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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을 이어온
생명에 대한 찬양
십장생도十長生圖

사진 제공 :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십장생도 병풍, 가로 380.4cm, 세로 210.0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사람이 늙지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것은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꿈이다. 하지만 불로불사의 낙원에 대한 꿈은 우리나라에서 수천 년간 독특한 상징과 문화로 면면히 이어져 와서, 마침내 ‘십장생도’라는 걸작을 꽃피워냈다.

 

세밀한 묘사, 화려한 채색 

민화에서 ‘장생도(長生圖)’란 오래 살기를 염원하는 그림으로, 장수를 상징하는 물상들을 그려넣은 것을 말한다. 장생도에는 십장생도(十長生圖), 노송도(老松圖), 괴석도(怪石圖)등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십장생도가 가장 대표적이다. 십장생은 예로부터 불로장생의 상징인 열 가지 사물을 말하는데, 십장생도 그림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열 가지를 넘는 경우가 많다. 십장생에는 해, 달, 구름,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천도복숭아, 영지버섯 등이 있다. 이들 장생물은 한국인의 토속 자연물 숭배 사상을 기반으로 중국의 신선사상(神仙思想)을 수용하여 이루어졌다. 즉, 천신(天神)·일월신(日月神)·산악신(山岳神) 등의 무속 신앙에 학, 불로초, 천도복숭아, 대나무 등으로 대표되는 신선 사상이 결합하여 성립한 것이다. 그리고 이 열 가지의 장생물을 한 화면에 다 들어가게 배치한 그림을 구상한 것은 중국이나 일본에 없는 한국 고유의 착안이라는 점에서 우리 선조들의 창의성을 엿볼 수 있다. 십장생도는 혼례, 회갑잔치 등 주로 큰 행사에 사용하기 위해 키가 큰 병풍으로 꾸며졌다. 세밀하게 묘사하고 화려하게 채색하여 품격이 높다는 점이 특징이다. 정초에 왕이 중신들에게 십장생도를 새해 선물로 내렸다고 하는 문헌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십장생도는 주로 상류계층의 세화와,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그림으로 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건희 컬렉션 십장생도 10폭 병풍, 가로 370.7cm, 세로 151.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기념우표나 NFT로 발행되기도

십장생도는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었던 궁중의 도화서 화원들이 그렸기 때문에 대부분 그림들이 명작이지만 그중에서도 삼성그룹의 고(故) 이건희 회장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십장생도가 가장 눈에 띈다. 그림을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자. 산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하늘에는 구름이 있다. 청록으로 빛나는 바위 사이로 폭포가 쏟아지고 소나무 아래에는 불로초인 영지버섯이 자라난다. 소나무에 학이 날아들고, 사슴은 오솔길을 누빈다. 거북은 신령한 기운을 토해내고 있다. 가득 열린 복숭아는 이곳이 신선 세계임을 알려준다. 누구나 꿈꾸지만 쉽게 도달할 수 없는 불로장생의 무릉도원. 과거 우리 선조들은 이러한 십장생도를 보면서 지친 마음을 달래고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기를 꿈꾸었을 것이다. 지난해 3월, 우정사업본부는 고(故)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십장생도 작품을 소재로 한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이 작품과 별개로, 고(故)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이었던 다른 십장생도 작품은 대체 불가능 토큰(NFT, Non Fungible Token)으로 발행되어 경매에 나옴으로써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도교의 낙원과도 연관이 깊어

십장생의 개념은 중국의 도교와 관계있는 고구려 벽화에도 나올 만큼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십장생도가 표방하는 낙원, 곧 선계(仙界)는 구체적으로 삼신산(三神山)과 관련이 있는데, 삼신산은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州)라고 부르는 도교의 낙원이다.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에 따르면 “이 삼신산이라는 곳은 전하는 말에 의하면, 발해(渤海) 한가운데 있는데, 속세에서 그리 멀지 않다. 여러 신선들과 불사약이 모두 거기에 있고, 모든 사물과 짐승들이 다 희며, 황금과 은으로 궁궐을 지었다고 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구름과 같은데 막상 도착해보면 삼신산은 도리어 물 아래에 있다.”고 전한다. 십장생도는 고려 말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하여 조선시대 초기에는 동경(銅鏡, 구리로 만든 거울) 등에 나타나고, 중기 이후에는 병풍에서부터 벽화, 자수, 도자기, 목공예품, 나전 공예품, 벼루 등에 넓게 분포되어 나타났다.

 

국가의 안녕과 개인의 복을 기원한 그림

그렇다면 십장생 각각의 소재가 내포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태양은 지상 최고 권력의 상징이며 모든 빛의 근원으로서, 동양철학에서 남성 원리인 양(陽)의 구체적인 본질이다. 구름은 비와 바람과 더불어 자연의 순조로운 조화와 농경사회의 풍요로운 힘을 상징한다. 산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의 무속신앙과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오악(五岳)을 정하고 이에 신격을 부여하여 국가를 수호하는 신으로 받드는 의식을 치르기도 했다. 즉, 산은 국가에 안녕을 가져다주고 개인에게는 화를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 신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물은 맑음, 깨끗함, 변화, 순리, 너그러움 등 다양한 상징성을 내포한다. 소나무는 대나무와 함께 절개 또는 지조의 상징으로 삼았다. 학은 신선의 탈것으로, 자태가 청초하고 고귀하여 신성한 새로 여겨졌다. 거북은 일단 수명이 길고 물과 육지에서 동시에 사는 특성으로 인해 신성함을 나타냈다. 사슴은 영생과 재생의 상징으로 수천 년을 살 수 있는 장수의 영물로 전해졌다. 또한 사슴은 신선의 벗으로 어질고 인자한 짐승으로 도인의 품성을 갖춘 동물로 인식됐다. 돌은 견고하고 변하지 않는 속성으로 칭송받았다. 불로초는 한번 먹으면 늙지 않고 무병장수하는 신비의 풀로, 장수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