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 박병진,
북스 레브쿠헨 대표, 작가, 《위스키 스틸영》 저자
위스키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스코틀랜드, 이곳의 위스키는 지역 특색을 담은 풍부한 맛과 향을 자랑한다.
올여름, 더위를 식혀줄 다채로운 스코틀랜드 위스키의 세계를 미리 만나보자.
스카치와 스코티시
에든버러는 스코틀랜드의 수도이다. 1707년 잉글랜드와 합병하여 영국의 일부가 되었지만, 여전히 스코틀랜드인의 마음속의 수도로 남아있다. 최근에는 브렉시트와 맞물려 영국에서 독립하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에든버러 출신만 보아도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 셜록 홈즈의 코난 도일, 영원한 007 숀 코네리,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까지 오랫동안 영국 역사의 일부로 있어왔기에 이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영국인이 스코틀랜드를 지칭하는 스카치(Scotch)와 그들 스스로를 칭하는 스코티시(Scottish)에 대한 그들의 복잡한 속마음이 있기에 영국과 스코틀랜드를 마냥 동일시할 수만은 없다. 그 모순의 명칭 중 하나가 바로 스카치 위스키이다. 이제 와서 스코티시 위스키로 바꿀 수도 없으니, 그에 대한 스코틀랜드의 미묘한 감정을 언뜻 볼 수 있다. 언젠가 스코틀랜드 사람을 만난다면 꼭 스코티시로 불러주며 대화를 시작해보자. 그들의 마음을 조금 더 빨리 열수 있을 것이다. 높디높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경계는 로마제국의 정복의 역사에서 시작된다. 그 경계는 현대의 그것보다는 조금 남쪽에 있지만 대략 로마제국의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만들었던 하드리아누스 장벽(Hadrian’s Wall)이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경계가 된다. 그다음 황제였던 안토니우스 피우스가 좀 더 북쪽에 건설한 안토니우스 장벽(Antonie’s Wall)은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와 로우랜드를 나누는 경계선이 된다.
하이랜드와 로우랜드
위스키 생산에 따른 하이랜드의 지역 구분은 5가지이다. 즉 스페이사이드, 아일라, 켐벨타운, 아일랜즈 그리고 그 나머지 지역의 위스키가 있다. 그중 동쪽 스페이강 유역인 스페이사이드에 전체 위스키 증류소의 절반 이상이 몰려있다. 균형 잡힌 맛과 화사한 꽃향기를 떠올리는 가장 대표적인 위스키들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우리가 주류숍이나 바에서 많이 보고 들어온 위스키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나온 것이다. 발베니, 맥켈란, 글렌피딕, 글렌리벳, 글렌그란트 등의 유명 위스키가 있고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무난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조금 더 모험적인 강렬한 맛을 원한다면 서쪽 끝의 아일라섬이 있다. 이곳에서는 정로환 냄새, 즉 병원 냄새가 강한 이른바 피트 위스키가 많이 생산된다. 마치 홍어를 먹을 수 있는 사람과 먹을 수 없는 사람이 나뉘듯, 이곳의 위스키 또한 그러하다. 이 피트에 쉽게 빠져들기는 어렵지만 만약 그 극단의 향취에 빠지게 되면 헤어 나올 수 없다. 그들의 슬로건대로 선택지는 두 개뿐이다.

“Love it or Hate it.”
그보다는 덜한 적당한 피트향을 내는 위스키는 북서쪽 지방과 인근의 여러 섬들에서 만들어진다. 특별한 섬, 아일라 섬을 제외한 다른 섬들은 통틀어서 아일랜즈(Islands), 즉 “섬들”로 불리는 지역이다. 아일라 섬보다는 약한 피트와 하이랜드의 향미를 동시에 지닌 이곳 위스키는 탈리스커나 주라, 하이랜드파크 같은 균형 잡힌 맛과 가성비가 좋은 것이 많다. 아일라 섬과 마주 보고 있는 킨타이어 반도의 캠벨타운에서는 100% 수작업으로만 만든다는 스프링뱅크가 유명하다. 워낙 독특한 맛과 고집스러운 그들만의 생산방식으로 전세계 위스키 매니아들이 꼭 가보고 싶어하는 위스키의 성지가 되었다. 그 특유의 감칠맛과 피트향의 오묘한 조화는 지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광대한 하이랜드의 나머지 지역들에서도 다양한 위스키가 만들어지는데, 한마디로 특징을 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저 하이랜드 위스키라고 칭하지만 그 속에 어떤 보물이 들어있을지는 스스로 탐험해 나가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특히 해안 쪽에는 아일랜즈 위스키와 비슷한 균형 잡힌 피트 위스키가 많고 이중 올드풀트니와 오반은 나의 최애 위스키 중 하나이다.

