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필 나라스페이스 대표
‘민간 기업에서 인공위성 제작을?’ 나라스페이스는 미심쩍어하는 사람들의 눈초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뚝심 있게 자신들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초소형 인공위성을 제작, 국내 최초로 우주에서 교신까지 성공하며 인공위성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나라스페이스의 박재필 대표를 만나 그들이 그려가고 있는 우주에 대해 들어 보았다.
우주가 좋았던 소년의 이야기
“어렸을 때부터 우주에 관심이 많았어요. 우주가 배경인 만화, 영화를 정말 많이 봤거든요. 실제 ‘아폴로 13호’의 미션을 소재로 한 영화 <아폴로 13>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영화 속에서 미션을 완수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멋있었고 저런 일을 하고 싶다 생각했어요.”
천문우주학과에 진학한 박재필 대표는 우주와 관련된 거라면 뭐든 좋았지만, 우주만큼 과학도 좋아해 실용적인 분야에 관심이 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관심은 인공위성으로 이어졌다.
박재필 대표가 대학에 재학 중이던 때는 우리나라에서 초소형 인공위성을 만들기 시작한 초창기였다.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건 인공위성에 대한 이론 정도였고, 학생이 인공위성을 만든다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 시기에 박재필 대표는 친구들과 인공위성 동아리를 만들었고, 인공위성에 더욱 깊게 빠져들었다. 인공위성 제작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제1회 큐브위성 경영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대회에서 주어진 임무는 초소형 인공위성 두 개를 우주 공간상 한 곳을 바라보게 하는 기술 개발이었다. 박재필 대표가 속했던 팀은 최종 순위에 올라 연구비를 지원받고 인공위성 개발 기회를 얻었다.
“대회에 참가한 여러 대학의 사람들과 정보 교환을 활발히 했어요. 그들 중 창업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설립한 회사가 나라스페이스입니다.”
2015년 설립한 나라스페이스는 50kg 미만의 초소형 인공위성 설계와 제작, 발사 후 운용 등 초소형 인공위성 개발의 처음부터 마지막 단계까지 ‘엔드 투 엔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이와 더불어 인공위성 영상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 민간 기업 중 유일하게 인공위성을 보유하고 있다. 그게 바로 작년 11월 국내 최초로 우주에서 교신에 성공한 초소형 인공위성 ‘옵저버 1A’이다.
완성된 옵저버
사진제공_ 나라스페이스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기까지
우리나라의 인공위성 분야는 우주 관련 다른 분야에 비해 오랫동안 연구되어 기반이 잡혀 있는 편에 속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위성 개발 과정을 한 번에 습득할 방법은 없어 필요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알음알음 찾아가 배웠고, 부품은 직접 해외로 가 공수하는 등 부지런히 발로 뛰었다. 처음에는 초소형 인공위성이라고 해서 일반 인공위성보다는 제작하는 게 간단할 거라 생각했으나, 오래지 않아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고.
나라스페이스가 ‘옵저버 1A’를 제작하기까지는 꼬박 3년이 걸렸다. 가로세로 20cm, 높이 40cm, 무게 25kg의 옵저버 1A는 90분마다 지구를 한 바퀴 돌며 광학카메라로 지구를 촬영한다. 지상 1.5m 높이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물체 외에 특수 파장도 담을 수 있다.
“스페이스 헤리티지라고 해서 인공위성에 가장 중요한 건 우주 공간에서의 작동 여부입니다. 인공위성이 임무를 수행한 이력이 있어야 글로벌 시장에 서비스할 수 있어요.”
옵저버 1A가 교신에 성공했을 때 정말 기뻤다는 박재필 대표. 옵저버 1A는 투자금을 받아 제작했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사실 3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이유에는 제작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코로나의 영향도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투자를 약속했던 곳에서 투자를 취소하며 투자금을 모으는 데 애를 먹었던 것. 그때 투자의 물꼬를 터주었던 게 BNK벤처투자였다. 옵저버 1A의 성공적인 우주 무대 데뷔는 우리나라 인공위성 분야의 발전을 증명하는 것과 동시에 나라스페이스의 미래까지 한층 밝혀주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우주로
나라스페이스는 국가를 비롯해 대학, 기업 등과 협업하여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부산에서 추진한 초소형 인공위성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해 본체를 만들기도 했다. 지자체의 프로젝트였던 만큼 기업의 역량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고. 나라스페이스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건설기술연구원과의 하천 식생 관리, 조선비즈와 진행 중인 ‘인공으로 본 세상’이라는 전 세계 주요 정보 포스팅 등이다. 최근 가장 인기 있었던 프로젝트는 김 양식장과 사과 과수원 현황을 조사하여 김과 사과의 가격이 왜 오르는지 분석한 서비스였다.
“우주에서 나오는 데이터가 일상에 녹아들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마치 GPS처럼 많은 분야에서 자기도 모르게 우주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게 되는 거죠.”
박재필 대표는 우주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우주 인프라를 구축하는 꿈을 간직하고 있다. 나라스페이스가 걷고 있는 길을 가다 보면 결국 그 꿈에 닿게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일론 머스크가 처음 우주선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허황된 꿈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보란 듯이 성공하자 사람들은 어느덧 그의 다음 도약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그렇다면 민간 기업이 인공위성을 제작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박재필 대표는 나라스페이스의 처음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여전히 고개를 갸웃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우주 기술이라고 하면 정부 주도 기술, 국가 안보 위주의 활용만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아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우주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민간 주도의 우주 사업이 화두로 떠올랐고, 우주 경제 영역도 확장되고 있습니다.”
박재필 대표는 사람들이 인공위성을 낯선 영역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인공위성 산업을 자동차 산업에 비유했다. 자동차를 살 때 여러 가지 옵션을 선택하듯 인공위성도 전력, 데이터양 같은 부분을 용도에 맞게 맞춤 제작하는 거라 생각하면 어렵지 않다며 사람들이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다.
초소형 인공위성 분야를 개척해 나가고 있는 나라스페이스. 나라스페이스는 5년 내에 초소형 인공위성 100기 운용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코스닥 상장도 준비 중이다. ‘초소형 인공위성’ 하면 ‘나라스페이스’를 떠올릴 날이 머지않은 듯 보인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게 즐겁다는 박재필 대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 좋은 우주 기업의 사례가 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