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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때문에 출세한
화가 변상벽
<참새와 고양이>

변상벽, <참새와 고양이(猫雀圖)>, 60cm×124.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 제공 : 국립중앙박물관, 간송미술관 


주변에 김홍도 같은 쟁쟁한 천재들이 널려 있던 도화서에서 기죽지 않고, 자신만의 장점을 살린 ‘고양이 그림’으로 승부해 시대를 풍미했던 화가 변상벽에 대해 알아보자. 


변고양이라 불렸던 화가 

변상벽(卞相璧, 1730~1775)은 조선 후기, 숙종과 영조 때 활동한 도화서 화원(圖畵署畵員)이다. 자는 완보(完甫), 호는 화재(和齋)이며, 현감 벼슬을 지냈다. 인물과 짐승 그림에 뛰어났는데, 특히 고양이와 닭 그림을 잘 그려 ‘변고양(卞古羊)’과 ‘변계(卞鷄)’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했다. 그의 고양이 그림은 일상생활 속에서 동물에 대한 깊은 애정과 면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세밀하고도 빈틈이 없는 묘사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작자 미상의 <진휘속고(震彙續攷)>라는 책에는 변상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화재(변상벽)는 고양이를 잘 그려서 별명이 변고양(卞古羊)이었으며 초상화 솜씨가 대단해서 당대의 국수(國手)라고 일컬었는데 그가 그린 초상화는 백(百)을 넘게 헤아린다.” 이 책에 적힌 대로 변상벽은 고양이 그림과 인물 초상화로 명성을 크게 떨쳤다. 그의 화실에는 그림을 주문하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아무리 돈과 권세가 있는 사람들이 그림을 부탁해도 아무에게나 그림을 그려주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쳐나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변상벽, <국화 핀 뜰 안의 가을 고양이(菊庭秋猫)>, 22.5cm×29.5cm, 간송미술관 소장 

 
천재들에게 대적할 비장의 무기를 찾다

그가 왜 고양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알려면 정극순(鄭克淳)이라는 사람이 지은 <변씨화기(卞氏畵記)>라는 변상벽의 전기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 책의 기록에 따르면, 변상벽이 활동했던 시기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유행했고 너도 나도 산수화를 그리던 시절이었다. 변상벽은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수많은 화원들과 산수화로 경쟁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달았다. 대신 자신은 꼼꼼한 관찰력과 세밀한 묘사 능력에서는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장기가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분야는 바로 고양이나 닭 그림 같은 동물화였다. 특히 고양이를 평소 사랑하고 아꼈던 그는 고양이의 행동 양식과 특징을 자세히 관찰해 그림으로 그리고자 했다. 그러나 도화서에는 고양이 그림을 그려달라는 주문이 없었다. 그래서 낮에는 자신의 본업인 도화서 화원으로서 초상화나 십장생도 같은 그림을 그렸고 집에 돌아와서는 자신만의 고양이 그림에 매진했다. 밤낮으로 그렸고 코피를 쏟을 만큼 노력한 끝에 그는 20대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고양이 그림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부모님 생신 선물로 큰 인기 

조선시대에는 고양이를 오늘날처럼 집 안에 들여 애지중지 키우는 문화가 없었다. 고양이는 그냥 쥐를 잡아주는 유익한 동물이거나, 닭이나 물고기를 훔쳐 먹는 도둑 같은 짐승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그저 고양이가 귀엽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변상벽의 그림을 원했던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체 왜 그의 고양이 그림은 인기가 있었을까?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고양이’와 ‘고양이 그림’은 별개로 취급되었다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고양이가 장수(長壽)의 상징이었다는 것. 이는 70세 노인을 뜻하는 모(耄)와 고양이를 뜻하는 묘(猫)가 발음이 비슷한 데서 착안한 일종의 언어유희였다.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은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연로하신 부모님의 생신 선물로 고양이 그림이 인기가 아주 높았다고 한다. 즉 부모님의 건강과 장수를 바라는 효심을 고양이 그림을 통해 표현할 수 있었기에, 유교사회의 선비나 양반들에게까지 변상벽의 고양이 그림이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이다.

 

귓속 실핏줄까지 생생하게 그려내 

변상벽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참새와 고양이(猫雀圖)>는 서로 희롱하는 한 쌍의 고양이와 다급하게 지저귀는 참새 떼의 모습을 섬세한 필치로 실감나게 묘사하였다. 또한 새순이 돋은 고목의 연초록 나뭇잎을 먹을 듬뿍 찍은 붓으로 대담하고도 멋지게 그려내어 섬세하게 묘사된 동물들과는 대조적인 기운을 보여주고 있다. <국화 핀 뜰 안의 가을 고양이(菊庭秋猫)>는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오늘날까지도 전통 자수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이 그림은 가장 사랑받는 견본 중 하나라고 한다. 고양이가 소담하게 피어난 가을 뜨락을 배경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는 이 그림에서 주인공인 얼룩고양이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가을 햇볕을 즐기다 인기척에 놀라 잔뜩 경계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고, 먹잇감을 노려보며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상황 설정도 빼어나지만, 한 가닥 수염과 터럭 한 올의 묘사에도 조금의 소홀함이 없으며, 더 나아가 눈동자의 미묘한 색조와 귓속 실핏줄, 심지어 가슴 부분의 촘촘하고 부드러운 털과 등 주변의 성근 듯 오롯한 털의 질감까지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변상벽, <참새와 고양이(猫雀圖)>, 93.9cm×14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다 

동물화를 이렇게 사실적으로 잘 그리니 인물 초상화 또한 잘 그릴 것이라는 기대가 그에게 쏠렸다. 그래서 당대 가장 유명한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홍도’와 함께 영조의 어진을 그렸는데, 변상벽은 주로 왕의 얼굴인 용안을, 김홍도는 왕의 몸인 용신을 나눠서 그렸다고 한다. 특히 1763년과 1773년 두 차례 영조의 마음에 쏙 드는 어진을 그린 공로로 중인 신분으로서는 파격적인 인사라 할 수 있는 현감 벼슬직을 얻기도 했다.

‘변고양이’라는 비웃음까지 사면서 고양이 그림에 매달렸던 변상벽은 현대 마케팅 용어를 빌리자면 자신만의 ‘틈새시장’을 찾고, 그 시장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경쟁자들 틈에서 돋보이기 위해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지 않고 끈질긴 집념과 의지로 새로운 길을 개척한 그의 사례에서 현대인들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