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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뒤바꾼 선물, 독서

배우 고명환 고명환을 보면 다재다능 ‘만능캐’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개그맨을 시작으로 배우, 요리사, 사업가는 물론 강연에 이어 작가까지!몸이 하나라도 모자랄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자신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건강하고 유쾌한 에너지를 주고 싶다는 배우 고명환을 만나보았다. 독서, 인생 2막을 열어주다고명환 인생의 큰 전환점을 꼽자면 그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교통사고’이리라. 개그맨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고명환은 배우로도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었는데, 2005년 드라마 <해신> 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오던 중 15톤 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의사 선생님이 이틀 안에 죽는다고 했었죠. 죽음 앞에 섰을 때 그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딱 두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나는 ‘남’을 사랑하지 못한 것과 또 하나는 ‘나’로 살지 못했다는 것이었죠.”고명환은 병실에서 누워있으면서 딱 한순간이 떠올랐다. 대학 재수를 위해 하루 17시간 동안 공부했던 4개월. 고명환이 34년 인생 동안 ‘나’로 살았던 유일한 순간이었다.“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보면 돈키호테가 50살에 모험을 떠나요. 16세기 당시 평균수명이 42~43세였으니까, 오늘날로 치면 100살 즈음 되었죠. 그 백 살 노인이 산속으로 들어가요. 들짐승을 만나 죽을 수도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때 돈키호테가 깨닫죠. ‘내가 모험가로 태어났구나!’”죽음 앞에서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된 고명환은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며 새 삶을 살 기회를 누리게 되었다. 다시 주어진 삶은 ‘나’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대체 타인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나’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고민의 끝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귀결되었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고명환이 선택한 방법이 바로 ‘독서’였다.“책을 읽으면 사유의 시선을 높일 수 있어요. 과거 제갈량이 적벽대전 때 동남풍이 불 것을 미신을 통해 알았던 게 아닙니다. 지구와 별의 움직임을 보고 파악했죠. 이는 책을 읽고 사유의 시선을 넓힌 덕분에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독서를 통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던 고명환의 인생 2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사유(思惟)를 즐기다고명환 인생의 동반자인 ‘책’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톰 소여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의 말을 인용하여 책을 정의했다.“‘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책은 당신으로 하여금 가장 많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백번 공감해요. 나에게 질문을 많이 던져주는 책이 가장 유용한 책이죠. 가령, ‘돈 벌고 싶다, 명환아! 그런데 돈은 어떻게 벌어야 할까?’라는 질문이 떠올랐으면, 해답을 줄 책을 찾으면 됩니다.”고명환은 질문이 떠오른다면 서점이나 도서관에 방문한다. 그리고 책 제목을 찬찬히 살피다 보면, 반드시 해답을 줄 책이 눈에 띈다고. 그다음은 소제목을 본 뒤 내용이 적합하다면 읽고 생각하고 또 다른 책을 찾아보길 추천했다. 궁극적으로 질문을 통해 사유의 독서력을 길러야 할 것을 고명환은 재차 강조했는데, 이는 시대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이다.“워런 버핏은 여가 생활의 90%를 인문학을 읽는 데 투자합니다. 그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때 전쟁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을 겁니다. 인간의 삶은 빅데이터가 있거든요.”역사에서 전쟁은 무수하게 있었다. 침공한 쪽 혹은 방어한 쪽이 승리했는지, 휴전 후엔 어떤 상황이 펼쳐졌는지는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인간의 역사는 거대한 흐름이 있기에 독서를 통한 깊이 있는 사유를 하면 자연스레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고명환에게 인생책을 묻자,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라며 장난스레 호통을 쳤다.