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 허서현 월간 ‘객석’ 기자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어쩐지 한곳에 모여들어 서로의 온기를 더 가까이서 느끼곤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연말이면 사람의 목소리가 ‘함께’ 모여 부르는 합창 공연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사랑받습니다.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다정한 모습이 추운 계절을 한층 훈훈하게 합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에 꼭 어울리는 합창곡인 칸타타·오라토리오는 겨울의 필수 청취 목록입니다.
추천 음반 OLD & NEW
헨델 <메시아>
르네 야콥스/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캠브리지 클레어 칼리지 합창단(Harmonia Mundi)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는 작품이 쓰인 당대의 연주법을 존중, 이후의 악기 발전을 고려하지 않고 당대의 고악기를 사용해 연주한다. 카운터테너로서 활발히 활동한 르네 야콥스는, 지휘자로서 활동하며 잊힌 바로크 음악들을 활발히 발굴해 낸 인물이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사울’ 음반 해석으로 호평을 받은 그가, ‘메시아’의 1750년 버전으로 남긴 음반. 알토소프라노 2명이 기용됐다. 신중하면서도 세련된 오라토리오를 만날 수 있다.
카를 리히터/런던 필하모닉·존 앨디스 합창단(DG)
헨델의 ‘메시아’ 해석의 교과서 같은 음반이다. 카를 리히터는 평생을 바로크 음악, 특히 바흐와 헨델의 음악을 연주하는 데 평생을 헌신한 지휘자이자 오르가니스트다. 현대 오케스트라로 연주됐지만, 작품이 가진 전통적인 해석이 정확하게 드러나는 연주다.
연말의 대표주자, 헨델의 ‘메시아’
우리나라에서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이 12월에 많은 사랑을 받죠. 대다수의 교향악단이 송년 음악회의 레퍼토리로 꺼내 듭니다. 그러나 사실 연말에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이 단골 레퍼토리인 곳은 우리나라와 일본뿐입니다. 공연 문화일 뿐이지, 이 작품이 가진 의미가 연말과는 큰 연관성이 없죠. 해외에서는 “한국에선 연말에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이 즐겨 연주된다.”라고 말하면, “그 난해한 작품이 연말과 어울린다고?”라며 의아해할 정도입니다.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연말에 사랑받는 레퍼토리는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입니다. 성서의 내용 중 예수의 탄생과 부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고, 크리스마스의 대표 작품이죠. 비록 예수의 탄생 이야기는 3부에만 등장하지만, 바흐의 ‘마태 수난곡’이나 ‘요한 수난곡’이 부활절 대표 레퍼토리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헨델의 ‘메시아’는 자연스레 빈 자리인 크리스마스에 안착하게 되었죠. ‘메시아’의 2부 중 마지막 합창곡 ‘할렐루야’는 잘 알려진 선율입니다. 영국의 왕 조지 2세가 이 부분을 듣고 감동하여 왕관을 벗고 기립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면서 오늘날도 종종 이 대목에서 청중이 기립하는 관례가 남아 있기도 합니다.
오라토리오는 무대 연출이 없는 오페라와 유사합니다. 독창자와 합창, 그리고 오케스트라까지 동원되는 대규모 공연이죠. 특별히 헨델은 이 곡을 쓰기 전 여러 오페라 작품으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때문에 그의 오라토리오는 종교적 의미를 넘어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추천 음반 OLD & NEW
바흐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스즈키 마사아키/바흐 콜레기움 재팬
일본의 지휘자 스즈키 마사아키는 20여 년에 걸쳐 바흐의 칸타타 전곡 작업을 이뤄냈다. 수백 곡에 달하는 전곡을 남기기 위해서 음악가는 삶의 일부를 쏟아부어야 한다. 아르농쿠르, 톤 코프먼 등의 전집이 있지만, 가장 고르게 높은 수준의 해석과 연주를 보여주는 음반이다. 가디너 등의 강렬한 드라마와는 다른, 정제되면서 다채로운 표현력이 두드러진다.
