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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심장과
영혼 같은 곳,
레이크 디스트릭트

19세기 영국의 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레이크 디스트릭트


글·사진_ 이영철 여행작가, <여행과 영화> 저자 


잉글랜드 북부 지방을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횡단하는 도보 여행길을 CTC라고 부른다. CTC 중에서도 인간이 발견한 가장 사랑스러운 곳이라고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칭송했던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걸어보자


잉글랜드의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코로나가 극성인 동안에 경기둘레길을 오래 걸었다. 우리 땅에 대한 애정이 새삼 솟구치는 여정이었다. 한반도 역사가 응축돼 있는 중심 현장을 두 발로 누볐다는 자부심도 일었다. 경기둘레길 860km 완주 마지막 날, 김포 대명항에 도착 즉시 해안 철책선 입구 나뭇잎 속을 헤쳤다. 1코스를 출발하던 날 묻어뒀던 작은 조약돌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다시 가지러 올 때까지 나를 잘 지켜달라’는 염원이 담긴 조약돌에 쓴 ‘Tims’라는 볼펜 글씨 역시 그대로였다. 영국 횡단 CTC 트레킹을 시작하던 날 영국인 팀스 씨가 나에게 건내줬던 조약돌이다. ‘북해 앞까지 가는 동안 이 조약돌이 당신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며 세인트비스 해변에서 하나 주워 내 손에 쥐어 줬었다. 원래는 다른이들처럼 15일 후 북해 앞바다에 훌쩍 던졌어야 했지만 어쩐지 아까워 가져왔었다. 섬나라 영국은 지형적으로 우리 한반도와 많이 닮았다. 한반도에는 차가운 군사분계선이 남과 북을 가르지만, 영국 섬의 허리에는 고대 로마의 성벽 흔적이 있어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구분 짓는다. 스코틀랜드 바로 아래쪽인 잉글랜드 북부 지방을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횡단하는 총거리 315km 도보 여행길을 ‘코스트 투 코스트(Coast to Coast)’, 줄여서 ‘CTC’라 부른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포 대명항에서 DMZ 접경을 가로질러 강원도 고성 앞바다까지 걸어서 횡단하는 개념이겠다.



잉글랜드 북부의 해안 마을 세인트비스 전경 


잉글랜드의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코로나가 극성인 동안에 경기둘레길을 오래 걸었다. 우리 땅에 대한 애정이 새삼 솟구치는 여정이었다. 한반도 역사가 응축돼 있는 중심 현장을 두 발로 누볐다는 자부심도 일었다. 경기둘레길 860km 완주 마지막 날, 김포 대명항에 도착 즉시 해안 철책선 입구 나뭇잎 속을 헤쳤다. 1코스를 출발하던 날 묻어뒀던 작은 조약돌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다시 가지러 올 때까지 나를 잘 지켜달라’는 염원이 담긴 조약돌에 쓴 ‘Tims’라는 볼펜 글씨 역시 그대로였다. 영국 횡단 CTC 트레킹을 시작하던 날 영국인 팀스 씨가 나에게 건내줬던 조약돌이다. ‘북해 앞까지 가는 동안 이 조약돌이 당신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며 세인트비스 해변에서 하나 주워 내 손에 쥐어 줬었다. 원래는 다른이들처럼 15일 후 북해 앞바다에 훌쩍 던졌어야 했지만 어쩐지 아까워 가져왔었다. 섬나라 영국은 지형적으로 우리 한반도와 많이 닮았다. 한반도에는 차가운 군사분계선이 남과 북을 가르지만, 영국 섬의 허리에는 고대 로마의 성벽 흔적이 있어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구분 짓는다. 스코틀랜드 바로 아래쪽인 잉글랜드 북부 지방을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횡단하는 총거리 315km 도보 여행길을 ‘코스트 투 코스트(Coast to Coast)’, 줄여서 ‘CTC’라 부른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포 대명항에서 DMZ 접경을 가로질러 강원도 고성 앞바다까지 걸어서 횡단하는 개념이겠다.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사랑했던 땅 

