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 구대회
조금 특별한 커피를 마시려고 커피 전문점에 가면 ‘과테말라 SHB 안티구아 핀카 몬테’, ‘콜롬비아 수프리모 후일라’ 등의 복잡한 용어를 만나게 된다. 어려운 커피 용어 속에서 길을 헤매지 않고 나에게 맞는 훌륭한 커피를 만나는 방법을 ‘3대 프리미엄 커피’ 중심으로 살펴보자.
와인만큼이나 복잡한 커피 이름
마크 트웨인이 사랑한 하와이안 코나 엑스트라 팬시, 빈센트 반 고흐가 선택한 예멘 모카 마타리, 영국 왕실이 낙점한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 흔히 세계 3대 프리미엄 커피라 일컬어지는 이름이다.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이라면 위 세 가지 커피를 다 경험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커피의 종류가 수천 가지가 넘고 위에 언급된 커피보다 품질이 더 좋은 것도 많을 텐데 어떻게 이들은 3대 프리미엄이란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을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원두 이름과 등급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카페 홍보 문구에 빠짐없이 들어가는 ‘스페셜티’와 ‘프리미엄’. 정말 그 카페의 커피는 특별하고 훌륭한 것일까. 그리고 핸드드립(브루잉 Brewing) 메뉴판에 씌어 있는 ‘과테말라 SHB 안티구아 핀카 몬테’, 이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이처럼 요즘은 커피의 이름도 와인만큼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원두의 등급은 품질과 가치 그리고 면적에 따라 커머셜(Commercial)과 스페셜티(Specialty), 프리미엄(Premium), 마이크로 랏(Micro Lot)으로 나눌 수 있다. 커머셜은 커머더티(Commodity)라고도 한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나 개인 카페에서 사용하는 원두는 커머셜 생두를 볶은 것이다. 프리미엄은 국내 생두 수입사들이 품질이 좋은 것에 붙인 것으로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스페셜티는 할 얘기가 많기 때문에 뒤에서 자세히 언급하겠다. 마이크로 랏은 이름 그대로 작은 농장 또는 큰 농장 내 작은 구역에서 수확한 품질이 우수한 원두를 말한다. 원두 이름은 대개 나라 이름, 생두의 크기나 산지 고도에 따라 구분한 등급, 농장이 소재한 지역 이름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콜롬비아 수프리모 후일라(Colombia Supremo Huila)는 콜롬비아의 후일라 지방에서 수확한 수프리모급 원두를 말한다. 수프리모는 엑셀소(Excelso)보다 높은 등급이다. 케냐AA세렝게티(Kenya AA Serengeti) 역시 케냐의 세렝게티 지역에서 생산된 AA등급의 원두를 말하며, AA가 AB보다 높은 등급이다. 콜롬비아와 브라질을 제외한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원두 등급은 산지 고도에 따라 결정된다. 과테말라 SHB 후에후에테낭고(Guatemala SHB Huehuetenango)는 과테말라의 후에후에테낭고 지역 가운데 해발고도 1,200~1,600m에서 재배된 원두를 의미한다. HB(Hard Bean)보다는 GHB(Good Hard Bean)가, GHB보다 SHB(Strictly Hard Bean)가 더 등급이 좋은 원두다.
커피에서 신의 얼굴을 보다
요즘 고급 커피의 대명사는 스페셜티(Specialty)다. 프리미엄 커피와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둘 간의 차이는 품질도 가격도 아니다. 스페셜티 커피는 스페셜티커피협회(Specialty Coffee Association) 즉 SCA에서 정한 품질 기준을 만족한 커피를 말한다. 스페셜티 커피가 되기 위해서는 외면적 평가와 관능적 평가에서 기준 이상의 점수를 획득해야 한다. 외면적 평가는 그린 그레이딩(Green grading)이라고도 하는데, 생두 350g 중에 결점두가 8개 이하여야 한다. 관능적 평가는 로스티드 그레이딩(Roasted Grading) 또는 커핑(Cupping)이라고 하며, 분쇄한 원두의 향과 커핑 시 향미 평가로 80점 이상을 획득해야 한다. 스페셜티커피협회는 1982년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국제적으로 스페셜티 커피가 관심을 받게 된 것은 2004년 베스트 오브 파나마 생두 경매에서 거래된 게이샤(Geisha)라는 커피의 영향이 컸다. 라 에스메랄다 농장(Hacienda La Esmeralda)에서 출품한 이름조차 독특한 이 커피는 당시엔 상상할 수 없는 1파운드당 21달러에 낙찰되었는데, 당시 다른 생두 경매가가 3달러 내외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 대단한 사건이었다. ‘이전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맛’이라는 평가가 뒤따랐고, 한 심사위원은 “이 커피에서 신의 얼굴을 보았다”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아주 훌륭한 와인에 대해 사람들은 ‘신의 물방울’이라고 하는 이치와 같다. 커피 이름이 일본의 전통적인 기생의 이름과 발음이 비슷해 그것과 연관이 있지 않나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전혀 관계가 없다. 이 품종의 원산지는 에티오피아 남서쪽에 위치한 게 차(Gecha)다. 1930년대 영국 외교관이 채집한 커피 열매가 케냐, 탄자니아, 코스타리카를 거쳐 파나마까지 와서 결국 70년 만에 빛을 본 것이다. 이름 또한 이 게차의 지명을 따서 영어로 게이샤라고 부르게 되었다.
