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 김경필 경제칼럼니스트, KBS <국민영수증> 금융멘토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2000년 7.2%를 기록하며 고령화 사회가 된 이후로 20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18년에 그 2배인 14.3%를 돌파했을 만큼 고령화 속도가 매우 빠른 편이다. 이런 추세라면 3년 후인 2026년에는 20%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할 것이 확실한데 그만큼 고령화 시대의 대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불거진 금융 불안과 자산가격의 폭락, 지속적인 경기침체 등의 문제는 은퇴를 준비하는 세대들에게 매우 어려운 환경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 노후빈곤을 막기 위해 은퇴를 앞둔 4050세대는 물론이고 2030세대까지 일찍부터 은퇴 전에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준비해야할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자산만으로 노후준비는 불가능하다
노후준비라는 말을 꺼내면 언제나 나오는 질문 하나가있다. 바로 노후준비를 위해 “어디에 투자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 안에는 엄청난 문화지체가 들어있다. 문화지체 현상이란 급속도로 변화하는 물질문화에 비해 완만하게 변화하는 비물질문화의 차이에서 생기는 사회부조화 현상을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의 인식이 세상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생기는 사회적 착각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는 과거 부모님 세대 고도성장의 시기에 있었던 엄청난 자산가격의 상승을 목격하면서 성장했기 때문에 우리도 노후를 위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착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1970~80년대는 경제성장률이 12%를 훌쩍 넘어설 만큼 고도성장 시기였고 그만큼 실질자산 가치도 크게 성장했다. 모든 산업을 막론하고 그 시기에는 수십 배, 수백 배 성장하는 기업들까지있었다. 이 시기에 주식이나 땅, 아파트를 샀다면 폭발적인 자산가치의 상승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90년대에도 8%대의 성장률,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평균 6~7%대의 성장률을 기록하던 경제는 최근 5년간은 2021년 4.1%를 제외하면 모두 3%를 밑도는 모습으로 5년 평균 경제성장률이 고작 2.44%를 기록할 만큼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모습이다. 이렇게 되면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인플레이션을 걷어내고 따져보면 실질자산은 전혀 상승하지 않는다. 대신 경제위기 때마다 완화적인 통화정책으로 돈을 푸는 바람에 자산시장에 유동성이 넘쳐나면서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자산가격이 올랐다가 또 지나치게 폭락했다가를 반복하는 자산가격의 변동성이 확대된다. 아울러 저성장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자산 투자만으로 노후준비에 한계가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팩트이다.
세컨드 라이프와 세컨드 잡을 설계하라
얼마 전 젊은 세대들에게 큰 관심을 일으켰던 것으로 파이어족 열풍이 있었다. 파이어족(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ment Early)이란 경제적으로 성공해서 조기에 은퇴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소위 파이어족으로 선망의 대상이 된 사람들을 보면 사실은 은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의 형태를 바꿔서 평생토록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사람들이다. 즉, 경제활동을 그만둔 은퇴 Retire를 한 것이 아니라 마치 새로운 타이어를 갈아 끼우듯 Re-tire해서 자신에게 새로운 일을 장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에서는 은퇴란 것이 생계형 경제활동을 끝내고 이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갈아타는 일종의 축하받는 인생의 이벤트로 여겨진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은퇴했다고 하면 왠지 자리에서 밀려났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1990년대생들의 평균 기대수명이 평균 90세가 넘는다고 하는데 이제는 정말 백세인생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는 상황이다. 더 이상 과거의 사고방식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60세 이후 아무런 경제활동이나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 옛날 방식의 노후, 오로지 공적연금과 자산에만 의지하는 노후준비를 한다면 노후빈곤은 불 보듯 뻔하게 될 것이다. 우리도 이제 외국의 경우처럼 이제 현직에서 물러나더라도 두 번째 인생인 세컨드 라이프를 계획해야만 한다. 물론 세컨드 라이프가 정년연장 또는 재취업과 같이 경제활동으로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보다는 사회활동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질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설사 소득이 아주 적거나 없더라도 사회활동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미리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반복적인 고물가 시대, 노후에도 경제활동 필요
그렇다면 세컨드 잡에 대한 준비와 노력이 이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지속되는 인플레이션 문제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성숙할수록 인플레이션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는데 자본주의의 역사를 인플레이션의 역사라고 말할 정도이며 지금처럼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또한 계속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인플레이션이란 보통 다음의 세가지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첫째는 자산의 인플레이션이다. 2020~21년에 우리가 경험했듯이 시장의 유동성이 많아지면 가치에 비해서 과도하게 가격이 올라가 거품을 만드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아울러 이렇게 늘어난 자산가격은 자산효과(Wealth effect)가 나타나면서 소비를 증가시키는데 이런 일시적인 현상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바로 둘째, 가격의 인플레이션이다. 이것은 실물시장의 재화나 서비스의 물가가 올라가는 것을 말한다. 물가가 높아지면 시차를 두고 임금상승에 대한 압력이 높아지며 인플레이션이 인건비로 전이되는데 이것이 셋째, 임금 인플레이션이다. 자, 그렇다면 이런 반복적인 고물가의 시대에 소득이 없이 생활할 수 있을까? 현재의 우리가 사용하는 월 생활비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회사를 가고 오로지 토요일과 일요일만을 여가생활로 보내면서 사용하는 생활비라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활동기간이 그대로 여가생활로 늘어나는 노후에는 훨씬 더 많은 생활비가 필요할 것이다. 일주일 내내 사회활동이나 경제활동 없이 오로지 여가생활을 하는데 있어 현재 준비된 공적연금과 자산에서 나오는 생활비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노후에 가장 큰 적은 바로 인플레이션이며 이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아주 적은 소득이라도 사회활동이 꼭 필요한 것이다. 특히 적은 소득이지만 본인이 즐겁고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는 것이 왜 중요한가? 바로 이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노후 생활비를 줄여주기 때문이다.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이 높은 미래사회에서 풀타임 잡이 아니라고 해도 예를 들어 월~수요일까지 고정적으로 사회참여 활동을 한다면 그만큼 생활비는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1주택은 기본, 상가건물보다는 주택을!
