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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맛있는
와인 이야기

글_ 전상헌 한국와인협회 교육연구분과 위원 

 

인류가 만들어낸 최초의 술이라고 할 수 있는 와인은 포도로 만든 과실발효주를 말한다. 포도의 당분인 포도당을 효모(yeast)가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로 분해시키는 것을 술이 만들어지는 발효 과정이라고 하는데, 원숭이들이 포도를 바위틈에 모아 두었다가 자연 발효가 된 포도즙을 먹고 알딸딸하게 기분 좋아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아마 사람도 그렇게 우연히 와인을 알게 됐을 것이고 그것이 인류 최초의 술일 가능성이 높다. 

  

남녀 모두에게 건강한 음료

인간의 포도 재배는 약 8,000년 전 흑해 연안의 조지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란에서는 BC 5,500년경에 만들어진 와인 용기가 출토되었는데, 여기에서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흔적이 모두 발견되었다. BC 3,000년경에는 이집트에서도 상당히 발전된 양조 기술로 와인이 만들어져 왕과 귀족들이 즐기고 종교의식에도 사용되었고, 이것이 고대 그리스 정복기를 거치고, 로마제국에 이르면서 프랑스, 스페인 등 전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신의 물방울’이라 불리는 와인을 프랑스에서는 ‘늙은이의 우유’라고도 부르는데, ‘좋은 와인 한 잔은 의사의 수입을 줄게 한다’는 속담까지 있다. 이렇듯 와인은 건강에도 매우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와인에 함유되어 있는 폴리페놀(polyphenol) 성분들 때문이다. 식물성 화학물질인 폴리페놀 성분은 그 종류가 4,000가지가 넘는데, 레드 와인에만도 200여 종류가 함유되어 있다. 이는 와인의 맛이 제각기 다양한 이유이기도 하다. 약알칼리성인 와인은 기본적으로 소화 촉진, 이뇨 작용, 항산화 작용, 진정 작용 등의 효과가 있다. 와인의 폴리페놀 성분들은 동맥에서 지방층을 없애주는 콜레스테롤인 HDL(고밀도 지단백질)을 증가시키고, 지방층을 몸에 제일 먼저 쌓이게 하는 나쁜 콜레스테롤인 LDL(저밀도 지단백질)을 감소시키는데, 이것은 혈액순환을 원활케 하고 동맥경화 예방에도 큰 효과가 있다. 노화 방지, 피부 미용에도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뇌혈관을 보호하고 뇌신경 세포의 노화와 손상을 막아줌으로써 치매나 뇌졸중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심장병, 암 및 기타 혈관 관련 질병의 발병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와인의 미네랄 성분은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생성을 돕고 적정량이 유지되도록 해주는 역할도 하니, 와인은 남녀 모두에게 건강 음료가 아닐 수 없다.




적당량, 꾸준한 섭취가 중요

와인과 건강에 대해 얘기할 때 항상 등장하는 말이 ‘French Paradox(프렌치 패러독스)’다. 1991년 11월 미국 CBS-TV의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프랑스인들은 한 끼 식사 평균 1,100kcal인 고지방식을 즐기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인들보다 심장병 사망률이 매우 낮다는 장기 임상 및 연구 결과가 보도되었다. 당시 미국인들의 사망원인 1위가 바로 심장 질환이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의 내용은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미국인들보다 더 고지방 식사를 하면서 운동량은 오히려 더 적은 프랑스인들의 심장병 사망률이 미국인들의 1/3 수준밖에 안 된다는 것과 그 이유가 바로 레드 와인의 섭취에 있다는 사실이 일종의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면서 ‘French Paradox(프렌치 패러독스)’라는 신조어가 회자되기 시작했다. 그 방송 이후 몇 주 만에 미국 내 레드 와인 판매량이 40% 이상 증가하더니 급기야 한 해 판매량이 전년대비 4배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물론 와인을 몇 번 마셨다고 해서 바로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고 매일 본인에게 맞는 적당량을 꾸준히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유럽에서는 모든 식사에 와인을 곁들이곤 하는데, 그 양은 그저 한 잔 정도 마시는 것이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의 푸드 매칭을 ‘마리아쥬(Marriage, 결혼)’라고 하는데,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와인을 술이 아닌 음식의 일부로 보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식사할 때 국물을 찾듯이 유럽인들은 거의 매 끼니마다 와인을 곁들이지만, 그런 유럽 사람들에게 와인에 대한 지식을 물어보면, 오히려 이상하게 쳐다본다. ‘내가 왜 그런 지식을 알아야 되는데?’라는 표정으로... 이제는 한국에서도 저렴하고 맛있는 와인들을 많이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도 와인에 대해 뭔가 지식을 알고 마셔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고 그냥 편하게 즐겼으면 좋겠다. 




