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매화는 가장 먼저 피지만 가장 먼저 가고 능소화는 한여름에도 찬연히 피어난다. 꽃도 저마다 만개하는 시기가 있듯이 인생에도 저마다의 때가 있기 마련이다. 45년의 긴 밤을 보내고 활짝 꽃핀 인생 후반기를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는 소리꾼 장사익을 만나본다. 노래하는 것이 즐거워 약 3년 전부터 우리는 무대에서 소리꾼 장사익을 좀처럼 볼수 없었다. 성대결절로 세 번의 수술을 거치고 재활 중이었던 데다가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그는 서서히, 조금씩 무대에 다시 서기 시작했다.“그동안 노래를 하지 않으니 사는 의미가 없더라고요. 공연을 다시 하니 이제 좀 숨 쉬는 것 같고 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그래서 노래가 세상에 나와서 내가 꼭 해야 할 일이 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고, 지금 행복하고 즐겁게 공연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상업성을 띠는 행사 무대는 곤란하지만 자신의 음악을 오롯이 들려줄 수 있는 공연이라면 요즘 큰 무대 작은 무대 가릴 것 없이 많이 다니고 있다고 한다.“요즘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 간의 소통이 단절되고 외롭고 쓸쓸함을 느끼는 분들이 많은데 제 노래가 아름다운 시처 럼, 때로는 따뜻한 손길처럼 세상 구석구석을 비추거나 어루만지면서 감동을 주고 위안을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슬픔을 치유하는 노래의 힘그가 공연을 통해서 음악의 힘을 느낀 적은 여러 번이지만 대표적인 사례가 두 개 있다. 한 번은 그가 대전에서 공연을 했을 때였다. 공연을 마치고 사람들이 그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긴 줄을 섰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자기 차례가 된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한 남성이 이렇게 말했다.“장 선생, 나는 사인은 필요 없어요. 단지 이 말을 하려고 기다렸어요. 오늘 아침까지 정신의학과 약을 먹어왔는데 선생의 노래를 듣고 마음이 아팠던 게 다 나았어요. 약을 끊어도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그때 그는 청중과 함께 울고 웃으며 마음속의 앙금을 씻어내고 다시 흰 도화지 같아진 마음 위에 새로운 삶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는 노래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잡힌 부산 ‘영화의전당’ 야외무대 공연에서의 일이었다. 전체적으로 침울하게 가라앉은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주변에서 공연을 만류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에 모든 표가 매진됐었고 많은 팬들의 기다림을 외면할 수 없어서 공연을 강행하기로 했다.“그때도 저는 음악에 슬픔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공연이 시작됐을 때 세월호 추모의 의미를 담은 노란 리본으로 전면 스크린을 가득 채웠습니다. 객석 뒤에도 노란 리본을 달았지요. 제 노래가 또 죽음과 관련된 노래가 많다 보니 그 공연은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공연으로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음악인으로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특히 그 공연에서 ‘허허바다’라는 곡을 불렀는데 “찾아가보니 찾아온 곳 없네 / 돌아와보니 돌아온 곳 없네 / 다시 떠나가 보니 떠나온 곳 없네 / 살아도 산 것이 없고 / 죽어도 죽은 것이 없네 / 해미가 깔린 새벽녘 / 태풍이 지나간 허허바다에 / 겨자씨 한 알 떠 있네”라는 노래 가사에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공감해주었다고 한다. 좀 촌스러워도 괜찮다장사익은 45세에 가수로 늦깎이 데뷔를 하기 전 무려 15개의 직업을 거쳤다. 무역회사, 전자회사 영업사원, 노점 상, 카센터, 독서실 운영, 가구점 총무 등 여러 직장을 전전하면서 항상 음악에 대한 꿈을 잃지 않았다. 처음엔 가수를 할 생각을 못하고 이광수 사물놀이패에서 태평소 연주자로 먼저 활약했다. 그런데 1994년 여름 사물놀이패 공연 뒤풀이에서 그가 우연히 ‘대전 부르스’를 부르게 됐다. 그걸 들은 피아니스트 임동창이 그의 음색과 가창력에 반하여 가수 데뷔를 권했다고 한다. 그 후 장사익은 1996년 KBS 국악대상 금상, 2006년 국회 대중문화 미디어대상 국악상 등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냈고 스스로 작사·작곡한 ‘찔레꽃’이 크게 히트하기도 했다. 