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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에
봄이 왔어요

글_ 김용택, 시인 겸 수필가

 

마을에 맑고 밝은 햇살이 가득 찼다. 뒷산 산그늘이 마을에 내려오려면 멀었다.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집 뒤 안으로 머위를 캐러 갔다. 머위를 찾다 보니, 달래가 작은 돌들 틈으로 솟아나 있다. 어! 벌써? 잘되었다며 달래를 캤다. 눈이 오랫동안 쌓여 있던 곳이다. 자갈돌을 몇 개 치우니, 달래 뿌리가 금방 하얗게 보였다. 한참 동안 정신없이 여기저기에 있는 달래를 캤다. 등이 따듯해져 오고 이마에 땀이 났다. 서서 강물을 바라보며 땀을 닦았다. 온 산에 햇볕이 가득 찼다. 숲속에서 소나무 푸른색이 푸르러진다. 느티나무, 산벚나무, 팽나무, 서나무, 밤나무, 참나무 꽃눈과 잎눈이 움튼다. 이렇게 잎눈과 꽃눈들이 눈을 뜨기 시작하면 산은 아름다운 보라색으로 살아난다.

 

달래를 캐고 빈 집터로 갔다. 머위가 여기저기 돋아나 있는 풀들 속에 작은 잎을 내밀고 있다. 호미로 땅을 헤집고 머위를 캤다. 머위 뿌리는 땅 깊이 파고들지 않고 옆으로 뻗어 가며 그 뿌리, 줄기 곳곳에서 싹이 돋는다. 한 주먹 캤다. 마당 가에 있는 넓은 바위 위에 머위와 달래를 널어놓고 고양이 보리를 밖으로 내놓았다. 털을 빗었다. 마당 잔디밭에서 놀게 두었다. 고양이는 잔디밭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뒹굴면서 놀다가 집 밖으로 나가려 한다. 달려가 집 안으로 데려다 놓고 마루에 앉아 앞산도 보고 앞 냇가도 바라보며 놀았다. 나들이 간 아내가 돌아와 바위 위에 널려 있는 달래와 머위를 보고 좋아하였다. 햇살이 마을 지붕 위에, 완성된 느티나무 꼭대기 까치집에, 강물 위에, 작은 논과 밭에, 마을 앞 강변에 가득찼다. 봄이 오는 기미를 알고 있는 까치 부부는 한 달여 동안 집을 수리하였다. 제 키보다 큰 나무 막대기들을 물고 날아가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우리 동네에 사는 새 중에 까치만이 작년 집을 수리하여 올해를 살고, 그래도 집이 튼튼하면 내년 봄에 또 수리하여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운다. 까치 부부는 하루도 쉬지 않고 나무 밑에서 바람 불면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물어 날라 집을 수리하며 나무 막대기를 여기저기 질러 넣어 비바람에 견딜 튼튼한 집을 지었다. 다른 새들은 집을 버리고 살다가 봄이 오면 새로 짝을 찾아 집을 짓고 알을 낳아 새끼를 길러 새끼들이 독립하여 날아가면 집에 들지 않는다.

 

비가 오는 날에도 바람 부는 날도 봄눈이 휘몰아치는 날에도 쉬지 않고 집을 다 수리한 까치 부부가 한가하게 마늘밭을 돌아다닌다. 느티나무에 앉아 쉰다. 까치 부부가 부산했던 몸을 한가하게 놀리며 쉬고 있는 모습이 보기도 좋아 내 기분이 홀가분해진다. 집짓다 보면 싸운다. 집 짓다가 헤어졌다는 ‘사람 부부’도 있다. 이제 여름이 와서 파랑새에게 집을 뺏기지 않으면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를 것이다. 까치 부부가 다 큰 새끼 까치가 날 수 있도록 연습을 시키는 것을 보며 나는 즐거워할 것이다. 우리 마을에는 까치 부부 한 쌍이 살고 있다. 햇살이 마을에 가득하다. 거실 밖 바위 위에, 뽑혀와 있는 달래와 머위 구근과 실뿌리에도 햇살이 찾아 들어갔다. 뿌리를 따라온 흙이 말라 돌 위로 떨어졌다. 오리가 날아간다. 물까치가, 참새가 날아간다. 까마귀가 날아간다. 비둘기들이 산속에서 마을로 나왔다. 전깃줄에 앉았다. 풀들이 우우우 돋는다. 푸르다. 풀꽃들이 피어난다. 까치 풀꽃이 작년 보라색, 연 보라색으로 피었다. 꽃다지, 냉이 꽃이 피었다. 언제 저렇게 땅 위로 솟아났을까. 손가락 길이로 자란 꽃이 놀랍다. 놀랍다. 신비롭다. 감동적이다. 쑥도 돋는구나. 샘가에 돌, 돌에 이끼, 돌 옆에 조팝나무 실가지 끝에 꽃눈이 푸른 눈을 틔웠다. 어떻게 저렇게 실낱같이 가는 가지로 혹독한 추위 속에서 살았을까. 해마다 보는 일이지만 나의 감동은 시들지 않았다. 햇살이 돌담 틈 깊이 찾아 들어가 놀다 나온다. 햇살은 생각보다 천천히 지구 위를 지나간다. 모든 생명을 위하여 벌레집과 땅속 지렁이와 흙 밑에 땅강아지들에게도, 두더지에게도, 햇살은 지나간다. 개미집이 따뜻해진다. 강아지풀 씨가 따뜻해진다. 흙이, 흙 속에 작은 돌들이, 거름이, 습기도, 흙 속을 지나가는 물도 따뜻해진다. 온 대지가 온기로 그득해 진다. 불어라! 봄바람아! 앞산 푸른 소나무 위를 지나가는 구름아! 강물이 따뜻해진다.

