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0년간 끊임없는 도전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패션 세계를 구축해온 패션 디자이너 이영희 대표. 그는 오래 입어도 늘 마음에 들고, 여성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해줄 수 있는 옷을 통해 고객과 행복을 나누고 싶다는 소박한 원칙을 고수하며 항상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부산 패션의 진가를 널리 알리다올해 6월 부산지방중소벤처기업청은 장수 소상공인의 성공모델 확산을 위해 부산지역 백년가게 3개사, 백년소공인 3개사를 신규 선정했다. 그중 부산진구에 소재한 ‘이영희프리젠트’가 백년소공인 중 하나로 선정됐는데, 40년 간 우수한 여성 명품 정장을 선보이며 국내외에 부산 패션의 진가를 알린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고 한다. 이곳의 이영희 대표는 1996년 한국섬유대상, 2006년 한국브랜드대상 디자이너부문 수상 등 수많은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부산을 대표하는 패션디자이너이다. 특히 1992년에 받은 황금바늘상은 그가 늘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상이다. “다른 상들은 제가 매출을 많이 올려서 받은 부분이 크다면, 황금바늘상은 패션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저의 실력을 높이 평가해서 준 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흔히 ‘서울민국’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에서 부산에서 활동하는 제가 당당히 그 상을 받은 것이 크나큰 영광이었고 그동안 노력과 시련에 대한 포상처럼 느껴져 새로운 원동력을 얻을 수 있었죠.”지금 젊은 층은 황금바늘상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도 많겠지만 이영희 대표가 수상한 후 바로 그 다음해 수상자가 그 유명한 ‘앙드레 김’ 씨였다는 걸 안다면 그 상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디테일한 수작업으로 소량생산 원칙 고수 이영희 대표는 80년대 양장점을 하던 친언니로부터 가게를 한번 맡아서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처음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타고난 감각과 재능 덕분에 1984년 문을 연 ‘이영희 콜렉션’은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인기를 끌며 승승장구했다. 이영희 대표는 매 시즌 새로운 디테일의 화려하고 여성스러운 스타일의 제품을 내놓았고, 어느 디자이너 브랜드도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감성이 큰 호평을 받았다. 모든 제품을 20년 이상의 오랜 경험을 가진 숙련기술자들이 오직 수작업으로만 만들어낸다는 점도 이영희 프리젠트의 자랑거리다.“수작업을 고집하면 대량생산이 되지 않으니 수익성 면에서 불리한 점도 있지요. 하지만 저희 옷을 사랑해주시는 오랜 고객들의 신뢰와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서 아직도 높은 퀄리티를 중시하는 소량생산을 고수하고 있습니다.”요즘에는 ‘패스트 패션’이 대세라고 하여 싼 옷을 사서 조금 입다가 유행이 지나면 버리는 게 당연시된다. 하지만 이영희 대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옷’은 10년을 입어도 늘 마음에 들 만큼 자신에게 잘 맞는 특별한 옷이다. “제가 만드는 옷이 상류층만을 타깃으로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것은 오해입니다. 저는 단지 백화점이나 아울렛에서 파는 기성복보다 좀 더 특별한 디자인을 찾는 분들에게 특별한 옷을 정성스럽게 만들어드리고, 그 고객이 옷을 통해 느낄 행복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일 뿐입니다.” 이영희 대표의 오늘날이 있기까지는 패션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향학열도 한몫했다. 특히 한창 잘 나가고 있을 때 38세의 다소 늦은 나이에 뉴욕 파슨스 패션스쿨로 유학을 떠났던 일은 주위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다.“늦은 나이에 유학을 다녀온 것이 지금까지 패션 디자이너로서 건재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된 것 같아요. 국내에서는 좋은 패턴을 떠서 작품만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해외에 나가보니 다르더라고요. 거기서는 이론 못지않게 시장성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즉, 누구를 대상으로 옷을 만들고 얼마에 팔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어요. 