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_ 김준철 現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前 한국와인협회 회장
와인이 건강에 좋다는 인식은 와인의 색깔이 피를 연상시킨다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옛사람들은 와인을 마시면 피가 좋아진다고 믿었다. 게다가 포도를 으깨어 두면 부글부글 거품을 내며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부활’을 떠올렸다. 또한, 불을 대지 않아도 열이 발생하는 현상을 보고 물과 불의 결합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이런 이유로 와인은 ‘피’, ‘생명’, ‘부활’ 같은 이미지와 연결되며 건강에 좋은 술로 인식되었다.
적당량의 알코올은 건강에 좋다?
요즘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적당량의 알코올은 건강에 좋다”거나 “레드와인은 심장병에 좋다”는 기사가 종종 나온다. 이런 영향으로 국내에서도 레드와인의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술, 특히 와인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여러 연구기관에서 과학적으로 증명된 이론이다. 최근 들어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언론에서 이를 다루기 시작했을 뿐이다. 하지만 뜻있는 의사들은 알코올의 부작용을 우려하며, 와인의 효과를 알리는 데 소극적이다. 왜 와인은 건강에 좋은가? 왜 다른 술보다 더 긍정적인 효과를 낼까? 와인의 어떤 성분이 건강에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도움을 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이제는 강력한 금주주의자들도 와인의 건강 효과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반박하지 않는다.
와인의 항산화 작용
와인은 우리 몸의 산화를 막는 ‘항산화 작용’과 기분을 좋게 만드는 ‘항우울 작용’을 통해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한다. 육체적 건강에 대한 효과는 와인을 많이 마시는 프랑스 사람들이 심장병 사망률이 낮다는 이른바 ‘프렌치 패러독스’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는 와인 속 페놀 화합물이 관상동맥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을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페놀 화합물은 산화방지 능력이 비타민 E, 비타민 C, 카로틴 등과 비교해 약 2배 이상의 항산화 효과를 가진다. 이 성분은 관상동맥 및 뇌동맥경화증을 줄이고 혈소판 응집에 따른 혈전을 감소시키며, 각종 퇴행성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 따라서 와인을 마시면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은 혈액이 운반하는 산소와 영양소를 충분히 공급받아 제 기능을 활발히 수행할 수 있고, 항산화 작용으로 퇴행성 질환까지 예방할 수 있다. 이런 점이 와인의 가장 큰 건강 효과라고 할 수 있다.
페놀 화합물: 와인의 핵심 성분
페놀 화합물은 와인의 색과 떫은맛을 만들어내는 성분으로, 포도의 껍질과 씨에 많이 들어 있다. 또한 오크통에서 숙성할 때 오크통에서 추출되기도 한다. 레드와인은 껍질과 씨를 함께 발효시키고 오크통에서 숙성하기 때문에 페놀 화합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반면, 화이트와인은 껍질과 씨를 제거한 청포도를 발효하기 때문에 페놀 화합물 함량이 적고, 맛이 부드럽고 상쾌하다. 레드와인이 화이트와인보다 오랜 기간 보관 가능한 이유도 바로 이 페놀 화합물 때문이다. 이런 성분이 많이 함유된 대표적인 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이며, 최근에는 ‘말벡(Malbec)’과 ‘타낫(Tanat)’ 품종에도 페놀 화합물이 더 풍부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페놀 화합물은 와인뿐 아니라 색이 짙고 쓴맛과 떫은맛을 가진 과일, 채소, 녹차 등에도 들어 있다. 하지만 와인은 알코올과 항산화제를 모두 포함하고 있어 그 효과가 더 크다. 알코올은 간에서 분해되면서 NADH라는 물질을 생성해 항산화제의 기능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이 덕분에 와인은 항산화 작용을 반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와인이 주는 다양한 혜택
와인은 항산화 작용으로 심장질환을 예방하고, 진정과 항우울 효과, 소화기 보호, 식욕 촉진, 파킨슨병이나 치매 예방 등 다양한 작용을 한다. 철분과 같은 무기질 흡수를 돕고 체내에서 알칼리성 식품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건강 유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식사와 함께 마시면 혈중알코올농도가 급격히 상승하지 않아 기분을 쾌활하게 하고, 지방이 혈류에서 순환하며 혈액 응고를 방해한다.
그러나 와인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어떤 식품이 몸에 좋다거나 나쁘다는 것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건강은 음식만으로 유지되지 않으며, 적절한 운동과 평온한 마음가짐이 함께해야 한다. 와인이 아무리 건강에 좋다고 해도 운동과 긍정적인 생활 태도가 없다면 효과는 반감된다. 와인의 효능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지만, 이를 핑계로 과도하게 마신다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와인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을 기억하되, 적당히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위해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디모데전서 5:23)
작가 소개
김준철 _ 프랑스 CAFA에서 정규 소믈리에 과정을 수료하였으며, 국내 최초 본격 와인인 ‘마주앙’의 개발 주역으로서 두산 마주앙 공장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는 우리나라 와인 교육의 선두주자로서, 와인은 물론이며 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재치 넘치는 말솜씨로 풀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저서로는 <와인, 알고 마시면 두배로 즐겁다>, <와인 인사이클로피디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