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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성진 & 임윤찬
K-클래식을 이끄는
두 연주자의 음악 세계

조성진 연주자 ⓒ Christoph Koestlin/DG


글_ 허서현 월간 <객석> 기자, 사진 제공_ ‘빈체로’, ‘목프로덕션’ 

 

최근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의 화두는, 단연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임윤찬입니다. 이들의 공연은 열렸다 하면, 모두 단숨에 매진입니다. 유례없는 대중의 지지와 공연 흥행성적을 얻고 있는 이 피아니스트들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요? 이제는 K-클래식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두 젊은 연주자의 음악 세계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봅시다.


이들은 어떻게 ‘K-클래식’에 힘을 실었나 

사실, 두 사람의 커리어에는 약간의 시차가 있습니다. 조성진은 1994년생, 임윤찬은 2004년생으로 열살이라는 나이 차도 있죠. 그러나 공통점은 두 사람이 국제 콩쿠르에서의 우승을 시작으로 지금과 같은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는 것입니다. ‘콩쿠르 신드롬’에 가까운 지금의 현상은, 열 살 차이의 두 피아니스트를 묶는 연결고리가 되었습니다. 이 신드롬의 시작은 2015년, 조성진이 얻은 폴란드 쇼팽 콩쿠르(International Frederick Chopin Piano Competition)에서의 우승이었습니다. 작곡가 쇼팽의 작품만으로 승부를 보는 이 콩쿠르에서, 한국인 우승은 최초였습니다. 테크닉이나 표현력, 작품 해석까지 ‘완성형’ 피아니스트의 면모를 보여주었던 조성진에 대한 국제 음악계의 반응은 호의적이었죠. 국내에서는 마치 올림픽을 보듯,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콩쿠르 과정을 보며 응원했죠. 그해의 분위기가 폭발적인 반응을 이끄는 데에 큰 원동력이되기도 했습니다. 우승 다음 해인 2016년, 조성진은 세계적인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 계약을 맺으며 한 번 더 발돋움했습니다. 그 이후 베를린 필하모닉·빈 필하모닉과도 협연하며 세계 주요 연주자 목록에 이름을 나란히 했습니다. 콩쿠르 우승 후 10여 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지금, 그는 자신만의 견고한 음악 세계를 다지는 때에 이르렀습니다. 조성진은 올해 후배 음악가들을 위한 마스터클래스를 엽니다. 소년미 넘치던 얼굴에 어느덧 세월의 그윽함이 제법 묻어나죠.

 

임윤찬 연주자 ⓒLisa-Marie Mazzucco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열정적 연주 

그런가 하면 2022년, 임윤찬의 등장은 조금 더 소란스러웠습니다.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Van Cliburn International Competition)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을 때죠. 코로나 이후 활성화된 온라인 공연 관람의 분위기는 결선 무대 1천만 이상의 조회 수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조성진의 우승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7년 사이 문화 예술 전반에 ‘K-컬쳐’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진 것입니다. 대중가요에서는 BTS가, 영화계에서는 ‘기생충’이 이름을 날리던 시점에, 클래식 음악계에 임윤찬이라는 적절한 대상이 떠오른 것이죠. 그리고 이 10대의 피아니스트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 열정으로 몰입도 높은 연주를 해내며, 듣는 이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 잡았습니다. 우승 이후의 열기는 아직 채 가시지 않았습니다. 지난해에만 도쿄 산토리홀과 런던 위그모어홀 데뷔 리사이틀을 성공적으로 마친 임윤찬은 지난 2월 미국카네기홀 데뷔 무대까지 성공적으로 마치며 주요 공

연장에 얼굴을 알렸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신예 피아니스트에 대한 호평은 그의 활동에 힘을 싣습니다. 까칠하기로 소문난 영국의 음악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조차 그의 런던 데뷔 리사이틀에 대해 “위그모어홀에 울려 퍼진 순수한 마법이다”라고 언급합니다. 2023년, 음반사 데카(Decca)가 빠르게 임윤찬의 손을 잡고 전속 계약을 이뤄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오는 4월에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임윤찬,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의 열정적인 연주 ⓒ Ralph Lauer_The Cliburn