노후준비의 3가지는 바로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지낼 것인가를 계획하는 것이다. 이것이 노후준비의 3W(Where, Who, What)라고 한다. 과거와 같이 자산가격이 안정적이라면 특히 부동산 가격이 하락을 모르고 상승만 하던 시기라면 몰라도 이제는 불확실한 경제상황 속에서 안전자산이란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대외경제 변수에 영향을 많이 받는 우리나라에서 달러가 아닌 원화는 더더욱 통화가치의 변수가 많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래도 그나마 안정적인 자산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주식, 상가, 건물보다는 주택이다. 왜냐하면 주택에서 나오는 현금흐름이 나머지 자산들에 비해서는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공실 위험이 적고 유동성도 좋기 때문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아파트가 가장 안정적이다. 주택에 대한 수요는 인구나 가구 수가 줄어들면 낮아질 것이란 전망도 있지만 전국에 있는 약 2,200만 채의 주택 중 아파트는 60% 수준이며 서울의 경우 52%(2021년 국토부 자료)로 일반주택에 비해 희소성이 여전하다. 아파트는 도심에 인구가 밀집해 있는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에서 가장 치안이 안전하고 유동성이 좋은 자산이다. 주식이란 개별적인 변동성이 너무 크고 상가나 건물은 주요 입지를 제외하고는 공실 위험과 관리 위험이 존재한다. 반면 상대적으로 아파트는 수도권과 광역시를 중심으로는 공실의 위험, 즉 미래가치의 변동성이 적다. 이 말은 아파트를 샀다고 무조건 가격이 오르고 부자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미래의 자산의 실질가치가 가장 잘 유지될 수 있는 자산이 바로 아파트란 말이다. 만일 무주택으로 노후를 맞이한다면 주거비용의 증가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주택을 갖는 위험보다 주택이 없는 위험이 노후에는 더 큰 위험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뜻이다. 본인이 거주하는 1주택은 자산가치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겠지만 1주택이라도 도심지에 있는 자가주택을 임대하고 외곽에서 임차로 거주하면 그 차액만큼 내집에서도 임대소득이 나올 수 있다. 자산가격의 인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 내 집이 없다면 그만큼 노후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후의 현금흐름, 4개의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라
실제 노후에는 생활비가 얼마나 필요할까? 지금의 생활비에서 교육비와 대출이자를 제외한 금액을 순생활비라고 하는데 노후에는 보통 이런 순생활비의 2배 정도가 필요하다. 지금 생활비의 상당 부분이 여가와 레저에 사용되기 때문에 노후에 실제 늘어난 여가시간을 반영하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노후 생활비가 많이 필요한데 한 곳에서 나오는 현금흐름에만 의지하면 안 될 노릇이다. 특히 투자에 의한 자산가격의 상승에만 기대하는 노후준비보다는 여러 곳에서 조금씩 생활비가 나오는 구조가 필요하며 최소한 노후 현금흐름을 위한 4개의 파이프라인이 필요하다. 첫째는 공적연금, 둘째는 퇴직연금, 셋째는 임대소득, 넷째는 세컨드 라이프와 세컨드 잡에서 나오는 근로·사업소득이 그것이다. 임대소득이란 1주택자라고 하더라도활용할 수 있는 주택연금이나 또는 자가주택을 임대하고 자신이 주거지를 옮겨 만들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즐겁게 활동하며 사회참여와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근로·사업소득이 노후준비의 마지막 퍼즐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