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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미술,
그 예측 불가한
상상의 세계

이탈리아 플로렌스 - Refik Anadol, Machine Hallucinations - Renaissance Dreams (2022) Palazzo Strozzi 안뜰을 위한 사이트 전용 설치

AI 데이터 조각, 비디오 루프, LED

 

 

글_ 변종필 미술평론가,

前 제주현대미술관장


미디어아트는 AI와 데이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동적이고 몰입적인 예술 경험을 제공하며, 전통 예술과 뚜렷이 차별화된다. 그중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인 레픽 아나돌은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초현실적이면서도 변화무쌍한 미디어아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동적인 힘이 큰 강점, 미디어아트

미디어아트란 무엇인가? 챗지피티(ChatGPT)에게 물었다. 0.5초도 안 걸리고, 바로 답글이 형성된다. “디지털 기술, 전자기술, 통신기술 등 다양한 매체(media)를 기반으로 한 예술 형태를 말합니다. 즉,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과 같은 물리적 매체가 아니라 빛, 소리, 영상, 센서, 컴퓨터 프로그램, 인터넷, 인공지능(AI) 등 ‘기술적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창조된 예술’을 통칭하는 개념입니다.”라고 응답한다. 그리고 연이어, “백남준처럼 비디오아트를 시작으로 발전해온 과정이나, 전통 예술과 비교하는 것도 가능합니다!”라는 친절함까지 더한다. 마치 어디에도 없는 비교 불가한 비서를 둔 느낌이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리면서, 현대미술의 표현 매체와 감상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데이터와 알고리즘만으로 미술사 거장들의 개성을 담은 이미지를 얻는 일이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쉽다. 예술가가 아니어도 정보만 정확히 입력하면, 원하는 이미지를 초고속으로 생성할 수 있다. 이제 현대미술에서 AI를 활용한 미디어아트는 기존의 순수미술에서는 경험할 수 없던 세계를 열었다. 

미디어아트가 순수미술과 다른 차별점은 동적(動的)인 부분이다. 회화나 조각은 동세를 표현할 수 있지만, 본질은 정적(靜的)이다. 반면, 미디어아트는 빛, 소리, 공간을 매개로 시간성을 지닌 동적 경험을 제공한다. 시각과 청각은 기본이고, 공감각적 체험, 관객참여형 인터랙티브, 영화처럼 몰입감을 유도하는 실감형 콘텐츠까지 모두가 미디어아트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아직까지 미디어아트가 미술 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힘은 다른 장르를 압도하는 추세이다.


예술이 존재하는 방식을 바꾸는 기술

최근, 부산시 전역 약 20개의 공・사립미술관, 대안공간, 화랑이 연대하여 디지털 미디어아트 전시회를 동시에 개최한 ‘2025 루프 랩 부산’은 현대미술에서 미디어아트가 차지하는 역량이 어느 정도 인지 실감케 한다.1) 부산의 여러 문화예술 기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전시를 통해 디지털 영상, 미디어 설치, 가상현실, 퍼포먼스, 인공지능 기반의 뉴미디어 아트 등 동시대 디지털・미디어아트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경험하는 순간 미디어아트의 세계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발전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기계 환각 — LNM_ 풍경 (Machine Hallucinations — LNM_ Landscape)

기계 환각 — LNM 식물 (Machine Hallucinations — LNM Flora)

 

이제 기술은 더는 예술의 ‘수단’이 아니다. 기술은 예술이 존재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 놓는 힘으로 작동한다. 실제 현대 예술가들 중 AI를 통해 상상 불허의 환상적 세계를 제공하는 작가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데이터와 기계 지능의 미학을 개척한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연출가인 레픽 아나돌(Refik Anadol, 튀르키예 이스탄불 출생, 1985~ )2)이 대표적이다. 그는 “데이터를 붓 삼아 보이지 않는 것을 알고리즘으로 가시화”하는 데이터 페인팅(data painting) 기법으로 새로운 미학을 추구한다.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일컫는 ‘기억과 감정’을 데이터화 하고 AI를 훈련 시켜 최고의 AI 모델을 창출해낸다. 아나돌 작품의 특징은 거대한 규모와 몰입감, 그리고 끊임없는 변화에 있다. 특정한 완결의 이미지보다 시간에 따라 계속 변화하며, 관람객이 볼 때마다 다른 패턴을 실시간 생성해낸다. 전 세계 미술관이나 공공장소에서 선보인 그의 작품은 건축 외벽이나 공간에 영상을 투사하여 건축미와 영상미가 어우러진 환상적인 공간 속으로 관람객이 몰입하게 만드는 초현실적 세계의 구현이 압권이다. 국내에서는 2019년 수십만 장의 서울 이미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재창조해낸 비주얼 프로젝션 작품 ‘서울 해몽’을 DDP 건축에 투사한 작품과 63빌딩 로비에서 선보인 ‘희로애락’으로 대중들을 놀라게 했다. 