“사람마다 시기와 상황에 맞는 책이 있기에 어느 한 권을 인생책으로 정의할 수 없죠. (웃음) 그래도 꼽자면 최진석 작가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추천하고 싶어요. 인문학은 인간이 그려온 무늬를 그려보고 인간이 그려나갈 무늬를 예측하는 학문인 만큼 이 책은 사유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고명환은 독서를 통해 장사를 알게 되었고 가게 홍보와 운영 철학에 대한 큰 도움을 얻었다며, 많은 사람들이 짧게라도 책 읽는 시간을 가지고 사유를 즐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삶고명환은 그동안 쌓아온 생각법, 독서법, 장사법을 응집해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를 출간하였다. 베스트셀러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이 책을 쓸 당시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고.“집필할 당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라고 완료형으로 확언했죠. 처음엔 저 스스로도 반신반의했어요. 하지만 계속 확언하다 보니, 뇌가 ‘너는 지금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잖아? 그럼 쓴 글에 대해 더 교정하고, 책을 읽어!’라고 지시하더라고요. 뇌가 불러낸 열정으로 책을 썼는데, 진짜 제가 확언했던대로 이루어졌습니다.”뇌를 속여 내가 스스로 믿게 해 행동하도록 매일 ‘긍정확언’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있다. 400일 넘게 이어온 습관인데, 사유할 수 있는 한 문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마지막엔 긍정확언을 외치며 마무리하는 5분 남짓한 영상이다. 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고명환의 유쾌하고 건강한 에너지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으며, 그를 따라 긍정확언을 외치기도 한단다. 고명환은 남을 위한 것이 곧 나를 위한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공자가 말했어요. 내가 싫어하는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고. 식당 화장실 청소 등 직원들이 하기 싫은 일을 제가 먼저 했어요. 이왕 하는 거 즐겁게 웃으면서 하니, 진짜 즐거워지더라고요. 남을 위해 일할 때 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남을 위해 낮아진다면 행복한 일들이 뒤따라올 것이라는 고명환. 죽음 앞에서 ‘나’로 살지 못했음을 후회하고 누구보다 ‘나’답게 삶을 살아가는 만큼 남은 생은 ‘남’을 더욱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다. 특히 자신의 달란트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고명환의 최종 꿈은 ‘도서관’을 짓는 일이다.“도서관은 ‘엉망진창 도서관’ 혹은 ‘시끄러운 도서관’이 될 거예요. 책을 읽으며 옆 사람과 토론하고 떠들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죠. 다른 한 공간에는 요리도 대접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 거예요. 제가 음식을 잘 만들거든요. (웃음) 고민 있으신 분들이 오셔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허심탄회하게 속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죠. 고민을 얘기할 때 비로소 문제도 해결되거든요. 그런 도서관을 만들겁니다.”

나만의 길,
나다운 길
동해안 해파랑길

글, 사진. 이영철 여행작가, <안나푸르나에서 산티아고까지> 저자 나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내가 어떨 때 행복한지, 동해안 해파랑길 770km를 걸으며 그 답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두 번째 계획을 위한 훈련, 해파랑길‘백수 아빠가 준비해주신 오늘 아침 호화 식단’. 출근하는 딸이 전철 속에서 올려놓은 SNS 사진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삶은 계란 으깬 감자샐러드 옆으로, 딸기 세 알과 사과 두 조각 그리고 우유 한 잔이 넓고 하얀 접시 위에 소담스럽게 담겨 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에서 돌아온 남편이 ‘앞으로 아침식사는 내가 챙길게’라고 호언했을 때 아내는 긴가민가하는 표정이었다. 퇴직한 남편에게 가장 신경 쓰이는 건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줘야 하는 것이었는데, 한 달 이상 집에서 받아만 먹던 ‘삼식이 세끼’ 남편이 네팔 여행에서 돌아오곤 기분 좋게 변했다. 아침식사 챙긴다는 약속이 작심삼일일 줄 알았는데 아직까진 몇 달째 꾸준하다. 집안일도 예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대견한 일이다. 다시 해외 트레킹 나간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밀어줘야겠다는 생각이 아내 마음속에 들어앉을 법하다.