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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복원해드립니다
현주사
여헌주 대표

범천동 골드테마거리에 소재한 현주사의 여헌주 대표는 40년간 한자리를 지키며 다양한 시계를 복원해온 수리 장인이다. 부산을 대표하는 시계 수리 장인 여헌주 대표의 추억담을 중심으로 시계, 시간, 인생에 얽힌 이야기들을 만나본다.


자타가 공인하는 시계 수리 장인

똑딱똑딱.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 한산해진 늦은 밤, 분주한 시계 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집중이 필요한 여헌주 대표의 업무는 시끌벅적했던 한낮의 기운이 모두 가신 오후부터 새벽까지 이어진다. 1982년 골드테마거리에 문을 연 현주사는 40여 년간 명품 시계, 골동품 시계들을 비롯한 다양한 시계를 수리하며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시계 수리 장인 여헌주 대표가 시계와 인연을 맺은 계기는 다소 특별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다투실 때 던져서 부서지는 대표적인 물건이 시계와 라디오였습니다. 고장이 난 물건들을 뚝딱뚝딱 고치는 제 모습을 아버지께서 보시고, 어느 날 시계 수리를 정식으로 배워보는 것은 어떠냐고 권유하시더라고요. 당시 중학생이었던 저는 학교 일과가 끝나면 학원에 가 수리를 배웠습니다. 그랬던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네요.” 아버지의 뜻밖의 권유로 시계 수리의 길로 들어선 여헌주 대표. 시계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여 대표처럼, 그의 아버지 역시 아들 안에 있는 원석을 발견하고 깨워, 그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던 것이다. 이제는 어느덧 자타가 공인하는 시계 수리 장인이 되어 오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가게 문을 두드린다.

  

모두의 시간이 공평하게 흐르는 곳 

간단한 배터리 교체만으로도 수리가 가능한 방전된 시계부터 온갖 역경을 맞은 듯 망가진 시계까지, 하루에도 여헌주 대표의 손길을 기다리는 시계들은 다양하다. 하지만 모든 시계를 ‘뚝딱’ 고쳐내는 그에게도 난감한 시계 손님은 있기 마련. “시가가 1억 5천만 원을 호가하는 한정판 시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증서가 없어 스위스에서 A/S를 거부당했죠. 수리에 필요한 부품 한두 개만 있으면 되는데, 구하기가 어려워서 난감한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어떤 시계라도

째깍째깍 다시 흐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시계수리 장인인 여 대표는 주로 명품 시계 수리를 맡곤 하지만, 그의 손길이 꼭 필요한 시계는 어떻게든 고쳐낸다고.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이 차고 있던 시계를 고쳐서라도 간직하고 싶다고 찾아온 손님이 있었습니다. 어딜 가도 도저히 고칠 수가 없어서, 결국 부산까지 와 이곳 문을 두드렸지요. 고쳐준 시계를 붙들고 한참이나 감사인사를 하시더라고요.” 그가 다시 숨결을 불어넣은 덕에 아직도 시계가 잘가고 있다며 이따금씩 소식을 전해주신다는 손님. 그가 고쳐낸 것은 멈춰버린 시계뿐만이 아니라 어느 가족의 추억이 아니었을까.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 받은 시계, 부모님께 물려받은 시계, 여행지를 기억하기 위해 구입한 시계, 불에 타거나 물에 빠진 시계, 사고 후 크게 손상이 된 시계, 결혼 기념 시계, 대통령에게 받은 시계 등 다양한 이야기가 얽힌 시계가 참 많이 있습니다.”

 
 

삶의 기준이 되는 ‘시간’

“시계는 모든 것의 기준이 됩니다. 1초의 정의는 9,192,631,770Hz이고, 1m의 정의는 빛이 진공상태에서 1/299,792,458초 동안 진행한 경로의 길이죠. 시계는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이고요. 시간은 시작도 끝도 없이 존재한다는 점이 참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이고도 추상적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쏜살같이 흐르기를 원하는 사람도있다. 또 어떤 시간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금 이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는 사람이 있는 등 시간을 두고 하는 생각은 모두 제각각이다. “저는 고장 난 시계를 수리하고 복원하면서, 조금 더 오랫동안 조금 더 정확하게 시간을 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여 대표는 움직이지 않는 시계를 수리하다 어느 순간 다시 침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릴 때면 작은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그에게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소리는 마치 사람의 심장 소리 같다고. 낡은 추억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들여다보고 싶을 때, 여헌주 대표를 찾아가면 그는 인자한 미소로 “어서 오세요.”라고 말을 걸어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