, 종이에 채색, 33.2×28.5cm, 국립중앙박물관한국적 예술의 백미를 보여준 ‘초충도’다양한 그림을 다 잘 그린 신사임당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녀의 대표작은 ‘초충도’이다. 부드러우면서도 깊이가 느껴지는 색감, 절묘한 필선의 벌, 나비, 잠자리, 수박, 가지 등의 그림은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묘한 매력이 풍겨난다. 산수화는 안견의 화풍을 따라 그렸다는 평이 많지만 초충도는 사임당의 독보적인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자칫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지나치기 쉬운 작은 생물들을 따스하게 보듬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들쥐는 혐오스럽다기보다 오히려 따뜻하고 귀엽게 그려냈다.비교적 단순한 구도와 구성, 여성 특유의 섬세한 묘사 등은 한국 회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다. 율곡 이이의 스승도 그녀의 그림을 보고 안견에 견줄 만큼 훌륭한 화가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먼 훗날 숙종 임금도 신사임당의 그림에 발문을 지었다고 하니,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 화가라는 명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확고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런 진취적인 ‘현모양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탁월한 예술가로서 그녀의 면모가 크게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 가족의 행복을 염원한 그림 그런데 신사임당은 왜 하필 이런 풀·벌레 그림을 그렸을까? 조선시대 여성들은 바깥출입이 어려워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기 때문에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풀·벌레를 그렸으리라 지레짐작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그림에는 매우 중요한 뜻이 담겨 있다. 바로 신사임당이 한 가정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잘 자라고 남편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소원이 바로 이 ‘풀·벌레’ 그림에 담겨 있다. 초충도에 나오는 풀·벌레는 모두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있다. 먼저 수박 그림부터 살펴보자. 그림 속 패랭이꽃은 장수와 젊음을 뜻한다. 가족의 무병장수를 바란 것이다. 나비는 알, 애벌레, 번데기를 거치는 변태를 한다. 자식이 자신의 한계를 깨트리고 새롭게 거듭나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의미다. 한 쌍의 나비는 금실 좋은 부부를 나타낸다. 쥐도 의미가 있다. 쥐는 왕성한 번식력으로 옛날부터 유명했다. 자식을 많이 낳으란 의미다. 또한 쥐처럼 부지런히 일해서 많은 재물을 모으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는 아무렇게나 자신이 좋아하는 소재를 골라서 그린 것이 아니다. 그림 한 장 한 장마다 모두 가족의 행복을 염원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