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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수록 깊어지는,
보이지 않는
향기의 예술

글_ 정명찬 조향사, 도서 <향기가 좋으면 아무래도 좋으니까> 저자

 

향수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perfume’은 라틴어로 ‘~을 통하여’라는 뜻의 ‘per’와 ‘연기’라는 뜻의 ‘fumum’을 합성한 ‘per fumum’, 즉 ‘연기를 통해서’라는 단어로부터 유래되었다. 고대 문명에서 향은 신과 소통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는데, 향기를 품은 식물을 태웠을 때의 연기가 항상 신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하늘을 향해 올라갔기 때문이다. 

  

고대 문명부터 함께한 향의 발자취

지중해의 키프로스(Cyprus) 섬에는 기원전 2000년경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향수 공장 유적이 있다. 단순히 향을 다루던 시설이 아니라 ‘공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유적의 규모와 내부 설비의 종류가 대량 생산을 위해 갖추어진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500ℓ 용량에 달하는 토기 항아리 수십 개의 파편이 확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향료 원액과 섞여 향유가 될 베이스 오일인 올리브유를 생산할 수 있는 올리브 압착기, 구리를 제련할 수 있는 시설까지 발견되었다. 

고대 로마의 기록에 따르면 키프로스는 이미 그 당시에 향수의 발상지로 여겨졌고, 키프로스산 향수는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아 에게헤의 크레타섬 등으로 수출되었다고 한다. 

향의 여정을 이야기하면 빠지지 않는 곳이 바로 고대 이집트이다. 조향 역사에서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향은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키피(Kyphi)’인데, 몰약과 꿀, 와인, 건포도, 향나무 등의 원료를 사제들이 직접 배합하여 준비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 사제들은 매일 밤 ‘키피’를 태워 지하 세계를 여행하는 신들을 기쁘게 만들고자 노력했다. 


나폴레옹 1세도 사랑한 향수

프랑스의 영웅이자 황제였던 나폴레옹 1세는 위대한 군사 전략가이자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로 기억된다. 그런데 그가 한 달에 60병의 향수를 사용하던 향수 애호가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나폴레옹 1세는 업무를 볼 때, 사람을 만날 때, 씻은 직후에, 심지어 전투에 임할 때까지 향수를 뿌렸을 정도로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보였다. 나폴레옹 1세의 군화에는 향수병을 꽂을 수 있는 자리까지 있었다고 한다.

당시 나폴레옹 1세가 사랑했던 향수는 ‘오 드 코롱(Eau de Cologne)’으로 전해진다. 이는 ‘쾰른의 물’이라는 뜻으로, 독일 쾰른 지역에서 탄생한 향수의 이름이었다. 베르가못, 라임, 오렌지 등의 상쾌한 시트러스 향과 신선한 허브의 향이 배합되었다고 추측되는 ‘오 드 코롱’은 매력적인 향취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기분을 고양시키는 일종의 아로마 테라피 효과까지 지녔을 것이다. 어쩌면 나폴레옹 1세는 치장의 목적보다는 복잡한 머릿속을 환기시킬 수 있는 테라피 수단으로 향수를 사용했을 수 있다.



나폴레옹이 사랑했던 향수, 오 드 코롱


마음을 진정시키는 향기의 효과 

식물에서 추출한 에센셜 오일은 향을 통해 감정과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아로마 테라피’에 활용된다. 아로마 테라피는 우울, 불안, 불면, 산만함 등의 어려움을 완화시킬 향기를 사용해 편안한 상태를 이루도록 유도하는 일종의 향기 요법인데, 로즈마리의 향은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주고 라벤더 향기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불안을 가라앉히는 등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천연 식물 오일이니까 무조건 좋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실제로 신경계에 작용해 아로마 테라피 효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소 지병을 앓거나 임신 중이라면 특히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다.

