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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팩트함에 반하다
프리미엄 소형차의 세계

1960년대 소형차 혁명을 이끈 미니

 

글_ 최주식, <오토카 코리아> 편집장, 시인 

 

요즘 일상에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콤팩트한 고급 소형차를 찾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매력적인 프리미엄 소형차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자. 

  

최소한의, 그러나 더 나은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단순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라이프 스타일도 마찬가지여서 주변 환경이 복잡다단해질수록 단순한 생활을 동경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이란 게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우선 내가 머무는 공간이나 사용하는 물건이라도 단순화해 보자고 결심한다. 그렇게 나타난 경향 중 하나가 미니멀리즘이다. 미술과 공예, 사진, 건축 등에 영향을 미친 독일 바우하우스와 자연주의에 기초한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등이 주목받는 배경이다.

심플하고 기능적인 디자인은 오늘날 아이폰으로 대표되지만, 그 역시 가전회사 브라운의 디자이너였던 디터 람스(Dieter Rams 1932~)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이에 대해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 신화를 일군 조너선 아이브가 직접 언급한 바 있다. 이처럼 디자이너의 디자이너로 불린 디터 람스는 그의 말처럼 ‘최소한의, 그러나 더 나은’(Less but Better) 디자인으로 수많은 이들과 기업에 영감을 주었다. 좋은 디자인이란 사용하기 쉽고, 유용해야 하며 오래 쓸 수 있어야 한다는 디자인 철학과 함께.    

산업 디자인계에 디터 람스가 있다면 자동차 디자인계에는 알렉 이시고니스(Alec Issigonis 1906~1988)가 있었다. 디자이너 겸 엔지니어인 이시고니스는 자동차에 미니멀리즘을 완벽하게 구현한 인물로 기록된다. 그의 업적이 높게 평가받는 이유에는 단순히 기능적인 측면뿐 아니라 ‘작은 차든 큰 차든 모두 같은 사람이 타는 차인데, 작은 차에만 좁은 실내를 감내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뚜렷한 신념, 사람에 대한 배려가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미니를 설계한 알렉 이시고니스

 

비틀즈의 링고 스타도 사랑한 ‘미니’ 

1920년대 영국 자동차 대중화를 이끈 모리스(Moris)는 마이너(Minor)라는 소형차를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알렉 이시고니스는 그다음 세대의 ‘모리스 마이너’(1948)를 설계하면서 명성을 얻는다. 이 차가 영국의 국민차로 불릴 만큼 크게 히트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1952년 모리스는 라이벌 오스틴과 합병하면서 브리티시 모터 코퍼레이션(BMC)으로 거듭난다. 이 BMC에서 1959년 이시고니스의 설계로 탄생한 차가 바로 ‘모리스 미니 마이너’ 즉 ‘미니’다. 미니는 자동차의 공간, 실용성, 사용성에 대한 사람들의 기존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으며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형태와 기능의 승리로 불리는 획기적인 설계 방식은 자동차가 평범한 이동 수단에서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영리한 세로 배치 엔진과 앞바퀴굴림 구조는 작은 차체에 넓은 실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왜건, 미니밴, 픽업 등 다양한 변형 모델로 확장되었다.

미니의 잠재력을 유심히 본 사람은 유명 레이서이자 튜너였던 존 쿠퍼(John Cooper)였다. 미니는 차체 크기에 비해 훨씬 더 큰 힘도 감당할뿐더러 이례적으로 서스펜션 서브 프레임을 사용하면서 스포티카로서의 기본기를 갖추고 있었다. 미니보다 더 빠른 모델인 미니 쿠퍼 S는 1963년에 등장했다. 이 작은 차는 1964년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 고성능 차의 전설로 재창조되었다. 작지만 강력한 성능으로 미니의 입지가 새로워지면서, 1960년대 유명 인사들이 대거 미니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비틀즈 드러머인 링고 스타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니, 현대적 스타일로 변모하다  

비틀즈가 등장하면서 건축과 패션 분야에서 혁명이 시작되었다. 기존 질서에 얽매이지 않는 사회를 지향하는 새로운 흐름에 따라 노동자 계급의 젊은이들이 사회의 중심에 진입했다. 첼시의 킹스 로드와 런던 중심부의 카나비 스트리트가 패션과 청년 문화를 상징하는 영향력 있는 거리로 떠올랐다. 미니의 현대적 스타일과 감각, 계급 중립적인 모습은 시대 흐름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며 이들 거리와 어울렸다.