그렇게 배운 것들이 귀국해서 큰 도움이 됐죠.”미국 유학은 항상 ‘우물 안 개구리’ 같다고 여겼던 자신의 틀을 깨는 계기였고 더 넓은 시각에서 패션을 연구하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켜준 기회였다. 사회공헌 활동에도 남다른 열정 쏟아이영희 대표는 사회공헌 활동에도 많은 족적을 남겼다. 부산부녀장학회, 여성장애인협의회 등을 통한 저소득층 지원뿐 아니라 약사회관 건립 기금 마련 의류 바자회 개최,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 바자회 개최 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가족 중에 교통사고로 장애를 입은 이가 있어요. 그 친구를 보면서 장애인들이 좀 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예쁜 옷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연구를 해서 만들게 됐죠. 더불어 소외계층이나 불우한 환경에 처한 분들을 돕는 일에도 관심을 갖게 되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해마다 바자회를 열었습니다.”한번은 민주평화통일위원회 중구 의장을 맡아 활동할 때 약 2,000여 명의 시민들과 함께 중구청에서 민주공원까지 걷기 행사를 진행했다. 그때 각 기관에 후원 물품을 요청하다가 부산은행과도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부산은행은 자전거 10대를 후원해주어 행사 진행에 큰 도움을 주었다. 부산은행과의 두 번째 인연은 한국여성경제인협회 부산지회부회장으로 일할 때였다. 전국 최초로 국제물류단지 산단 조성을 위해 힘쓸 때 부산은행이 건축자금지원(PF) 대출에 우대금리 적용을 해주어 여성산업단지가 조성되는 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 이영희 대표는 이러한 인연에 감사하며 부산은행의 동백전 유치에도 힘을 보태는 등 지금까지 부산은행과 돈독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자갈치 시장에서 배운 열정과 희열으로 이영희 대표는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영감을 자갈치시장에서 종종 얻곤 한다. “틈만 나면 시장에 가는 걸 좋아합니다. 제게 시장은 계절, 색감, 우리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는 백과사전 같아요. 새벽에 자갈치시장의 싱싱한 생선과 은빛 부산바다를 보며 활력을 느끼고 땀 흘리는 사람들 속에서 열정과 희열을 배워 마음속에 가득 담아 오곤 합니다.”그 또한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늘 패션에 대한 열정과 희열을 간직하고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패션쇼를 기획하고, 요즘 트렌드를 연구하며 제품에 반영한다. 도전하는 여성은 늘 아름다우며, 여성의 아름다움에 정해진 시간은 없다고 말하는 이영희 대표. 그는 부산은행 고객들도 늘 도전하는 열정적 삶을 살아보시라고 권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산 하면 부산 갈매기, 등푸른 고등어, 붉은 동백처럼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죠. 저도 부산 하면 누구나 ‘이영희 디자이너’라고 떠올릴 수 있도록 늘 힘차게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디자이너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시조시인 유재영은 ‘다 못 쓴 시’에서 가을날 밤하늘에 ‘금 긋고 가는 별똥별’의 찬연한 모습을 ‘은입사’에 비유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78호 입사장 홍정실 선생의 작품을 통해 점과 선, 면이 함께 어우러져 섬세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우리 전통 금속공예의 꽃, 입사를 만나본다. 삼국시대부터 전래된 우수한 기술_홍정실, <침묵의 상징 (뒤)> ‘입사’란 금속의 표면에 홈을 파고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진 실이나 판을 박아 넣어 점, 선, 무늬 등을 장식하는 공예 기법을 말한다. 이러한 입사 기술을 가진 사람을 ‘입사장(入絲匠)’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입사 유물은 현재 일본 이소노카미(石上) 신궁에 보관되어 있는 백제시대의 칠지도이며, 국내 유물로는 충남 천안 화성리에서 출토된 4세기 후반의 백제 철제은입사고리자루칼이 있다.