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 세자녀출산지원재단 이사장
“사람이 진심으로 마음을 열면, 후원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그의 방식은 조용하지만 강력하다.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부담 없이 이어지는 ‘선순환’을 그는 믿고 있다.
2018년, 김영식 이사장은 20억 원이라는 사재를 털어 ‘김영식세자녀출산지원재단’을 설립했다. 누구의 요청도, 후원도 없이 스스로 시작한 일이었다. “아이는 생기는 대로 낳아라.” 그의 말은 단호했지만, 사람을 닦달하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아기 울음소리는 기쁨이자 축복’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부드러운 확신이었다.
한 사람의 시작이 만든 변화
모든 것은 비행기 안, 한 장의 석간신문에서 시작됐다.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에 관한 특집 기사를 읽고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먼저 하면 누군가는 따라오지 않겠나.’ 그날 이후 그는 움직였다.
당시 운영하던 천호식품에서도 직원들의 출산을 지원했다. 첫째 100만 원, 둘째 200만 원, 셋째 1,220만 원. 일시불로 주면 그만둘까 봐, 일부는 나눠서 주는 방식으로 설계했다. 자기계발서 《10미터만 더 뛰어봐》의 인세와 강연료도 전부 출산 장려금으로 사용했다. 재단을 만들기 전까지, 그는 약 9억 8,000만 원을 사비로 지원했다.
그 시절의 행보는 무계획이 아니라 직감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직원이 셋째를 낳았다고 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어요.” 그는 회사를 경영하듯이 사람의 삶도 함께 책임지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감은 어느새 사회 전체로 확장되었다.
얼굴 모르는 산모들에게 30억을 건넨 사람
9년 전, 그는 자신이 일군 천호식품을 과감히 매각했다. “사람은 돈을 벌 나이가 있고, 돈을 쓸 나이가 있더라고요.” 인생을 ‘롤러코스터’ 같다고 말하는 그는 바닥도, 꼭대기도 경험했다. 그 여정 끝에 남은 건,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대한 질문이었다.
“내 삶으로 얻은 걸, 좋은 데 쓰기로 했어요.”
그렇게 그는 대한민국에서 개인이 만든 유일한 출산 지원 재단을 시작했다. 초기에 사비 20억 원을 투입했고, 이후 단 한 번도 그 길에서 멈추지 않았다. 재단을 통해 지금까지 875명 이상의 산모에게 축하금을 전달했다. 설립 이후에만 17억 7,700만 원, 초기 사비까지 포함하면 약 30억 원에 달한다.
“대한민국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한테 애 낳으라고 30억 주는 사람 있을까요?” 그는 유쾌하게 웃으며 되묻는다.
재단의 운영 방식도 특별하다. 후원금은 후원자의 이름으로 산모에게 직접 전달된다. 기부금의 흐름이 투명하고, 목적이 명확하다. 기업들의 후원도 이어지며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 “사람이 진심으로 마음을 열면, 후원도 자연스럽게 따라와요.” 그의 방식은 조용하지만 강력하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부담 없이 이어지는 구조. 그는 그런 선순환을 굳게 믿고 있다.

내 아들은 아니지만, 내 아들입니다
기억에 남는 사연은 많다. 그중에서도 한 여성의 사연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녀는 수술대 위에서 중절 수술을 기다리던 순간, 김 이사장의 강연에서 들은 말이 환청처럼 들렸다고 했다. “아이는 생기는 대로 낳아라.”
그 말 하나로 산모는 수술복을 벗고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이미 임신한 상태인데, 재단에서 지원받을 수 있을까요?’
김 이사장은 망설이지 않았다. 재단이 아닌 개인 사비로 200만 원을 전달했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이제 일곱 살. 아이 이름은 ‘우진’이다. 모 병원 간호사인 그 아이의 엄마는 강연장을 찾아와 명함을 건넸고, 그는 그 아이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닌다.
그 아이가 지금도 건강하게 자라며 웃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이 모든 수고가 보람으로 되돌아온다. 그는 그날을 “내가 아이를 한 명 더 낳은 날”이라고 말한다. 실제로는 혈연이 아니지만, 그 순간의 선택이 만든 인연은 어떤 가족보다 끈끈하다.
“내 아들이지요. 닮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말 속엔 사랑과 유머, 그리고 묵직한 책임감이 담겨 있다.
믿음이 만든 관계, 부산은행과의 인연
그의 부산은행과의 인연은 덕포동 작은 공장에서 시작됐다. 공장을 운영하던 시절, 한 지점장이 찾아와 말했다.
“부산 기업은 부산은행과 거래해야 합니다.” 설득력 있는 말과 진심 어린 태도에 그는 마음을 열었고, 그날 이후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단순한 거래로 끝나지 않았다. 부산은행은 그가 주최한 강연에도 귀를 기울였고, 재단 활동에도 관심을 보였다.
김 이사장은 말한다. “늘 반갑게 맞아주고,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직원들이 있어요. 그게 제일 고맙죠.” 지금도 그는 부산은행의 PB 직원들과 인간적인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이민정 PB는 늘 밝은 미소로 그를 맞이하고,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든든한 파트너다. 은행과 고객의 관계도 결국 사람 사이의 일이다. 진심이 오갈 때, 그 인연은 오래간다.

(좌) 센텀금융센터 이민정 PB (우) 김영식 이사장
이제는 기쁨을 나누는 사람으로
그는 자신을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골프를 칠 때도,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도 사람들에게 늘 좋은 에너지를 나눈다. 누군가 200만 원을 기부하면, 박수로 화답한다. 그러면 누군가 따라 기부한다. “그것도 마케팅입니다.” 그는 웃으며 말한다.
요즘은 신청자 수가 몰려 모든 산모에게 지원금을 줄 수 없는 게 안타깝다며, 새로운 방법도 모색 중이다. 때로는 SNS나 방송 인터뷰를 통해, 때로는 골프장에서 조용히 사람들을 설득하며 오늘도 기회를 만든다.
청년 결혼 장려 행사도 그가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일 중 하나다. ‘들싱나커(싱글로 들어와 커플로 나가는)’라는 이름으로, 식사와 이벤트를 곁들여 자연스러운 만남의 자리를 마련해준다. 결혼까지 이어진 커플에게는 신혼여행비도 지원하며, 주례도 직접 서준다.
그가 바라는 건 대단한 명예도, 보상도 아니다. 그저 “한 명이라도 더 태어나고, 행복한 삶을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 하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