존 버트/더니든 콘소트(Linn Records)
더니든 콘소트는 정격 합창 연주 부분에서 명성을 얻고 있다. DG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합창단’이라고 호평한 더니든 콘소트와, 존 버트는 2003년부터 함께 하고 있다. 헨델·모차르트의 합창곡 음반을 통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왔다. 린 레코드의 뛰어난 음질은, 합창단이 가진 전달력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한다.
성실한 음악가 바흐의 크리스마스
헨델과 함께 바로크 음악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J.S. 바흐 또한 여러 명작 합창 음악을 남겼습니다. 특별히, 바흐는 라이프치히에 있는 성 토마스 교회에서 칸토르(음악감독)으로 20년 넘게 근무했습니다. 그는 거의 매주 일요일 예배에 사용될 미사곡을 작곡했고, 그 결과 200곡이 넘는 칸타타를 남겼죠. 바흐를 통해 교회 칸타타라는 장르는 이전의 수준을 뛰어넘는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매주 쓴 칸타타 외에도, 교회 절기에 맞춘 칸타타들이 남아있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크리스마스 칸타타도 있죠. 바흐의 칸타타는 성경의 구절 혹은 코랄의 선율을 차용해서 만들어집니다. 1726년, 성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로 임명된 지 3년이 되던 해, 독일의 시를 인용해 ‘우리의 입술에 웃음이 가득하게 하소서’ BWV110을 남겼습니다. 1742년 크리스마스 절기를 위해 지어진 ‘높은 곳에선 하나님께 영광(Gloria in Excelsis Deo)’ BWV191은 유일하게 라틴어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외에도 바흐는 총 7개의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남겼습니다.
바흐가 남긴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BWV248도 있습니다. 바흐의 ‘마태수난곡’ ‘요한 수난곡’ ‘b단조 미사’와 함께 대표적인 종교 음악으로 꼽히는 작품이죠. 다만 이 오라토리오는 그가 남긴 세속 칸타타에서 차용된 음악들이 많아 어쩐지 다른 작품들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진 못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성격이 반영된 오라토리오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바로크·고전 시대를 지나며 칸타타나 오라토리오에 대한 주목도는 줄어 들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닌 공연장에서 작곡가들의 새로운 작품을 감상했죠. 그러나 이후에도 꾸준히 뛰어난 작곡가들이 남긴 오라토리오가 있습니다.
그중 멘델스존은 가장 대표적입니다. 그는 바흐 서거 이후 연주되지 않고 있던 ‘마태 수난곡’의 악보 필사본을 우연히 보게 된 후, 이 명곡이 지금까지 다시 연주될 수 있게 무대에 올린 장본인이죠. 여러 오라토리오 중, ‘엘리야’는 가장 사랑받는 작품입니다.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남긴 낭만 시대 작곡가 중에는 생상스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일찍이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일하며 교회 음악에 대해 깊이 이해한 생상스는 스물세 살에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남겼습니다. 이 작품은 라틴어 가사로 적힌 10개의 곡이며, 가사를 라틴어에 능통했던 생상스가 성서에서 직접 인용해 썼습니다.
베를리오즈의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도 3부분으로 이루어진 대작입니다. 다른 점은, 이전의 오라토리오가 성서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 찬양이라면 베를리오즈에 와서는 폭군 헤롯의 처지에 동정하거나, ‘예수 가족의 휴식’ 등의 내용으로 성서에 대한 솔직한 접근이 담겨 있죠.
외에도 헝가리 작곡가 죄르지 오르반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은 그 자신의 대표작입니다. 세례요한의 아버지부터 수태고지, 동박박사, 헤롯의 사건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한편 프랑스 6인조 중 한 명인 풀랑크도 ‘네 개의 크리스마스 모테트’라는 합창 음악을 남겼습니다. 성탄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이 작품은, 종교적 작품이면서 동시에 풀랑크 특유의 음악적 특징이 즐거움을 줍니다.
작가 소개
허서현 _ 1984년 3월 2일 창간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악, 공연예술 전문 잡지
월간 <객석>의 공연 전문 기자이다. 국내외 화제를 모으고 있는 유수의 공연과 아티스트에 대한 비평과 분석 기사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