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에는 향완, 정병 등과 같은 불교용품을 중심으로 입사 기술이 더욱 발전하였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궁중 용품은 물론 그릇, 화로, 촛대 등에도 입사가 활용될 정도로 생활 속에 더욱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 전통 입사 유물을 살펴보면, 점과 선, 면이 함께 어우러져 매우 섬세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전통 입사공예의 맥을 이은 인물 _김선정, 김문정, <조선왕실어보의 보통, 보록, 쇄약시> - 보록 33 × 22.5 × 22.5cm - 보통 15 × 15 × 15cm - 순금, 순은, 황동, 철, 어피, 나무, 옻칠, 입사기법이러한 입사는 19세기까지 조선의 대표적인 금속공예로서 민간에서 널리 사랑을 받았다. 구한말에는 외국인들이 우리 입사 공예품에 매료되어 이를 수집하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왕조의 몰락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전통 입사 공예는 거의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끊어져가던 전통 입사 공예의 맥을 오늘날 다시 되살리는 데 크게 기여한 이가 바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8호인 입사장 홍정실 선생이다. 홍정실 선생은 1947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아름다운 것을 보면 그것을 가지거나 배우고 싶은 열망이 가득했던 선생은 1965년에 입학한 서울여대 공예학과에 권길중 교수의 권유로 금속공예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74년 우연히 읽게 된 <인간문화재>(예용해 저)라는 책에서 입사의 맥이 끊어졌다는 내용을 읽고 자신이 그 맥을 잇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박물관, 갤러리, 인사동, 장한평 고미술거리 등을 드나들며 입사공예 작품이나 유물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전국을 돌며 찾은 입사 스승 _마치(소형 망치)로 입사 작업을 하고 있는 홍정실 입사장 홍정실 선생은 인사동 인사동 고미술품점에서 처음 입사공예 작품을 봤을 때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숨이 막힐 정도로 너무 아름다웠어요. 잠을 못 잘 정도로 매료됐어요.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만드는 방법을 몰랐어요. 그래도 어디엔가는 그것을 만들 수 있는 장인이 살아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찾기 시작했죠.”그는 맥이 끊어진 입사기법을 전수받기 위해 여러 곳을 수소문한 끝에 7년 만에 당시 조선시대 마지막 경공장이었던 이학응 선생을 만났다. 당시 이학응 선생은 78세의 고령으로 이미 입사 작업을 그만 둔 상태였지만 전통 입사 기법을 전수받겠다고 찾아온 홍정실 선생의 열의를 기특하게 여겨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주며 성심을 다해 가르쳐주셨다고 한다. 또한 홍정실 선생은 전통 입사 기법의 보전과 전승을 위해서 입사에 관련된 방대한 자료를 찾아서 정리하고 스승의 기록을 모아 문화재관리국에 제출했다. 마침내 스승이 초대 입사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1988년 이학응 선생이 노환으로 별세한 뒤 홍정실 선생이 그 자리를 계승했다. _홍정실, <철제금은입사문자문향로> - 20.7 × 19.5 × 19.5 cm - 순금, 청금, 순은, 황동, 철, 옻칠, 입사기법창조를 위해선 전통을 제대로 배워야 _홍정실, 다정(多情) - ∅48cm, 순금, 순은, 철, 옻칠, 입사기법 우리나라 전통 입사는 금속 표면에 홈을 파거나 쪼아서 그 위에 금속선이나 금속판을 박아 무늬를 만드는 기술로, 두 금속을 땜질 없이 붙여야 한다. 그래서 한층 더 세밀한 기술이 필요하다. 금이 귀해서 주로 은으로 장식했기 때문에 ‘은실박이’라고도 불렸다. 은실박이에는 쪼음질을 하고 은실을 박는 데 독특한 모양의 정과 마치가 필요하다. 홍정실 선생은 공예기술뿐 아니라 서양 공구와 기법에만 의존하는 교육 풍토를 바로잡기 위해 전통 장인의 공구를 수집하고 정리했다. 전통 연장 대신 편리함을 좇다 보면 창조적인 작품을 만들기 어렵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선생은 입사기술을 후학들에게 가르치는 일에도 힘써 왔다. 1995년에는 전수생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칠만한 공간이 필요해져 ‘길금공예연구소’(현재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으로 이전)를 설립했다. 길금공예연구소에서 입사기술을 배운 이들은 대학교수, 강사, 디자이너로서 작품제작과 전시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현대적 시각으로 재탄생한 입사 _ 홍정실, <하늘빛을 품고> - 60 × 32 × 60cm - 순금, 순은, 청동, 철, 나전, 유리, 옻칠 - 입사기법(유리작품: 김기라) 홍정실 선생은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다. 