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혼자 즐겨도 좋은 술이지만, ‘사교의 도구’로도 효용가치가 높다. 와인이 오고가는 화기애애한 테이블에서 곁들이면 좋을, 재미있는 와인 상식 하나쯤은 알아두면 좋지 않을까.
참고자료 : 켄 프레드릭슨 지음 <와인 지식사전>
55℉
55라는 숫자와 와인이 대체 무슨 상관이기에 와인 바 이름에는 ‘55’라는 숫자가 많이 들어가는 것일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프랑스에도 55라는 숫자가 들어간 와인숍이나 와인 바가 많이 있다. 사실 이 55라는 숫자는 화씨 55도(55℉)를 가리키는말로, 레드와인을 더욱 풍미 있게 숙성시키며 보관하기 적합한 서늘한 곳의 온도를 뜻한다. 섭씨로는 13도 정도에 해당하는데, 이처럼 너무 높지도 않고 너무 낮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은 와인 보관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특히 와인은 빛에 노출되면 화학적 구성에 변화가 생겨 맛의 풍미를 잃을 수 있으니 와인을 저장하는 곳의 조명은 꺼두는 것이 좋다. 또 코르크를 촉촉하게 유지하기 위해 와인 병은 눕혀서 보관하는것이 좋고, 이렇게 할 때 공간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SO2
황은 오래 전부터 와인의 항산화와 항균을 위해 사용되었다. 와인을 만드는 데 필요한 2가지 주요 화합물에도 황이 들어가는데, 하나는 오가닉 농법에서도 허용되는 살균제인 황산구리이고, 다른 하나는 이산화황으로 화학기호로는 SO2로 쓴다. 와인의 구성 성분을 보면, 물이 82%, 에탄올이 12%, 비타민과 미네랄이 2%이고 많은 사람들이 와인의 주성분처럼 생각하는 타닌과 페놀은 겨우 1%밖에 되지 않으며 이산화황은 0.5% 정도를 차지한다. 이산화황은 일반적으로 무해하지만 섭취량에 따라 천식이 있거나 알레르기에 민감한 사람에겐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날수 있다. 따라서 와인 라벨에는 법적으로 황 함유량을 고지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여러 식품 중에 와인처럼 라벨에 ‘황 함유량’을 표기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점도 흥미롭다. 내추럴 와인 생산자는 이산화황을 아예 쓰지 않거나 극소량만 사용한다.
Art
와인과 예술 간에는 깊은 관계가 있다. 많은 문학가, 화가 등이 와인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이야기도 풍부하다. 예를 들어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시인 보들레르가 사랑한 와인으로 나오는 ‘샤토 샤스 스플린’은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해 2가지 설이 전해져 온다. 하나는 보들레르가 친구인 화가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 보르도에 잠시 들렀다가 즉석에서 지어낸 시 한 구절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역시 유명한 시인 바이런이 이 와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슬픔(spleen)을 쫓는(chasser) 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는 의미로 ‘슬픔을 쫓는’, 즉, ‘샤스 스플린’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명 와인에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의 그림들이 라벨에 들어가곤 한다. 특히 피카소가 ‘샤토 무통 로쉴드’에 그린 와인 라벨은 그 예술적인 가치가 뛰어나 오늘날에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화가 이우환 또한 바로 이 샤토 무통 로쉴드의 와인 라벨을 그린 적이 있다.
French Paradox
프랑스인들의 식습관을 보면 콜레스테롤과 포화지방이 듬뿍 든 고기를 포화지방 덩어리인 버터에 범벅을 하는 게 많다. 이것도 모자라 역시 포화지방이 푸짐한 치즈까지 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한하게도 프랑스인들의 심장발작 사망률이나 비만인구 비율은 다른 유럽인들에 비해 매우 낮다. 과학자나 의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라 부르며 그 이유를 와인에서 찾았다. 프랑스인이 즐겨 마시는 레드 와인에 들어 있는 레스베라트롤이라는 물질이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해서 심장 발작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같은 프랑스라도 북부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심장병 발병률과 평균 수명은 유럽 다른 나라 사람들과 크게 차이가 없다. 결국 남쪽 사람들의 느긋한 생활 태도, 많은 과일과 야채의 섭취, 온화한 기후 등이 와인과 함께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게 더 합당한 듯하다. 그래서 프렌치 패러독스가 아니라 ‘지중해 패러독스’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