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제주풀무질
글, 일러스트_ 리모, 여행 드로잉 작가
제주의 자연에 매료되어 수년간 방문해오다 지난 2022년부터 제주도민이 되어 이곳에서 마주한 여러 장면들을 그림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계절이 아름답지만 결핍의 계절 끝 다시 푸르러지는 봄이야말로 제주의 가장 눈부신 순간이 아닐까 해요. 섬 안 가득 피어났던 제주의 봄꽃들을 떠올려봅니다.
아직 벚꽃이 피기 전의 이른 봄. 쌀쌀한 공기 속 제주의 풍경이 황량하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1월부터 피기 시작해 3월까지 꾸준히 피어나는 붉은 동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혹독한 계절에 피어나 함께 봄을 기다려주는 이 꽃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봄꽃을 기다리는 것이 힘든 이들을 위해 서귀포의 유채는 이른 2월부터 물들기 시작합니다. 지금 절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 바로 산방산 인근의 유채밭들이지요. 용머리해안 쪽에서 산방산 방향으로 바라보면 노란 유채와 장쾌한 오름을 함께 느껴볼 수 있는 멋진 풍경이 펼쳐집니다.
함덕 서우봉 해변
함덕리는 아름다운 바다와 그 곁의 오름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마을입니다. 마을 안의 함덕 서우봉 해변은 섬 안에서도 봄의 귀환을 가장 화려하게 알려주는 곳이죠. 오름의 경사면에 피어난 노란 유채와 눈부신 백사장 그리고 에메랄드빛 바다가 어우러지는 조화로운 경관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벚꽃 중에서도 크고 탐스러운 왕벚꽃은 노란 유채와 더불어 제주의 봄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는데, 제주도는 놀랍게도 세계에서 유일한 왕벚꽃 자생지라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즉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을 이미 왕벚나무와 함께해 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혹시 벚꽃놀이가 왜색 문화라 생각되어 꺼려지셨던 분이 계시다면, 이제는 걱정 없이 우리나라의 꽃으로 당당히 아껴주어도 될 것 같습니다.
전농로 벚꽃거리
제주에는 지금도 수많은 꽃들이 피고 지고 있습니다. 겨울과 봄 사이에 피기 시작하는 청초한 수선화와 소박한 꽃잎이지만 무리지어 피어 중산간을 가득 뒤덮는 뽀얀 갯무꽃도 상춘객의 가슴을 뛰게 만들지요. 이번 봄에는 제주도로 훌쩍 떠나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섬 안에 조용히 피어난 꽃들이 여러분들을 와락 안아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