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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행복을
못 느끼는가?

글 _ 강용수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원, 

도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저자

 

우리는 항상 행복을 생각하지만,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 정의하기는 어렵다. 저마다의 행복이 다르니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행복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 싶다면 쇼펜하우어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쇼펜하우어 열풍

1815년 청년기의 쇼펜하우어(자료 : 위키피디아)


필자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판매량 46만 부를 돌파한 후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있지만 왜 그렇게 인기가 있었는지 아직 잘 모르고 있다. 독자를 만나면 인기의 비결을 물어본다. 철학책 하면 고리타분하고 난해하며 마치 뜬구름 잡는 듯한 느낌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의 차별성은 가독성이 좋아 술술 한 번에 읽히며 공감되는 내용이 많다고 한다. 가수 장원영이 유튜브 방송에서 언급해서 화제가 되었듯이 이 책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사실 많은 책이 행복에 대해 얘기를 했다면 쇼펜하우어는 출발점이 인간의 고통에 대한 자각이다. 하면 된다는 식의 희망 고문이 아니라 왜 인간의 삶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뼈를 때리는 통찰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의 사유를 통해 견디기 힘든 자신의 삶의 무게를 잠시나마 덜 수 있었다.    

왜 인간은 고통에 시달리는 것일까? 다시 말해 인간은 왜 행복하지 못한가?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고통에 대해서는 잘 인지하지만 진짜 행복은 모르고 지나는 일이 많다. 우리는 나름 만족하고 살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숨을 쉬고 있지만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호흡이 끊기면 죽는다는 것을 알지만 순간순간 생존에 필요한 숨을 쉬는 일에 감사하지 않는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 주위에는 나를 지지하는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이 있지만 그들의 소중함을 모른다. 그러나 다툼으로 사이가 틀어져서 헤어지면 그들이 나에게 얼마나 귀한 존재였는지 뒤늦게 깨닫는다. 무엇보다 장례식장에서 우정과 사랑, 희생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행복의 기준을 너무 크게 높게 잡아

미래에 대박을 꿈꾸는 한 우리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

과거의 고통에 얽매이거나 미래의 희망에

모든 것을 걸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쾌락은 소극적이고 고통은 적극적이다

쇼펜하우어는 ‘쾌락은 소극적이고 고통은 적극적’이라고 말한다. 1개의 고통이 100개의 쾌락과도 맞먹는다는 것이다. 멀쩡한 치아는 아무런 느낌이 없지만 충치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준다. 이렇게 건강은 아무런 느낌이 없다. 1개의 충치의 고통은 나머지 건강한 치아보다 더 강하게 지각된다. 치아는 충치의 고통이 없다면 마치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우리의 인생도 돌아보면 마찬가지로 웃는 날보다 슬펐던 일들이 더 많게 느껴진다. 따져보면 기분 좋았던 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좋은 성적을 받아서 가족과 함께 기뻐했던 일, 직장에 취업해서 축하받은 일, 첫 월급으로 파티를 벌였던 일 등이 있다. 그러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직장인이 된 기쁨의 순간은 잠시일 뿐 힘든 일들을 하다 보면 사표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만남도 사랑과 믿음으로 시작되다가 끝에는 갈등으로 끝나는 일이 많다. 100번 잘하더라도 1번의 실수로 인간의 믿음이 파탄 나는 일이 있다. 100번의 칭찬보다 1번의 말실수로 인간관계가 깨지는 일이 빈번하다. 우리가 인생무상이라고 한탄하는 것은 좋은 것은 잊고 고통스러운 것만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인지적 오류 때문이다. 기쁨이 고통보다 더 깊이 각인되기 때문에 인생이 슬프다고 잘못 판단하지만, 사실 소소한 행복들이 삶의 순간순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행복의 90%는 건강이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는 말이 있듯이,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건강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쇼펜하우어는 병든 왕보다 건강한 거지가 더 낫다고 말한다. 돈이 많지만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재벌보다 궁핍하지만 건강한 거지가 훨씬 낫다는 것이다. 불치병은 비싼 돈을 치르더라도 고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돈 많은 재벌로 한 달만 시한부 인생으로 살다가 죽고 싶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막상 생명에 위협을 느끼면 그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쇼펜하우어는 행복을 늘리기보다 불행을 피하라고 말한다. 쾌락을 추구하지 말고 고통을 피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쇼펜하우어는 쾌락을 늘리려는 적극적 행복이 아니라 고통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진 소극적 행복을 주장한다.