레드, 화이트, 로제 그리고 스파클링

와인을 만드는 양조용 포도의 종류는 5,000여 종이나 되며, 다양한 양조 방식에 따라 수많은 종류의 다양한 와인이 만들어진다. 이런 와인들을 구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쉽게는 색깔에 따라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로제 와인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은 만드는 포도 품종 자체가 다르다. 기본적으로 ‘레드 와인’은 적포도로, ‘화이트 와인’은 청포도로 만든다. 양조 방식도 차이가 있는데, 레드 와인은 적포도 알을 그대로 으깨서(crash) 발효시키는데, 그 과정에서 껍질에서는 붉은색 안토시아닌 색소가 우러나서 레드 와인의 색을 만들고, 씨에서는 타닌 등의 성분이 추출되어 레드의 떫고(?) 묵직한 맛을 만든다.

이에 비해 화이트 와인은 청포도 알의 껍질과 씨를 제거한 상태에서 즙을 짜서(pressing) 발효시키므로 과일 향이 살아 있고 맑고 깨끗한 색으로 만들어진다. 로제 와인은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중간색인 연한 주황빛이 나는 와인을 말하는데, 두 가지 와인을 섞는 것이 아니고, 적포도로 레드 와인처럼 발효를 시키되 붉은색이 살짝 우러나오기 시작하면 바로 껍질과 씨를 빼내고 그다음부터는 화이트 와인 양조 방식에 따른다.

‘스파클링 와인’은 말 그대로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와인을 말한다. 발효가 끝난 화이트 와인을 병입(bottling)한 후 설탕(당분)과 효모를 별도로 첨가해 병 안에서 인위적인 2차 발효를 일으켜 탄산가스(기포)가 와인 속에 용해되도록 만든 발포성 와인들을 통틀어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한다. 중저가 스파클링 와인들은 대형 스테인리스 스틸탱크에서 2차 발효를 시키거나, 와인을 만든 후 탄산을 강제 주입하기도 하지만 고급 스파클링 와인들은 병 안에서 2차 발효를 시키는 것이 중요한 차이점이다.

스파클링 와인 중에 우리가 제일 잘 아는 것이 샴페인인데, 스파클링 와인과 샴페인이 같은 뜻은 아니다. 모든 와인 생산국에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지만 그중에 프랑스 북부 샹빠뉴(Champagne) 지방에서 생산하는 고급 스파클링 와인만을 ‘샴페인(Champagne, 불어 발음으로 샹빠뉴)’이라고 부를 수 있다. 프랑스 내에서도 보르도, 부르고뉴 등 다른 산지들에서는 스파클링 와인들을 Crémant(크레망) 또는 Vin Mousseux(뱅 무쐬)라고 부른다. 스파클링 와인을 이탈리아에서는 Spumante(스뿌만떼), 스페인에서는 Cava(까바), 독일에서는 Sekt(젝트), 영어권에서는 Sparkling Wine(= Bubble wine)이라고 한다.