과거의 유물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해 오늘날 감각에 맞게 재탄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통의 재현뿐 아니라 현대에 접합시키는 시도도 끊임없이 해왔다. “전통적 입사 공예는 쓰임을 가지고 있는 사물에 장식적으로 사용됐다면, 저는 기물의 실용적 가치를 넘어 만든 이의 정신세계를 전달하는 자유로운 표현 매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빛, 시간의 흐름, 자연 등 제가 의미를 두고 있는 주제를 표현하며 창의적인 변화를 시도해왔습니다.” 이와 같은 노력 덕분에 홍정실 선생의 작품은 전통과 현대적 감각의 절묘한 조화를 이뤄 국내외적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영국의 대영박물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민속박물관, 폴란드바르샤바민속박물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서도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을 정도이다. 일흔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홍정실 입사장은 여전히 은실과 마치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섬세한 공정을 계속 하다 보니 시력도 나빠지고 늘 신경통에 시달리지만 입사에 대한 열정과 곧은 기품만은 여전하다. “한국의 전통 공예는 생활 속에서 우리의 인간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자화상과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 공예 문화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부터 학교 교육, 대학 교육으로 이어지는 공예 교육의 흐름이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또, 국가적 지원을 통해 입사의 문화적 가치와 우수성이 많은 작가에게 활용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최원형 생태환경 작가, 서울시 에너지정책위원회 시민협력분과 위원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폐기물 처리 비용이 연간 15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더욱이 폐기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기후 위기의 주범이기도 하다. 지구환경 보호와 자원 재활용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만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폐기물로 버려지는 멀쩡한 물건_멀쩡한 가구가 폐기물로 버려지고 있다. 뫼비우스의 띠는 안팎이 없습니다. 띠 위에 한 점을 찍고 펜으로 띠를 따라 선을 긋다 보면 다시 그 점으로 돌아옵니다. 단지 띠를 한번 꼬았을 뿐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지요.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어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허무함이라고 하면 시시포스의 신화가 떠오릅니다. 반면, 원점으로 돌아갔을 때 긍정적일 수도 있지요. 우리가 물건을 소비하고 난 뒤 남겨진 폐기물이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가 또다시 생산의 출발점이 된다면 어떨까요? 재활용을 의미하는 화살표를 디자인한 게리 앤더슨도 바로 뫼비우스의 띠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했다고 해요. 9월 6일은 자원순환의 날입니다. 숫자 9와 6을 사이좋게 모아 놓으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 이어져 뱅글뱅글 도는 모양이 됩니다. 자원을 계속 순환시키자는 의미를 담은 날이지요. 제가 사는 아파트에는 재활용품을 쌓아두는 곳이 있는데, 이따금 그 앞을 지날 때 쓸 만한 가구가 눈에 띄곤 합니다. 소파, 침대, 책꽂이, 작은 가구가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가 얼마나 풍족해졌는지 실감합니다. 집 안 분위기를 바꾸려고 멀쩡한 물건을 버리고 새 물건을 사는 것은 물건을 쉽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일 거예요. 공급이 수요를 미처 따라가지 못하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공급이 수요를 완전히 압도해버렸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과잉 생산된 물건을 소비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이 필요할 수밖에 없지요. 소유하고 있는 물건을 낡아빠진 구식으로 만들어 새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행을 만듭니다. 소비를 조장하려 짧은 기간만 사용하고 망가지도록 만들기도 하지요. 폐기물로 배출되는 가구나 가전제품 가운데 수리해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게 70%나 된다고 해요. 