오늘날의 미니는 이제 더 이상 영국차가 아니다. 독일 BMW는 1994년 2월에 로버 그룹의 일부로서 미니를 인수했다. BMW는 오리지널 미니의 탁월한 공간 활용성과 뛰어난 주행 특성을 더욱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미니를 재창조했다. 지금의 미니는 어떻게 보면 미니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을 만큼 차체가 커졌다. 그러나 다양한 차체 형태가 만들어지고, 쿠퍼 모델의 주행 특성을 비롯해 여러 고급스러운 특징을 이어오고 있다.

2014년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4세대 완전 변경 모델 뉴 미니 쿠퍼 S는 고-카트(Go-kart) 감성으로 표현되는 경쾌한 주행 감각과 첨단 디지털 장비로 업그레이드 됐다. 더불어 이번 4세대 뉴 미니 패밀리 제품군에서 ‘쿠퍼’(Cooper)라는 명칭은 더 이상 엔진 사양을 뜻하는 것이 아닌 미니 3-도어, 5-도어 및 미니 컨버터블 모델 라인업을 의미한다.

뉴 미니 쿠퍼 S 3-도어는 최고출력 204마력, 최대토크 30.6kg·m을 내는 4기통 트윈 터보 가솔린 엔진과 스텝트로닉 7단 더블 클러치 변속기를 매칭해 0→ 시속 100km 가속을 6.6초 만에 해낸다. 뉴 미니 쿠퍼 S는 페이버드 단일 트림으로 출시되며 가격은 4,810만 원이다. 주행 성능을 비롯해 디자인과 스타일로 미니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하체가 단단한 만큼 승차감이 딱딱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뉴 미니 컨트리맨은 2017년 이후 7년 만에 선보이는 3세대 완전 변경 모델이다. 이전 세대보다 한층 커진 차체와 여유 있는 공간감, 장비의 디지털화와 강력한 주행 성능 등으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르는 프리미엄 SUV를 목표로 개발되었다. 특유의 각진 헤드라이트, 영국 국기 유니언 잭을 형상화한 리어라이트 등을 유지하며 디자인 헤리티지를 이어간다. 실내에서 가장 큰 특징은 대시보드 중앙에 자리 잡은 원형 OLED 디스플레이다. 삼성 디스플레이와 협업해 자동차 업계 최초로 선보인 직경 240mm 디스플레이는 빠른 반응성으로 스마트폰 사용 경험과 비슷하다. 가격은 뉴 미니 컨트리맨 S 올4 클래식 트림 4,990만 원, 페이버드 트림이 5,700만 원, 뉴 미니 JCW 컨트리맨 올4가 6,700만 원이다.(부가세 포함)

뉴 올-일렉트릭 미니 쿠퍼는 순수전기 드라이브 트레인에 몰입형 디지털 경험을 강조한다. 여기에 플러쉬 타입 도어 핸들을 적용하고, 펜더 플레어와 사이드 스커틀을 제거하면서 더욱 깔끔하고 현대적인 이미지로 변모했다.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이다.