세계의 명사들이 사랑한 프리미엄 커피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은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생전에 하와이안 코나를 즐겨 마셨는데, 그 어떤 커피보다 풍부한 향미를 가졌다고 호평했다고 한다. 하와이는 미국 본토 가운데 유일하게 커피가 자생하는 지역으로 자국민의 커피 자부심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일생을 통틀어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한 불운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는 알려진 대로 술이 없으면 단 하루도 지내지 못할 정도로 알콜 중독자였다. 그런 그에게도 정신을 맑게 하고 밤새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힘을 준 음료가 있었다. 바로 진한 커피였다. 어떤 공식 자료에도 그가 어떤 종류의 원두를 즐겨 마셨다는 기록은 없지만, 어느 때부터 그가 예멘 모카 마타리를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더해졌다. 원두의 품질도 좋지만, 고흐 프리미엄까지 더해지면서 예멘 모카 마카리는 여전히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19세기 태양이 지지 않는 제국을 이룬 영국은 카리브해의 섬나라 자메이카에 식민지 커피농장을 조성했다. 높은 산지, 풍부한 강수량, 서늘한 기후, 영양분이 풍부한 화산질 토양은 커피가 자라기에 더 없이 좋았다. 빅토리아 여왕 때부터 영국 왕실에 진상된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은 여왕이 사랑한 커피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달게 되었다. 영국 왕실이 자메이카에서 생산된 커피만 마시지는 않았겠지만, 20세기 이후 자메이카 커피농장을 야금야금 인수한 일본인들의 마케팅 덕분인지 어느덧 고급 커피의 대명사가 되었다.
마크 트웨인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빅토리아 여왕 초상화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 원두
예멘 모카 마타리 원두
하와이안 코나 커피 열매와 원두
3대 프리미엄 커피보다 좋은 커피도 많다
나라마다 3대 프리미엄 커피의 종류에도 차이가 있는데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인들이 빈센트반 고흐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더 좋아한다는 이유로 예멘 모카 마티리 대신에 탄자니아 킬리만자로가 그 자리를 꿰차고 있다. 그런데 이것도 일본 커피인들을 만나 물어보면 그런 사실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답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은 부드럽고 풍부한 맛이 매력적인 커피로 중간 볶음으로 볶아야 그 풍미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예멘 모카 마타리는 깊은 향과 산뜻한 산미 그리고 후미에서 단맛이 감도는 커피로 중간 볶음부터 중강 볶음까지 잘 어울린다. 하와이안 코나 엑스트라 팬시는 유달리 크고 흠이 없는 원두인데 풍부한 과일 향과 산미가 좋은 커피로 중간 볶음일 때 그 풍미가 더욱 발산한다. 샤넬보다 더 좋은 가죽으로 튼튼하게 만든 가방은 얼마든지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작은 공방에 가면 샤넬의 십분의 일 가격이면 그 보다 더 품질이 좋은 핸드백을 살 수 있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샤넬 백을 들고 싶어 한다. 그 이유는 브랜드가 주는 심미적 마취 때문이다. 3대 프리미엄 커피보다 더 향기롭고 맛있는 커피는 얼마든지 있다. 심지어 훨씬 저렴하면서 향미가 좋은 커피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시선은 프리미엄 커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