이윽고 사람들은 그를 그냥 가수가 아니라 ‘소리꾼’이라 부르기 시작했다.“원래 소리꾼이라는 명칭은 우리 국악의 명창들에게만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국악인도 아니고 대중가요 가수인데 소리꾼으로 불리고 있어요. 아마도 우리 대중들이 국악의 명창들처럼 제대로 노래를 하라는 뜻으로 그렇게 붙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에겐 아주 영광스러운 호칭입니다.”그는 대중가요를 하지만 국악, 블루스, 트로트, 칸초네 등 여러 장르가 섞인 것 같은 음색과 가락을 들려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노래에는 한국적인 무엇 인가가 꼭 들어가 있다. 누군가 ‘신파’라든지, 촌스럽 다고 해도 개의치 않는다. 된장찌개처럼 정겹고 구수한 노래를 하는 사람으로 늘 기억되고 싶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애국가를 부른 것도 그다. 이제 그는 한국인의 한과 정서를 대표하는 가수라 해도 무방하다. 유명해진 지금도 여전히 대중교통을 애용한다. 지하철 차량 안에 있으면 가끔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다.“힐끔힐끔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혹시 누구 닮았다는 얘기 많이 안 들으세요?”라고 물어봐요.그러면 “아! 예, 그런 얘기 많이 듣습니다.”라고 웃으며 대답합니다.” 남은 인생은 밝은 낮처럼그는 자신이 지금 노래를 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 참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최근 TV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보면 우리나라에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요즘 나오려고 했다면 더욱 데뷔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2년 후에는 데뷔 30주년이다.“의학의 발달로 오늘날 사람이 평균적으로 90살까지 산다고 치면 데뷔하기 전 45년 동안의 인생은 많은 좌절을 겪었던 밤이었어요. 그때 긍정적인 마음을 먹지 않고 뭔가 허튼 짓을 했더라면 지금의 내가 없었겠죠. 그런 시련을 견뎌냈기 때문에 인생 후반기 45년은 밝은 낮처럼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좋은 일이 있기까지는 슬픔도, 어두움도, 무거운 일도 있다. 과정을 무시하고 한 방에 좋은 결과로 뛰어 넘어갈 순 없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삶을 통해 스스로 체득한 교훈이라고 한다.얼마 전 KBS2TV ‘불후의 명곡’ 녹화를 끝냈고 곧 방송될 예정이며 취미로 그동안 찍어온 사진들을 갖고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열 계획도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대중이 붙여준 ‘소리꾼’이라는 명칭에 누가 되지 않도록, 삶의 애환과 기쁨이 묻어나는 좋은 노래 들을 부르며 많은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싶다고 힘주어 말한다.
한때 끊어졌던 조선 찻사발의 명맥이 4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이어졌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우직하게 가마 곁을 지키고 있는 민영기·민범식 도예가의 손길 끝에서 우리 민족의 예술혼은 다시 말쑥한 얼굴을 드러낸다. 자료제공 : 산청요 산청요변항아리, 1983, 민영기 作 무기교의 아름다움, 조선 찻사발이도다완이라 불렸던 조선 찻사발은 일본에서 지금도 국보로 대접받는 명품 도자기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일본 지배층 인사들 사이에서는 이도다완을 손에 넣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 최상품은 쌀 5만 석에도 거래될 정도였다. 당시 대마도 연간 쌀 수확량이 2만 석이었던 걸 감안하면 엄청난 가치였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임진왜란은 이 찻사발을 확보하기 위해 벌어졌다는 말까지 있다. 조선의 찻사발이 가진 아름다움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완벽을 넘어선 불완전함’이다. 우선 형태적으로는 정확한 균형을 벗어난 약간의 비대칭성이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흙 알갱이가 보이고 색 처리도 얇게 되어 있어 대충 만든 것처럼 보여도 자세히 보면 깊은 매력이 느껴진다. 평범함 속에 묻어나는 고귀한 아름다움. 