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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을 만든
종잣돈

종교 개혁으로 막대한 부를 얻었던 헨리 8세의 초상화


글_ 안계환 금융칼럼니스트, <세계사를 바꾼 돈> 저자 


헨리 8세의 교회개혁을 통한 재물 확보가 영국 해군 창설의 밑바탕이 되었다면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칼레 해전 승리와 보물선 약탈은 대영제국 탄생의 종잣돈이 되었다.


종교개혁이 만들어 준 잉글랜드 함대 

19세기 이후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대단한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대륙과 떨어져 있던 가난한 변방 국가였을 뿐이다. 그런데 어떤 계기로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국가가 되었을까? 그 시작은 이혼을 위해 교회 개혁을 단행했다는 16세기 잉글랜드의 헨리 8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헨리 8세는 왕비 캐서린과의 혼인 무효를 로마교황청에 요청했다. 하지만 이것을 거절당하자 교황청과의 단절을 선언했고 스스로 잉글랜드 국교회의 수장이 되었다. 이후 그가 시행한 것은 종교시설 폐지법의 시행이었고 이로써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560개의 수도원이 해산되었다. 그렇다면 수도원이 갖고 있던 막대한 토지와 재물은 누구의 소유가 되었을까? 당연히 귀금속은 녹여져 왕실의 소유가 되었고 토지는 귀족들에게 팔아서 엄청난 재물이 되어 돌아왔다. 이후 헨리 8세는 아일랜드를 공격해 그곳에서도 수도원을 파괴한다. 이로써 잉글랜드와 아일랜드를 합쳐 사라진 수도원의 숫자가 800개에 이르렀다. 엄청난 숫자의 수도원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재물을 얻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헨리 8세를 부자로 만들어준 것은 분명하다. 이후 왕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업은 해군을 창설하는 일이었다. 그는 자체적으로 군함을 건조하면서 가까운 뤼벡크,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멀리 제노바에서도 배를 구입했다. 10년이 지나자 그의 함대는 새로 만든 갤리언선 40척, 갤리어스선 15척을 거느리게 되었다. 1546년에 이르러 헨리 8세는 해군부를 창설했는데 이 조직은 300년 동안 유지되었다.



보물선 약탈로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초상화 


대영제국의 종잣돈을 만든 해적질 

십여 년이 흐른 1558년 11월, 엘리자베스 1세가 25살의 나이로 화려한 대관식을 치렀다. 그녀는 헨리의 사생아로 왕위 계승의 가능성이 별로 없었는데도 운명은 그녀에게 대영제국을 일으킨 여왕으로 역할을 부여했다. 왕위에 오르고 삼십년이 지난 1588년 8월, 도버해협 칼레 해안에서 에스파냐 해군 아르마다와 잉글랜드 해군은 일전을 벌였다. 이때 아르마다는 137척 중 65척이 대형 범선이었을 정도로 강력했다. 이에 비해 잉글랜드 해군은 197척으로 숫자는 많았지만 대부분 소형이었고 전투원의 숫자도 적었다. 그러나 이 해전의 승패는 영국의 작지만 빠른 함선과 시대 변화에 맞춰 구축된 대포가 결정했다. 칼레 해전의 승리는 대영제국의 위대함을 나타내주는 것으로 역사에 남았다. 이 해전에서 첨단 무기와 기민한 작전능력을 가진 잉글랜드 해군의 우세는 확실했으며, 함선을 확충하고 신형 대포를 제조해 국력을 신장시킨 아버지 헨리 8세의 유산이 큰 힘을 발휘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1592년 여름, 진귀한 보물과 향신료를 가득 실은 포르투갈 선박 ‘마드레 데 디오스’호가 잉글랜드 함대에 나포되었다. 3년 전 건조된 이 배는 배수량 1,600톤으로 잉글랜드 함대의 가장 큰 전함보다 3배 이상 컸다. 배에는 금과 은, 진주·다이아몬드·호박 같은 보물은 물론 후추 450톤과 정향 45톤, 계피 35톤 등 값비싼 향료와 중국산 비단이 가득 실려 있었다. 가치로 따지면 약 50만 파운드로 당시 잉글랜드 재정의 절반에 이르렀고 해상 약탈로는 전무후무한 규모였다. 전함 7척으로 구성된 함대가 아조레스 해역에서 10일간 매복한 결과물이었다.


오늘날 매칭 펀드와 닮았던 여왕의 투자 

이렇게 확보한 전리품은 대부분 엘리자베스 여왕의 소유가 되었는데 이는 여왕의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려 투자 원금의 2,000%에 달하는 수익률을 올렸던 것. 여왕의 투자가 이상하게 들리지만 잉글랜드 함대 자체가 상설 해군이 아니라 귀족과 상인들이 펀드를 조성해 꾸민 급조 함대였다. 여왕이 부왕으로부터 물려받은 함선에 투자하고 귀족과 상인들이 돈을 모았으니 오늘날의 매칭 펀드와 닮았다. 보물선 디오스호 나포는 잉글랜드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이 배에 실려 있던 ‘동양 보고서’는 1590년 마카오에서 인쇄된 것으로 중국과 일본에서 무역하는 방법에 관해 상세히 알려주고 있었다. 결국 잉글랜드는 8년 후인 1600년에 이르러 동인도회사를 세우고 본격적인 동양 공략에 나섰다. 정리해 보면 대영제국이 시작된 것은 헨리 8세가 교회개혁을 통해 재물을 확보해 해군을 창설하면서부터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그 해군으로 에스파냐 군대를 격파했고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보물선을 약탈했다. 결국 이렇게 만들어진 재물은 동인도회사에 투자되었고 막대한 이익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이후 전 지구의 5분의 1이나 식민지로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