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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고칼로리 추구와
도파민 제로
현상 너머

글_ 도우리 작가 

 

도파민 디톡스에 관해 심각하게 논하는 이야기는 이제 다소 낡아 보인다. 사람들은 ‘도파민’ 키워드가 붙은 콘텐츠를 즐기면서도 ‘도파민 디톡스’ 역시 일종의 콘텐츠로서 소비한다. 마치 햄버거를 시키면서도 꼭 제로콜라를, 안주는 숙주 삼겹살 볶음이나 가라아게처럼 기름져도 주류는 제로소주나 제로맥주를 주문하는 문화가 공식처럼 자리 잡은 것처럼. 

사태가 이렇게 된 데에는 도파민 중독이 특정한 소수의 문제가 아닌 보편적인 현상이 되어버린 탓도 있다. 도파민 중독을 자극하는 사회를 비판하는 여러 연사들의 강연과 책들이 쏟아져 나왔음에도 여전히 문제가 공고한 걸 보면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아니, 그 전에 문제 해결을 꼭 해야 할까? 도파민 중독을 다시 점검해 볼 시점이다.

  


 

모두를 속인 먹방 유튜버, 니코카도 아보카도 사례를 살피기 

요즘 현대인들의 도파민을 자극하는 주요 소재는 17세기 경 영국의 프릭 쇼(freak show·괴물 같은 사람들을 전시하는 서커스 쇼)마냥 사람들의 ‘나락’을 즐기는 일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화제된 도파민 소재로는 사기극을 벌인 전청조 씨의 행적들, <고딩엄빠><결혼지옥>과 같은 솔루션(보다도 문제 상황이 시청 포인트인) 프로그램, 연애 프로그램이지만 인간 극장에 가까운 <나는 솔로>, 가수 조현아의 어색한 솔로 데뷔 무대 등이 있었다. 이외에도 스스로 자신의 실직, 이혼, 초고도비만 등 사회적 기준에서의 실패를 전시하는 경우도 ‘스테디셀러’ 콘텐츠로 자리잡았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조회수를 벌어다 주는 대신 그들의 ‘못남’을 비웃는다.

그런데 이 구도를 뒤집은 사건이 생겼다. 최근 니코카도 아보카도(본명 니콜라스 페리·32)라는 우크라이나 태생의 미국 유명 먹방 유튜버가 전 세계 커뮤니티에서 충격을 준 사건이다. 니코카도는 과거 카네기 홀에서 공연한 적도 있는 프로 바이올리니스트로, 동성의 남편이 있는 ‘평범한’ 비건 유튜버였다. 그러다가 건강 문제로 비건식을 포기하고 한국식 먹방에 눈을 돌렸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자극적인 수위가 점점 치솟았다. 폭식으로 인한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며 4년 만에 90kg 넘는 체중이 증량되었고 호흡이 가빠져 산소 호흡기를 달고 방송을 진행하는 등의 자기파괴적인 모습으로 400만 명가량의 구독자를 끌어 모았다. 그러다 마지막 영상 업로드로부터 7개월 동안 잠잠하다가 최근 복귀했는데, 무려 250파운드(113kg)을 감량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는 <두 걸음 앞서 있는(two steps ahead)>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홀쭉해진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오늘 난 아주 오랜 꿈에서 깨어났어. 그리고 250 파운드를 내 몸에서 덜어낸 채로도 깨어났지. 하지만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나보고 뚱땡이다, 맛이 갔다, 노잼이다, 전부 관련 없는 얘기만 하고 있었어. 사람들은 세상에서 제일 못돼먹은 생물들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난 모두들보다 두 걸음 앞서 있는 데에 성공했지. 당신들이 나에게 속은 거야.”

해당 영상은 공개 이틀 만에 조회 수는 2,800만을 넘겼다. 사실 니코카도가 그간 올렸던 먹방은 몰아서 찍은 뒤 조금씩 업로드한 거였고, 뒤에서는 지난 2년간 식이와 운동을 병행하며 정상 체중으로 복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네티즌들은 니코카도를 두고 ‘매우 영리한 전략가’라고 평한다. 구독자 및 시청자들의 ‘도파민’을 자극해내며 그들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와중에 자신은 착실히 도파민으로부터 거리 두는 삶을 살아가는 큰 그림을 그려왔고, 무엇보다 유튜브 수익을 크게 한몫 땡겼기 때문이다. 이제 단순히 관심을 끌어 모으겠다고, 벼랑 끝에서 셀카를 찍다가 발을 헛디뎌 죽는 자기파괴적인 도파민 채굴 행위는 정말 낡은 행위가 됐다. 그런데 이러한 니코카도의 행위는 도파민 중독 사회를 따돌리는, 정말 ‘앞선’ 행위일까?



