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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올레 ②
여행다운 여행의
묘미를 찾아서

글·사진_ 이영철 여행작가, <세계 10대 트레일> 저자


규슈의 허리를 지탱하는 구마모토 현에는 소년 장군 아마쿠사 시로에 대한 지역민들의 흠모와 슬픈 역사의 현장을 만날수 있다. 단풍나무가 찬란한 빛을 발하는 유자쿠 공원을 거닐며 계절의 변화가 주는 아름다움을 만끽해보자.


규슈의 속살을 느낄 수 있는 구마모토 

제주올레와 규슈올레의 가장 큰 차이는, 전자는 ‘연속적’이고 후자는 ‘단속적’이라는 점이다. 하나의 길로 모두 이어져 있는 제주올레는 차량 이용이 전혀 불필요한, 이를테면 트레킹만으로 제주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코스이다. 반면, 규슈올레는 18개 코스가 섬 전체에 각기 따로따로 분산되어 있다. 한 코스를 걷고 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다음 코스로 이동해야만 한다. 오로지 걷기만이 목적이면 단점일 수도 있겠으나 ‘여행다운 여행’의 묘미를 고려하면 오히려 장점이 되기도 한다. 규슈나 규슈올레 여행이 처음인 경우는 대개 후쿠오카현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이동 시간의 제약 때문이다. 규슈가 초행길이 아니면서 규슈의 속살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7개 현 중 구마모토가 접근성이나 의미 면에서 적격일 것이다. 규슈의 허리를 지탱하는 구마모토현에는, 아마쿠사라는 성씨에 이와지마, 마츠시마, 레이호쿠라는 각각의 이름을 가진 3개의 자매 코스가 있다. 일본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농민 봉기였던 시마바라 사건의 흔적과 자취들을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코스들이다. 봉기의 주동자였던 16세 소년 장군 아마쿠사 시로와 초기 기독교인들의 박해에 관한 슬픈 이야기들이 3개 코스 곳곳에 스며져 있다.

 


아마쿠사 레이호쿠 코스의 천인총 안내판


360도로 펼쳐지는 다도해의 파노라마 

규슈 서해안 시마바라 반도 앞에는 여러 개의 섬들이 모여 있는데 이 다도해 지역을 아마쿠사라 부른다. 이 섬들 중 세 곳에 올레 코스가 있는데 그들 중 하나가 아마쿠사(天草) 이와지마(維和島) 코스이다. 코스 초반의 조조 항은 에도 막부 시절 시마바라 반란 사건의 주동자로 16세의 어린 나이에 비운의 삶을 마친 소년장군 아마쿠사 시로의 고향이다. 농민 4만 명이 가담했고 막부군 수십만 명이 진압에 참여했던, 일본역사 최대의 농민봉기 사건이었다. 이와지마 코스 전체에 소년 장군에 대한 후세 고향 사람들의 흠모가 스며있음을 느낄 수 있다. 코스의 하이라이트인 다카야마 전망대는 해발 170m에 불과하지만 이 섬에선 제일 높은 산에 위치한다. 360도로 펼쳐지는 다도해의 파노라마가 장쾌하다. 호카비라 자연 해안을 걷는 30여분 동안은 태곳적 원시 바다의 모습이 이러했으리라 상상된다. 아마쿠사에는 두 개의 큰 섬이 인접해 붙어 있다. 동쪽으로는 내륙에 면한 가미시마 섬, 서쪽으로는 동지나해에 면한 시모시마 섬이다. 아마쿠사 마쓰시마 코스는 가미시마 섬의 북쪽 산악지형을 서에서 동으로 잇는다. 시작점인 치쥬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논밭들 사이를 지나 산길로 접어들면 얼마 후 해발 233m의 정상 센간노모리다케에 이른다. 역시 360도 파노라마에 한쪽은 다도해요, 반대편은 드넓은 논밭이 펼쳐졌다. 조금 내려오고 다시 잠시 오르면 센간

잔이다. 소년 장군 아마쿠사 시로가 농민군 대장들을 모아 국자로 술잔을 돌리며 격려했던 출정식 자리다. 산을 내려와 관광호텔 미사키테이를 지나 마쓰시마 전망대에 이르면 다시 시원한 다도해가 펼쳐진다. 이 섬과 마에지마 섬을 잇는 빨간색의 멋진 대교도 인상깊다. 코스의 종점은 마쓰시마 온천 ‘용의 족탕’이다. 용의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온천물에 발 담근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물론 무료다. 아마쿠사(天草) 레이호쿠(苓北) 코스는 아마쿠사의 서쪽 시모시마 섬의 북단에 걸쳐 있다. 도미오카 항을 출발하여 도미오카 성으로 올라서는데, 400년전 소년 장군 시로가 막부 진압군과 결전을 벌였던 이 성에는 당시의 소년 장군 면모를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있다. 웅장한 도미오카성이 새하얀 성벽과 주변을 둘러싼 숲 그리고 파란하늘과 바다에 극명하게 대비되어, 내려오는 내내 뒤를 돌아보게 된다. 평지로 내려와 섬의 내륙으로 들어서면 ‘천인총’을 만나는데 시마바라 난 당시 참수된 천주교도 천 명 중 330여 명의 수급을 모아 한데 매장한 곳이다. 이국의 아픈 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코스다.

 

아마쿠사 레이호쿠 코스 후반의 산 정상

구마모토 현의 우시부카 항
 

미야자키 현의 다카치호 코스 전경 


자연산 정원의 고요함, 유자쿠 공원 

규슈 7개 현 중에서 후쿠오카 동쪽으로 인접한 오이타 현도 추천할 만한 여행지다. 특히 온천 여행도 겸하고 싶다면 더 할 나위가 없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벳푸 온천과 유후인 온천이 모두 이 지역에 해당한다. 오이타 현에는 원래 3개의 올레 코스가 있었는데, 고코노에 야마나미 코스는 환경과 안전 등의 이유로 2020년에 폐쇄되었다. 남은 두 곳 중 하나인 오쿠분코(奧豊後) 코스는 규슈올레 원년에 개장되었으니 벌써 1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오이타역에서 1시간 넘게 걸리는 무인역 아사지역에 내리

면 코스 출발점이다. 일본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을 지나면에도시대 이곳 영주에게 막부가 별장 정원으로 하사했다는 유자쿠 공원을 관통한다. 수백여 그루의 단풍나무와 벚꽃이 만발한 거의 완전한 자연산 정원 속을 고요하게 걷는다. 우리말로 보광사로 읽히는 절, 후코지에는 절벽 같은 암벽에 20m 높이의 거대 석불이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 규슈에서는 최대 크기의 마애석불이다. 이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오카 산성 터다. 에도 시대에 난공불락으로 지어졌다는 산성이지만, 지금은 성벽 사이사이에 돌이끼만 잔뜩 끼었고, 성벽 위에는 건물 등의 흔적은 전혀 없는 공터이다. 성이 상당히 높게 쌓여져 있고 한쪽은 완전한 절벽이다. 무심코 가까이 갔다가 위험 표지 하나 없는 천길 낭떠러지 성벽에 식겁할 수 있다. 멀리 아소산 등으로 잘 이어진 거대 산맥의 정경이 매우 장쾌하다. 성 아래로 내려오면 다케다 마을이다. 옛날에는 작은 교토라고도 불렸다고한다.


오이타 현 오쿠분코 코스의 유자쿠 공원

오이타 현의 오쿠분코 코스 초입 / 가고시마 현의 이브스키 가이몬 코스 종반 지점
 

가고시마 현의 기리시마 묘켄 코스 종반 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