오래 써서 지겨워져 바꾸고 싶을 때 가구를 리폼하는 방법도 있을 테고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방법도 있을 거예요. 재활용 센터나 녹색가게 같은 중고 물품교환 매장에 보내는 것도 물건의 수명을 늘리는 일입니다. 상업용 목재를 사용하려 세계적인 가구 회사가 벌목하는 숲이 1년에 전 세계 숲의 1%나 된다고 하니 가구를 고쳐 쓴다면 얼마나 많은 숲을 보전할 수 있을까요? 제로 웨이스트 생활 원칙_숫자 9와 6은 반대로 돌려도 동일한 모습인 ‘순환’의 의미를 가진다. 1972년 로마 클럽이 발간한 ‘성장의 한계’에서 이미 지구는 유한하며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고 경고했지만, 더 많은 자원을 채굴하고 숲을 없애며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더없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부해진 배경에는 중국을 비롯한 저개발국가가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한 덕분이기도 합니다. 저렴한 인건비로 제품을 싸게 만드니 소비가 증가할 수밖에요. 이런 풍요로움에 취해 우리 뒤에 올 세대의 몫까지 깡그리 소비하는 중이고 결국 쓰레기를 넘치도록 남깁니다. 쓰레기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오른 건 2018년 쓰레기 대란이 벌어지면서였어요. 그동안 중국은 전 세계의 쓰레기통이라 불리며 세계 쓰레기 중 절반을 처리했습니다. 산업화와 저렴한 원료 구입이라는 중국의 필요와 맞았던 거지요. 그러다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중국의 입장이 달라졌어요. 2017년 7월 플라스틱, 비닐, 섬유 등 24개 품목의 재활용 쓰레기 수입 금지를 세계 무역기구와 각 나라에 통보했고 2018년부터 수입 금지가 발효되었어요. 쓰레기를 어딘가로 떠넘기던 잘 사는 나라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그래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게 ‘제로 웨이스트’입니다. 제로 웨이스트 생활에도 원칙이 있어요. 소비를 줄이고Reduce, 재사용하고Reuse 재활용Recycle하자는 낱말의 앞 글자를 따서 3R이라 합니다. 쓰레기를 줄이려면 무엇보다 소비를 줄여야겠지요. 어쩔 수 없이 소비를 해야 한다면 남겨진 것들을 재사용하고 재활용해야 합니다. 재사용과 재활용의 차이는 뭘까요? 말 그대로 씻어 다시 사용하면 재사용이고 형태를 변형시켜 새롭게 물건을 만들면 재활용입니다. 공병 보증금이 붙어있는 병에는 물건 가격에 이미 병값이 포함되어 있어요. 간혹 그깟 몇백 원 받자고 번거로울 필요가 있냐는 사람들이 있는데 재사용 가능한 병을 재활용하게 되면 유리를 깨뜨려 녹여서 다시 만드느라 비용이 3배 이상 들어갑니다. 그 과정에서 에너지를 소비하고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그래서 유리병의 경우 가능하면 재사용해야 합니다. 3R에 더해서 5R이 있는데요. 거절하기Refuse와 썩히기Rot입니다. 사은품이나 ‘1+1’ 등 물건을 덤으로 받는 경우 내게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멋지게 ‘거절’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으면 좋겠습니다. 지구 전체에서 버려지는 음식 쓰레기가 일 년에 40톤 화물차로 지구 7바퀴를 줄 세울 수 있는 양이라고 해요. 가능하면 음식을 남김없이 먹는 게 중요하고 조리 과정에서 나오는 음식 부산물들은 썩혀 거름으로 만들자는 취지입니다. 과소비 욕망을 줄이자제로 웨이스트 5R 원칙과 더불어 두 가지를 더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꼭 필요한Required 소비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는 것과 욕망을 줄이자Reduce는 겁니다. 무언가가 필요해서 소비를 해야 할 때 자신에게 세 번 질문해보는 겁니다. 정말 꼭 필요한 것이냐고요. 세 번쯤 스스로에게 질문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대체로 필요하지 않게 되더군요. 달리 대체할 물건을 찾아봐도 좋습니다. 집안 곳곳에 먼지 뒤집어쓰고 쌓여있는 물건 가운데 쓸 만한 것들이 생각보다 많을 겁니다. 이렇게 신중하게 소비를 생각하다 보면 내 안에 자리한 욕망의 크기가 줄어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7R의 마지막인 욕망을 줄이자는 부분을 제로 웨이스트의 시작점으로 삼아도 좋을 것 같아요. 욕망을 줄이면 소비는 자연스레 줄 테니까요. 키마 카길은 ‘과식의 심리학’에서 ‘소비의 깔때기’를 언급합니다. 시간과 돈을 소비하고 자원을 고갈시키며 지나친 소비(또는 먹기)로 자신을 파멸하기에 이르는 걸 소비의 깔때기로 지칭하는데요. 소비의 깔때기의 근원에는 ‘텅 빈 자아’가 있다고 합니다. 헛헛한 마음으로 소비를 한다는 거지요. 과식 역시 소비의 맥락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해요. 