작은 행복이 주는 기쁨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행복은 큰 것에 있지 않고 작고 소소한 것에 있다는 뜻이다. 가령 친구들과 함께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일상에서 행복감을 느끼자는 것이다. 진짜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 행복은 먼 미래에서 기대하는 성공과 명예, 부가 아니라 순간순간 스쳐 지나가는 현재에서 느끼는 작은 것이다.

돈이 많은 부자가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은 돈을 버느라 노동에 힘들지만, 막상 부자들은 따분함과 무료함에 시달린다고 한다. 이곳저곳에 골프를 치러 놀러 다니고 맛집을 찾아다니지만 같은 일을 반복하면 지겹기 마련이다. 그러한 따분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류층의 탈선이 일어나고 있다. 돈이 없다면 가난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지만, 어느 정도 충족되면 그 한계를 넘어서는 부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진다. 가령 막상 300억 원 이상의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밤에 불안해서 잠을 잘 수 없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보고 접근하기 때문에 경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진정한 인간관계를 기대할 수 없다. 부자라고 늘 만족한 상태는 아니다. 따라서 부자들의 얼굴에 짜증이나 근심이 있는 경우가 많고 가난하지만 얼굴에 웃음을 띠는 경우가 있다고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진정한 부자는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적은 월급을 받아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가족과 함께 치킨을 먹으면서 웃고 즐기는 것이 바로 ‘소확행’이다. 작은 커피 한잔으로도 행복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마신 커피는 식도를 타고 위를 거쳐 대장으로 소화를 거치게 된다. 이때 아무런 느낌도 없고, 어떤 불편함과 고통을 느낄 수 없다면 일단 나는 건강하다. 커피 한잔이면 간단한 건강 검진을 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무엇보다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꼽고 있다. 따라서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너무 오랫동안 앉아 있지 말고 꾸준히 활동성을 높이도록 해야 된다. 그러나 몸을 지나치게 혹사해선 안 된다. 가령 출세와 명성을 위해 건강을 잃거나 목숨을 갖다 바쳐서는 안 된다. 몸이든 정신이든 지나치게 사용하면 나중에 망가지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살아있다면 이미 행복하다

우리는 이미 행복하다. 잊고 지내 모를 뿐이다. 행복의 기준을 너무 크게 높게 잡아 미래에 대박을 꿈꾸는 한 우리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 과거의 고통에 얽매이거나 미래의 희망에 모든 것을 걸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지금 신체적인 고통이나 경제적인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90%의 행복은 이미 달성했고 나머지 10%는 각자의 개성에 따라 채워 넣으면 된다. 행복은 명성과 부, 권력처럼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이미 있다. 더 이상 외부에서 구할 필요 없이 몸과 마음의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살아 숨 쉬는 이 순간순간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 젊을 때는 하루의 소중함을 모르지만, 나이가 들어 늙게 되면 살아있다는 것 자체를 고맙게 여기게 된다.


작가 소개

강용수 _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동 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에서 서양 철학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받고,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4년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으로 행복과 욕망의 관계로 진정한 행복에 다다르는 방법을 소개했다. 2015년 쇼펜하우어의 철학 상담과 니체의 철학 상담을 〈실존주의 철학과 철학상담〉으로 소개했다. 2019년 〈니체의 정의론에 대한 연구〉로 대한철학회가 수여하는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