그런 아내의 내심을 간파한 남편은 은근슬쩍 두 번째 계획을 꺼낸다. 10월 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45일간의 스페인 여행, 거금 450만 원을 지출해야 하는 계획이다. 장시간 걷는 여행이 무리인 아내는 분명 못 간다고 할 줄 알면서도 일단은 함께 가자고 조른다. 아내의 반응은 역시 ‘혼자 무탈하게 잘 다녀오시라’였다. 5개월 후에 떠날 여행이지만 안나푸르나 트레킹 때와는 달리 사전 준비와 훈련을 좀 더 착실히 챙기기로 했다.사춘기 소년 같은 감상에 젖어45일 여행 중 30일 동안을 쉼 없이 걸어야 한다. 총거리 800km에 가깝다. 우선은 한 달 동안의 장거리를 내가 과연 잘 걸을 수 있을지 체력 확인이 필요했다. 또한 전지훈련도 해야 한다. 이곳저곳 국내 도보여행 길들을 검색해 보다가 동해안 해파랑길이 조성되고 있음을 알았다. 뭔가 확 꽂혔다. 총거리 770km이니 산티아고와 비슷하다. 해안선만 따라 걸으면 될 터이니 길을 잃을 염려도 없을 것이다.걷기 좋은 5월의 봄날, 부산 오륙도 앞을 출발했다. 난생처음 만나는 이기대 절벽길은 나에겐 놀라움이었다. 오른쪽 발밑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와 함께 울창한 숲길을 걷고 구름다리를 지난다. 멀리 광안대교 옆으로 보이는 센텀시티 고층빌딩들 전경이 경이롭고 이국적이었다. 홍콩까지 2,029km라는 친절한 이정표가 아니더라도 홍콩 산 위에서 도심을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동생말을 내려와 광안리와 해운대 해변, 그리고 문텐로드 지나 송정해변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 첫날 여정은 사춘기 소년 같은 감상에 젖어 걸은 시간이었다. 언젠가 택시 타고 훌쩍 지났을 길들을 배낭 지고 두 발로 뚜벅뚜벅 걷는 내내 가슴이 벅차올랐다. 대변항 멸치쌈밥 점심도 좋았고, 부산 친구가 달려와 사준 기장 곰장어도 짚불에 구운 맛이 일품이었다.임랑해변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 1~3코스는 부산 갈맷길 9개 코스 중 1, 2코스와 온전히 함께하고, 4코스 중반부터 9코스까지 울산 구간은 대부분 내륙을 관통한다. 현대차와 미포조선 등 해안가 산업시설들 때문에 삭막할 듯했지만, 옹기마을, 덕하역, 십리대밭길, 솔마루길 등을 지나며 전통과 자연의 운치를 함께 느낄 수 있었다._스카이워크와 오륙도가 함께 보이는 전경_울산 십리대밭_울산 간절곶 소망우체통 동해안 어촌의 따스한 정경포항 구룡포항을 지나 호미곶 상생의 손 앞에서 일출을 맞으며 우리 한반도 지형이 유약한 토끼 형태가 아니라 웅비하는 범의 모습임을 새삼 실감한다. 해파랑길 이름에는 ‘뜨는 해’나 ‘바다 해’ 그리고 파란 바다 넘실대는 파도를 바라보며 누군가랑 함께 오손도손 길 걷는 모습이 담겨있다.화진포 해변에서 강구항 그리고 고불봉 너머 고래불 해변까지의 영덕 구간은 블루로드와 온전히 함께하는 길이다. 송림 우거진 숲길과 쪽빛 바다 해안길이 적당히 교차하며 이어진다. 블루로드는 해파랑길 조성 전부터 전국적으로 꽤 유명해진 도보여행길이다.해파랑길은 7번 국도와 가끔 겹치기도 하면서 내내 나란히 이어진다. 치유를 소재로 한 여행 영화 ‘가을로’에는 영덕에서 울진으로 이어지는 동해안 어촌 정경이 따스하게 그려진다. 여주인공의 대사를 통해서다.“동해바다랑 소나무 숲이 있어서 7번 국도가 아름답다고 하지만요. 저런 어촌마을이 있고 그 안에 저렇게 사람 사는 모습들이 있어서 이 길이 더 좋은 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이 길을 가다 만나는 마을들은 꼭 그 이름을 불러줘야 될 거 같아요. 안 그러면 서운해 할 거 같아서…. 병곡, 후포, 평해, 월송, 덕산…….”그렇게 마을 이름 한 번씩 불러주며 울진 구간을 지나고, 삼척 용화해변부터 궁촌역까지 5.4km 구간은 걷지 않고 해양 레일바이크 페달을 밟으며 신나게 달려보는 추억도 만들었다. 묵호등대 오르는 언덕의 논골담길에선 60년대 이 언덕에 살았던 사람들의 애환도 느껴졌고, 옥계항부터 정동진역, 안인해변 지나 주문진해변까지는 강릉 바우길과 온전히 함께했다. 속초 양양 해변부터는 바다 색깔이 은근히 달라짐을 느꼈다. 연둣빛 에메랄드라는 색감 표현이 확 와 닿았다._포항 호미곶_영덕 '대양의 빛'_영덕 삼사해상산책로 나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그리고 도착한 고성군, 명파리마을과 제진검문소를 지나 드디어 해파랑길의 종착지 통일전망대에 올랐다. 군사분계선까지 이어지는 해안선은 시원했고, 그 너머 보이는 북녘땅은 아련했다. 멀지 않은 저곳 어딘가부터 7번 국도가 다시 이어질 것이다. 언젠가 좋은 날이 오면 아무렇지 않게 홀로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두만강 하류에 있었다는 서수라 마을, 우리 한반도의 동해안 최북단인 그곳까지 뚜벅뚜벅 걸어 올라가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우리 인생에는 각자가 진짜로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에서 본 평범한 글귀인데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아 있다. 시인이 말하는 ‘다른 길’이란 꼭 남들과 차 별화된 다른 길을 말하는 게 아닐게다. 양손의 지문처럼 겉으론 비슷해 보여도 미세하게 다른 나만의 길, 나다운 길을 의미할 것이다.나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내가 어떨 때 행복한지, 동해안 해파랑길 770km를 걸으며 그 답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먼 길을 걸을 때 떠올리는 생각들은 때론 우주를 품을만큼 깊고 원대할 수도 있겠다는 사실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다.‘모든 위대한 생각은 걷는 자의 발 끝에서 나온다’라는 니체의 말을 새삼 떠올렸다. 산티아고로 떠나가기 위한 체력 테스트와 전지훈련 목적의 동해안 해파랑길 여행이 내 인생에 흔치 않을 몇 가지 선물을 안겨다 줬다._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산과 북한_묵호항의 정겨운 어촌 풍경

