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발명된 이후, 글보다는 시각적 이미지가 사람들 간 소통의 주류 수단이 되었다. 인류는 사진을 삶 속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였고, 어느덧 사진은 우리 삶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삶과 사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여러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참고자료 : <사진을 읽어드립니다>, 김경훈 저, 시공아트 / www.vivianmaier.com
사진, 구원이 되다 - 비비안 마이어
비비안 마이어는 어릴 때 마약·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무관심 속에서 외롭고 힘든 유년기를 보냈다. 10대 시절부터 보모로 일하며 경제적 독립을 했지만 어머니는 걸핏하면 그녀를 찾아와 돈을 요구했다. 때문에 마이어는 가족과 인연을 끊고 혼자 은둔하는 삶을 택하게 된다. 그녀에게 유일한 구원이자 행복감을 주었던 것은 사진이었다. 20대 때부터 전문 사진가의 꿈을 품고 열심히 사진 기법을 공부했지만 세상은 그녀의 재능을 알아봐주지 않았다. 결국 사진가의 길을 포기한 채 오직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틈틈이 거리로 나가 수많은 사진을 찍었던 그녀. 그런데 그녀가 보관창고에 남긴 수많은 사진들이 사후에 인터넷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 뛰어난 작품성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그녀의 사진에 열광하게 된다. 불행했던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고 사진을 통해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며, 늘 가난했지만 성실하게 살았던 마이어의 삶과 사진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다.
영혼을 찍어드립니다 – 윌리엄 멈러
“사진을 촬영할 땐 없었던 형상이 나중에 인화하고보니 나타났다!” 어린 시절 학교 문방구 앞에서 팔던 <세계의 유령 대백과> 등에서 이런 식으로 심령사진을 소개하는 경우를 많이 봤을 것이다. 심령사진으로 유명해진 최초의 사진작가는 1860년 미국의 윌리엄 멈러라는 이였다. 당시 죽은 가족을 사진으로라도 만나고 싶었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촬영의뢰를 했는데, 그중에는 링컨 대통령의 영부인 매리 토드 여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진들은 모두 사기로 밝혀졌다. 윌리엄은 미리 확보한 죽은 이들의 사진을 카메라와 필름 사이에 끼워 넣어 이중 노출로 사진을 찍은 것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중 노출 기법이 알려진 후에도 심령사진을 찍었다거나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계속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사진은 사실을 보여주는 매체이지만, 사람들은 거기에서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본다는 걸 알 수 있다.
역사상 최초의 틴에이저 셀카 – 아나스타샤 황녀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셀카를 찍기 시작한 것은 1900년 조지 이스트먼 코닥이 아마추어들도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손쉽게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를 개발, 시판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특히 십대 청소년이 찍은 셀카 중 역사상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건 러시아 황녀 아나스타샤의 사진이다.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넷째 딸 아나스타샤 황녀는 평소 활달한 성격을 지녔으며, 카메라라는 신문물을 자신의 삶에 누구보다도 빨리 받아들인 얼리 어답터였다. 그녀의 셀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찍은 것인데 손이 자꾸 흔들려 찍기 힘들었다고 주변에 말했다고 한다. 입술을 약간 벌린 채 거울 속 자신을 주시하는 독특한 표정은 왠지 쓸쓸하고 감상적인 느낌을 준다. 아마도 오늘날 사람들은 러시아 혁명 와중에 가족들과 함께 유배되었다가 어린 나이에 처형당한 그녀의 비극적 운명을 잘 알기에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