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추럴 와인의 인기가 뜨겁다. 와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첨가물, 특히 화학첨가물을 넣지 않는 제조 방식을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르익어가는 이 가을, 와인 한 잔 마시며 ‘친환경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유기농 와인 VS. 내추럴 와인
유기농 와인은 살충제, 비료, 제초제를 쓰지 않는 유기 농법으로 포도를 키우고 손으로 직접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을 뜻한다. 내추럴 와인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유기농 포도를 가지고 인공적인 첨가제나 당분을 넣지 않고 천연 효모로 발효하여 양조한 와인이 바로 내추럴 와인이다. 내추럴와인은 과거 일반 와인에서 잔류 살충제가 검출되거나, 발암물질이나 환경호르몬이 함유되어 있다는게 밝혀지면서 소비자들이 경각심을 갖고 자연 그대로의 와인을 찾는 과정에서 탄생하게 됐다. 땅은 자연 그대로의 것이어야 하며, 인간이 와인을 만들기 위해 그 어떤 인위적인 조작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내추럴 와인에 담긴 철학이다. 내추럴 와인이 건강하고 친환경적인 와인인 것은 틀림없지만 기존 와인과 유사한 맛을 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소 맛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도수가 낮아 숙취가 덜하다는 장점이 있어서 기존 와인보다 부담 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다. 또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새로운 맛의 와인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내추럴 와인의 아버지, 쥘 쇼베
어떻게 보면 내추럴 와인은 과학적 양조법을 거부하는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추럴 와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쥘 쇼베’는 오히려 현대의 과학적인 와인 양조법의 개발자이기도 했다. 쥘 쇼베(1907~1989년)는 당대의 저명한 화학자이자 와인 애호가이자 와인 생산자였다. 그는 파스퇴르가 개발한, 고온으로 와인을 오래 보관할 수 있게하는 방식보다 더 좋은 방식으로, 이산화황을 병입 과정에 주입해 와인을 보존하는 방법을 완성했다. 반면, 그는 이산화황을 전혀 쓰지 않는 방식으로 내추럴 와인을 만들기도 했는데, 프랑스 초대 대통령인 샤를 드 골은 그의 내추럴 와인을 최고의 와인으로 극찬하며 즐겨 마셨다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쥘 쇼베의 생전에는 내추럴 와인이 그리 각광받지는 못했다. 오늘날 내추럴 와인 운동에 영감을 불어넣었던, ‘친환경 포도주 운동가’의 대명사가 된 쥘 쇼베. 하지만 내추럴 와인과 대척점에 있는, 일반적인 와인 양조 방식도 그가 개발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달의 주기를 반영한 바이오다이내믹 와인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는 달의 주기를 반영한 달력에 맞춰 재배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내는 농법을 고안해냈다. 포도 농장은 지구의 일부이며 서로 힘을 주고받는 태양계의 일부라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그래서 점성술적인 관측에 따라 과실의 날에 농사를 시작하고, 뿌리의 날에 가지치기를 하고, 꽃의 날에는 농사를 쉬고, 잎의 날에는 포도주에 물을 주는 식으로 우주의 바이오리듬에 따라 농사를 짓는다. 화학 비료나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은 기본이고, ‘농장은 스스로 자생이 가능한 하나의 유기체’라는 철학으로 친환경비료나 거름 또한 농장 내에서 만들어진 것만 사용한다. 또한 포도밭에 포도만 기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식물을 키워 생물 다양성을 높이고 농장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생태계가 되도록 한다.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을 적용하면 포도의 생산량은 현격히 줄어들지만, 맛이 더 농축되어 순수하고 진한 와인이 만들어진다. 게다가 토양의 특성을 뜻하는 ‘떼루아’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