그것이 일본인들이 숭상해 마지않았던 조선 찻사발의 ‘무기교의 아름다 움’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임진왜란이 일어나 많은 조선의 도공들이 일본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고, 조선 찻사발의 명맥도 끊기고 말았다. 이 조선 찻사발의 신비에 매료되어 현대에 되살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이가 있으니 바로 도예가 민영기, 민범식 부자(父子)이다. 대정호다완, 2015, 민영기 作 하늘만큼 대단한 선조들의 작품민영기 도예가는 1973년 국가 장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떠났는데, 이는 명맥이 끊어진 우리나라 전통 도자기 기술을 다시 부활 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그는 당시 일본에서 국보급 도자기 명인으로 추앙 받던 나카자토 무안(中里無庵)이라는 스승을 만나 도자기를 배우게 됐다. 그 스승 또한 알고 보니 임진왜란 때 잡혀간 조선 도공의 후손이었다. 그로부터 5년 뒤, 민영기 명인은 귀국하여 경남 산청에서 자신만의 작업장을 열고 도자 기를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작업터인 ‘산청요’ 자리는 원래 15~16세기 조선 도공들이 많은 도자기를 제작했던 도요지였 다. 또 10년 후, 그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스승의 배려로 처음 진품 조선 찻사발을 만져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순간 그는 운명처럼 조선 찻사발에 매료되었다.“일본에 있을 때부터 이도다완을 제대로 만들어 일본인들의 기를 꺾어버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짬짬이 만들어오긴 했어요. 하지만 이걸 본격적으로 만들려고 해보니 그 깊이가 너무 깊은 거예요. 과거 우리 선조들은 하늘 만큼 대단한 걸 만들었어요.” 이도다완은 언뜻 만들기 쉬워 보여 한때는 아무렇게나 만든 ‘막사발’이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실제로 만들려고 해보면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많은 도예가들이 절감한다. 직접 만들어보고, 알면 알수록 조선 찻사발에는 끝없는 매력이 있다고 말하는 민영기 도예가. 그는 선조들이 만들었던 방식 그대로 그것을 재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했고 하루에 300개가 넘는 찻사발을 만들었다가 부수기도 했다고 한다. 그 고생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정호다완, 2014, 민영기 作 분청항아리, 2015, 민영기 作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그가 하나의 찻사발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차로 30분 넘게 가야 하는 주변 산에서 캐온 백토를 숙성 시켜 다시 발로 밟고 이겨서 도자기 재료를 만든다. 그걸 가지고 물레로 1차 성형을 한 후 다시 깎아내고 그 위에 자신이 만든 유약을 입히고 말려 흙가마에 넣는다. 가마에 불을 때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리며, 일단 도자 기가 완성되기까지 불의 온도를 조절하며 불의 모양을 살피느라 가마 곁을 며칠 동안 떠나질 못한다. 최종적으로 도자기를 완성하는 것은 ‘불의 심판’이다. 걸작은 인간과 자연의 합심이 이뤄낸다. 이런 과정을 거쳐 비로소 작품 하나가 탄생한다. 조선 찻사발을 재현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서서히 세상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일본 에서만 아홉 차례 개인전을 열어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일본의 전 총리였던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그의 열렬한 팬이 됐다. 호소카와 전 총리가 네 번이나 산청요를 방문해 그에게서 도예를 배웠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2015년에 열렸던 전시회 도록에 서문을 썼던 하야시야 세이죠 전 도쿄국립박물관장은 그의 작품을 두고 이렇게 평했다.“일본 도예가들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조선 찻사발이 가진 그 조형의 묘(妙)를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해 좋은 다완을 제작하지 못했다. 