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의 본질은 향유와 미적 감동입니다.
작품이 주는 즐거움이 먼저이고, 자산으로서의 가치는 그 다음입니다.”
케이옥션 수석 경매사_손이천
국내 미술품 경매 현장에서 손이천 케이옥션 수석 경매사의 목소리는 긴장과 설렘을 자아낸다. 그는 단순히 작품의 가격을 매기는 경매사가 아니다. ‘경매사는 돈이 아닌 눈을 본다’는 철학으로 작품, 사람, 시장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는 미술 경매의 최전선에서 경매를 오케스트라의 무대로, 경매사를 지휘자로 비유하며 미술 시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경매사의 시작, 우연에서 운명으로
손이천의 경매사 데뷔는 ‘예상 밖’이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그는 IT 기업에서 3년간 마케팅 업무를 맡았다. 그러나 ‘흥미가 없다’는 이유로 과감히 사직했고,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공부하며 미술계와 접점을 넓혔다.
2009년 케이옥션에 홍보 담당으로 입사했을 당시만 해도 경매사의 길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입사 반년이 지나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대표님이 ‘경매사 한번 연습해볼래?’라고 하셨어요. 회사 내부 오디션을 거쳐 2010년 정식으로 데뷔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그는 무대에 서면 연기처럼 몰입했다. 매일 대본을 읽으며 호가 연습을 반복했고, 발성과 체력 단련으로 자신을 다잡았다. “잘하려면 결국 연습뿐이었어요.” 그는 그렇게, 우연처럼 찾아온 기회를 치열한 준비와 노력 끝에 자신의 새로운 길로 만들어냈다.
무대에서 다져진 힘
경매 현장은 언제나 변수가 많다. 숫자를 잘못 호가하거나, 예상치 못한 경쟁이 붙는 순간도 있다.
“한 작품이 9억 2천만 원에 낙찰되는데 순간적으로 ‘9,200만 원’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즉시 바로잡고 넘어갔지만, 작은 호가 하나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는 걸 다시 깨달았습니다.”
그가 진정한 성장을 체감한 순간은 2013년 ‘전재국 컬렉션 경매’였다. 80여 점 전량이 낙찰률 100%를 기록했고, 이어진 정기 경매까지 혼자 진행했다.
“2시간 반 이상을 혼자 진행했어요. 체력적으로 도전이었지만, 끝내고 나니 두 시간 경매쯤은 식은 죽 먹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경험은 긴 호흡을 버티는 집중력과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이후 세 차례 국내 미술품 최고가 경신으로 이어졌다. 2012년 퇴우이선생진적 34억 원, 2017년 김환기의 고요 65억 5천만 원. 이 기록들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경매사가 작품과 시장을 어떻게 연결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절제와 루틴이 만든 전문성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라이브 경매를 위해 그는 지금도 철저한 루틴을 지킨다.
“경매 전 2~3주 동안은 약속을 줄이고 체력과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운동과 규칙적인 생활을 합니다. 높은 구두를 신고 서 있다 보면 발바닥에 쥐가 나기도 해요. 그래서 근력 운동과 수영을 꾸준히 합니다.”
데뷔 초에는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엔 1년에 네 번밖에 경매가 없었어요. 세 달에 한 번이니 무대에 설 때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했죠. 그래서 경매 전에는 매일 리허설을 하고 발성 연습을 반복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그는 체력과 자신감을 함께 길렀다. “예전엔 인터뷰 한 시간만 해도 방전됐는데, 지금은 하루 종일 말을 해도 버틸 수 있습니다. 경매를 오래 하기 위해 근력 운동과 컨디션 조절은 필수였죠.” 술자리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저녁에 술을 마시는 즐거움보다, 다음 날 무너지는 컨디션의 기회비용이 더 커요. 그래서 술을 거의 마시지 않게 됐습니다.”
이 절제와 루틴은 무대 위 침착함으로 이어졌다. 긴장된 경합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태도, 그리고 고객의 신뢰를 이끌어내는 힘은 꾸준한 자기 관리에서 비롯된다.
미술 시장, 본질은 ‘향유’
2021년 NFT와 조각투자가 미술 시장을 흔들며 ‘아트테크’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하지만 손이천은 현실적 진단을 내린다.
“NFT는 거품이 꺼지며 제도화 과정을 거친 지금은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조각투자도 금융당국 규제로 제도권에 편입됐지만, 불황 속에서는 매력이 줄어든 상태예요.” 반면 온라인 경매는 꾸준히 성장했다.
“온라인 경매에는 100만 원대 작품도 많습니다. 누구든 관심과 취향만 있다면 미술품을 소장할 수 있어요.”
그는 투자 목적만으로 미술품을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저는 원래 아트테크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투자만을 목적으로 미술품을 사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죠. 미술품의 본질은 향유와 미적 감동입니다. 작품이 주는 즐거움이 먼저이고, 자산으로서의 가치는 그 다음입니다.”
작품을 고르는 눈은 결국 개인의 취향에서 비롯되며, 많이 보고 경험할수록 안목이 깊어진다. 국내 미술 시장은 아직 규모가 작지만, 그는 성장 가능성을 크게 본다.
“경매사는 작품과 사람을 연결하는 지휘자입니다. 대중, 새로운 컬렉터, 그리고 시장 전체가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홍보 담당과 경매사의 역할을 병행하며 방송 출연과 인터뷰로 경매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것도 그의 공로다. 최근에는 대학에서 ‘미술 마케팅’을 강의하며 예술 전공자들에게 작가 외의 다양한 진로를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길이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제 앞에 다가온 일을 감사히, 성실히 해왔을 뿐입니다.”
그의 손끝은 오늘도 정확히 호가를 짚어내며, 가격 너머의 가치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