삶의 질을 바꾸는
조리기구와
적정기술

글. 신관우 서강대학교 화학과 교수, 국경없는과학기술자회 회장 낙후된 조리기구는 이를 상시적으로 사용하는 여성과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으며 동시에 과도한 노동 부담이 큰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정기술에 대해 알아보자. 불완전한 조리기구, 많은 문제 야기해불은 인류의 조상인 호모에렉투스가 발견하고, 25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불을 이용한 조리로 활용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불이 조리에 사용되면서 현재와 같은 인류의 신체구조의 진화, 즉, V-라인으로 대표되는 작은 턱이나, 그리고 위와 장의 형태나 기능에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누구나 화력이 좋고 안전한 조리도구를 원합니다. 그러나 조리를 위한 부엌의 스토브는 해당 지역의 기후와 지리적 환경에 맞게 정착된 주거문화와 음식문화로 인해 가장 느리게 변화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기름이 있어야 기름 스토브를 사용하고, 나무를 구할 수 있어야 목재 연료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불완전한 부엌의 조리기구의 가장 큰 문제는 배기장치가 구비되지 않은 부엌에서 피할 수 없는 비산먼지나 일산화탄소 등으로 인한 보건문제입니다. 유해가스는 수많은 여성들과 아이들의 호흡기에 천식과 호흡곤란 등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나아가 연소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과 대기오염, 그리고 에너지 비효율성 등은 환경이라는 큰 틀에서의 글로벌 문제의 한 요인이기도 합니다.누구나 제작할 수 있는 로레나 스토브_남수단 차드 난민캠프에서 사용한 로레나 스토브 따라서 적정기술로 조리기구를 설계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은, 연소 제어와 열효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 우선입니다. 연소를 위해 유입되는 공기의 방향, 연료 적재방식, 화염의 방향과 열의 방출, 그리고 연기의 배출방법 등입니다.이와 관련되어, 가장 널리 보급된 스토브는 로레나(Lorena) 스토브입니다.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벽돌과 진흙으로 제작되며, 공기의 흐름을 통해 화력을 조절하고, 여러 크기에 따른 조리용 기구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장비 없이도 진흙과 모래, 벽돌로 제작하되, 크기와 제작방법을 표준화해서 누구나 제작할 수 있도록 하여 널리 확산 되었습니다. 태양열과 반사판을 이용해 조리가 가능한 장치도 여러 형태로 제작된 바 있습니다. 집안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야외에서 연료 없이 사용이 가능합니다. 수단에서 탈출한 난민이 머물던 아프리카의 차드 난민캠프에서 연료가 없이도 2만 명의 난민들이 음식을 조리 할 수 있도록 활용된 바 있습니다. 연소효율이 매우 높은 로켓 스토브_태양열과 반사판을 이용한 조리기구 한편, 이러한 환경 문제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낙후된 조리기구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당장 조리기구에 사용할 연료 확보를 위해서 여성과 아동에게 과도한 노동을 요구하게 됩니다. 벌채나 땔감의 수집에 소요되는 고된 노동으로 인하여 여성들이 육아와 교육과 같은 다른 가사 활동에 참여할 겨를을 없게 만듭니다.이러한 관점에서, 로켓 스토브라는 장치를 바라보게 됩니다. 몇 개의 깡통을 간단히 연결한 소형장치로 구조적으로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설계되어 있어 제작이 간단하며, 매우 높은 연소효율을 제공합니다. 이 로켓 스토브가 특별한 것은, 다름아닌 연료로 작은 잔가지들이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즉,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여성과 아이들이 큰 나무를 찾아 산을 가거나, 무거운 나무를 옮기는 노동이 필요 없게 됩니다. 개발도상국에서 여성들의 노동 강도를 낮추는 것은 단지 노동이나 인권에만 한정되지 않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과도한 가사노동에서 벗어나야만 아이들이 보이고, 주변을 살필 수 있으며, 내일을 준비하게 됩니다. 따라서 부엌의 조리용 적정기술은 단지 배기나 열효율을 높여 조리시간만을 단축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가정과 사회의 삶의 질, 나아가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합니다.