뉴 미니 컨트리맨


1957년 등장한 피아트 500


가성비 좋은 소형 SUV, ‘티록’ 

소형차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차는 이탈리아의 국민차로 불린 피아트 500이다. 미니보다 2년 앞서 1957년 누오바 친퀘첸토(Nuova Cinquencento : 뉴 500)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탈리아의 천재적인 엔지니어이자 디자이너 단테 지아코사(Dante Giacosa 1905~1966)는 ‘지붕 달린 스쿠터’라는 콘셉트로 초소형 차체에 엔진을 뒤에 얹고 4명이 탈 수 있는 차를 그렸다. 지붕을 열 수 있는 캔버스 루프를 달아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미니가 잘 달리는 고성능 차로 인기를 얻었다면 피아트 500은 패션카로 사랑받으며 구찌 등과 협업 모델을 내놓기도 했다. 2000년대에 되살아난 현대적인 피아트 500은 국내에도 수입되었지만 예상보다 높은 가격대로 인해 시장에서 외면당하고 철수했다. 점점 차체가 커지고 있는 자동차 시장에서 소형차의 설 자리는 계속 좁아져 왔다. 자동차회사 입장에서 소형차는 채산성이 높지 않을뿐더러 고급화 전략을 펼친다 해도 소비자 입장에서 소형차에 큰돈 쓰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애스턴 마틴이 럭셔리 경차를 표방하고 만든 시그넷(Cygnet)이 얼마 가지 못하고 단종된 것도 이를 반영한다.  

현재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프리미엄 소형차는 폭스바겐 티록(T-ROC), 푸조 뉴 3008 등이 있다. 콤팩트 SUV를 표방하지만 사실상 도심형 크로스오버에 가깝다. 폭스바겐 티록은 해치백의 대명사 골프(Golf)의 SUV 버전으로 볼 수 있는데, 경쾌한 주행성능과 공간 활용성이 장점이다. 다만 파워트레인이 2.0L 터보 디젤 한 가지 뿐이고 수동으로 조절하는 시트 등 고급스러움이 떨어진다. 주행 소음도 신경 쓰이는 부분. 기본형 스타일이 3,244만 원이고 고급형 프레스티지 3,835만 원 등 가성비가 좋다. 2세대 풀 체인지 모델 출시가 머지않았다는 점은 체크할 부분이다.


폭스바겐 티록


푸조 3008 SUV


기아 EV3 GT 라인


시티카로서의 새로운 가능성 

푸조는 유서 깊은 프랑스 자동차 브랜드지만 국내에서는 다소 저평가된 측면이 있다. 독창성을 중시하는 프랑스 디자인은 인터페이스 등에서 다소 직관적이지 않은 부분을 포함한다. 처음에 낯설지만 익숙해지면 괜찮다는 말 외에 설명할 방법이 없다. 콤팩트 SUV 3008은 비교적 타당한 가격에 성능과 경제성, 운전 재미를 두루 아우른다. 다만 스티어링 휠에 가린 듯한 계기판과 하이그로시를 적극 사용한 실내 등은 호불호가 분명하다. 1.2L 퓨어테크 가솔린 모델은 4,320만 원, 1.5L 블루 HDi 디젤 모델은 4,463만 9,000원이다.        

최근의 전동화 트렌드는 시티카로서 새로운 소형차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세계의 도시가 도심이 확대되는 메가시티를 지향해가고 있는 상황도 전기 시티카에 새로운 기회가 될 전망이다. 늘어나는 충전 인프라와 1회 충전 주행 거리는 도심 주행에 충분하고 무엇보다 환경 문제에 적극 대응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콤팩트한 고급 소형차를 찾는 경향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동안 SUV 유행 등을 타고 자동차 차체는 지나치게 비대해진 측면이 있다. 수익성 등을 이유로 자동차회사가 소형차 개발을 회피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선택의 폭이 좁아졌다. 지난 부산 모빌리티쇼에서 기아가 선보인 콤팩트 전기차 EV3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유도 이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제 모빌리티 환경이 달라지고 있는 만큼 매력적인 소형차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작가 소개

최주식_ 202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자, 한국클래식카협회 부회장이며, 월간 <오토카 코리아>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다. <오토카 코리아>는 1895년 영국에서 창간된 세계 최초 자동차 잡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자동차 매거진 의 공식 한국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