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왕 카네기가 설립한 카네기멜론 대학
글_ 안계환 금융칼럼니스트, <세계사를 바꾼 돈> 저자
역사적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이타심만으로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상승시키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여러 사례를 통해 이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막대한 자산을 기부한 카네기
1892년 6월, 카네기 스틸의 CEO 헨리 클레이 프릭은 홈스테드 제강소의 폐쇄를 명령했다.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임금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에 반발한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가자 용역깡패 300명을 고용했다. 그들은 공장을 점거한 노동자들과 총격전을 벌였고 10여 명이 사망하고 다수가 부상을 입는 참극이 벌어졌다.
미국 기업가 중 최고의 기부자로 알려져 있는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가 한창 돈을 벌 때의 이야기다. 그는 이 사건을 클레이 프릭에게 책임을 떠넘겼고, 이후 철강회사는 승승장구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카네기 스틸을 JP모건에 매각할 즈음 그의 재산을 현재로 환산하면 3,720억 달러로, 원화로 약 470조 원이었다. 말년에 이르러 카네기는 막대한 자산을 바탕으로 재단을 설립해 교육과 자선사업으로 일생을 보냈다. 미 전역에 2,500개가 넘는 도서관이 지어졌고 카네기멜론 대학이 설립되었다. 그가 남겼다는 명언은 그를 명예로운 시민이자 기부자로 남겨놓았다. “통장에 많은 돈을 남기고 죽는 사람처럼 치욕적인 인생은 없다.” “부자로 죽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지위 상승 수단으로서 노블리스 오블리주
그의 성공적인 기부행위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장밋빛으로 그려진 그의 자서전 내용만큼 그가 성인군자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재산을 물려줄 아들이 없었고 그의 기부행위는 전형적인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이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에서 유래한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프랑스어로 ‘고귀한 신분(귀족)’이라는 노블리스와 ‘책임이 있다’는 오블리주가 합해진 것이다. ‘고귀한 신분의 사람이라면 능히 해야 할 책임이 있다’라는 말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타심만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또는 지위를 상승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이야기다. 고대 로마에서 귀족은 제대로 역할을 해야만 자기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전쟁이 나면 스스로 무장해 참가해야 했고, 아들들을 적극적으로 군대에 보내야 했다. 만약 재산을 많이 가진 어느 귀족이 전쟁에 나가지 않으려는 행동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그는 민회에서 발언권을 얻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귀족 지위에서 쫓겨날 것이다.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이를 고귀한 이라고 부를 시민은 없었기 때문이다.
시민의 마음을 사는 행동을 해서 신흥 귀족의 반열에 오른 이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이가 아테네출신 헤로데스 아티쿠스였다. 그는 로마 제일 가는 대부호의 아들이었으며 하드리아누스를 비롯한 여러 황제를 받들었다. 아테네에 있는 고대 극장을 지어 시민들에게 제공했고 코린토스에는 오데온을, 델포이에는 경기장을 지었다. 공공시설물을 세운 이는 그 시설의 유지보수까지 담당해야 했다. 그래서 고대 로마의 공공시설물은 누가 세웠고 누가 유지보수 했는지를 후대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이다.
고대 로마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문화는 훗날 이탈리아 피렌체에 다시 등장했다. 바티칸의 주거래 은행 역할을 통해 부를 확보한 조반니 디 비치는 공화국 피렌체의 주역이 되었다. 그는 비록 한미한 가문출신이었지만 공공시설물을 짓고, 많은 돈을 들여 예술가들을 후원했기 때문이다. 이후 코시모와 로렌초를 이어가며 메디치가는 시민들의 마음을 얻고 결국 피렌체의 군주가 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재물을 사용하는데, 오블리주의 행동을 함으로써 노블리스가 되는 전형적 길을 밟은 것이다.
베스파시아누스황제와 그의 아들 티투스가 시민들의 오락을 위해 세운 콜로세움
변화의 필요성은 있다
가끔 한국 사회에서는 노블리스 오블리주 행동을 하지 않는 사회 지도층을 비난하고 반대로 서양인을 과도하게 칭송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서양에서는 자선이나 기부 등 선한 행동을 하는데 비해 한국의 지도층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양에는 예로부터 노블리스 오블리주 문화가 없었다. 건축물이나 도로 등 공공시설물을 세우는 것은 국가 또는 왕의 역할이었고 돈을 많이 번 상인이 기부행위를 한다고 해서 신분이 상승할 일도 없었다. 때로는 권력자에게 잘못 보여 재산과 목숨을 빼앗기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선행위를 해야 할 동기가 없었던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 한국에서 조금씩 변화의 여지가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은 소극적이다. 대학에 건물을 지어 기부하면 기부자의 이름을 붙여주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리 국민들은 아직 부자들에게서 기부를 받아 공공시설물을 세우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의 필요성은 있다. 만약 어떤 부자가 도시에 필요한 공공시설물(예를 들면 야구장 같은)을 자기 돈으로 지어 헌납한다면, 거기에 그의 이름을 붙여주면 어떨까? 카네기도서관처럼 개인 이름을 붙인 공공시설물이 많이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