다시 말해서 내면의 자아가 튼실할수록 소비에 휘둘리는 일은 줄어들 거라는 얘깁니다. 소비는 시간과 돈을 소비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수많은 폐기물을 남깁니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인데 우리 삶은 순환하는 자연의 질서를 완전히 위배하는 쪽으로 진화해왔습니다. 쓰레기는 지구에 대한 우리의 무례입니다. 자원순환의 날을 맞아 적을수록 풍요로움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구의 평균기온은 지난 100년간 1℃나 상승했다. 지구온난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데는 비단 정부나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우리의 일상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의 레저 또한 마찬가지. 친환경으로 바뀔 미래의 레저를 알아보자. 사진 제공. 셔터스톡, 옥천군 그레타 툰베리의 무동력 요트 횡단2019년 9월 23일, 그레타 툰베리는 ‘유엔 기후 행동 정상회의 연설’에서 이미 무너지고 있는 자연 생태와 탄소배출에 의해 일어난 급격한 기후 변화를 책임지지 않는 어른들에게 강하게 탄원했다. 당시 17살이던 그레타 툰베리는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로 기후 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활동을 위해 친환경 무동력 요트를 타고 대서양 횡단에 나선 적이 있다. 이는 오염물질을 대량으로 내뿜는 항공기를 이용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기 위함이었다. 군북면 방아실 계류대에 친환경 태양광 보트 전경. 사진제공 _ 옥천군 탄소중립 비전 선언2011년~2020년 지구 평균 온도를 측정한 결과 산업화 전보다 1.09℃가 상승했다. 1.5℃가 넘으면 지구에서 살기 어려워지는데, 이 정도 상승 속도라면 2021~2040년 1.5℃ 도달이 가능할 것이라고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예측했다. 3년 전 예측치 보다 10년이나 빨라진 것이다. 2020년 12월 10일, 당시 정부는 2050 대한민국 탄소중립 비전 선언을 통해 한국의 탄소중립 비전을 선언했다. 탄소중립이란 이산화탄소 배출과 흡수가 균형을 이룬 상태로 순 배출량이 ‘0’이 되게 하는 정책이다. “지구라는 건 물질적 세계예요. 유한하잖아요. 이제 더 이상 우리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 이 지구에서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이 오늘날 지구 위기의 본질이고 그게 바로 기후 위기로 드러나는 것이에요. 우리가 지금까지 매달려 왔던 방식을 버려야 할 때가 온 것이죠.” (조천호, 대기과학자‧경희사이버대학 특임교수) 가치 소비, 친환경 레저를 기다리다_수소연료전지를 활용한 친환경 레저용 선박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레저 스포츠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현재 상용화 되고 있다. 먼저 내연기관으로 동력을 얻는 자동차 등을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전기 자전거가 인기를 얻고 있다. 교통비를 줄이고, 교통 체증을 감소시키며, 일반자전거보다 빠른 속도로 장거리 주행이 가능하다. 특히 탄소배출을 줄이는 친환경 이동 수단이라는 점에서 미래의 교통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포틀랜드 주립대 연구진이 2020년 8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내연기관 자동차의 15%를 전기자전거로 대체할 경우 탄소 배출량이 12%까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소연료전지와 해양특화전지를 활용한 친환경 레저용 선박 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데, 2022년 2월 16일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지역활력 프로젝트에 참여한 펭귄오션레저에 파워팩 기술을 지원했다. 기존 레저 선박은 내연기관을 구동하거나 배터리에서 에너지를 공급받기 때문에 소음과 해양 환경오염을 유발하는데, 수소연료‧해양특화전지 기반의 파워팩 기술을 장착한 레저 선박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2022년 5월, 옥천군은 힐링마을 조성을 위해 친환경 선박인 솔라 보트를 진수했다. 태양광 전원공급장치로 축적된 배터리를 이용한 솔라 보트는 청소선(승선 인원 4명)과 체험선(승선인원 10명)으로 운영된다. 청소선은 수상레저객들이 버리는 수상 쓰레기를 수거하는 자연보호 활동에 사용되고 체험선은 자연 보호 교육, 자연 숲 체험 등 청소년 체험교육과 마을 관광자원으로 활용된다. 이처럼 레저 분야에서 친환경 기술을 접목한 영역이 넓어지며 레저 산업에 활발하게 적용된다면, 미래의 소비자는 주저 없이 친환경 레저로 ‘가치 소비’를 즐길 수 있을 예정이다.
