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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욕망을
비추는
에리시톤 이야기

 

신성한 나무를 베는 에리시톤, 대영박물관 소장품


글_ 김헌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교수 

 

보통 사람들을 뛰어넘는 탁월한 영웅들과 인간을 초월한 신들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신화는 겉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 모두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만 같은 영웅과 신들은 우리 일상의 상징이고 은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우리의 욕망, 특히 만족할 줄 모르고 통제되지 않는 과도한 욕망은 어떤 상징으로 그려질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에리시톤이라는 인물일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허구이지만, 그 속에 깃든 상징과 은유를 잘 살펴보면, 바로 우리의 일그러진 욕망이 보인다.


과도한 욕망의 상징, 에리시톤 

에리시톤은 그리스 중부의 테살리아 지방의 왕이었다. 테살리아는 예로부터 그리스에서 가장 비옥한 곳이었다. 척박하고 거친 산이 많은 그리스의 다른 지역에 비해 테살리아에는 비교적 넓은 평원이 있고, 땅도 비옥해서 곡물 농사가 잘되던 곡창지대였다. 에리시톤은 축복받은 땅을 다스리며 풍요롭게 살고 있었는데, 창고가 채워질수록 더 많은 곡물과 재산을 갖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늘어나는 창고는 만족할 줄 모르는 그의 욕망의 상징이었다. 욕망이 점점 부풀어나듯, 하나의 창고가 채워지면 다른 창고를 짓고, 그 창고를 채우기 위해 더욱더 열심히 일했다. 창고를 더 채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밭이 더 필요했다. 그런데 이제 테살리아의 평지는 더 많은 곡식을 심고 거둘 수 없을 만큼 모두 밭이 되었다. 에리시톤의 눈은 자연스럽게 숲을 향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숲의 나무를 베어내어 밭을 만들자. 그러면 더 많은 곡식을 거둘 수 있고, 창고도 더 지을 수 있지!” 에리시톤은 많은 일꾼들을 동원해 숲의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무가 쓰러지면서 평지가 드러날 때마다 에리시톤은 더 많은 곡식을 거둘 생각에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런데 그 숲은 대지의 여신이자 곡물과 농사를 주관하는 데메테르의 신성한 영토였고, 숲 깊은 곳에는 여신의 신성한 참나무가 우람하게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속에는 여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요정이 깃들어 살고 있었다. 일꾼들은 그 나무에 이르자, 범할 수 없는 신성한 기운을 느꼈다. 그리고 그 나무에 압도되어 두려운 마음에 사로잡혔고, 입을 벌려 감탄하며,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 못 하고 서 있었다. “뭐 하는 거냐? 어서 저 나무를 베거라! 저것만 제거하면, 이 숲 전체가 모두 밭이 될 것이다. 창고도 더 만들 수 있다. 우린 엄청난 부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전하, 무섭습니다. 저 나무는 왠지 그냥 나무 같지 않아요. 데메테르 여신의 나무라고 하던데,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런 바보 같은 녀석들! 세상에 무슨 신이 있단 말이냐! 저건 그냥 나무일 뿐이다. 우리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일 뿐이라고! 설령 이것이 여신의 나무라고해도, 아니, 여신 자신이라고 해도 쓰러뜨려야 한다. 못하겠거든, 도끼 이리 내거라!”

 