하지만 민영기 씨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피가 작용했는지 언젠가부터 비범한 다완을 제작하게 됐고 놀라울 정도의 뛰어난 기술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민영기, 민범식 부자 도예가의 작업 현장 모습 끝없는 예술의 길현재 민영기 도예가의 곁에는 그의 아들 민범식 씨가 든든히 지키고 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곁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작업을 지켜 봐왔던 그는 도자기 만드는 일이 자신의 적성에 잘 맞는다고 느껴서 대학 전공도 도예과를 택했다고 한다. 아버지를 스승으로 두고 곁에서 일한지도 이제 어언 20년째다. 그동안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했으며 개인전도 열었다. 민범식 도예가의 작품 ‘분청사각선문기’는 원통 모양의 반죽을 때려 8면을 만든 후 4각 으로 깎는 성형을 거쳐 대칼을 이용해 표면에 무작위한 무늬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든다. 그는 ‘민영기의 아들’, ‘민영기의 제자’라는 수식어를 벗어나 자신만의 색깔을낼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민범식 도예가는 다소 힘들지만 재미있게 즐기며 가업을 잇고 있다며, 우리나라 전통 도자기의 명맥을 이어가는 이 길을 선택한 데 후회는 전혀 없다고 한다.한편, 민영기 도예가는 아직도 자신이 만든 작품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말한다.“만족을 못 하기 때문에 지금도 옛날과 똑같이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고, 만들고, 살펴보고, 부수고 하는 것이지요. 흙과 유약에 대해서도 조금 더 깊이 연구하고 실험해야 해요. 학문과 예술은 끝이 없습니다. 제 명이 다하는 그 날이 끝이지요.” 그는 자신의 대에 조선 찻사발의 신비를 다재현하지 못하면 아들이 대를 이어 완성해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밤낮으로 도자기를 빚고, 굽고 있는 산청요. 그곳에서 우리나라 전통 도자기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활짝 꽃피어 전 세계 인들이 도자기를 그곳으로 배우러 오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2월 셋째 주 일요일은 ‘세계 고래의 날’이다. 포경을 금지하는 등 국제적인 노력 덕분에 개체 수가 증가한 고래도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 서식지 파괴,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등이 고래를 위협하는 새로운 천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의 삶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고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글. 최원형 생태환경 작가, 서울시 에너지정책위원회 시민협력분과 위원 제돌이, 고향으로 돌아가다 몇 년 전 여름, 우연히 들렀던 서귀포 어느 바닷가의 기억입니다. 8월 한여름이었는데 종일 쏟은 땀을 얼른 씻고 싶기도 했고 배도 고팠던 터라 하루 일정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가던 길이었어요. 일행 중 누군가가 돌고래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말에 그만 솔깃해서 방향을 틀어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한 시간쯤 흘렀으려나요. 바다는 물결만 일렁일 뿐 잔잔했어요. 기다리다 지쳐 하나둘 일어서려는 찰나 ‘엇, 저기!’ 누군가가 소리쳤고 일행은 그가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여기저기서 등지느러미와 꼬리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자유로이 유영하는 돌고래가 떼를 지어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어요. 가끔 수면 위로 솟구치며 호를 그리기도 했고요. 바다가 살아있다는 것을 아주 생생하게 경험한 날이었습니다. 돌고래를 떼로 만났던 그곳은 ‘제돌이’의 고향입니다. 서울대공원 수족관에 갇혀 지내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가 시민들의 노력으로 2013년 제주 앞바다로 돌아갔습니다. 어망에 걸린 돌고래는 방사하는 게 원칙인데도 불법으로 유통시켜 쇼에 동원되었거든요. 그 후로 수족관에 갇힌 돌고래들이 잇따라 야생으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쇼에 동원되고 수족관에 갇혀 시름시름 앓다 죽어가는 돌고래도 있습니다. 어망에 얽혀 희생된 고래 고래의 다양한 쓰임새, 오히려 멸종 위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암각화는 울주군 반구대에 있습니다. 