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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전쟁을 막는 게
차라리 나은 이유

_흉노족에게 여인, 비단, 곡식 등을 바쳐야 했던 한 고조 유방

 

글_ 안계환 금융칼럼니스트, <세계사를 바꾼 돈> 저자

 

어떤 이들은 굴욕을 겪으며 평화를 얻느니 차라리 싸우다 죽는 게 낫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계사에서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는 전쟁보다는 돈을 활용해 평화를 사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천고마비’에 담긴 애틋한 사연

우리가 잘 아는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이는 <후한서>에 실려 전하는 말인데 풀어 쓰면 ‘가을이 되어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의미다. 나는 강연장에서 청중들에게 이 사자성어가 긍정적인가 아니면 부정적인가를 묻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평화롭고 풍요로운 가을이 느껴지는 긍정적 말이라고 대답한다. 과연 그럴까? 여기서의 말(馬)은 누구의 것일까? 말이란 유목민의 가족이자 가장 강력한 전쟁도구였다. 이 고사성어는 가을이 되면 북방 유목민이 말을 타고 쳐들어오니 대비하자는 뜻이다. 과거 역사에서 오랫동안 북방인의 침입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봄부터 가을까지 고생하여 모아놓은 식량을 비롯해 재산을 빼앗겨야 했다.

초원지대에 사는 유목민은 낙타, 말, 양 등 동물을 길러 생을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스스로 생산하지 못하는 필수품이 있었는데 곡식, 차, 철제품 등이다. 이를 남쪽 농민과의 교역을 통해 조달하면 되지만 때로는 거래가 잘 되지 않았다. 또한 유목민은 싸움에 능했다. 그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가축을 기르며 늑대 등 야생동물을 사냥했다. 따라서 전투가 생활의 일부였고 남자들은 언제나 싸움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유목민 입장에서 그들이 필요한 물품을 교역을 통해 얻지 못한다면 살아남기 위해서 남쪽으로 가서 약탈전쟁을 해야만 했다. 비록 일부 사람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들은 선택권이 없었다. 더구나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유목민이라면 해볼 만한 도전이기도 했다.


_흉노족의 기마 전사를 묘사한 벨트 버클, 타지키스탄에서 발굴된 1~2세기경 유물

 

당해낼 수 없었던 유목민의 전력

그렇다면 그들을 잘 달래볼 방법은 없었을까? 물론 중원제국은 북방유목민이 필요한 물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시장을 열어주기도 하고 조공무역을 통해 퍼주는 경우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약탈전쟁을 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뭉치지 못하게 정벌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방유목민을 정벌하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초원지대에서 말 타고 싸우는 데 매우 능했던 반면 중원의 군대는 이를 제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 고조 유방은 흉노족을 토벌하러 원정을 떠났다가 포위되어 사로잡힐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조약을 체결했다. 종실의 여자를 유방의 딸이라고 속여 시집보내고 매년 비단과 곡식들을 제공하기로 하고 살아날 수 있었다. 이후 한나라에서는 정기적으로 여인을 북방에 시집보내고 많은 공물을 딸려 보내야 했다. 이렇게 시집간 여인들을 화번공주라 부르는데 그 유명한 왕소군과 당나라의 문성공주 등이 대표적이다. 결국 평화를 위해서 여인을 보내고 돈을 써야 했다는 이야기다.

병력은 많았지만 허약했던 북송에서는 거란과의 싸움 대신 그들이 원하는 물품을 주는 유화책을 폈다. 북송이 처음부터 군사적으로 무능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거친 들판에서 단련된 거란인 기병과 월급 받고 싸우는 송나라 보병의 싸움은 그 결과가 뻔했다. 수없이 많은 전투를 벌였지만 승리하지 못하고 피해만 커지자 매년 비단과 곡식을 보내는 것으로 평화를 얻었다. 싸워봤자 크게 얻을 건 없으면서 전투 비용과 인명 피해만해도 엄청났던 때문이다.


한나라 원제의 궁녀였다가 흉노의 호한야 선우에게 시집간 왕소군


돈으로 평화를 살 수 있다면 사라

시대가 바뀌어 여진족이 등장하자 동맹을 맺고 거란을 협공한 뒤 해마다 거란에 주던 물건들을 여진족에게 주기로 약조했다. 이런 비굴한 조약들은 정치적으로는 치욕스러운 일이었지만 북송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유목민과 전투를 벌여봤자 그 사회적인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따져 봐도 전쟁비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북송은 돈으로 평화를 산 덕분에 경제, 문화적인 면에서 근대 이전 중국 역사상 손꼽힐 정도로 융성을 누릴 수 있었다.

과거에는 전쟁도 많이 있었지만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경우도 많았다. 이웃 간에 교역을 열고 물품을 교환하면서 서로 이익을 얻을 수 있었고, 때론 경제력이 뛰어난 측에서 돈을 제공해 평화를 사는 일도 매우 흔했다.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는 전쟁보다는 돈을 활용해 평화를 사는 것이 번영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