여신의 분노를 산 탐욕 

일꾼의 도끼를 빼앗은 에리시톤은 나무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도끼를 높이 들어 내리찍으려고했다. 그러자 갑자기 나무가 부르르 떨면서 신음을냈다. 초록의 잎사귀들이 하얗게 질리고, 가지와 도토리도 창백해졌다. 하지만 에리시톤은 멈추지 않았다. 신음은 그저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의 환청이며, 창백함은 햇빛이 반사되어 하얗게 보이는 착시현상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어이 도끼로 나무 밑동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그러자 도끼날에 찍힌 나무에서 피가 솟구쳐 그의 얼굴로 튀었다. 곁에 있던 수행원과 일꾼들은 기겁했다. 그중 한 사람은 그에게로 급하게 뛰어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안 됩니다, 전하. 그만하세요. 데메테르 여신께서 진노하세요!” “놔라, 이놈! 멍청한 놈. 그래 너 참 경건하구나. 오냐, 내가 너에게 그 경건에 대한 큰 상을 주마!” 그리고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나무를 찍던 도끼로 자신을 말리던 충성스런 일꾼의 목을 사정없이 쳐버린 것이다. 나무와 사람의 상처에서 솟구친 피에 온통 범벅이 된 에리시톤은 미친 사람처럼 씩씩대며 다시 나무를 향해 달려들더니 괴성을 지르며 마구 도끼질을 해댔다. 마침내 나무는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데 나무에서 고통의 한이 서린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이렇게 너의 탐욕으로 죽는구나. 나는 이 나무에 깃들어 살던 요정이다. 하지만 나의 위안은 네가 곧 큰 벌을 받게 되리라는 것이다. 너는 더욱더 풍요롭게 되겠지만, 그것이 너를 절대로 만족시키진 못할 것이다.”

 

풍요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 


욕망을 줄이는 일이 우리를 살리는 길 

참나무 거목이 쓰러지자 곁에 있는 작은 나무들도 그 무게에 짓눌려 함께 쓰러졌고, 그 안에 함께하던 작은 요정들도 질식하고 말았다. 일꾼들은 아연실색하며 불경을 저지른 에리시톤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지만, 도리어 그는 의기양양했고, 나무들의 경고를 나무들이 쓰러지면서 내는 소음이라고 무시했다. 이 모습을 보던 데메테르는 진노했고, 죽어가던 요정들의 저주와 간청을 들어주었다. 데메테르 여신은 허기의 신 리모스에게 에리시톤의 뱃속에 들어가 달라고 간청했다. 바람을 타고 에리시톤의 왕궁으로 날아온 허기의신 리모스는 잠들어 있는 에리시톤에게 다가가 팔을 벌리더니 그의 온몸을 껴안았고, 그의 입과 배와 혈관에 입김을 불어 허기를 스며들게했다. 잠자던 에리시톤의 온몸에 허기가 퍼졌다. 그리고 큰 잔치를 벌이고 끊임없이 먹어대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꿈에서 먹는 것으로는 허기가 채워지지 않자, 에리시톤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헐레벌떡 궁전의 식당으로 달려가 남아있던 음식들을 미친 듯이 먹어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먹으면 먹을수록 배가 채워지기는커녕 더욱더 배가 고파지는 것이었다. 먹어도 먹어도 그는 배고팠고, 먹으면 먹을수록 더 배고파졌다. 결국 며칠 지나지않아 음식 창고도 모두 바닥이 났다. 그는 궁전 구석구석을 뒤져서 금은보화와 재산이 될 만한 것들을 팔아 치우면서 음식을 사들였고, 사는 족족 먹어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가 되고말았다. 그래도 계속되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그는 결국 하나밖에 없는 딸까지 팔았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의 곁에는 그 누구도 함께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허기로 퀭해진 눈에 자신의 두 손이 보였다. 허기에 미친 그는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자신의 두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에리시톤은 자기 자신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다음 날, 에리시톤의 몸은 아무것도 남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이 그를 더욱 굶주리게 했고, 끝내 소멸시킨 것이다. 정말 황당무계하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욕망의 진실을 비춘다. 우리 인간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돈을 벌겠다고 아이들을 소홀히 하고 나의 몸과 마음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채우려고 자식을 팔아먹고 자기까지 먹어버리는 에리시톤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또한 아파트를 짓겠다고, 길을 더 많이 만들겠다고, 공장을 짓겠다고 에리시톤처럼 무차별적으로 나무를 베고 숲을 망치며 산을 깎으면서 개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에리시톤의 이야기는 숲을 망가뜨리고 산을 없애고 도로를 닦고 아파트를 세우는 일이 우리의 삶을 정말 풍요롭게 하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게 한다. 숲을 살리며 우리의 욕망을 줄이는 일이 우리를 살리는 길이라는, 에리시톤의 목소리가 우리의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허기를 채우지 못해 결국 자기 딸까지 팔아버리는 에리시톤,

안토니오 템페스타 作,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