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글_ 안계환 금융칼럼니스트, <세계사를 바꾼 돈> 저자
시대의 인정을 받으면서 돈을 많이 버는 것과 돈을 벌지 못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는 것, 어떤 선택이 좋을까? 처했던 상황이 달라 다른 길을 가야 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두 천재,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삶을 비교해서 들여다보자.
뛰어난 예술가라도 돈이 필요한 이유
성공한 인기작가로 당대에 인정받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당대에는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지만 후대에 더 나은 천재로 인정받는 것이 좋을까? 물론 당대에 인정을 받아서 성공한 삶을 살고 후대에도 길이 이름에 남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그것을 원할 것이다. 하지만 인생살이가 맘대로 되는 일이던가? 인기작가란 높은 가격에 예술품을 구매해 주는 고객들이 있을 때 탄생한다. 고객의 돈으로 재료를 사고 생업을 유지하고 다른 이들을 고용할 수 있어서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지녔어도 돈이 없으면 운신하기 어렵다. 예술가는 배고픈 직업이라고 말을 하지만 미켈란젤로 같은 조각가는 좋은 대리석을 구해야 하고 조수를 써서 주문 받은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공방을 운영해야 했다. 르네상스 시대 두 천재로 꼽히는 레오나르도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르티, 두 거장 중 당대 사람들의 평판이 좋아서 경제적 여유를 누린 사람은 누굴까?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벽화 ‘천지창조’
돈 버는 데 필사적이었던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는 왜소한 체구(키 155cm)에 친구 토레지아노에게 주먹으로 맞아 납작해진 코를 가진 형편없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의 탁월한 재능을 사람들은 좋아했고 많은 예술품 제작을 의뢰했다. 덕분에 평생 동안 많은 돈을 벌었고 풍족한 여유를 누렸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를 그릴 때는 4명의 조수를 채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먹여 살려야 할 식구가 많았다. 무능하고 신세 한탄만 하는 몰락 귀족 출신 아버지가 있었고 계모와 4명의 동생을 부양해야 했다. 필사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메디치가와 교황이 가장 큰 후원자였는데 로렌초 데 메디치는 미켈란젤로를 자기 집에 살게 하고 교양교육을 받게 했다. 여기에 예술가로 자리 잡은 후 천재적 예술성이 시들지 않도록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로마로 진출해서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총애와 미움을 동시에 받던 시절,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 작업과 교황의 묘지 작업을 하는 동안 제작비를 받지 못해 파산하고 도망자 신세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율리우스 2세가 세상을 떠나고 뒤이어 교황에 오른 레오 10세(조반니 데 메디치) 재임 시절부터는 다시 지원을 받아 창작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미켈란젤로의 초상화, 다이엘레 다 볼테라 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화상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잘 생기고 귀족적 풍모에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을 지녔다. 매혹적인 화술을 구사하며 탁월한 패션 감각으로 주변에 여자들이 넘쳤다. 하지만 그는 평소 돈이 부족해 고통 받는 삶을 살았다. 그가 풍족하게 벌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의 좋은 외모와 여유 있는 환경이 돈을 벌어야겠다는 의지를 약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사생아로 태어나 14세 때 베로키오의 공방에 들어가 그림을 배웠다. 동성애자여서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누구를 부양할 경험을 하지 않았고 남의 눈치 보면서 열심히 벌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가 돈을 잘 벌지 못한 결정적 이유는 다방면(회화, 건축, 물리학 등)에 재능이 많았지만 고객이 주문한 일들을 잘 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예술품 제작 주문을 해주지 않자 밀라노 대공 루도비코스포르차에게 보낸 이력서에서는 엔지니어로서 재능을 강조한 후 편지 끝부분에 ‘그림도 그릴 줄 안다.’라고 적을 정도였다. 결국 그림보다는 기마상 제작과 음악 교수 자격으로 밀라노로 가게 되었고, 군사무기를 제작하고 궁정 행사에 사용할 장비 제작 활동을 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상상의 나래를 펴 1만 2천여 장에 달하는 스케치 노트를 남겼다. 오늘날 그의 스케치는 위대한 천재의 기록물로 인정받고 그는 ‘시대를 앞선 자’라는 칭송을 듣는다. 하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그저 아이디어일 뿐이었다. 그 아이디어가 현실로 반영되기에는 재료, 기술 등이 너무 시대를 앞서갔던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았던 미켈란젤로는 때로는 자존심을 굽혀가며 일해야 하는 처지였다. 이에 반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주문받은 일조차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현실적 작업보다는 상상의 나래를 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연구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시대의 인정을 받으면서 돈을 많이 버는 것과 돈을 벌지 못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는 것, 어떤 선택이 좋을까? 물론 미켈란젤로처럼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처지의 사람과 다빈치처럼 자유로운 상황을 단순비교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저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 ‘모나리자’
성 베드로 대성전에 소장된 미켈란젤로의 대표작 ‘피에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