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단순히 공간을 설계하고 집을 짓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고, 그 속에서 행복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도록 돕는 과정이다. EBS 방송 <건축탐구 집>에 출연 중인 임형남, 노은주 건축가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집의 본질과 건축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건축을 통해 행복한 이야기를 전하다
“방송을 통해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우연히 시작된 일이죠. 우리가 책을 쓰게 된 계기도 그랬습니다.”
임형남, 노은주 건축가 부부는 자신들의 건축 여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집을 설계하고 짓는 과정은 보통 1년 정도 걸린다. 설계 6개월, 시공 6개월. 그렇게 정성을 들여 집을 완성하면 건축주는 새로운 보금자리로 입주하고, 건축가는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현장을 떠난다. 임형남 건축가는 그 순간을 ‘아이를 키워서 결혼시키고 나면, 잘 살기를 바라며 뒷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에 비유했다.
그렇게 떠난 현장에 남겨진 스케치와 사진들이 쌓이면서, 부부는 자연스럽게 책을 내게 됐다. 첫 책이 좋은 반응을 얻자, 책을 쓰는 과정이 집을 짓는 것만큼 흥미롭다는 걸 깨닫고 이후로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이를 계기로 강연뿐 아니라 2019년부터 EBS <건축탐구 집> 출연까지 이어지며, 그들의 이야기는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졌다.
“건축도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렇게 집과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나누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집에도 취향이 필요하다
임형남, 노은주 건축가는 한국 사회가 경제적 가치에만 집중한 결과, 집을 ‘사는 곳’이 아니라 ‘투자 대상’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지적한다.
“먹는 것, 입는 것에는 모두 자기만의 취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국수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밥을 좋아하듯이.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에 대해서는 취향을 논하는 일이 드물어요. 오로지 가격과 크기만 따지는 경우가 많죠.”
그들은 이제 우리 사회도 선진국 수준으로 성장한 만큼, 집에 개인의 기호와 취향을 반영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집의 따뜻함과 차가움, 공간이 주는 감정과 분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건축가는 “좋은 집은 가족 간의 대화를 풍성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벽지 색깔, 바닥재 선택, 냉장고 크기 등 사소한 결정 하나하나가 대화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행복한 추억이 쌓인다.
“그래서 책 <이야기로 집을 짓다>를 쓴 것입니다. 집을 중심으로 행복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그런 집을 짓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그들에게 건축은 무언가 거창한 가치를 전파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가족과 함께 오랜 시간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대화의 시작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 중심에 바로 ‘집’이 있다.
한국적인 건축의 지혜
현대 건축에 한국적인 요소를 어떻게 조화롭게 적용할 수 있을지 묻자, 임형남 소장은 한국의 독특한 기후와 지형을 기반으로 발전해 온 한옥의 지혜를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연교차가 50~60도에 달할 정도로 크고, 국토의 70%가 산지입니다. 이런 환경에 최적화된 집이 바로 한옥이에요. 한옥은 통풍을 위해 집을 얇게 짓고, 맞바람이 잘 통하게 창을 양쪽에 냈습니다. 또 마당과 뒷곁의 온도 차를 이용해 공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도했죠. 하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이러한 한옥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는 전통 건축에서 장점을 취하고, 불편한 부분은 개선하는 방식으로 한국의 환경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요즘 아파트는 모든 공간이 거실 중심으로 모여 있어 가족 간의 갈등이 생기기 쉽습니다. 반면, 전통 한옥은 안채와 사랑채가 마루와 마당을 매개로 나뉘어 있어 공간적 완충 역할을 했죠. 이런 지혜를 현대 건축에 반영하면 가족 간의 불편함과 충돌을 줄일 수 있습니다.”
“집은 본래 돌아가는 곳입니다.
밖이 춥고 힘들 때, 따뜻하게 나를 품어주는 곳.
그런데 지금은 집이 스트레스의 상징이 되어버렸어요.
이제는 집의 본연의 가치를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건축이 삶을 바꾸는 순간
노은주 건축가는 건축이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공동체 주택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몇 년 전, 8가구가 함께 살 집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각 가구는 구성원과 생활 방식이 달랐지만, 적당한 규모의 집을 지어 공동체를 이루고자 했어요. 지하에는 큰 공동 주방과 세탁기 4대를 갖춘 공동 세탁실을 만들고, 각자의 공간은 필요에 따라 설계했죠.”
이 공동체 주택은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에 가까운 환경을 제공하면서도, 사생활과 이웃과의 관계를 동시에 존중하는 새로운 주거 형태였다. 이웃과 지나치게 얽히지 않으면서도 필요할 때는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적 유연성을 지닌 집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건축과 삶이 서로를 변화시키는 좋은 사례였습니다. 공동체 주택이라는 새로운 방식이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열어줬고, 우리 역시 건축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나만의 집을 찾는 방법
이상적인 주거 공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임형남, 노은주 건축가는 다음과 같은 조언을 전했다.
“집도 자기 삶과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기준이나 일반화된 데이터에 의존하기보다는, 나 자신과 가족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해요. 나에게 필요한 것, 나를 편안하게 하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하죠.”
그들은 특히 유행에 휩쓸리지 말 것을 강조했다. 인테리어나 주거 스타일도 옷처럼 유행을 타지만, 집은 쉽게 바꿀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공간을 선택할 때는 내가 정말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내 기준의 편안함’에 집중하면 오히려 더 쉽게 답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임형남, 노은주 건축가의 이야기는 집을 단순한 생활공간을 넘어, 행복한 이야기가 쌓이는 곳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들은 집을 통해 더 나은 삶을 꿈꾸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축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