선사시대 유물은 인류가 오래 전부터 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을 고래에게서 얻으며 살아왔다는 걸 보여주지요. 고래는 두꺼운 피지층에 기름을 대량으로 저장합니다. 석유를 본격적으로 채굴하기 전까지 고래 기름은 등잔을 밝히고 연료로 널리 활용됐습니다. 향유고래에서 얻는 경랍은 왁스, 양초, 화장품을 만드는 원료였고요. 고래 가죽으로 옷이나 신발을, 뼈는 여러 도구를 만드는 데 쓰였어요. 이렇듯 다양한 쓰임새는 고래에게 치명적인 시련이기도 했어요. 고기와 기름, 뼈 등 삶에 필요한 것을 얻던 포경이 폭발물을 사용하는 작살, 엔진과 대포를 장착한 초대형 상업 포경으로 발전합니다. 이윤이 목적인 포경으로 옮겨가면서 고래 숫자는 급감합니다. 이 사실을 국제사회가 인지하기 시작한 건 20세기 초였어요. 고래가 처한 상황을 인식하고 멸종할지도 모를 종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협약, 국제법 등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1930년 6월 국제연맹이 베를린 회담을 시작으로 ‘포경 규제를 위한 협약’ 초안을 만드는 등 남획을 규제하려는 노력이 있긴 했어요. 그렇지만 규제가 있어도 허점은 늘 있었던 것 같아요. 1986년부터 전세계적으로 포경이 금지됐어요. 그렇다면 고래 숫자는 늘었을까요? 포경 금지에 이의를 제기하는 나라도 있고 연구 목적의 포경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여전히 상업 포경을 계속하고 있는 나라도 있어요. 일본은 2019년 국제포경위원회를 탈퇴하면서 상업 포경을 재개한다고 발표했고요. 그런데 포경뿐만 아니라 고래를 위협하는 새로운 천적들이 등장하면서 고래는 여전히 멸종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기후변화, 서식지 파괴, 남획, 어망으로 인한 부수적 어획, 독성물질 오염 그리고 늘어만 가는 해양 플라 스틱 쓰레기가 바로 고래를 위협하는 새로운 천적입 니다.해변의 쓰레기를 줍는 비치 코밍 활동 건강한 생태계의 필수요소, 고래 2016년 범고래 사체가 영국 스코틀랜드 해안가에 쓸려옵니다. 부검 결과 몸에서 폴리염화비페닐(이하 PCB) 농도가 기준치보다 100배나 높게 검출되었어요. 이 범고래는 영국에 마지막으로 남은 정주형 범고래 9마리 가운데 하나였어요. 그동안 범고래들이 새끼를 낳지 못한 이유가 PCB 때문일 수도 있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되었고요. 그 바다에서 나오는 생선과 어패류를 먹는 영국민들은 안전하냐는 질문도 쏟아졌지요. 2018년 2월 스페인 남쪽 한 해안에서 향유고래 사체가 발견되었어요. 부검한 고래 위와 장에서 비닐봉지, 그물, 병뚜껑, 석유통 등 플라스틱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는데 무게가 29kg에 이르 렀어요. 입을 벌려 바닷물을 빨아들인 후 걸러진 것을 주로 먹고사는 고래는 해양쓰레기 증가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고래는 바다 생태계와 육상 생태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입니다. 해수면에 서식하는 식물성 플랑크톤은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양분을 만듭니다. 이를 동물성 플랑크톤이 먹고 크릴을 비롯한 작은 해양생물이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으면서 영양분은 해수면에서 점차 아래로 내려가지요. 100m 이상 깊은 바다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고래가 이렇게 내려간 양분을 위로 끌어올리는 펌프 역할을 합니다. 수면으로 올라와 배변을 하면서 고래똥에 함유된 여러 물질이 해양 생태계를 풍부하게 만듭니다. 고래 똥 속 철분은 식물성 플랑크톤 생성을 돕는데, 식물성 플랑 크톤이 많아지면 광합성을 하면서 탄소를 흡수하게 되니 탄소저장고 역할을 합니다. 식물성 플랑크톤이 1% 증가하면 나무 20억 그루가 탄소를 흡수하는 정도의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있어요. 고래 똥에 들어 있는 인(P)은 식물 생장과 결실에 중요한 물질인데 고래 똥을 먹은 바닷새와 어류 등을 통해 인이 육지로 이동하는 역할을 합니다. 육지에서 인이 점점 고갈되면서 농업이 비료에 의존하는 정도가 증가하고 있어요.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 고래를 비롯한 대형 동물이 지구에서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과학자들은 한목소리를 냅니다. 하와이의 마우이 섬에서 관광객들이 혹등고래를 구경 중. 비치코밍으로 고래를 보호하자 2월 셋째 주 일요일은 ‘세계 고래의 날’입니다. 알래 스카 일대에 서식하는 혹등고래는 해마다 2월이면 따뜻하고 먹이가 풍부한 하와이 제도로 내려와 새끼를 낳고 기릅니다. 특히 마우이 섬 일대는 혹등고래가 주로 찾는 곳으로 세계적인 고래 관광지이면서 고래를 보전을 위해 노력하는 곳이지요. 