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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지구를
환하게 밝힌다

시인  나태주


따뜻한 햇살 아래, 풀과 나무에 물이 올라 청순한 기운이 가득한 날, 공주 풀꽃문학관에서 나태주 시인을 만났다. 인터뷰에서 시인은 자신의 삶과 시 창작의 의미, 후배 시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개인적인 꿈에 대해 솔직하고 진솔한 마음을 들려주었다.





“자세히 보아야 / 예쁘다 // 오래 보아야 /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 <풀꽃> 중에서

아늑한 방 안에서 시인이 직접 우려낸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주하고 있으니 절로 마음이 차분해졌다. 풀꽃문학관 옆에서는 한창 새로운 건물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시인은 현재 거주하는 공간을 손님 접대와 개인적 만남의 장소로 활용하며, 새롭게 짓고 있는 문학관은 공적인 행사와 강연, 음악회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곳은 나태주 개인의 기념관이 아니라 시민과 문학 애호가들이 쉼을 얻고 생각하고 생산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릴 적부터 시를 써온 그는 “초등학교 선생, 시골 생활, 자동차 없이 산 삶, 이 모든 것이 내 삶을 완성해주었다. 밥이 안 되는 시를 계속 썼는데, 인생 후반부에 그것이 결국 나에게 밥(선물)이 되었다”며 자신의 인생을 압축해 설명했다. 그의 대표 시 ‘풀꽃’만큼이나 간결한 설명에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었다. 이래서 시인은 짧은 시 한 편에 우주 전체를 담아낼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듯했다.


“하늘 아래 내가 받은 /

가장 커다란 선물은 /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 당신입니다”

- <선물> 중에서

시를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짧지만 공감과 울림을 주는 임팩트’라고 말했다. 그는 시를 쓰는 순간뿐 아니라, 평소 무엇이 중요한지를 깊이 고민하며 사는 삶의 태도가 시를 만들어낸다고 덧붙였다. “시는 ‘만든다’, ‘짓는다’, ‘쓴다’, ‘낳는다’ 중 ‘낳는다’에 해당됩니다. 시인이 주도권을 쥐는 것이 아니라, 시가 스스로 다 익어 밖으로 나와야 하죠. 나는 그저 그것을 품고 기다리는 매개체일 뿐입니다.”

그는 <선물>이라는 시를 예로 들었다. 하늘 아래 받은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일까 자문했을 때 ‘오늘’이라는 답이 나왔다. 그리고 오늘 받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무엇일까 생각하니, 바로 옆에 있는 당신, 나와 함께 걷는 이웃이자 동료라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이렇게 삶 속에서 끊임없이 생각을 이어가는 가운데 <선물>이라는 시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야기. 그러자 시는 ‘낳아지는 것’이며, 시인은 시를 낳게 하는 매개체라는 그의 설명이 더욱 생생히 다가왔다.


“함께 가자 / 먼 길 // 너와 함께라면 / 멀어도 가깝고 // 

아름답지 않아도 / 아름다운 길 // 나도 그 길 위에서 / 나무가 되고 //

너를 위해 착한 / 바람이 되고 싶다”

- <먼 길> 전문

그는 자신의 시가 단순한 감동을 넘어 ‘사람을 살리는 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아로 자라 형편이 어려웠고, 중학교 2학년 때 왕따까지 당해 자살을 시도했던 광주의 한 학생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학생은 선생님의 따뜻한 돌봄 덕분에 건강을 회복한 뒤 우연히 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접했고, 어려운 단어 없이도 깊은 울림을 주는 시에 감명을 받아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공부를 잘하진 못해도 시 쓰기에 몰두했고, 교실에 자신의 시를 붙이고 친구들과 감상을 나누면서 교우 관계가 점점 좋아졌다. 마침내 3권의 시집을 출간하며 삶의 의지와 자신감을 되찾았고, 현재는 반려동물학과에 진학해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하찮은 일상이야말로 지구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위대한 일이며, 

사랑은 그 지구를 더욱 환하게 밝히는 것입니다.” 


시의 강력한 힘을 믿는 나태주 시인은 후배들에게도 “자기 감정만 해소하는 시가 아니라 독자를 생각하고 이 시대 사람들이 가진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응원하고 축복하는 시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정한 시인이라면 시집이 안 팔린다고 불평하기 전에, 사람을 살리는 그런 시를 써봤는지 자신을 한번 되돌아봐야 합니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시> 전문



그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세상, 자연,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지속적으로 감흥을 받는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이라는 노래에서 큰 감동을 받으며, 젊은이들과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부산 하면 그는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며 첫 수학여행지로 방문했던 부산, 영도대교와 광안대교의 아름다운 풍경, 부산에서의 강연과 걷기 경험이 모두 자신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고 회상했다.

“특히 부산진구 당감2동에는 저의 시 <풀꽃>이 적힌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습니다. 당감2동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건립됐다고 해서 더욱 뜻깊은데요. 시비가 세워질 당시에는 건강이 매우 악화되어 그것을 보지 못했지만, 나중에 가서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그는 이야기를 이어가며 잠시 웃음을 머금었다. 앞으로 남은 꿈에 대해 그는 “세계 청소년들이 한글을 배워 내 시를 번역본이 아닌 원문으로 읽어주는 것”을 꼽았다. 이런 꿈이 지금은 멀고 어이없게 들릴지 몰라도 언젠가는 이뤄지리라 믿고 있다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자신의 대표작 <멀리서 빈다>, <시> 등을 직접 낭송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그는 “우리의 하찮은 일상이야말로 지구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위대한 일이며, 사랑은 그 지구를 더욱 환하게 밝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순간, 방 안의 공기마저 한층 따뜻해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