레픽 아나돌 


1) 이 행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20년간 이어져 온 세계적 비디오·미디어 아트 페어 ‘루프(LOOP) 바르셀로나’를 모델로 한 것으로, 부산을 아시아 미디어아트의 허브로 자리매김 시키려는 야심찬 시도이다​.​ 부산시와 부산현대미술관, 그리고 세계 미디어 아트계가 협력하여 이루어진 이 행사는 “기술과 예술이 융합되는 미래를 탐구하는 국제 플랫폼”을 표방하며 출범했다. ​marieclairekorea.com

2) 아나돌의 장소특정적 데이터 회화와 조각, 실시간 오디오/비주얼 퍼포먼스, 몰입형 설치작품은 다양한 형식을 취하면서, 물리적 세계와의 관계, 공동의 경험, 공공미술, 탈중앙화 네트워크, 그리고 인공지능의 창작 가능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그의 작품은 MoMA(뉴욕 현대미술관), 퐁피두 센터-메츠, 아트 바젤,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해머 미술관, 아르켄 미술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이스탄불 모던, ZKM(예술과 미디어 센터) 등 세계적인 기관에서 전시되었고, 뉴미디어 아트 부문 로렌초 일 마냐피코 평생공로상,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 최고 비전상, 독일 디자인 어워드, UCLA 아트+건축 모스상, 컬럼비아대학교 스토리텔링 혁신상, 구글 아티스트 & 머신 인텔리전스 레지던시 어워드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refikanadolstudio.com

데이터 확보량에 따라 좌우되는 작품성 

최근 막을 내린 푸투라 서울 개관 초대전 〈지구의 메아리: 살아있는 기록보관소〉에서는 10미터에 이르는 높은 실내 구조를 고려한 각기 다른 작품으로 구성한 4개의 갤러리를 통해 또다시 상상을 뛰어넘는 세계를 연출했다. 그의 작품은 겉보기에는 유려하게 흐르는 추상회화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백만 장의 사진이나 소리 데이터를 기계가 반복 학습하며 생성한 결과물이다.​ 〈지구의 메아리: 살아있는 기록보관소〉는 방대한 자연의 데이터를 모으고, 그것을 정제하고, AI의 반복적 훈련을 통해 만들어낸 최상의 이미지들이다. 이러한 성과는 레픽 아나돌 스튜디오(Refik Anadol Studio)의 완벽한 팀워크가 바탕이 되지만 무엇보다 아마존 열대우림을 직접 체험하며 자연의 데이터를 채집한 레픽 아나돌의 실천적 행동과 집념의 결과이다.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수집한 5억 개의 동식물과 풍경 이미지, 그리고 50만 개의 새소리 등을 수집하고, AI와 함께한 시간만 8년이다. 사실상 레픽 아나돌의 미디어아트는 테이터의 확보량에 따라 작품성이 좌우된다. “What does it look like when machines dream of nature?”-“기계가 자연을 꿈꿀 때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을 하지만, 결국 AI가 생성해낸 초현실적 자연은 인간 정신의 확장으로 만들어진 세계이다. 매번 상상을 뛰어넘는 ‘생성 현실’을 창출하는 아나돌의 미래는 데이터 수집과 방향, 아이디어, 인공지능과 협업을 어디까지 확장 시킬 수 있느냐에 달렸다.


 

푸투라 서울 개관 초대전 〈지구의 메아리: 살아있는 기록보관소〉

 


아타튀르크 문화센터, 베요글루 문화축제(2022)

이스탄불 튀르키예



실시간 진화하는 AI와 미디어아트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데이터를 가진 자가 미래를 차지한다”고 했다. 그의 견해처럼 데이터 소유 경쟁은 구글과 페이스북, 바이두, 텐센트 같은 데이터 거인들에 의해서 일찍이 시작되었다. 무료정보와 서비스, 오락물을 제공해 우리의 주의를 끈 다음 그것을 광고주에 되팔아 엄청난 부를 창출해낸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모으는 것에 있다. 데이터의 축척을 기업이 아닌 레픽 아나돌 같은 미디어 아티스트가 소유하는 방식은 유발 하라리의 지적처럼 부의 창출이 목적인 대기업들의 소유보다는 한층 선한 활동으로 보인다.3)

현재 미디어아트 생태계에서 선구적 활동을 펼치는 아나돌의 실험과 도전이 실시간 진화하는 AI를 어디까지 이끌어갈지 그 세계가 기대된다. 



이즈미르, 튀르키예_ 튀르키예 루트 축제 2024


3) 유발 하라리 저, 전병근 옮김,『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김영사, 2018. pp.123-134 참조요함

작가 소개

변종필현재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학술위원으로 비평 활동과 강의, 기고를 활발히 하고 있다. 제주현대미술관장,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장을 역임했으며, 앤씨(ANCI)연구소 부소장, 한국박물관협회 책임연구원 및 위촉위원,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미술 관련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아왔다. 저서로는 『아트 비하인드』, 『장욱진 단순함의 아름다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