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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 따라,
와인 향을 따라,
봄의 품으로

봄은 여행자의 마음을 흔드는 계절이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사라지고, 따스한 햇살과 꽃향기가 길 위에 머물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떠날 준비를 한다. 스위스의 레만호를 따라 펼쳐진 포도밭, 포르투갈 알렌테주의 황금빛 평야, 그리고 전남 구례 섬진강변의 벚꽃길. 이 세 곳은 각기 다른 매력으로 봄의 풍요로움을 노래한다.




스위스 몽트뢰와 라보: 와인과 호수가 빚어낸 봄의 선율

봄이 스위스를 감싸는 순간, 레만 호수와 그 주변의 몽트뢰(Montreux), 라보(Lavaux)는 하나의 거대한 정원처럼 변한다. 라보의 계단식 포도밭은 싱그러운 녹음과 함께 레만 호수의 푸른 물결과 어우러져 눈부신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 포도밭을 걷는 하이킹 코스가 유명한 관광 명소다. 세브레(Chexbres)에서 리바즈(Rivaz)까지 이어지는 40분 정도의 내리막길과, 에페스(Epesses)에서 뀨이(Cully) 호숫가로 이어지는 30분 정도의 평지 코스가 대표적이다. 포도밭 사이를 거닐며, 호수와 알프스의 절경을 눈과 마음에 담는다. 햇살이 포도나무 잎사귀 사이로 반짝이며 길을 비추고, 발걸음마다 흙 내음과 싱그러운 초록빛이 마음을 물들인다. 호수는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고, 저 멀리 알프스의 설산은 하늘과 맞닿아 신비로운 풍경을 완성한다.

와이너리에서의 시간은 봄날의 정점을 만끽하게 해준다. 현지 와인을 시음하며, 햇빛에 반짝이는 포도밭과 호수를 바라보는 순간, 시간은 느릿하게 흐른다. 라보 익스프레스(Lavaux Express)를 타고 포도밭과 마을을 둘러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꼬마 열차의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마치 그림책의 한 장면처럼 마음을 사로잡는다. 레만 호숫가의 몽트뢰는 한층 더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호숫가를 따라 이어진 산책로를 걸으며, 고요한 봄날을 만끽하거나, 한적한 카페에 앉아 지역 와인을 한 모금 머금으면, 그 순간 봄은 온전히 여행자의 것이 된다.




포르투갈 알렌테주: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와인 평야

포르투갈의 알렌테주(Alentejo)는 수평선까지 이어지는 평야와 고즈넉한 마을이 어우러진 곳이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느리게 흐른다. 봄의 태양은 따스하고, 포도밭은 초록빛으로 반짝이며, 와이너리에서는 신선한 와인의 향이 공기를 채운다.

알렌테주의 와이너리는 단순히 와인을 만드는 곳을 넘어, 봄의 삶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퀸타(Quinta)와 헤르다데(Herdade)에서는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 과정을 지켜보며, 다양한 와인을 맛보는 특별한 순간을 만날 수 있다. 일부 와이너리는 숙박 시설도 제공해, 포도밭 한가운데서 하룻밤을 보내는 경험을 선사한다.


에보라(Evora)는 알렌테주의 심장과도 같은 도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중세의 흔적과 로마 유적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고풍스러운 골목을 거닐다 보면, 하얀 벽과 주황빛 기와가 어우러진 집들이 마치 그림처럼 다가온다. 좁은 골목마다 봄꽃이 피어나 있고, 길가의 작은 와인 바에서는 현지인들이 한가로이 와인 한 잔과 함께 오후의 여유를 즐긴다. 그곳에 앉아 와인을 음미하는 순간, 시간은 멈추고, 봄날의 따스함만이 조용히 흐른다.

리스본의 카사 두 알렌테주(Casa do Alentejo)는 알렌테주 문화의 축소판과도 같다. 전통 요리와 와인을 즐기며, 아름다운 인테리어 속에서 봄의 여유를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천장의 화려한 타일과 고풍스러운 가구는 여행자에게 또 다른 시공간으로의 여정을 선사한다.




전남 구례: 섬진강을 따라 흐르는 벚꽃의 시

우리나라의 봄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전남 구례의 섬진강 벚꽃길이 제격이다. 섬진강을 따라 3km가량 이어진 이 길은 봄마다 하얀 꽃구름으로 뒤덮인다. 벚꽃 터널을 걷는 동안, 시간은 멈춘 듯 고요하고, 바람결에 흩날리는 꽃잎은 마음까지 설레게 한다.




벚꽃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발밑에는 꽃잎이 부드러운 융단처럼 깔리고, 머리 위로는 벚꽃이 하늘을 가려 그늘을 만든다. 햇살이 꽃잎 사이로 스며들 때, 길 전체가 은은한 분홍빛으로 물든다. 강물은 잔잔하게 흐르며, 그 위로 떨어진 꽃잎들은 작은 배가 되어 강을 따라 여행을 떠나는 듯하다.

벚꽃길을 따라 걷다 보면 화엄사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고즈넉한 사찰과 벚꽃이 어우러진 풍경은 마치 고요한 시 한 편을 떠올리게 한다. 사찰의 돌계단 위에도 꽃잎이 소복이 내려앉아, 봄의 정취를 더욱 깊게 느끼게 한다. 조금 더 발걸음을 옮기면 사성암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과 구례의 풍경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을 전해준다.

4월이면 섬진강변은 축제의 장으로 변한다. 벚꽃노래자랑과 지역 예술 공연, 농특산물 판매가 어우러져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시장에서는 구례의 봄을 담은 신선한 산나물을 만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