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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 같은
어촌 마을
이탈리아 친퀘테레

이탈리아의 친퀘테레는 흡사 ‘육지 속의 섬’이다. 깎아지른 암벽 해안을 따라 도로도 없고 철길만 있다. 절벽 위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조그만 집들과 골목 사이로 느긋한 여행을 떠나보자.

 

글·사진_ 이영철 여행작가, <세계 10대 트레일> 저자 


한 달쯤 살고 싶은 유럽 마을 1위 

이탈리아 지도를 놓고 보자. 북쪽 끝에 밀라노가 보이고 동쪽으로 베네치아, 조금 내려오면 피렌체가 있다. 반도의 한가운데쯤이 로마, 남쪽으로 나폴리가 보인다. 이 도시들 정도만 돌아보면 이탈리아 여행은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탈리아를 처음 간다면 모를까 두 번째 여행인데도 ‘친퀘테레’가 제외됐다면 후회할 일이다. 몇 년 전 대한항공이 선정한 ‘한 달쯤 살고 싶은 유럽 베스트(Best) 10’에서 1위를 차지했던 곳이다. 라틴어로 ‘친퀘(cinque)’는 ‘다섯(5)’, ‘테레(terre)’는 마을이나 지역을 뜻한다. ‘다섯 개의 마을’이란 두 개 단어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고유명사로 굳어졌다.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거대 암벽 위와 아래로 크고 작은 어촌 마을 다섯 개가 그림처럼 나란히 열 지은 것이다. 가장 남쪽 마을 리오마조레를 시작으로 마나롤라, 코르닐리아, 베르나차를 거쳐 가장 북쪽의 몬테로소까지이다. 친퀘테레는 여성 부츠 모양을 닮은 이탈리아반도의 북서쪽에서 지중해에 면해 있다. 부츠맨 위쪽에 콜럼버스의 고향 제노바가 위치하고, 그 조금 아래가 사탑의 도시 피사이다. 친퀘테레는 제노바와 피사의 중간쯤이다. 험하고 가파른 산길을 지나거나 바닷길로 배를 이용해야만 이 마을로 들어올 수 있었기에, 오랜 세월 접근성이 떨어지는 산간 오지로 남을 수 있었다.


Cinqueterre

리오마조레 - 마나롤라 - 코르닐리아 - 베르나차 - 몬테로소



아름다운 바다 전망이 보이는 절벽에 형형색색의 가옥이 있는 작은 마을에 있는 마나롤라


천천히 음미해야 하는 소박한 마을 풍경

이곳에선 그 옛날 터키 등 외부인들의 침입에 대비하여 험한 절벽 위에 일부러 위태롭게 집들을 지었다. 멀리 고기잡이 나가 돌아올 때 자기 집을 잘 알아보기 위하여 각기 자기만의 다른 색깔로 집들을 칠했다고도 한다. 술에 취한 어부들이 밤늦게 자기 집을 잘 찾아오도록 각기 고유의 색깔로 구분했다는 우스개도 있다. 생존과 삶의 방편으로 지어진 그 옛날 가옥들 덕에, 오늘날에는 유명 크루즈선들의 정박지가 되거나 수많은 방문객들이 몰리는 유명 여행지가 되었다. 흡사 ‘육지속의 섬’이다. 깎아지른 암벽 해안을 따라 도로도 없고 철길만 있다. 기차 외의 대중교통은 이용할 수가 없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해변길과 절벽길 그리고 산길을 따라 걸으며 다섯 마을을 모두 거치는 여정이 친퀘테레 트레킹이다. 총 거리 18km밖에 안 되기에 빨리 걸으면 하루에도 마칠 수는 있다. 그러나 다섯 개의 지중해 마을을 천천히 둘러보며 음미하는 게 핵심이다. 최소한 1박 2일 여정은 되는 게 좋다. 다섯 마을을 관통하는 기차가 시간당 두어 차례씩 꾸준히 이어진다. 걷다가 힘이 들면 마을 역에서 기차로 갈아탈 수도 있어 여유롭고 느긋한 트레킹 여정이 된다.

