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 업사이클링은 풍요로운 의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의류 쓰레기를 줄이는 '중용'의 기술
중용은 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 세상의 조류 가운데서도 한결같이 중심의 원칙을 꾸준히 지키는 모습을 뜻한다. 지나친 기술과 난개발은 환경 파괴를 불러오거나 서민들이 감당 못할 정도로 주택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 이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이 중용의 ‘적정기술’이다.
중간기술, 적정기술, 중용기술
인공지능이나 양자컴퓨팅 같은 최신 과학기술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 우리는 그 눈부신 가능성 앞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꼭 그 정도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우리의 마음 속 한 구석에 일었던 때도 있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라 하더라도 그 기술도 자칫 “지나칠 수 있다”는 걱정을 늘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기술이라는 단어 앞에 ‘적정’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적정기술이 우리에게 참신한 단어로 들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E.F. 슈마허는 <작은 것은 아름답다>라는 책에서 훗날 적정기술로 발전하게 될 ‘중간기술(Intermediate Technology)’이라는 신조어를 제안한다. 그는 치우치기 쉬운 첨단 기술과 낮은 수준의 기술 사이 어느 지점에 있을 법한 ‘지나침 없는’ 기술을 떠올리며 ‘중간(Intermediate)’이라는 수식어를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의 ‘중간’이라는 단어는 이것도 저것도 딱히 아니면서 양쪽 다이기도 한 모호한 의미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슈마허의 의도에 잘 맞는 수식어는 아닌 것 같다. 만일에 슈마허가 동양 사상의 ‘중용(中庸)’이라는 단어를 잘 알았다면 중간기술보다는 중용기술이라는 용어로 적정기술을 소개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풍요로운 의생활과 환경을 지키는 중용
종종 중용은 올바르지 못한 타협의 다른 말로 사용되거나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혼합하여 무엇인지 분간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른 것에 대한 변명으로 사용될 때가 있다. 하지만 중용의 참된 의미는 그렇지 않다. 거센 바람에 펄럭이면서도 깃발의 자태를 유지하는, 깃발 중심에 있는 깃대의 역할을 중용이라 했다. 요컨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기 쉬운 세상의 조류 가운데서도 한결같음으로 기릴 만한 원칙을 꾸준히 지키는 모습이 중용의 참된 모습이라는 말이다.
입어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기본적인 필요이다. 하지만 의류 기술도 막대한 양의 폐기물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지나칠 수 있다. 씨밍, 리버드, 리뉴어스 등 수많은 의류 업사이클링 업체들은 오늘날 지나친 의류산업의 추세를 거슬러 풍요로운 의생활을 영위하면서도 동시에 환경을 지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와 같이 누구나 입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필요를 채우면서도 의류 쓰레기를 줄이는 기술은 중용의 기술이다.
먹거리를 담당하는 농업 기술도 지나칠 수 있다. 수익 극대화만을 위해 화학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 대규모 농업 기술은 종종 환경을 해치고 저급하고 위험한 먹거리를 만들 수 있다. 이런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유기농 텃밭으로 자신의 필요에 따라 여러 작물을 길러 스스로 소비하는 농업 기술은 환경을 보존하여 지금뿐 아니라 미래 세대 모두를 먹이는 기술이다. 이런 기술은 먹어야 하는 기본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 시작되었던 농업 기술의 원형이니 이를 지키려는 기술은 중용의 기술이라 부를 만하다.
건축 기술에도 중용이 필요
주택도 모든 인간에게 필요하다. 하지만 주택 기술 또한 지나칠 수 있다. 대규모 주택 개발은 난개발이 되어 복구할 수 없는 환경적 손실을 가져올 수 있으며, 지나친 가격 상승을 초래하여 미래 세대가 주택의 필요를 채우는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중용을 따른 건축 기술은 수익 추구에만 치우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비용에 맞는 거처를 제공하기 위한 기술이 되어야 한다. 한국해비타트는 ‘Habitat for Humanity’라는 국제기구의 한국 지부이다. 이들이 모색하는 건축 기술은 각 사람이 안전히 생활할 거처를 마련한다는 건축 기술 본래의 모습을 지키고 있으니 중용의 기술이다.
광고 카피이지만, ‘처음처럼’은 참 좋은 구절이다. 나는 이 구절을 모든 과학기술을 가르치는 곳에, 모든 기술 제품이 설계되는 곳에, 그리고 제품이 판매되고 사용되는 곳에 적어 놓고 싶다. 혹시라도 그 말에 담긴 귀중한 가치에 매혹되어, 늘 좌와 우, 앞과 뒤로 치우치는 세파 속에서도 우직하게 중심을 지키는 중용의 기술을 추구하는 적정 과학기술자들이 좀 더 많이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소망 때문에 말이다.
건축기술 본래의 모습을 지키려는 국제 해비타트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