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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도시’
부산을 꿈꾸다
셰프 에드워드 권

셰프 에드워드 권 


에드워드 권은 우리나라 최초의 스타 셰프로 떠오른 인물이자, ‘파인 다이닝’이라는 미식의 세계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 우리나라 식문화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다. 지금 그는 ‘스타 셰프’의 명성을 뛰어넘어, 부산에서 또 다른 도전을 하며 ‘더 높은 차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엘리제궁에서 마크롱 대통령 만나 

최근 에드워드 권 셰프가 부산의 송정에 문을 연 ‘랩24 바이 쿠무다’는 세계적인 권위의 미식 가이드북 ‘라 리스트(La liste)’에 이름을 올리면서 일약 유명세를 탔다. 부산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부산 시민뿐만 아니라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일부러 이곳을 목적으로 찾아올 정도다. 특히 랩24 바이 쿠무다가 3년 연속 ‘라 리스트’의 세계 1,000위권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리자, 에드워드 권은 한국인 셰프 최초로 엘리제궁에 초대를 받아, 환영 행사에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엘리제궁은 프랑스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곳인데 그런 데서 대통령이 셰프들을 직접 만나주고 환영해줬다는 점이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프랑스의 미식문화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인정받고 있는데요, 이렇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미식문화를 챙기고 셰프를 우대해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 내심 좀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부산과 부산 사람이 좋다 

그런데 왜 그는 본인이 운영하던 레스토랑을 서울에서 부산으로 옮겨 개업하게 되었을까. 심지어 지난해 12월엔 ‘부산 미식관광 홍보대사’에 선정되어 ‘부산 미식관광 홍보활동’과 ‘미식 관련 정책 자문’ 역할까지 맡아서 하고 있다.

“제가 부산이라는 도시를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해요. 심지어 옛날에 우스갯소리로 늘 주위 사람들에게 했던 말이, 나중에 은퇴하면 부산에 내려가서 살 거라고 했어요. 부산이 좋은 이유는 사람들마다 다 다르겠지만, 저는 우선 부산 사람들을 좋아해요. 저하고 잘 맞더라고요.” 

그런 배경에서 부산의 문화예술사단법인 ‘쿠무다’에서 복합문화공간을 만들면서 그에게 먼저 부산에 고급 미식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레스토랑을 오픈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거절할 이유를 못 느꼈다고 한다. 부산에도 물론 ‘돼지국밥’이나 ‘밀면’ 같은 훌륭한 음식문화가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세계 각지에서 오는 손님들을 만족시키긴 어렵다. 세계의 유수 도시들은 저마다 높은 품격과 숙련된 셰프의 기술이 돋보이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갖고 있다. 서민적인 식당에서부터 가성비 높은 프렌차이즈, 미식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레스토랑까지, 음식문화에도 다양한 층위를 골고루 갖추고 있어야 그 도시가 ‘미식 도시’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고급 미식문화도 한 도시의 문화역량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가 됩니다. 게다가 부산이 2030세계박람회를 유치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이 시점에, 제가 좋아하는 부산이라는 도시에 ‘파인 다이닝’ 문화를 정착시키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이런 일들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다행히 현재 레스토랑이 큰 사랑을 받고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프로 의식과 겸손한 자세가 중요 

지금은 TV 예능 프로그램에 스타 셰프들이 나오는 것이 흔한 일이지만 에드워드 권이 나올 당시만 해도 그런 케이스가 드물었다. 어쩌면 우리 국민들에게 셰프가 굉장히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직업이라는 것을 알리는 데 기여하고 셰프 또한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인식시킨 인물이 에드워드 권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두바이의 7성급 호텔 ‘버즈 알 아랍’ ‘헤드 셰프’ 출신이라는 점이 그가 유명세를 타게 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수많은 나라에서 온, 인종도 각각 다른 요리 인재들이 경쟁하는 그곳에서 최고의 지위인 ‘헤드 셰프’까지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그런 곳에서 인종차별이란 게 없을 순 없었지요. 특히 아시아인들이 차별을 많이 받았지만 그래도 저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중동에 많이 진출해 있어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프리미엄 혜택을 좀 받은 것 같아요. 또 항상 겸손한 자세로 스스로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동료들과 충실한 인간관계를 맺으려고 굉장히 애썼어요.” 

 

요리에 대한 지식도, 현장에서 프로다운 실력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위 동료들과 화합하는 능력까지 총체적으로 어우러져야 요리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다는 것이 그가 해외에서 몸소 배운 교훈이라고 한다.

 

인생의 후회와 보상은 함께 온다 

주방에서 일할 때 셰프로서 에드워드 권은 어떠한 모습일지도 궁금했다.


“전 요리를 대할 때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무서운 사람이에요. 레스토랑에 오시는 손님들이 저희 음식을 즐기기 위해 상당한 금액을 지불하셨는데 그만큼의 가치를 전달하지 못하면 안 되잖아요? 어떻게 보면 뮤지컬 배우나 가수가 공연을 보러오는 관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엄격하게 스스로를 관리하고 최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제가 주방에서 굉장히 무섭고 까칠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


하지만 업무 시간이 끝나면 그는 180도 다른, 다정한 사람으로 변한다고 한다. 주방에서도 실수한 사람을 따끔하게 혼낼 때도 있지만 잘한 사람한테는 과격할 정도로 칭찬을 크게 하고 격려해준다.

요즘 가심비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그는 아무리 고급 레스토랑이라 해도 가심비가 좋아야 한다는 철칙을 갖고 있다. 고객이 쓴 돈이 아깝지 않다고 느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는 식당을 이용한 분들의 인터넷 후기와 점수 평가까지 일일이 다 챙겨본다고.

요리계에 입문한지 어느덧 30여 년이 훌쩍 넘어버린 에드워드 권 셰프. 그동안 너무 일만 하느라 아버지로서 자식들을 잘 돌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는 솔직한 심경도 털어놓았다.


“저희 아이들이 둘 다 대학생인데 걔들하고 함께 보낸 시간이 거의 없어요. 그들에겐 아빠의 빈 자리가 컸을 거예요. 그런 점은 정말 미안하죠. 그런데 제가 그 정도로 일에 몰두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성공이 가능했을까요? 후회가 있었으니 그만큼 보상도 있었던 거라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자식에게 ‘소중한 가르침’이 되기도 한다. 지금 그의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요리사가 되겠다고 나섰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그래도 제가 지금까지 잘못 살아오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부산의 식재료를 활용한 메뉴를 꾸준히 개발하고 선보여 부산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레스토랑으로 랩24 바이 쿠무다를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먼 훗날, “에드워드 권이 있어 우리나라의 미식문화가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평을 들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게 그의 마지막 인생 목표다. 그 바람이 이뤄져, 세계 곳곳에서 미식 체험을 하기 위해 일부러 부산을 찾는 날이 곧 오게 될 것이라는 꿈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