CTC는 여행작가 알프레드 웨인라이트가 반세기 전에 개척하여 세상에 알린 길이다. 영국의 서해 바다인 아이리시 해의 세인트비스에서 출발하여 동쪽을 바라보며 15일 정도 걷고 나면 광활한 북해 앞 로빈후즈베이에서 길이 끝난다. 수백 년 전부터 있어온 여러 갈래의 길들이, 한 여행가의 열정 덕택에 하나로 묶여 CTC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이들의 발자국으로 다져지면서 더 좋은 길로 거듭났다. 영국을 대표하는 장거리 트레일로 유럽인들에게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영국을 걷는다는 건 런던 등 대도시 관광과는 차원이 다르다. 호수와 계곡을 가로질러 야트막한 산을 넘는다. 싱그러운 초원과 능선을 지나고 나면 19세기 유물 같은 시골 가옥들을 만나곤 한다.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사랑했던 땅 레이크 디스트릭트가 있고 소설과 영화 ‘폭풍의 언덕’의 배경지인 황무지 무어랜드를 걷는 길이다. CTC의 가장 큰 매력은 영국 정부가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한 세 개의 국립공원을 연이어 관통한다는 점이다. 잉글랜드 서부의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와 중부의 ‘요크셔 데일스(Yorkshire Dales)’ 그리고 동부의 ‘노스요크 무어스(North York Moors)’가 섬의 허리를 감싸며 두터운 벨트처럼 연결되어 있다. 세 국립공원 각각은 저마다의 자연 환경과 역사 문화가 담긴 독특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1. 잉글랜드 북부의 세인트비스 기차역 2. 아이리시 해안가의 영국 횡단 CTC 출발점

3. 양떼가 풀을 뜯는 레이크 디스트릭트 초원 4. 헨리 8세 시대 패쇄된 샤프 마을 수도원 터

 


윌리엄 워즈워스 시인의 고향 마을 그래스미어 


레이크 디스트릭트

거리 105km. 소요기간 5일. 최저해발 0m. 최고해발 784m.


인간이 발견한 가장 사랑스러운 곳,

레이크 디스트릭트

인 이 지역을 ‘인간이 발견한 가장 사랑스러운 곳(The loveliest spot that man hath ever found.)’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레이크 디스트릭트 복판에 있는 시인의 고향 마을 그래스미어에는 시인의 생가인 ‘더브 커티지(Dove Cottage)’와 박물관이 있어 워즈워스 시인을 좋아하는 사람들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나 구름처럼 외로이 떠돌았네’로 시작되는 시 ‘수선화’의 제목을 딴 ‘수선화 정원’도 울창한 숲에 싸여 방문객들을 품고 있다. 여행 가이드북 ‘론리 플래닛’ 또한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걷기의 심장과 영혼(The heart and soul of walking) 같은 곳’이라고 소개한다.

런던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까지 이어주는 고속도로와 종단 철길을 육교로 건너고 샤프 마을을 가로질러 벗어나면서 호수 지방은 끝이 난다. 잉글랜드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세인트비스 절벽에서 느낀 묘한 설렘 

CTC를 시작하던 첫날 아이리시 해를 바라보며 세인트비스 절벽에 올랐던 날의 느낌은 여전히 생생하다. 새로운 길, 안 가 본 길 앞에 선 이들의 심정이 대체로 그러할 것이다. 은근한 기대와 막연한 두려움, 거기에 각자 나름의 의지가 섞인 묘한 설렘이 혼재되지 않을까. 그리곤 그 길을 걸어 목표했던 곳까지 이르고 나면 그 여정은 그에겐 새로운 역사가 된다. 각자의 인생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작은 인생’으로 쌓여지는 것이다. 우리네 삶의 질이 얼마나 풍성하고 윤택할지는 이런 소소한 역사나 작은 인생들이 얼마나 촘촘하게 쌓여 가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