글. 장한업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프랑스어 ‘마담’의 정확한 뜻을 알고 나면 왜 우리나라에서 속된 말 취급을 받고 있는지 의문이 들게 된다. 한 나라의 문화가 다른 나라로 옮겨갈 때 변형, 왜곡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 찾아내고 바로잡는 것은 정확한 문화관을 갖기 위해 필수적이다. 속된 말이 된 존칭어 프랑스는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나라입니다. 2020년 기준, 프랑스를 찾은 외국인은 1억 1,700만 명이었으니 정말 대단하지요. 프랑스가 이렇게 문화강국이다 보니 이 나라의 말인 프랑스어도 고귀한 언어로 여겨지지요.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프랑스어는 상당히 좋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만 한 가지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마담(madame)’이라는 단어예요. 프랑스에서 이 단어는 왕족이나 귀족을 지칭하였고 여전히 존칭에 속하지만 한국에서는 격이 낮고 속된 말 취급을 받고 있어요.이 단어가 얼마나 고귀한 단어였는지는 그 어원인 라틴어 메아 도미나(mea domina)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여기서 메아는 ‘나의’라는 뜻이고, 도미나는 ‘여신’, ‘황후’, ‘지배하는 안주인’ 등을 의미하지요. 영어로 하면 마이 레이디(my lady), 이탈리아어로 하면 마돈나(madonna)가 되지요. 메아 도미나는 12세기에 프랑스어로 들어가 마담(madame)이 되었고 14세기경에는 영어 매담(madam)이 되었어요. 12세기 초부터 17세기까지 마담(madame)은 여성 왕족이나 귀족을 지칭하는 존칭이었어요. 14세기에는 소도시의 관리의 부인들에게 붙이는 명예로운 호칭이 되었지요. 종교개혁까지는 수녀들도 그렇게 불렀다고 해요. 17세기부터는 보통 부인들에게도 붙이는 존칭이었고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지나가는 성인 여성을 ‘마담’이라고 불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오히려 자신이 대접받는다고 생각하고 좋아하지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지요. 만약 지나가는 성인 여성에게 ‘마담’이라고 부르면 그 여성은 매우 당황할 것이고 버럭 화를 낼지도 몰라요. 사전에 나오는 것처럼 “술집이나 다방, 보석 가게 따위의 여주인”이라고 여긴다고 생각하면서요. 우리 문학에 끼친 일본의 영향그렇다면 마담을 “술집이나 다방의 여주인”으로 정의하는 관행은 언제부터 생긴 걸까요? 저는 2007년에 이 주제로 논문을 쓴 적이 있어요. 저의 결론은 이런 관행은 일본의 영향이라는 것이었어요. 이것은 ‘마담’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보인 몇몇 한국 문학작품을 살펴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어요. 염상섭의 『무화과』(1931-1932)에는 “마담이란 문경이 말이다. 저번 마작하던 날 이 집에 다녀간 뒤로 마담, 마담하고 부르는 것이다.”라고 해요. 여기에 나오는 문경은 부잣집 딸로 태어나 결혼한 후에는 남편과 함께 일본에서 살고 있는 여성이에요. 여기서는 ‘마담’이라는 단어는 남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말이었어요. 이런 관행은 일본에 체류한 경험이 있는 한국 문인들이나 당시 한국에 와 살고 있는 일본인들이 서구의 관행을 모방한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관행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은 것 같아요. 이광수의 『흙』(1932)에는 “해 먹을 것이 없거든 우리 카페이나 하나 내까. 당신은 마담이 되고...”라는 표현이 나와요. 여기서 말하는 ‘카페’가 술집인지 다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유흥업소 여주인을 마담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분명해 보여요. 또 주요섭의 『아네모네의 마담』(1936)에는 “티이루움 「아네모네」에 마담으로 있는 영숙이가 귀걸이를 두 귀에 끼고 카운터 뒤에 나타난 날”이라는 표현이 나와요. 이 표현을 보면 티이루움(tea room), 즉 다방 안주인을 마담이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어요. 결국 ‘마담’이라는 프랑스어 단어는 본래는 존칭이었지만 이 단어가 일본에 들어가서는 술집이나 다방의 안주인을 의미하는 비속어로 전락했고 그것이 한국에 그대로 들어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이처럼 문화는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옮겨갈 때 변형되고 왜곡될 수 있어요. 이런 변형과 왜곡을 찾아내고 그것을 바로잡는다면 좀 더 좋은 문화관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