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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에서
만난 친구,
고(古)기와 방송인 및
아티스트 이상벽

이상벽은 잡지 기자 및 연예평론가 등을 거쳐 국민 방송이라 불러도 될 KBS <아침마당>, <TV는 사랑을 싣고> 등에서 오랫동안 많은 국민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안겨주었던 방송인이다. 가수 조용필과 함께 부산 해운대 밤바다를 바라보며 포장마차에서 술 마셨던 순간을 부산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으로 늘 간직하고 있다는 그를 만나 최근 매진 중인 ‘고(古) 기와 아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버려진 기와로 새로운 결실을 맺다 

방송인 이상벽은 원래 홍익대학교에서 디자인미술을 전공했다. 학창 시절 작업실 옆에 도자기 공방이 있었기에 예전부터 기와, 도자기 같은 세라믹 제품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현재 그는 200~300년 된 옛 궁궐이나 사찰에서 걷어낸 고(古)기와에 그림을 그리고 상설 전시도 하는 등 ‘고(古) 기와 아티스트’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연히 어느 공장에서 버려진 채 발견된 기와들을 몇 장씩 가져와 그리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어요. 이제 저도 나이를 많이 먹었으니, 어쩌면 인생 마지막 길에서 이렇게 버려진 기와들을 만나 함께 새로운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점이 큰 행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고(古) 기와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정해진 크기를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 거친 세월의 흔적이 상흔처럼 남아 있는 표면 등이 창작의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이끼가 피어 있거나 새똥이 묻어 있는 기와도 부지기수였다. 어렵게 작품을 완성해서 전시하려 해도 표구를 하는 데서 또 문제가 발생했다. 보통 휘어진 기와는 두께가 상당하기 때문에 통상의 유리 액자 안에 끼워 맞춰 넣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월의 흔적을 일부러 걷어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표면 위에 그림을 계속 그려왔다. “고(古) 기와에 채색을 해서 정물화, 풍경화, 인물화 등으로 되살아나는 걸 보면 너무 기분이 좋아요. 전시회를 하면 반응이 꽤 괜찮고 그중에는 제 그림을 사가는 사람도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죠. 비록 이걸로 생활에 도움이 될 만큼의 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이 작업 자체로 큰 행복을 느낍니다.” 이상벽의 작품들은 한국 전통 기와가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 위에 새로운 옷을 덧입힌 것이라 아주 신선한 시도로 평가받으며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제 저도 나이를 많이 먹었으니 어쩌면 인생 마지막 길에서 버려진 기와들을 만나 함께 새로운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점이 큰 행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흙과 함께, 자연의 순리대로 

그는 충남 홍성을 거쳐 현재는 예산에 정착해 살고 있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와 산 지 9년이 넘었다. 집 근처에 예쁜 호수도 있고 작업에 필요한 기와도 구하기 쉬운 환경이라 삶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서울에 꼭 있을 필요가 있는 사람이라면 서울에 살아야 하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저 같은 사람은 좀 빠져나와 줘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이전부터 늘 하고 살았어요. 이렇게 지방에서 흙과 더불어 여생을 보내는 것도 참 좋거든요. 코로나19 팬데믹이 유행일 때는 일찌감치 이렇게 내려와 있길 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위적인 것을 거부하며 자연의 순리대로 살고 싶다는 그의 말이 가진 속뜻은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기와 또한 자연의 흙과 불을 통해 생겨난 산물이고,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반영하여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것이다. 그는 고(古) 기와 아트에 대해 “세월의 흔적이 이미 절반 이상 밑그림을 그려놓은 상태에서 내가 나머지 절반을 덧그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방송을 할 때도 자연 그대로의 사람 냄새가 나는 방송을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다고 말한다. “요즘 방송 트렌드는 저하고 정서적으로 좀 안 맞는 것 같아요. 비슷한 얼굴들이 여러 프로그램에 반복해서 나와 처음부터 끝까지 시시한 잡담을 계속 이어나가는데, 그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또 방송은 국민들의 언어를 순화하고 계도하는 기능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요즘 예능 프로들을 보면 출연자들끼리 너무 절제가 없이 막말을 많이 하니까 한때 방송인으로 활발히 활동했던 한 사람으로서 유감스럽습니다.”

 

  

 

방송다운 방송에 대한 열망 여전해 

아무리 요즘 방송 트렌드가 못마땅하고 유감스러워도 그게 트렌드라고 하니까 그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대한민국이 유독 나이에 민감하다는 것. 76세라 해도 충분히 건강하고 방송에 대한 감각도 여전한데도 불구하고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방송에서 좀처럼 불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엔 그런 부분이 좀 씁쓸했지만 이젠 받아들이고 있어요. 이제 백세시대라고 하는데, 옛날 사람들보다 더 오래 이 세상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건 정말 좋은 일이지만 만약 준비 없이 인생 2막을 맞이하면 백세까지 남은 시간을 그저 소비만 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그래서 <부산은행 이야기> 독자 분들도 인생 2막에 저처럼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글을 쓰든 뭔가 자신이 매달리고 매진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갖고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영국의 위인이자 위대한 총리로 평가받는 윈스턴 처칠의 예를 들었다. 처칠은 78세라는 고령에 문학의 길에 도전해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당시 경쟁 후보는 무려 미국의 대문호 헤밍웨이였다. 그저 과거 영국 총리라고 해서 가산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문학만으로 평가를 받은 것이라고 하니 더 놀라운 일이다. “건강만 뒷받침되면 누구나 나이가 들어도 그런 업적을 이룩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지금은 기와에 그림을 그리는 활동에 매진하고 있지만 나중에 또 기회가 생기면 진짜 좋은 방송을 통해 대중들을 만나고도 싶습니다. 늘그막에 욕심을 부려 억지로 방송을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할 만큼 감각이 있고 자신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그는 자신을 아직도 천생 방송인으로 생각한다. 한때 대한민국방송대상을 받기도 했던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방송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 또는 소명이라는 얘기다. 지금은 좋은 친구로 고(古) 기와를 만나 활발한 인생 2막을 보내고 있지만 마지막 인생 버킷리스트를 채워줄 좋은 프로그램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는 그. <아침마당>을 진행하던 시절, 그의 서글서글하고 푸근한 인상과 친근한 음성이 그리운 시청자들도 방송인 이상벽의 귀환을 내심 기다리고 있을 터이다. 그의 바람대로 조만간 그에게 꼭 맞는, 품격 있는 방송을 통해 정말로 ‘방송다운’ 방송, 세월의 풍파를 겪은 이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진심을 담은 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