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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한 여름의 빛,
고요하게 아름다운
홋카이도

글, 사진_ 최상희 작가,

《홋카이도 반할지도》 저자


급격한 기후 변화와 폭염으로 휴가 풍경이 바뀌고 있다. 

여름엔 바다라는 공식 대신 시원하고 조용한 곳에서 충만한 휴식을 취하는 ‘쿨케이션(Coolcation)’이 인기. 

일본 북쪽에 위치해 한여름에도 선선하고 청정한 대자연을 품고 있는 홋카이도는 여름 여행지로 더할 나위 없다. 

부드러운 능선과 드넓게 펼쳐진 초록 들판, 보랏빛 라벤더가 가득 핀 언덕. 

홋카이도에서 만날 수 있는 청아한 풍경이다.




비에이 패치워크 로드, 노스탤지어의 풍광

비에이는 주소와 표지판 대신 부드러운 언덕과 들판에 서 있는 나무가 이정표가 되어주는 조용하고 수수한 시골 마을이다. 야트막한 산비탈을 타고 감자가 영글고 황금빛 밀밭을 건너 가만히 불어오는 바람에 오색 여름꽃이 폭죽처럼 피어나, 비에이의 여름 색은 강렬하고 선명하다. 

쌀과 밀, 옥수수와 감자 등의 작물과 채소가 자라나는 논과 밭의 경계가 마치 여러 색의 헝겊 조각을 이어붙인 듯 보인다고 해서 ‘패치워크 로드’라고 불리는 들판, 능선을 따라 오브제처럼 서 있는 나무들과 외딴집, 청아한 하늘에 피어나는 뭉게구름. 소박하게 아름다운 자연 풍경은 말간 수채화 같다. ‘시키사이노오카(사계채 언덕)’는 눈부신 꽃이 언덕 가득 피어 무지개 위를 거니는 기분이 든다.

울창한 숲을 지나 신비로운 호수에 다다르면 절로 탄성이 난다. ‘아오이이케(청의 호수)’는 오묘한 물빛과 물속에 솟아난 나무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 같다. 화산 피해를 막기 위해 건설된 제방에 물이 고여 만들어진 호수에 유황과 알루미늄 성분이 섞이며 콜로이드 입자가 빛에 반사되어 오묘한 색을 낸다고 한다. 근처의 ‘시라히게노타키(흰수염 폭포)’는 여름이면 초록 절벽 사이로 하얀 폭포가 푸른 강 위로 떨어지고 겨울에는 물줄기가 그대로 하얗게 얼어붙어 이름 붙여졌다. 계곡 사이로 불어온 시원한 바람에 물방울이 흩날리며 더위를 단숨에 날린다. 



후라노 팜 도미타, 일렁이는 보랏빛 라벤더

여름 태양 아래, 소박하고 고즈넉한 시골 마을 후라노는 보랏빛 라벤더의 물결로 화사하게 변모한다. 일본에서 제일 느린 열차라는 노롯코 열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차창 밖으로 왈칵 보랏빛이 밀려든다. 후라노는 일본 최대 라벤더 산지로, 영화와 드라마의 무대로 등장해 유명해졌다. 라벤더는 6월 말부터 피기 시작해 7월 중순에 절정에 이르는데, 이 시기에 후라노를 찾으면 사방에서 은은한 라벤더 향이 풍겨온다. ‘팜 도미타’는 후라노에서 가장 큰 라벤더 농장으로, 정원 곳곳에 있는 카페와 숍에서 라벤더를 이용한 다양한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팜 도미타 근처 ‘플라워 랜드’는 부드러운 능선에 라벤더와 갖가지 색의 꽃이 가득 피어난다. 언덕을 타고 청량한 바람이 불어와, 멀리 다정한 마을 풍경과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싶은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요정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울창한 숲과 통나무로 지은 작은 삼각 지붕 집, 숲의 시간이 고요히 흐르는 찻집. ‘닝구르 테라스’는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울창한 나무 사이로 산책을 즐기기 좋다. ‘닝구르’는 홋카이도에 살고 있다는 전설 속의 작은 요정이다. 닝구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모티브로 만든 닝구르 테라스에는 예술가들이 작업을 하며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공방과 카페로 운영되는 통나무집들이 모여있다. 해가 지고 조명이 하나둘 불을 밝히면 숲은 동화 속 풍경이 된다. 

 


신선한 유제품과 채소,

통나무집에서 보내는 여름밤

바다와 너른 평야를 품고 있는 홋카이도는 해산물을 비롯해 각종 먹거리가 풍부하다. 특히 깨끗한 초원에서 생산된 우유와 치즈, 버터, 아이스크림 등의 유제품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곳곳에서 젖소와 얼굴이 검은 홋카이도 양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농장 안에는 유제품을 맛볼 수 있는 숍과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버터와 치즈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홋카이도의 여름은 어느 때보다 풍요롭다. 높은 일조량 덕분에 비옥한 평원에서 수확하는 작물과 채소, 과일은 깜짝 놀랍도록 맛있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시골 마을에 정착해 꿈꾸던 느리고 조용한 삶을 사는 이들이 연 소담한 카페와 식당에서 주변의 땅에서 난 신선하고 건강한 먹거리로 차려낸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옥수수, 포슬포슬한 감자, 사각사각한 채소, 뭉클 달콤한 즙이 쏟아지는 멜론. 여름 한 자락을 뚝 떼어먹은 맛이다. 

작은 마을에서는 통나무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좋다. 숙소 주인이 정성스레 차려낸 소박한 저녁을 먹고 삼각 지붕 아래 누워 창밖으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내일의 날씨를 짐작해보며 잠드는 밤. 언젠가 살아보고 싶은 삶을 잠시 살아볼 수 있다. 그런 작은 평온과 기쁨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닐까. 

 

작가 소개

최상희소설가. 때때로 여행하고 글을 쓴다. 동생과 함께 작은 출판사 ‘해변에서랄랄라’를 운영하며 여행의 기록을 책으로 만들고 있다. 《여름, 교토》, 《홋카이도 반할지도》, 《숲과 잠》, 《북유럽 반할지도》 등의 여행책과 《B의 세상》, 《마령의 세계》 등의 청소년소설을 썼다. 《그냥, 컬링》으로 비룡소 블루픽션상, 《델 문도》로 사계절문학상을, 단편 <그래도 될까>로 제3회 SF어워드 중단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