고대 금속공예의 걸작
백제금동대향로

주차장을 만들려고 땅을 파던 공사 현장에서, 진흙에 쌓인 유물이 완전히 보전된 상태로 발견되었다.이 놀라운 이야기의 주인공은 국보 중의 국보라 일컬어지는 백제금동대향로이다. 1,400여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난 보물_2022년 7월, ‘백제금동대향로’와의 특별한 만남 프로그램에 초대된 관람객들이 향로 진품을 감상하며 해설을 듣고 있다. 사진 출처_공공누리 1993년 12월 12일 부여 능산리, 백제왕들의 무덤 옆 절터를 주차장으로 만들려고 공사를 진행했다. 그 공사 터에서 진흙에 쌓인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견됐다. 놀랍게도 향로는 온전한 상태로 역사적 가치가 대단했다.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상 최초로 한 가지 유물만으로 전시회가 열렸고 진흙탕에서 1,400여 년간 온전한 형태를 유지한 백제금동대향로를 보려는 관람객이 전국에서 몰렸다.백제금동대향로가 오랜 기간 완벽한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첫 번째 비결은 ‘진흙’에 있었다. 향로를 둘러싼 진흙이 공기를 차단해 완벽한 밀폐 상태를 만들어 부식을 피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진흙에서 발견되었을까? 이는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660년 의자왕 시절에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백제. 당시 목숨을 걸고 보물을 지키려 땅에 묻은 사람이 있었고, 그 덕에 긴 세월을 견딜 수 있었다. 두 번째 비결은 ‘수은아말감도금법’이라는 특별한 기술이다. 백제 장인은 이 도금법을 사용해 향로 표면을 0.001cm의 얇은 두께로 균일하게 도금한 것이다.현대에도 재현하기 어려운 정교한 주조 기술_향로의 받침은 용 모양으로, 시대를 막론하고 백제금동대향로에서만 볼 수 있다. 사진 출처_공공누리 백제금동대향로는 청동 표면에 금을 도금하여 만든 큰 향로라는 뜻으로 백제 문화의 절정을 이룬 7세기 왕실의 의식·제사에 사용되었다. 높이 61.8cm, 지름 19cm, 무게 11.85kg이며, 총 12개의 연기 구멍이 있다. 봉황 앞가슴에 2개, 오악사 앞뒤로 10개며 이 중 향을 피웠을 때 연기가 밖으로 나오는 구멍은 7개, 나머지 5개 구멍은 공기가 안으로 들어가 향이 더 잘 타게 하는 역할을 한다.볼수록 신비롭고 아름다운 향로의 무늬는 현대에도 완벽하게 재현하기 어려울 만큼 정교한데 이 비결은 바로 밀랍에 있다. 온도에 따라 말랑말랑하기도 하고 단단해지기도 하는 밀랍의 특성을 이용하여 정밀한 금속품을 만들었다. 밀랍법의 주조 과정은 첫 단계로 벌집과 송진을 잘 섞은 밀랍으로 향로의 형태를 만든다. 다음 단계로 진흙을 여러 번 덧칠해 단단한 거푸집을 만들고, 세 번째 단계로 거푸집에 열을 가해 밀랍을 녹이고, 네 번째 단계로 거푸집에 구리와 주석이 합금 된 액체 상태의 청동을 붓는다. 마지막 단계에서 거푸집을 부수어 백제금동대향로를 완성한다.완성한 백제금동대향로에 도금할 때, 수은아말감도금법이 이용된다. 이 도금법은 네 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액체 상태의 수은에 금가루를 섞은 후, 헝겊에 감싸 짜서 반죽을 만들고, 반죽을 나무 주걱이나 손으로 향로 표면에 고르게 바른 뒤, 향로에 열을 가해 수은을 증발시키고 금을 표면에 밀착시키는 방법이다. 이는 시대를 앞서간 백제 장인의 뛰어난 기술력이 발휘된 놀라운 도금법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향로를 CT로 촬영하면, 용 받침과 몸체는 따로 만들어서 연결하였는데, 향로 뚜껑과 봉황은 이어 붙인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이로써 백제의 금속공예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다.백제금동대향로는 중국 한나라 때 유행한 박산향로와 생김새가 비슷하다. 박산향로는 중국 한나라 때 유행한 산봉우리 모양 뚜껑에 받침이 있는 향로로 발견 당시, 생김새가 비슷해 중국 문화재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으나, 연구 끝에 백제의 작품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화려한 장식만큼이나 과학적인 설계가 일품인 백제금동대향로.