▶︎ 니코카도 아보카도 

 

기승전-치킨집에서 기승전-유튜버의 시대로 

얼마전 한 ‘짤’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였다. 이른바 ‘기승전-유튜버’ 짤로 고등학교 때 이과를 택하든 문과를 택하든, CEO가 되든 백수가 되든 과로를 하든 최선은 ‘유튜버’ 길을 걷게 된다는 도식이었다. 여기서 기시감을 느낀 이들이 많았는데, 불과 십년 전만 해도 그 진로의 끝이 ‘치킨집’이었기 때문이었다. 치킨과 도파민. 불과 10년 사이에 우리의 삶을 규정짓는 중요한 자원은 ‘먹을 것’에서 ‘도파민’이 되었다. 과거 초등학생들이 ‘꿈’으로 유튜버라고 꼽던 게 사회적 문제라고 보도되다가 돌연 전지구적인 어른들의 ‘꿈’이 된 것이다. 그래서 관종이라는 욕은 낡은 욕이 되었다. 모두가 관종일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까. 나의 이력을 홍보하기 위한 포트폴리오든, 상사에게 나의 성과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든, 잠재적 고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든, 부수입이나 정년퇴직 이후를 도모하기 위해서든 우리는 누군가의 도파민을 갈구할 수밖에 없게 됐다. 여기서 누군가는 유의미한 이익을 얻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구글, 페이스북 등 거대 플랫폼 기업과 협업한 업체(CMG·콕스 미디어 그룹)가 고객 맞춤형 광고를 위해 사람들의 음성 데이터를 수집했다는 자료가 유출됐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이는 알고리즘 신(神)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사실일 뿐 아니라 그 수준이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는 신호다. 하지만 마치 공기와 물처럼 우리 삶의 필수재가 된 도파민을 특정 기업이 무단으로 사생활을 빼내며 자신의 이익으로 삼고 있다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런 현상은 점점 교묘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니코카도에 비하면 ‘덜 도파민적인’ 소식이어서 덜 화제가 됐다.



▶︎ ※ 버튜버: 버츄얼 유튜버의 줄임말

두 걸음 앞서기를 넘어, 도파민 지형을 살피기 

니코카도는 도파민에 휘둘리는 사람들의 생리를 읽어내 큰 수익을 얻었고 정상 체중으로 복귀해냈다. 하지만 그래봤자 유튜브 기업이 얻는 수익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 뿐 아니라 기업은 딱히 자기파괴적 행동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었다. 니코카도는 자기파괴적 먹방을 찍고 업로드했던 시간들을 ‘오랜 꿈’이라고 표현했지만 그 삶은 결코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니코카도가 ‘두 걸음 앞서 있다’고 믿는 것 역시 유튜브 기업과 알고리즘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준 것에 불과하다. 유튜브 버전 여래신장(如來神掌·부처님 손바닥)일 뿐이었던 것이다.

도파민에 중독된 개개인이나 그 도파민을 자극하는 크리에이터 혹은 도파민을 디톡스하는 콘텐츠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주목할 것은 그 거대한 ‘도파민 체제’가 우리를 어떻게 속이고 있는지다. 우리가 남의 나락을 즐기거나 누군가의 관심을 끌어 수익을 조금 벌어들이는 것을 대가로 우리의 여가시간뿐 아니라 욕망의 방향이나 삶과 사회에 대한 중요한 사유를 앗아간다는 큰 그림을 보는 일이 훨씬 중하다. 이는 ‘혼자’ 남들보다 두세 걸음 앞서는 전략가나 영웅이 되는 것보다 ‘함께’, 그러니까 시민적으로 이 도파민 지형 전체를 조망하는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한 독자의 관심을 청한다.




작가 소개

도우리 _ 저자는 일상문화 비평 칼럼니스트로서 <한겨레21>, <닷페이스>, <미디어스> 등의 매체에 글을 썼다. 2023년 교보문고 ‘세계 책의 날 16인 작가’에 선정되었다. 대표작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를 통해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