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이화진
마린제니스 PB
“인공지능(AI)이 당신의 직장을 대체할 것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위협처럼 들렸던 말이 이제 현실이 되었다. AI가 작성한 보고서를 검토하고, AI가 만든 디자인을 활용하며, AI가 고객 상담을 처리하는 시대다. 영화나 뉴스 속 이야기 같던 기술이 우리 삶 깊숙이 침투해 경제활동 전반을 재편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특히 한국 사회는 이 변화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는가?
AI는 기술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의 변화
AI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생활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 이미 수많은 직장에서 AI 기반 자동화가 진행 중이다. 회계, 번역, 고객 상담, 콘텐츠 제작 같은 분야는 챗GPT, 디플, 로보어드바이저 등 AI 기술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이로 인해 고용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고소득 전문직은 AI를 활용해 생산성과 소득을 높이는 반면, 단순·반복 업무에 종사하는 계층은 AI로 인한 일자리 축소 위험에 노출된다. 특히 청년층, 중·장년층, 고령자 등 직업 전환 여력이 낮은 계층일수록 충격이 크다.
AI는 소비 패턴도 바꿔놓았다. 온라인 쇼핑에서의 맞춤형 추천, 알고리즘 기반 광고, 챗봇 상담까지. 우리는 AI가 추천하는 대로 물건을 사고, 콘텐츠를 선택하고, 심지어 여행 경로까지 결정한다. 이는 소비자의 주체적 판단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소비의 효율성과 편리성은 높인다는 이중성을 갖는다.
금융과 노동의 경계가 흐려진다
AI는 금융 생태계에도 크게 변화시켰다. 이제는 사람 대신 로보어드바이저가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AI가 대출 심사를 한다. 챗봇이 고객 상담을 하고, AI가 보험사기 탐지를 수행한다. 금융 소비자는 더 빠르고 저렴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기술 활용 역량이 낮은 사람은 소외되거나 잘못된 판단을 할 위험도 커진다.
예를 들어, 자산관리에 익숙한 청년층이나 고소득층은 AI를 활용해 투자 수익을 늘리는 반면, 디지털 소외계층은 여전히 종이 통장을 들고 은행 창구에 줄을 서야 하는 상황이다. AI는 이처럼 기술 격차를 ‘경제 격차’로 증폭시킬 수 있다.
또한 플랫폼 노동자, 크리에이터, 프리랜서, 온라인 셀러, 디지털 노마드 등 기존 산업구조에 속하지 않는 경제활동이 늘고 있으며, AI는 이 변화의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이는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기존 사회보장 체계의 사각지대를 더 넓히는 결과를 낳는다.
한국사회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까?
한국은 AI개발 인프라에서는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는다. 정부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 ‘AI 반도체 육성’, ‘AI인재 10만 명 양성’ 등 다방면에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AI R&D에 수천 억 원을 쏟아 붓고 서울·판교 중심으로 스타트업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그러나 문제는 기술 접근성이 계층, 지역, 연령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는 점이다. 특히 고령층, 중소기업 종사자, 저소득 가구 등은 AI 시대를 대비할 제도적·교육적 지원이 여전히 부족하다. OECD 디지털 기술 역량 평가에서 한국은 청년층의 문해력은 상위권이지만 중장년층 이상의 디지털 역량은 하위권에 속한다. 또한 AI를 활용하는 역량에 있어서도 미국, 독일, 네덜란드 등 선진국 대비 체계적인 평생학습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는 그럼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 디지털 문해력, 이제 생존 능력이다.
AI를 단순히 사용하는 수준을 넘어, AI의 판단 기준과 위험을 이해해야 한다. 예컨대 AI 기반 투자 앱을 이용할 때 알고리즘의 한계와 리스크를 이해하는 힘이 필요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AI 활용 교육·디지털 금융 교육·온라인 보안 교육을 체계적으로 제공하고, 특히 중장년층·고령층의 접근성을 개선해야 한다.
◈ 사회안전망의 재설계
AI시대에는 직업 불안정과 소득 불확실성이 일상화된다. 플랫폼 노동자와 디지털 프리랜서도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머물지 않도록 유연한 제도가 필요하다. 재교육·직업 전환 비용을 줄여주는 정책적 지원도 중요하다. ‘고용 없는 성장’ 시대에는 역량 지원이 핵심이다.
◈ 생활경제 관점의 AI 윤리와 감수성
AI의 편향, 개인정보 침해, 책임 회피 문제는 이미 사회적 갈등을 불러왔다. 금융·교육·고용 등 생활경제 핵심 영역에서 AI 신뢰성을 확보하고, 알고리즘 투명성·설명 책임·감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사람을 중심에 두는 AI가 정책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 준비하는 자가 기회를 잡는다
AI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기술의 물결은 거스를 수 없지만, 파도를 탈지 휩쓸릴지는 개인과 사회의 준비에 달려 있다. 이해하고 배우고 적응하는 것이 지금의 과제다. AI는 기회이자 도전이며, 지금은 그 기회를 준비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