후각은 다른 감각과 달리 다이렉트로 대뇌와 이어진다. 게다가 후각 신호는 우리 뇌에서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와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에 바로 전달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좋은 향기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밥 짓는 냄새를 맡으면 추억에 잠기는 이유이다. 심지어 향기와 함께 저장된 기억은 시각, 촉각 등의 다른 감각으로 저장된 기억보다 더 깊게, 더 오래 남아있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착안해 치매 예방 및 치료 보조에 향기를 활용하는 방안도 연구되고 있다. 깊게 묻힌 기억을 자극할 수 있는 향을 개발하거나 냄새를 인지하고 무슨 냄새인지 기억하는 간단한 후각 훈련 키트 개발 등의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휴가지나 특별한 이벤트에서의 시간을 오래도록 떠올리고 싶다면 그날 사용했던 향수를  다시 뿌려보자. 곧 그날의 기억과 감정이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혹은 누군가에게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감정으로 남기를 희망할 때, 향기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불안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는 라벤더 아로마 오일 


향기 활용 레벨 업 

향수 한 병을 다 사용하지 못하고 질려서 고민이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후각은 예민한 만큼 자극에 쉽게 둔감해지고, 익숙해진 냄새에는 금방 적응해버려 흥미를 잃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때 추천하는 방법이 ‘향수 레이어링’이다. 향수 레이어링은 두 개 이상의 향수를 착용해 기존 향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낼 새로운 향을 조합하는 것이다. 매번 뿌리던 향수라도 다른 향수와 섞이게 되면 전혀 다른 결과가 탄생할 수 있다. 레이어링하는 향수의 수가 많을수록 오묘하고 새로운 향을 만날 가능성이 높지만, 적당한 균형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따라서 향수 레이어링을 시작하는 단계라면 두 개의 향수를 섞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더 무겁고 진한 향을 먼저 뿌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 처음 뿌린 향수가 마른 뒤에 가벼운 향수를 뿌려 향의 레이어를 쌓거나, 왼쪽과 오른쪽 손목에 각각 다른 향을 뿌려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향이 혼합되도록 유도하는 방법으로 쉽게 레이어링을 시도할 수 있다.

쉽게 접하는 스프레이 타입의 향수는 주로 알코올로 이루어진 베이스에 향료가 섞여 있는 형태이다. 향료 원액은 그 자체로는 향이 멀리 퍼지지 않고, 오히려 알코올에 녹인 뒤 알코올이 향료와 함께 증발해야 발향 정도가 강해진다. 그래서 공간에 향을 배치할 때도 향이 잘 증발할 수 있는 환경인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습기가 많은 화장실에 디퓨저 타입 방향제를 거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습도가 높은 환경에서 디퓨저가 잘 증발하지 못하면 향도 넓게 퍼지지 못하고 아래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공기의 흐름이 빠르고 건조한 환경에서는 향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동일한 향수를 착용해도 사람마다 다른 향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이는 피부가 건조한 정도, 체온, pH 농도, 보습제 사용 여부 등 개인의 피부 특성에 향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당연히 타고난 체취도 향수의 발향에 영향을 끼친다. 향수를 구매하기 전에 가급적 직접 피부에 뿌린 뒤 실제로 내 몸에서 표현되는 향을 확인해야 하는 이유이다. 또 향수는 여러 향기가 마치 크레이프케이크처럼 층층이 쌓인 구조이기 때문에 시간에 따라 발향 단계가 달라진다. 흔히 ‘탑 노트(Top Note)’라고 불리는 향기의 첫인상은 향수를 뿌린 직후에는 또렷하게 나타나지만 금방 휘발되고, 이후 향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미들 노트(Middle Note)’의 향을 느낄 수 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잔향이라고도 부르는 ‘라스트 노트(Last Note)’로 이어지는데, 라스트 노트의 향취는 탑 노트와는 매우 다른 성격을 띠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첫인상인 탑 노트에 덜컥 반했다가 취향과 맞지 않는 잔향을 마주하는 슬픔을 피하려면 향수는 꼭 직접 뿌린 뒤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시간에 따른 향의 변화까지 느껴보기를 추천한다.



새로운 유형의 향수를 개발하는 조향사




작가 소개

정명찬 _ 작가는 향으로 시간과 사람, 공간을 잇고 싶다는 마음으로 자신만의 프래그런스 브랜드를 만들었다. 다양한 형태의 조향 워크숍을 개발하며 향의 세계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더불어 창업을 고민하는 사람들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향기에 의한 마케팅 및 비즈니스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