 

 


첫 번째 마을, 리오마조레(Riomaggiore) 다섯 번째 마을 몬테로소 알마레 기차역 바로 앞에 펼쳐진 해수욕장 전경

역에 내리면 마을 복판과 이어지는 터널로 들어선다. 잠시 후 터널이 끝나고 리오마조레 마을이 나타나는 순간 바다 내음과 함께 벅찬 감흥이 몰아친다. 다섯 마을 중 외부와 가장 가까운 위치라서 상대적으로 더 현대적인 분위기다. 흰색 포말들이 출렁이는 에메랄드빛 바다는 지중해 해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그 거친 바다를 막아선 해안 절벽들이 수직으로 성채를 이룬 모습은 장관이다. 그 성채 위로 빼곡빼곡 박혀 있는 조그만 집들은 도화지 위에 형형색색 수채화를 그려 놓은 듯 이국적이다.

 


 

두 번째 마을 마나롤라(Manarola) 인근 라스페치아 항에서 여행자들을 싣고 친퀘테레 해안선을 둘러보는 페리선들

남해의 가천 다랭이밭 같은 계단식 마을이다. 가파른 절벽 위에까지 촘촘히 올라앉은 가옥들이 위태로워 보이는 풍경이다. 다섯 마을 중 외부에 가장 많이 알려졌다. 친퀘테레를 알리는 엽서나 사진에 가장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리오마조레와 마나롤라를 잇는 구간은 ‘사랑의 길(Via Dell'Amore)’로 불린다. 연인들의 자물쇠 더미 등 아기자기한 조형물들로 꾸며져 낭만적인 길 풍경을 연출한다. 절벽 중턱을 가로지르는 완만한 오르막길이라 시원한 바람과 주변 풍광이 더더욱 정겹게 다가온다.

 


 

세 번째 마을 코르닐리아(Corniglia) 두 번째 마을 마나롤라 기차역

바닷가와 인접한 다른 네 개 마을들과 달리 천혜의 요새 같은 고지대 산속 마을이다. 와인으로 유명한 마을이라 계단식 경작지와 포도밭이 마을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잠시 트레킹을 멈추고 카페에 들러 와인 한 잔 마시는 건 이곳에 대한 예의다. 옛날 여기 정착해 포도를 재배하며 살았던 지주의 어머니 이름 ‘코르넬리아’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됐다. 지중해 바닷가에서 트레킹하며 와이너리 여행까지 겸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코스다.

 


 

네 번째 마을 베르나차(Vernazza) 다양한 색상의 건물이 모여 있는 두 번째 마을, 마나롤라

지나온 세 곳 마을이 소박한 시골 또는 한적한 어촌 분위기라면 베르나차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북적인다. 건물들이 들어선 위치도 가장 낮다. 외지의 여타 항구에 비하면 조그맣지만 친퀘테레에서는 그래도 규모가 가장 큰 항구 구실을 하고 있다. 아담한 방파제로 막아 놓은 항구 앞에는 자그마한 크루즈 선이 부지런히 승객들을 실어 나르고, 항구 백사장에는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기는 여행객들로 붐빈다. 마을 중심지인 마르코니 광장에는 여느 유럽 도시처럼 거리 예술가들이 주변 모두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다섯 번째 마을 몬테로소(Monterosso al Mare) 두 번째 마을 마나롤라 해변에 있는 자그마한 레스토랑 La Scogliera

마지막 마을까지 가는 길은 가장 난코스다. 가파르고 좁은 숲길과 돌계단을 한 시간 반 정도 오르고 내리다 보면 절벽 중턱 포장도로 아래로 몬테로소 해변과 마을 정경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해변의 길이도 베르나차에 비하여 훨씬 길고 마을의 규모도 다섯 마을 중 으뜸이면서 가장 번화하다. 미로 같은 골목길 양쪽으로 고급스런 레스토랑이나 야외 카페가 즐비하다. 풍성한 해산물에 와인을 즐기는 풍경들이, 지나온 네 개 마을과 큰 차이를 보인다.

 


여러 색상으로 장식된 전형적인 건물인 베르나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