가장 대중적인 피트 위스키, 하이랜드 파크. 피트 향이 강하지 않아 입문자에게도 추천한다.
상대적으로 로우랜드는 간단하다. 글래스고와 에든버러 두 대도시가 있는 이 지역은 바다 건너편 아일랜드, 즉 에이레공화국과 가까워 위스키 생산방식에도 큰 영향을 받았다. 하이랜드 지역의 위스키들이 두 번 증류하여 위스키를 만드는 데 비해 로우랜드는 아일랜드와 동일하게 세 번 증류한다. 그만큼 원재료의 물성은 희미해지고 부드러움만 남는 위스키가 된다. 모든 술의 판단 기준을 목넘김으로 보는 우리에게는 이 로우랜드 위스키가 제격이다. 그래서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잘 팔린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블렌디드 위스키들의 기주는 이곳 로우랜드의 싱글몰트 위스키인 경우가 많다. 40대 이상이라면 임페리얼, 윈저, 썸싱스페셜 같은 블렌디드 위스키의 추억이 생생할 것이다. 목넘김이 좋은 위스키였지만 좋은 목넘김의 기억은 별로 없다. 그저 폭탄주로 대량 섭취했던 기억뿐이다. 하지만 어쩌랴,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우리 추억의 일부로 묻어두고 새로이 즐겨보자. 아마도 이젠 목넘김이 좋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것이다.

목넘김이 부드러운 위스키로 인기 많은 임페리얼, 윈저, 썸씽스페셜
로우랜드보다 훨씬 더 가성비 좋고 목넘김이 좋은 위스키도 있다. 바로 원조인 바다 건너 아일랜드 위스키이다. 우리에겐 제임슨이나 부시밀 정도가 알려져있지만, 스카치위스키 이전에 위스키 세계의 지배자였던 이 나라에는 훨씬 더 많은 숨은 보석들이 있다. 천천히 하나씩 찾아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만약 이웃나라 일본에 갈 기회가 있다면 한국보다 훨씬 더 많은 선택지와 좋은 가격으로 찾아볼 수 있는 아일랜드 위스키가 많으니, 굳이 구하기 어려운 일본 위스키보다 이를 더 추천한다.
여름과 겨울, 하이랜드 쿨러와 롭 로이
에든버러의 중심가인 프린세스 스트리트를 따라 걷다 보면 거대하고 기묘한 조형물이 하나 나온다. 바로 그들이 영국의 셰익스피어와 비교하는 작가인 월터 스콧(Walter Scott)의 기념탑이다. 그들의 스콧에 대한 사랑은 높이로 표현되어, 실제로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있는 넬슨 제독의 기념탑보다 10m 정도 높다고 한다.
에든버러의 중앙역인 웨이벌리 역 또한, 월터 스콧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다. 그만큼 스콧은 스코틀랜드의 자랑인 대문호이기에 농담으로 이곳을 스코틀랜드가 아니라 스콧틀랜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다른 그의 작품 중에 스코틀랜드의 민중영웅 롭 로이의 이야기도 있는데, 유명한 칵테일의 이름이기도 하다.
롭로이는 버번으로 만든 맨해튼 칵테일과 비슷하지만, 버번이 아니라 당연히(!) 스카치가 들어간다. 무척 어두운 붉은색인데, 롭로이가 걸친 타탄, 즉 붉은 색 체크무늬 전통의상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축축하고 어두운 겨울 밤 에든버러 지하의 조용한 바에서 한잔하기에 제격인 멋진 칵테일이다. 하지만 뜨거운 햇살 아래 마셔야 할 여름날의 시원한 칵테일과는 거리가 멀다. 모름지기 여름의 칵테일은 탄산이 들어가야 한다.

요즘은 어디를 가더라도 쉽게 하이볼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시원한 탄산수에 황금빛 강렬한 위스키 한잔을 섞은 하이볼은, 특히 음식과 잘 어울려 안주가 중심인 우리의 술자리에 좋은 선택이 된다. 그래서 요즘 고깃집에 가면 하이볼 한 잔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스코틀랜드의 술자리에서는 우리 식의 안주 개념은 별로 없다. 그들의 가장 큰 안주는 바로 대화, 즉 사람인 것이다. 술 자체를 즐기는 그들과 달리 우리는 둘 다 중요하니, 이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면 나는 “하이랜드 쿨러”를 추천한다. 하이볼과 거의 비슷하지만 탄산수 대신 진저에일이 들어가 감칠맛 나는 생강 향이 가득하니 그냥 마셔도, 음식과 함께 해도, 모두 좋은 여름의 칵테일이다. 삼겹살의 기름때를 벗겨주고 해산물에 감칠맛을 더해주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 아래 바닷가의 의자에 앉아, 아무런 생각 없이 하이랜드 쿨러를 한 잔 하는 것이다. 찬 물방울이 잔뜩 맺힌 유리잔에 담긴 엷은 황금빛 한 잔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이 여름의 뜨거운 햇살은 스코틀랜드에는 없다. 어쩌면 그들보다 우리에게 더욱 어울릴지도 모를 일이니 이 여름을 위해 건배하자. Cheers!
작가 소개
박병진_ 위스키 인문학 《위스키 스틸영》의 저자로 현재 포브스와 동아일보에 박병진의 위스키 기행, 박병진의 광화문살롱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동아일보사의 최고위과정인 광화문살롱의 주임교수를 맡으며, 동시에 요리, 여행, 사람들의 이야기를 펴내는 출판사 북스 레브쿠헨과 어린이 창의력 플랫폼인 테일트리 코리아의 대표로서 유쾌한 N잡러의 삶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