 

햇살을 온몸에 가득 안고 등에 지고 호미를 손에 들고 마을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나는 마을 어디에 머위가 있고, 달래가 있는지 잘 안다. 어디에 어떤 바위가 있고, 어디에 얼마나 큰 감이 열리고 어디에 올밤과 늦은 알밤이 열리는지 안다. 나는 오늘 머위와 달래가 있는 곳을 찾아다닐 것이다. 머위는 현이네 집 뒤 안, 우리 집 뒤 안, 태금이네 뒤 안, 태성이네 뒤 안, 이장네 집 뒤 안, 양식이네 집 옆 빈터에 해마다 자란다. 마을 회관을 지났다. 점순이네 집을 지났다. 개가 짖는다. 저 개는 아무나 보면 짖어 마을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는다. 주성이네 집을 지났다. 주성이네 집으로 들고양이 새끼 두 마리가 뛰어간다. 태금이네 빈집 마당 고양이 똥을 피해가며 뒤 안으로 갔다. 머위와 달래와 돌나물이 많이 나는 태금이네 집 뒤 안을 작년에 다듬어서 달래도 머위도 보이지 않는다. 태금이네 집을 나와 태환이 형네 빈 집터를 지나 뒷산으로 올라간다. 거기도 덤불이 우거져 길을 막았다.

돌담 너머로 태주네 집 뒤 안을 넘어다보았다. 바위 틈에 머위가 많이 나는 곳이다. 없다. 머위는 자갈이 많은 곳이나 낙엽이 쌓여 썩은 땅에 많다. 태성이네 집 앞을 지난다. 이장네 집 비탈길을 올라가다 태성이네 집 뒤 안을 넘어다봤다. 아직 안 났다. 이장네 비닐하우스 몇 개 속을 들여다보았다. 혹시 머위가 있는지 달래가 있는지 찾았다. 없다. 이장네 집 뒤, 윤환이네 빈 집터를 지나 뒷산으로 올라갔다. 풀들이 우북하게 자란 묵은 밭을 지나갔다. 묵은 밭에도 햇살이 가득하다. 마른 풀들이 누워 있는 풀잎 사이로 새 풀들이 돋아난다. 멀리 휘돌아 가는 강물을 보았다.

 

  


묘지 몇을 지나 대숲 사이로 난 길을 지나갔다. 댓잎에 부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햇살이 우수수 부서져 푸른 대나무 사이로 떨어진다. 가재들이 사는 도랑 건너 솔숲 솔바람 소리가 내 온몸으로 쏟아진다. 마을로 길을 잡아들었다. 어디에도 아직 머위가 돋아나지 않았다. 양식이네 집 옆 빈터에 달래 몇 포기가 우북하다. 주저앉아 호미로 땅을 팠다. 우와! 의외로 구근이 굵다. 희고 곱다. 캤다. 달래를 들고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현수네 집을 지났다. 현수네 집 앞 빈 논에 물이 가득 찼다. 논 언덕 아래 작은 도랑에 개구리알이 있다. 많이도 울어 놓았다. 봄이 되면 올챙이가 꼬물거리다가 올챙이가 개구리 새끼가 되면 물총새가 작은 도랑가 나뭇가지 꼭대기에 앉아 있다가 어린 개구리들이 폴짝폴짝 뛰면 잽싸게 낚아채 갈 것이다. 다시 태성이 집이다. 

커다란 트랙터 옆을 지나 마을 앞 찻길로 나간다. 내 손에는 지금 달래 몇 포기가 들려 있다. 강가에 붉은 머리 오목눈이들이 마른 억새밭에서 비비비 운다. 물소리가 들린다. 오리들이 날고 저쪽에, 왜가리가 한마리 몸을 웅숭크리고 앉아 있다. 홀로 사는 마을 노인 같다. 이장네 밭 환용이 밭을 지나 점순이네 마늘밭에 점순이 부부가 쇠막대기를 땅에 박고 있다. 아내는 쇠막대기를 잡고 남편은 망치로 쇠막대기를 두드려 박는다. 울타리를 칠 모양이다. 마을 풍경이 달라졌다. 다시 회관 앞이다. 집으로 들어왔다. 아까 캐다 놓은 머위와 달래들이 바위 위에 가만히 마르고 있다. 그 옆에 새로 캔 달래를 놓았다. 작지만 그럭저럭 한 끼 먹는 반찬은 되겠다. 봄을 맛볼 수 있겠다.

 

방으로 들어가 손을 씻고 물을 마시고 창가에 섰다. 뒷산 산그늘이 마을을 덮고 강을 건넌다. 봄이다. 봄볕이 마을을 벗어난다. 봄이다. 산천에 햇살이 하루종일 마을에 살았다. 나는 마을 모든 생명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 소리를 들었다. 그 뿌리들을 보았다. 그 싹을 보았다. 그 모든 소리가 물소리로 모여들어 산천에 뿌려졌다. 용서를 모르는 용감하고 씩씩하고 희망찬 저 산에 저 푸른 소나무 가지 솔잎 끝에, 따듯해지는 저 강가 바위에 내 시가 산다. 나는 내가 시를 쓰지 않았다. 자연이 하는 말을 받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