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책가도 병풍>, 작가 미상, 가로 297.0cm×세로 126.1cm(1폭),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책가도는 책을 숭상했던 조선시대 선비들의 이상과 연관이 깊다. 하지만 조선 후기 상업과 도시 문화의 발달이라는 배경 속에서 진기한 기물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려는 욕망 또한 숨겨져 있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운 그림이다.
투시도법과 명암법 응용해 이색적
‘책가도(또는 책거리도)’는 책과 종이, 붓, 먹, 벼루 등 문방구류를 꽃병, 주전자 등 다양한 장식물과 함께 그린 그림을 말한다. 책꽂이 형태를 8폭, 10폭의 병풍에 그린 후 그 안에 책과 기물이 가지런히 쌓여 있는 모습으로 그린 책가도와, 책꽂이는 생략하고 화면 위아래로 책과 물건만 나열하여 그린 책가도의 두 종류가 있다. 책가도는 당시로서는 서양화에서나 볼 수 있던 ‘투시도법’과 ‘명암법’을 응용해서 그려 조선 전통적 화법으로 그려진 그림에 비해 공간감과 입체감이 훨씬 살아 있다. 특히 책을 아슬아슬하게 쌓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각적인 긴장감을 갖게 하는 점이 매력적이다. 책들은 화면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아랫면이 보이고 아래로 배치될수록 윗면이 보이는 등, 책 표현에 일점투시도법에 가까운 원근법을 적용하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책을 지그재그로 배치하여 단조로운 구성을 피했다. 책가 옆면의 갈색을 뒤로 갈수록 진하게 표현하여 책과 기물을 넣은 사각형 공간에 공간감을 주기도 했다. 책을 실제로 곁에 둔 것처럼 보여야 했기에 서양화의 사실적인 기법을 도입한 것이다. 또한 왕실과 양반의 고급 취향을 반영한 만큼 책가도는 당대의 일반적인 그림에 비해 무척 화려하게 그려졌다. 조선 후기의 성군으로 추앙받는 정조대왕도 책가도를 무척 좋아해서 “책을 즐겨 읽지만 일이 많아 책을 볼 시간이 없을때는 책가도를 보며 마음을 푼다.”라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책가도는 왜 그렸을까? 조선시대에는 책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책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출세하기 위해서도 책을 읽어야 했지만 책을 읽어 문화적 소양을 쌓는 것은 선비의 기본 의무와도 같았다. 그만큼 책이 생활 전반에 깊이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궁중에서부터 민간에게까지 광범위한 계층에서 모두 사랑받는 그림, 책가도가 유행하게 되었다.
<책가도 6곡병> 작가 미상, 세로 152.2cm×가로 68.3cm(1폭),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늘날 현대인들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의 SNS를 통해 자신의 높은 생활수준이나 교양 등을 자랑하곤 한다. 조선시대에도 자신을 자랑하는 방법이 있었으니, 그중 하나가 책가도였다. 기본적인 책과 문방구류뿐만 아니라 도자기, 청동기, 옥 등 귀한 물건을 함께 진열해 놓은 모습은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좋은 ‘구경거리’였다. 영·정조 시대의 문예부흥기에 그려진 책가도는 대개 궁중화원들이 제작한 것으로, 일반 서민들이 쉽게 볼 수 없던 북경 도자기와 시계, 안경, 부처의 손을 닮은 남방의 열매 불수감(佛手柑) 같은 과일 등 진귀한 기물들이 다수 나타난다. 이를 통해 당대 상류층의 기호와 심미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다양한 기물이 지닌 의미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얼핏 사치품으로 보이는 공작 깃털과 산호는 관직과 지위를, 불수감(佛手柑)과 석류는 각각 다복과 다산을 상징한다. 서재에 두고 보는 그림이었던 만큼, 생활 속에서 잊지 않아야 하는 이상과 염원하는 소망을 각종 상징물에 담아냈음을 알 수 있다. 궁중에서 시작한 책가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민간으로 확산됐다. 이는 책가도가 유행했던 조선 후기의 시대상과도 관련이 있다. 서양의 사상과 문물이 들어오며 신분제가 흔들렸고, 호적을 사고 파는 일 또한 빈번하게 일어났다. 돈으로 양반이 된 이들은 선비 정신이 담긴 책가도를 통해 자신들의 양반다움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로써 책가도는 궁궐에서 여염집 안방까지 널리 전파됐다.
<책가도 8폭 병풍> 작가 미상, 세로 140.3cm×가로 54cm(1폭),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조선 후기 도시 문화 발달과 연관 깊어
조선 후기 책가도의 유행에 대해 미술사학자 고연희는 이렇게 말한다. “책가도의 주제는 진귀한 물건들을 보고자 또 소유하고자 하는 물질적 욕망이다. 이 욕망은 도시 문화의 발달과 문화적 물품의 생산, 그리고 자본의 발달등 사회적 배경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처럼 책가도는 양립하기 어려울 것 같아 보이는 선비의 ‘이상’과 ‘욕망’, 두 개념이 서로 반목하지 않고 조화롭게 어울려 있는 그림이라는 점에서 이색적이라 할 수 있다. 책가도에 그려진 기물들의 상징성도 제 각각이다. 배추 모양의 옥은 아름다운 장식이면서 길상(吉祥: 운수가 좋을 조짐)의 상징이다. 복숭아는 장수를 뜻하며, 박쥐는 ‘복(福)’과 발음이 비슷하여 복을 상징한다. 배추는 ‘발재(發財)’와 발음이 비슷하여 돈을 많이 번다는 의미이다. 궁중화풍의 책가도는 19세기 민화로 확산되면서, 책가가 있는 책거리보다 책가가 없는 책거리가 더 성행했다. 민화 책거리는 크기가 작기 때문에 책가가 있는 것보다는 책가가 없이 책을 비롯한 기물들을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작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담기 위해 책을 비롯한 기물들을 응집해서 그리고, 평면적인 공간으로 표현하는 등 서민취향에 부응한 변화를 보였다. 조선 후기와 구한말까지 계속 이어진 책가도의 인기는 오늘날에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실내 인테리어 장식품으로 ‘책가도’ 포스터나 액자를 걸어두고 있다. 생활한복, 명함집, 파우치, 넥타이 등에도 전통 책가도 디자인이 응용되어 눈길을 끈다. 또한 지난 2022년에는 세계적인 IT기업 애플이 우리나라 명동의 애플스토어 외벽 디자인을 책가도로 꾸며 화제가 된 바가 있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책가도는 현대에도 그 생명력을 변함없이 유지하며, 다양한 디자인 상품과 예술 작품으로 계승 및 재창조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