구세계(Old World)와 신세계(New World)

와인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아주 많은 나라들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일단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와인을 만들고 있으며, 미국, 캐나다를 비롯해 남미의 많은 나라들도 와인을 만든다. 호주, 뉴질랜드도 유명한 와인 생산국이고, 남아공이나 이집트 등 아프리카 국가들도 와인을 생산한다. 또 한국, 일본, 중국 등 동북아시아는 물론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와인을 만든다.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와인은 연간 300억 병이 넘는다. 세계 최대의 와인 검색 어플인 VIVINO(비비노)에는 약 130만 개 정도의 와인이 올려져 있다. 기후와 토양 등이 다르다 보니, 와인의 품질과 맛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렇듯 포도와 와인의 맛에 영향을 미치는 포도밭의 토양, 방향, 경사도, 배수, 일조량, 강수량, 바람, 기후 등의 자연 요소들과 상호작용을 총칭해서 ‘떼루아(Terroir)’라고 한다.

품질 좋은 와인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나라들을 크게 구세계(Old World)와 신세계(New World)로 구분할 수 있다. 구세계는 유럽의 전통적인 와인 생산국들로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등이 해당된다. 신세계는 와인 생산 역사가 비교적 짧은 비유럽권 나라들을 말하는데, 미국, 칠레, 호주, 아르헨티나, 뉴질랜드 등을 말한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의 구세계 와인들은 대체로 레이블이 친절하지 않고(?) 복잡하고 어렵다. 그 형식도 나라별, 지역별로 다양해서 어느 정도의 와인 지식과 해당 언어를 알아야 이해가 가능하다. 더구나 레이블에 포도 품종도 대부분 표시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신세계 와인의 레이블은 형식이 비슷하고 심플하다. 와인 생산 회사, 포도 품종, 생산 지역 등 우리가 와인을 고를 때 기본적으로 궁금해하는 내용들이 레이블에 알기 쉽게 영어로 표기되어 있다. 이렇듯 레이블(label)은 그 와인의 족보와도 같지만, 나라별 혹은 산지별로 그 형식에 차이가 있으므로 약간의 학습과 관심을 가지고 자꾸 읽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맛 좋은 빈티지 와인 고르는 법

참고로, 대부분 와인 레이블에는 연도 표시가 되어 있고 이것을 ‘빈티지(Vintage)’라고 하는데, 이건 무슨 의미일까? 빈티지(Vintage)의 정확한 의미는 포도의 ‘수확 연도’지만, 와인은 그 해 재배한 포도를 수확해 바로 양조하기 때문에 결국 포도를 수확한 연도와 와인을 양조한 연도가 같다. 예를 들어 레이블에 ‘2021’이라고 적혀 있으면, 2021년 가을인 9~10월 초에 수확해서 그 해에 양조했다는 뜻이다. 물론 남반구라면 2021년 3~4월 초에 수확해서 바로 양조했을 것이다.

미국이나 남반구의 신흥 생산국(New World)들인 칠레,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등은 기본적으로 일조량이 많고, 기후나 기온이 매년 고르고 일정한 편이라 빈티지의 영향을 잘 받지 않지만, 북반구의 프랑스와 이탈리아 북부, 독일 등은 매년 일정치 않은 기후 때문에 포도의 작황에 차이가 많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고급 와인들은 같은 브랜드의 와인이라도 빈티지에 따라 맛과 품질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빈티지 차트라는 것을 만들어 작황이 좋은 해와 그렇지 못했던 해를 구분하고 있는데 이는 당연히 와인의 가격에도 반영된다. 하지만 미국이나 남반구 와인들은 빈티지에 따른 차이가 크지 않다고 보면 된다. 대신 가격이 비싼 고급 와인일수록 더 오래된 빈티지의 와인을 마셔야 더 깊고 좋은 맛이 느껴지며, 저렴한 와인들은 굳이 오래되지 않고 만든 지 2~3년 정도 지난 와인을 마시는 게 오히려 더 제맛을 느낄 수 있겠다.




작가 소개

전상헌_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복고등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한 저자는 현재 한국와인협회 교육연구분과 위원, 한국와인애호가협회 부회장, 한국와인협회명예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김준철와인스쿨 원장으로서 많은 소믈리에들을 양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