고래의 날도 1980년 마우이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육지에 사는 우리가 고래를 보호할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포경금지조약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남획을 당하는 고래 어느 해변이든 가리지 않고 쓰레기가 널려있어요. 해변에 있는 쓰레기는 잠재적인 해양쓰레기입니다. 비치코밍이라고 해변을 뜻하는 비치와 비질을 한다는 코밍이 합쳐진 말인데요. 바다로 떠내려가기 전에 얼른 거둬들여야겠지요.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는 것이 고래 목숨을 살리는 더 근원적이고 중요한 실천입니다. 건강한 해양 생태계를 지키는 일이 곧 탄소중립입니다.가끔 서귀포 앞바다에서 제돌이 소식이 들려옵니다. 등지느러미에 숫자 1이 적힌 제돌이를 혹시 만나게 된다면 꼭 안부 전해주세요. 잘 있느냐고요!
한 눈에 들어오는 겨울절경으로 유명한 강원도. 이런 강원도를 깨끗하게 여행할 수 있다면 어떨까?한국관광공사가 ‘강원 ESG 불착 트래킹 여행구독’ 상품을 내놨다. 관광업계에도 화두가 된 ESG경영 ESG경영은 환경보호와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고 법· 윤리를 준수해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경영 철학을 이르는 말로,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은 최근 ‘환경·사회·투명 경영’으로 표현하도록 권하고 있다.이런 ESG경영은 관광업계에도 새로운 화두로 떠올 랐다.여행에도 속속 ESG를 도입하고자 하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 중 선두는 한국관광공사다. 한국관 광공사는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전국관광기관 협의회와 함께 관광분야 ESG경영 실천을 위한 친환경 ‘착한여행’ 릴레이 캠페인을 펼쳤다. 여행자와 지역주민들이 전국 광역 단위로 참여해 플로깅(쓰레기 줍기+조깅), 비치코밍(해변 정화 활동), 에코 트레킹 등의 활동을 하는 것이다. 구독경제를 이용한 착한 강원도 여행한국관광공사의 여행부문 ESG경영 도입 중 단연 눈에 띄는 활동은 ‘강원 ESG 불편하지만 착한 트래킹 여행구 독’ 상품이다. 구독경제는 일정 기간 금액을 낸 소비자에게 취향을 반영한 맞춤형 상품과 서비스를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한국관광공사는 걷기 여행 관심층에게 정기적인 국내여행을 손쉽게 즐기도록 돕고, 여행업계 관계자들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구독여행상품을 만들었다. 강원도관광재단, 승우여행사와 협업해 만든 착한여행상 품은 일회용을 사용하지 않는 ‘No 플라스틱’과 트레킹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으로 구성돼 있어 ESG를 직접 실천하도록 했다. 여행에 참여하면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고 재활용 제품을 사용할 것을 약속하는 서약서를 쓰고 친환경 비닐봉투에 쓰레기를 담으며 트레킹을 한다. 상품 구매단계에서 ESG 캠페인 참가에 동의하는 소비자에게 정상가 대비 25% 특별 할인과 친환경 기념 품을 제공하고 현장에서 지급되는 생분해 봉투를 활용해 플로깅을 실시하면 5% 여행사 포인트를 추가 적립해 주고 있다. 강원도 해파랑길을 따라 걷다 상품은 상품별로 5~8회 매회 다른 코스를 여행하게 되는데 계절·지역별로 다양한 4개 테마로 구성됐다.1월부터 3월까지는 새하얀 눈을 직접 밟고 느낄 수 있는 강원 눈꽃 트레킹을, 5월부터 9월까지는 드넓은 초원에서 야생화를 감상하는 강원 들꽃 트레킹을, 상반기부터 하반기까지는 동해의 푸른 바다를 일주할 수 있는 강원 해파랑 트레킹을 각각 체험할 수 있다. 참가인원은 상품별로 40명까지로 백신접종 완료자만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올해 진행 중인 착한 트래킹 여행구독 상품 중에 추천할만한 상품으로는 강원도 해파 랑길 여행상품이 있다. 이 상품은 '시원한 바다를 보며 해변을 따라 걷다'를 테마로 한다. 강원도 고성부터 양양, 강릉에 이르는 트레킹 코스로 2월 화진포~반암마을 코스, 3월 오산리~하조대 코스, 4월 하조대~휴휴암 코스, 5월 휴휴암~소항도 코스, 6 월 소항도~연곡해변 코스로 구성됐다. 특히 강원도 해파 랑길을 따라 걸으며 광활한 호수, 동해바다의 절경, 드넓은 바다와 해안절벽,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해변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좋다. 사진제공_승우여행사 홈페이지 주소_ www.swtour.co.kr