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하고 정교한 백제금동대향로는 그 어떤 문화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백제의 걸작품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가진 문화재_백제의 뛰어난 주조기술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금동대향로 사진 출처_공공누리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또 하나의 우주라 할 수 있다. 향로의 세계에는 유교, 불교, 도교가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음악을 통해 나라를 다스리고 유교적 정치이념을 보여주는 오악사, 도를 닦는 신선들이 사는 봉래산, 만물의 생명이 탄생하는 연꽃, 음을 상징하는 용, 양을 상징하는 봉황. 백제금동대향로에서만 볼 수 있는 용 모양의 향로 받침. 이렇게 향로의 다리를 용으로 만든 작품은 시대를 막론하고 그 어디에도 찾아보기 어렵다.향로는 용 모양 받침, 연꽃 모양 몸체, 산악모양 뚜껑, 뚜껑 위 봉황 장식 이렇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몸체는 연꽃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연꽃은 만물의 탄생과 부활을 의미한다. 8개씩 총 3단으로 층을 이룬 연꽃잎은 아름답고 생동감이 넘친다. 연꽃잎을 자세히 보면 무언가 새겨져 있는데, 연꽃잎 사이사이엔 독특하게도 날개 달린 네발짐승, 긴 꼬리를 가진 동물, 무예 하는 사람, 신수, 선인, 등 25마리의 동물과 2명의 인물이 있다. 산 모양으로 솟아오른 뚜껑에도 신비한 동물과 인물을 볼 수 있다. 산과 산 사이, 계곡과 계곡 사이를 한가로이 오가는 신선이 17명, 동물이 무려 42마리나 된다. 향로 꼭대기에 앉아있는 봉황은 문헌과 유물에 등장하는 봉황 중 가장 아름다운 봉황으로 꼽힌다. 당당히 서 있는 자세며 가슴에서 꼬리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곡선은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봉황에서 느껴지는 생동감과 아름다움의 비결은 세밀한 묘사에 있는데, 자세히 보면 양쪽 날개의 선과 모양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봉황 바로 아래 위치한 5명의 신선을 오악사라고 하는데, 오악사가 연주하는 악기(완함, 북, 거문고, 배소, 종적)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는 박물관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말 탄 사람, 말 위에서 뒤를 향해 활을 당기는 사람의 형상을 통해 당시 백제인의 갑옷과 투구의 형태도 상상해볼 수 있다. 코끼리, 원숭이, 악어 등 산 곳곳에는 우리나라에 살지 않았던 동물들도 등장한다. 이 동물들을 통하여 당시 백제가 동남아시아, 중국과 활발한 교류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제의 역사를 다시 쓰다의자왕 즉위 20년에 멸망한 백제는 남겨진 기록이 거의 없어 ‘잃어버린 왕국’이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1,400년 후 백제 문화를 오롯이 담고 있는 백제금동대향로의 발견으로 재평가를 받게 된다. 백제의 종교, 정치, 문화, 예술 그리고 금속 기술이 집약된 세기의 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는 우리의 전통문화와 외래문화가 잘 융합되어 재밌는 이야기와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긴부리새, 포수, 외수, 인면수신, 인면조신 등 이외에도 백제금동대향로에는 아직도 이름이 없는 신비롭고 오묘하게 생긴 동물들도 등장한다. 수수께끼처럼 남아있는 신비한 향로의 세계를 국립부여박물관에서 탐험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