음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하는 임윤찬 

4월 19일, 발매를 앞둔 임윤찬의 신보는 쇼팽의<연습곡(Etude)> 전곡을 담고 있습니다. 쇼팽의<연습곡>은 작품번호 10과 25, 이 두 세트에 각각 12개씩의 곡이 들어가 있어 총 24개입니다. 각 작품에는 피아노를 연주하기 위한 서로 다른 필수 테크닉이 들어있습니다.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3도나 6도, 옥타브의 테크닉이 이어지는가 하면 트릴만 이어지는 작품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 피아노 학원에서 접한 ‘체르니’와 같은 교본이죠. 하지만 쇼팽의<연습곡>은 조금 더 특별합니다. 피아노에 정통했던 쇼팽은 이 교본적 성격의 ‘연습곡’에 음악성을 더해 예술적인 작품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그래서 쇼팽의 <연습곡> 24개는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교본이자, 피아니스트의 예술적 기본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그러니 데카에서 발매한 첫 음반으로 쇼팽의 <연습곡> 전곡을 선택했다는 것은, 신인 피아니스트에게 정면승부와도 같은 선택이죠. 임윤찬의 음반은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이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혹시 느긋하게 소파에 기대어 차를 한 잔 곁들이며 책을 읽는 동안 틀어놓을 만한 BGM으로 틀었다면, 이 젊은 피아니스트는 매 순간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번뜩이며 책을 읽을 집중력을 온통 흩트려놓을 테니까요. 그는 음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하는 ‘성실성’이 무척 뛰어난 연주자입니다. 임윤찬만의 음악 해석은 그 성실성의 순간이 모여 특별한 통찰로 빛을 발하죠. 그리고 그 통찰은 늘 예상을 조금 빗나갑니다. 그러니 음악 앞에 허리를 곧추세워 음악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면밀히 관찰하며 듣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예측 불허의 음악 앞에, 유쾌한 뒤통수 맞을 채비를 단단히 마친 채 말이죠.

 

조성진, 드레스덴 슈츠카펠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 빈체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조성진 

조성진의 디스코그라피에서 추천 음반 찾기는 조금 더 어렵습니다. 그간 발매한 음반의 수도 많고, 음반마다 가진 매력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죠. 바짝 날선 콩쿠르 실황 음반(2015년)이나 우승 후 첫 음반(2016년)인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발라드는 언제 들어도 마음이 울렁입니다. 파리에서 공부한 그의 에스프리를 느낄 수 있는 드뷔시 음반(2017년)이나 모차르트 협주곡 20번이 담긴 음반(2018년)은 그가 갖춘 절제와 균형감에서 오는 우아함을 맛 볼 훌륭한 코스 요리죠. 특정한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서 함부로 템포나 다이내믹을 바꾸지 않는 담백함이 조성진 표 피아노 음악의 매력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최근인 2023년 음반은 ‘헨델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그가 더 넓은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듯해 보입니다. 헨델은 앞서 언급한 쇼팽이나 모차르트, 드뷔시보다 훨씬 앞선 시대,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입니다. 이로 인해 조성진은 자신이 즐겨 연주하는 시대를 확장했을 뿐 아니라, 빌헬름 켐프가 편곡한 버전의 악보까지 최초로 녹음해 선보이며 예술가의 의무도 담았습니다. 바로크 시대 음악은 고전이나 낭만에 비해 악보의 기호가 자세하게 남아있지 않습니다. 현대 피아노가 탄생하기 전에 만들어진 작품들이기 때문에 해석하는 방식도 연주자마다 다를 수 있죠. 차분하게 흘러가는 헨델의 대위법적인 묘사들 속에 묻어나는 ‘조성진의 지금’을 느끼기에 가장 적절한 음반입니다. 게다가 음반에는 브람스가 작곡한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찍이 “30대가 되면 브람스의 작품을 연주해 보고 싶다”던 그의 이야기를 기억하던 이들에게는 반가운 곡이죠. 정작 조성진 본인은 “브람스를 30대에 연주할 수 있을 거라던 생각은 섣불렀다”며 후회 섞인 소회를 전했지만 말이죠. 조금 더 시간이 흘러 그가 연주한 브람스로만 점철된 음반이 꼭 출시되길 기대하게 되는 녹음입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 임윤찬 추천 음반 

조성진 

The Handel Project: Handel-Suites &

Brahms-Variations

Deutsche Grammophon 발매


 임윤찬 

Chopin: Études. Opp. 10 & 25

Decca 발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