밀리터리 프레스 심장 건강을 위해 상체보다는 하체운동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 협심증이나 심부전 등 심장이 안 좋은 분께는 보통 상체운 동보다는 하체운동을 권한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심장을 위해 상체운동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글 김경렬 양지기쁜병원 원장, ‘부산의사 김원장‘ 유튜브 채널 운영자 심장이 받는 스트레스를 고려하라 심장이 받는 스트레스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전부하(preload)와 후부하(afterload). 전부하는 혈액이 심장으로 흘러들어와서 심실에 가득 찰 때 심장 근육이 최대한 늘어나면서 받는 압력이고 후부하는 심장이 우리 몸 구석구석에 혈액을 보내기 위해 극복해야 되는 압력입니다. 전부하나 후부하가 급격히 증가하면 심장에 무리가 가게 되면서 심근세포가 손상될 수 있는데 상체운동은 하체운동보다몇 가지 이유에서 전부하와 후부하를 둘 다 빠르게 증가시킵니다. 신경의 예민함과 뇌까지의 거리우리가 운동을 하면 혈압과 심장박동이 증가합니다. 그리고 혈압과 심장박동의 증가는 심장이 혈액을 내보내기 위해 이겨내야 하는 후부하의 증가를 의미합니다. 이 후부하가 갑작스럽게 올라가면 심장근육에 손상이 생길 수 있는데 상체신경은 하체신경보다 뇌와 가깝고 신경계가 예민하기 때문에 이런 신경계의 반응이 빠르게 나타나서 후부하가 급격히 증가합니다. 내장혈관교감신경계의 활성은 내장혈관의 수축을 유도해서 음식물의 소화를 중단시킵니다. 그런데 내장혈관이 빠르게 수축하면 내장혈관 안에 퍼져 있던 혈액들이 급격하게 심장으로 유입되면서 심장이 늘어나는 압력을 받습니다. 즉 전부하가 증가합니다. 앞서 상체운동에서는 후부하가 빨리 증가한다고 했는데 내장혈관의 수축 또한 빠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혈액이 심장으로 유입되면서 발생하는 전부하도 상체운동이 하체운동과 비교해 빠르게 증가합니다. 턱걸이※ 위와 같은 상체운동은 심근세포를 손상시킬 수 있으므로 협심증, 심부전 등 심혈관계 질병이 있는 분들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젖산 농도 상체근육은 하체근육보다 보통 지구력이 떨어져서 같은 칼로 리를 소모하더라도 더 빨리 지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동일한 에너지를 소모해도 하체보다 상체운동에서 혈중 젖산 농도가더 빨리 올라가 자율신경계의 반응을 가속시키고 그 결과 전부 하와 후부하를 동시에 빠르게 증가시킵니다. 물리적인 측면기본적으로 상체 동맥은 하체 동맥보다 좁기 때문에 막히기가 쉽습니다. 심장이 혈액을 내보내기 위해 이겨내야 하는 후부하가 증가하겠죠. 그리고 상체운동에서 근육을 수축할 때 보통 해당 근육이 심장보다 위에 있습니다. 운동을 하고 있는 상체 근육에 혈액을 보내기 위해서는 중력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에 역시 후부하가 증가합니다. 뿐만 아니라 근육에서 사용된 혈액이 다시 심장으로 돌아올 때 중력을 이기고 돌아올 필요가 없기 때문에 빠르게 환류되는데 그 결과 전부하가 늘어납니다.반면 하체는 기본적으로 혈관이 굵고 수축하는 근육이 심장 아래 있기 때문에 혈액을 보내기 편합니다. 또 사용된 혈액이 중력을 극복하고 올라와야 되기 때문에 심장에 빠르게 환류되기 어려워 전부하와 후부하 모두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런지스쿼트※ 위와 같은 하체운동은 상체운동보다 심장건강에 더 좋은 운동이지만 상체운동과 마찬가지로 운동 후 충분한 휴식시 간을 갖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상체운동을 하면 안 되나요? 이상 하체운동이 상체운동보다 심장에 좋은 이유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그렇다고 심장을 위해서는 상체운동을 하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협심증이나 심부전처럼 심혈관계 질병이 있는 분들에게는 상체운동보다 하체운동이 더 추천되지만 건강한 일반인들에게는 크게 상관이 없고 오히려 심장근육을 강화하기 위해서 상체운동을 추천하기도 합니다. 특히 심장근육에 많은 부하가 걸리는 상체유산소운동 같은 경우 운동 후 충분한 휴식과 수면시간이 있으면 심장근육을 효과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휴식과 수면시간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오히려 심장근육에 손상이 생겨서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있습니다. 또한 하체유산소운동도 상체 정도는 아니라도 심장에 상당한 부하가 작용하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유산소운동을 하셨든지 운동 후에는 충분한 휴식시간을 갖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유산소 운동이 오히려 심장 건강을 망칠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