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 최남수 서정대 교수, 전 YTN 대표이사
10년간에 걸쳐 실천한 ‘유니레버 지속가능 생활계획’은 큰 성공을 거둬 12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하고, 13억 명의 건강과 위생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런던 유니레버 본사

영국 유니레버 연구개발센터
인기 경쟁보다는 옳은 일을 하겠다
ESG 경영은 본질적으로 두 가지의 가치를 지향한다. 하나는 환경을 보존하고 사람을 돌보는 투명한 경영을 가치 사슬 전반에 내재화하는 것이다. 등급을 잘 받거나 홍보를 활발하게 해 외형을 꾸미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ESG 경영은 또 적어도 3~5년을 내다보는 중장기 관점에서 기업 가치를 제고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분기나 연간 경영실적표를 잘 만들어내기 위해 경영을 왜곡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국의 생활용품 기업인 유니레버는 이런 점에서 ESG 경영을 잘해온 모범기업으로 꼽힌다. 지난 2009년 유니레버는 중대한 발표를 했다. 당시 CEO였던 폴 폴먼은 단기 경영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장이 요구하는 분기 실적 발표를 하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그러자 헤지펀드들이 반발하면서 주식을 매각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단기 투자자가 줄어들면서 주가가 안정됐다.
특히 폴 폴먼이 재임한 10년 동안 주가는 150%나 올랐다. 폴먼은 2021년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고하며 “기업은 인기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를 위해 옳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니레버 USLP 성과보고서
ESG 경영 공감대 확산, 판매 신장에 기여
이런 일도 있었다. 때는 2006년. 당시 유니레버는 차(茶)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재배된 차만을 구매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재래식 차 생산이 살충제와 농약, 비료를 대규모로 사용하는 데다 토양침식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문제는 50만 명의 소작농을 양성하고 농가에서 구매하는 차 가격도 올려줘야 한다는 점이었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차 가격을 올리는 것은 ‘자해행위’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유니레버는 이를 실행에 옮겼다. 차 생산 원가가 크게 올라간 점이 부담이 됐지만 소비자들이 ‘지속가능한 차’라는 개념에 공감하면서 판매도 늘어나고 시장점유율도 올라가는 성과를 거뒀다. 보다 큰 틀에서 유니레버는 2010년에 ‘유니레버 지속가능 생활계획(USLP: Unilever Sustainability Living Plan)’이라는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USLP는 지속가능한 생활을 유니레버의 핵심 목표로 규정했다. 10년간에 걸쳐 달성할 세 가지의 담대한 목표가 수립됐다. 그것은 10억 명 이상의 건강과 복지를 개선하고, 환경에 대한 영향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며, 비즈니스의 성장을 통해 수백만 명의 삶을 향상시킨다는 것이었다.
인도 유니레버 연구개발센터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 이익을 만드는 기업
USLP는 이 세 가지의 목표 달성을 위해 7개의 하위 범주를 선정했다. 그것은 건강과 위생, 영양, 온실가스, 물, 폐기물, 지속가능한 구매, 그리고 더 나은 삶(livelihood)이었다. USLP의 특징은 CSR처럼 핵심 업무에 추가된 부수 업무가 아니라 그 자체가 전략이고 기업의 성장 어젠다에 내재화했다는 점이다. 결과는 역시 성공적이었다. 10년 후인 2020년에 USLP는 대부분의 목표치를 달성했다. 예컨대 12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하고, 13억 명이 건강과 위생을 개선하도록 도왔다. 제조 공장의 전기는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됐으며, 탄소 배출량도 65%나 줄였다. 또 경영진 내 여성비율은 51%로 상승했고, 지속가능한 농산물 원자재 구입비율은 14%에서 67%로 크게 증가했다. 생산물 1톤당 물 사용량도 49%도 감소했고, 모든 공장에서 매립 쓰레기를 없앴다. 특히 매출도 대폭 확대되고 주가도 경쟁사보다 더 많이 오르는 등 경영실적도 크게 호전됐다.
“기업이 세상의 문제를 만들어내기보다 어떻게 그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인가?”, “기업이 있어서 세계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인가?” 폴먼이 던진 질문이다. 유니레버가 모범적으로 실천한 ESG 경영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