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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쉬운
‘재즈’ 이야기

보통의 감상자들에게 조금 알 듯 말 듯한 거리감을 가지고 있음에도, 재즈는 문학 작품이나 영화, 광고 등에 끊임없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재즈라는 음악이 이 시대의 주인공이 되기는 쉽지 않다고 해도, 다른 매체와 맞물려서 어떤 분위기를 끌어내는 데에는 기가 막히게 효과적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니 영화 음악에 사용된 재즈를 통해 이 음악에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알고 보니 가까이에 있었던 재즈. 그 매력을 소개합니다.

 

재즈계의 또 다른 스탠다드  

재즈. 흑백 영화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가 있을 것이고, 저와 비슷한 세대라면 [중경삼림]에서의 나 [접속]의 ,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등을 대번에 떠올릴 것입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는 이 여러 장면에서 변주되어 사용되었습니다. 평생 재즈를 연주하며 살아온 제 입장에서는 ‘또 이 노래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그만큼 곡이 가진 생명력이 크다는 뜻도 됩니다. 이미 [월-E(Wall-E)], [브리짓 존스의 일기(Bridget Jones’s Diary)], [로보캅(Robocop)], [에반게리온(Evangelion)] 등 수많은 영화의 배경으로 깔렸던 곡입니다. 누구나 한두 번쯤 들었을 법한 으로 재즈 감상의 첫걸음을 떼 보겠습니다.

은 1954년에 바트 하워드(Bart Howard)가 작곡한 곡입니다. 우리가 재즈 스탠다드라고 부르는 곡 대부분이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걸친 미국의 팝 음악이나 뮤지컬 곡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곡은 한참 뒤에 만들어진 곡이지만,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당시 “Fly me to the moon, let me play among the stars”라는 가사가 맞아떨어지면서 더욱 사랑 받았습니다. 이후에 수많은 이들이 각자 자신의 버전으로 부르게 되며 또 하나의 재즈 스탠다드로 자리 잡게 됩니다.


깊게, 새롭게, 재미있게  

이런 정보들은 곡을 감상하는 데에 조금 도움을 줍니다. 여러분도 이 곡을 잘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클 거라 가정하고 글을 이어가겠습니다. 일단 수많은 중에서 가장 유명한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버전을 같이 듣기로 하죠. 



 

곡은 가벼운 드럼의 인트로로 시작합니다. 드러머가 브러쉬로 타 탄타 타 탄타, 하면서 스윙 리듬의 뼈대를 연주하고 이내 프랭크 시나트라의 목소리와 함께 더블베이스 소리가 등장합니다. 가볍게 공간을 채우는 플루트 소리도 들리고요. 낮은 볼륨으로 희미하게 들리긴 하지만, 기타가 코드를 일정하게 연주하며 채워가고 있습니다. 노래의 절반이 지나고 나면 관악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목소리를 받쳐줍니다. 여러 대의 색소폰과 트럼펫 소리가 들립니다. 트럼펫은 뮤트를 끼워 음량은 줄어든 상태로 특유의 코맹맹이 같은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한 절의 노래가 얼추 끝나갈 무렵, 드럼은 훨씬 더 적극적으로 연주하며 감정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노래의 절반만큼 연주곡으로 채워지는데, 저절로 몸을 흔들게 되는 기분 좋은 리듬의 연속입니다. 그러고는 뒷부분 절반만큼 프랭크 시나트라가 다시 노래하는데, 간결한 엔딩과 함께 곡은 2분 30초 정도에서 마칩니다. 

여기서 잠깐, 음악 감상이란 여러 층위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어떤 곡이 내 마음에 다가오는 단계가 있겠지요. 그러면 그 곡을 찾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으며 그저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게 감상자 내면에 변화를 일으킨 건 무엇일까요? 이제 우리는 각자 마음에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킨 그 무엇을 찾아보려 합니다. 저는 이것을 ‘귀로 관찰하는 것’이라고 표현해 왔습니다. 




귀로 관찰하며 듣기

한 곡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훈련된 귀를 가진 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한 번의 청취를 통해 들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한 번에 한두 가지에 집중해서 듣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이번에는 드럼 소리만 들어보자, 다음번에는 관악기 소리만 들어보자, 하는 식으로 말이죠. 이런 관찰적인 청취가 가능해지기까지는 자기 자신에게 충분히 시간을 허락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아직 재즈 리스너이던 시절(한 삼십 년 전입니다), 어떤 책에서 ‘재즈를 잘 이해하고 싶다면 백 곡을 한 번씩 듣는 것보다 한 곡을 백 번 듣는 것이 낫다’는 얘기를 듣고는 알아듣건 못 알아듣건 한 곡을 끝없이 반복해서 듣기를 계속해 왔습니다.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곡을 만나면 온 마음으로 감동하며 듣고 또 듣습니다. 그러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지적인 호기심이 발동됩니다. 도대체 나는 이 곡의 어떤 면이 그렇게 마음에 와닿는 걸까? 하면서 말이죠. 그럴 때 비로소 ‘귀로 관찰하는’ 듣기가 시작됩니다. 그 과정은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나의 내면을 관찰하는 행위가 됩니다.


이쯤 하면 이 곡의 다른 버전도 궁금해져서 [오징어 게임]에 수록된 을 다시금 들어보게 됩니다. 아름다운 현악기가 깔린 편곡은 한결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노래 한 절을 마치는 부분에 이르러 관악기 중심의 강렬한 소리로 전환하면서 리듬 섹션도 에너지를 높여 연주합니다. 그 밖에도 1960년대의 줄리 런던(Julie London)의 경쾌한 버전이나 낸시 윌슨(Nancy Wilson)의 명확한 목소리를 찾아 들을 수 있습니다. 각각 다른 템포와 편곡으로 제법 다양한 분위기를 끌어냅니다. 조금 더 현대로 와서 노래와 피아노 연주를 훌륭하게 해내는 다이애나 크롤(Diana Krall)의 버전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한 곡을 여러 번 반복해 들으면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여러 버전을 비교해서 들으며 달라지는 다양함을 들어내는 것 역시 재즈 감상의 묘미라고 할 수 있겠지요. 




조금만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면 생각보다 우리곁에 가까이에 있어온 재즈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유명한 재즈 트럼펫 연주자인 윈튼 마살리스(Wynton Marsalis)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엔터테인먼트는 여러분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만, 예술은 여러분이 다가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예술에 한 걸음 다가서면 예술은 놀라운 가치를 드러내 줄 것입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저도 여러분이 재즈에 한 걸음 정도 가까이 다가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작가 소개

최은창한재즈 베이시스트. 미국 노스텍사스대학교에서 재즈를 전공하며 본격적인 연주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수 김윤아의 사이드맨으로 십여 년째 함께하고 있으며, 김덕수, 성시경, 이루마 등 다양한 아티스트의 공연이나 음반 작업에도 세션으로 참여한 바 있다. 2009년 재즈 펑크 밴드 JSFA를 결성하여 두 장의 정규 음반 및 싱글 음원을 프로듀스했으며, 국내외의 많은 재즈페스티벌에서 연주했다.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문화예술경영대학원 실용음악학과 부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과 즐겁게 재즈를 공부하고 있다. 최근 도서 『재즈가 나에게 말하는 것들』을 출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