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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을 꿈꾸는 소리
성덕대왕신종

우리에게는 ‘에밀레종’이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성덕대왕신종.

1,200년이나 지난 금속 종이 아직도 깨지지 않고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은 당시 신라인들의 금속 주조 기술이 세계적 수준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종이 들려주는 천상의 소리는 그 아름다움을 형용할 말을 찾기가 쉽지 않다. 무엇이 이 종을 특별하게 만든 것일까?


 

에밀레종 전설은 창작소설이었다

이야기에 들어가기 앞서 먼저 큰 오해 하나를 시정해야겠다. 성덕대왕신종에 대해 거의 전 국민이 다 아는 전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 종을 주조할 때 영험한 종소리를 내기 위해 어린 아기를 인신공양 했다는 것인데, 억울하게 희생된 아기의 영혼이 자신을 시주한 어미를 원망하여, 꼭 ‘에밀레~ 에밀레~(어미 탓이야~)’라고 한탄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이 기상천외한 전설을 아직까지도 믿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사실 이 전설은 현재 전해지는 어떤 역사 기록에도 찾아볼 수 없는 낭설에 불과하다. 이 이야기는 1925년 8월 5일자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창작문예란에 염근수라는 작가가 ‘에밀레종’이라는 동화를 발표한 데서 비롯됐다. 내용은 우리가 아는 그 전설 그대로다. 이것은 성덕대왕신종과는 아무 관련 없는 얘기였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창작소설이 마치 실화인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 퍼지면서 성덕대왕신종과 관련된 전설로 잘못 알려지게 된 것이다. 비록 페이크 뉴스에 불과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오해 덕분에 성덕대왕신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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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머리와 허리로 주조되어 있는 용뉴는 힘차고 기백있는 모습이 일품이다.

신비한 여운을 남기는 소리의 비밀

 

그런 전설을 사람들이 믿었던 배경에는 아무래도 이 종이 들려주는 소리에 영험한 기운이 서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는 잡음과 왜곡이 없는 맑은 소리와 낮고 높은 소리들의 조화로운 배합으로 이뤄져 있다. 소리가 사라졌다가 되살아나는 것이 반복되는 맥놀이, 그리고 초기의 타격음 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되는 여음이 성덕대왕신종의 소리를 아름답게 느끼게 하는 주요한 특징이다.

특히 ‘맥놀이’란, 종에서 진동이 다른 두 개의 소리를 나오게하는 것으로, 이 두 소리가 서로 간섭하며 강약을 반복함으로써 소리를 먼 데까지 보내는 현상을 뜻한다. 성덕대왕신종뿐만 아니라 다른 우리나라 종에서도 이 맥놀이 현상이 발견되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한국에서 생산된 종들을 ‘한국 종’이라는 고유의 학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웅웅웅’ 하면서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리가 반복되며 여운이 오래 가는 ‘맥놀이’ 현상은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 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그 원인은 바로 이 종의 위아래 부분과 중간(배) 부분의 두께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비대칭적인 특성으로 인하여 위상이 다른 두 개의 소리가 발생 되고, 두 소리가 합쳐졌다가 떨어졌다가 하는 간섭 현상에 의해 소리의 세기가 일정한 주기로 커졌다가 작아졌다 하는 맥놀이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최적의 맥놀이 특성을 얻으려면 문양과 조각을 배치하는 이론적 기술과 주조 오차를 최소화하는 복합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성덕대왕신종은 이러한 특성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어서, 현대의 최신 음향학 관점에서 보아도 그 뛰어난 기술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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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의 연화좌상에 앉아 바람에 옷자락을 휘날리며 공양하는 아름다운 보살의 모습을 나타낸 비천상


미려한 예술성에 견고함까지

 

또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은 이 종이 가진 조형적인 아름다움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종에 새겨진 ‘비천상’이다. 이 작품은 구름 위의 연화좌상에 앉아 바람에 옷자락을 휘날리며 공양하는 아름다운 보살의 모습을 나타낸다. 신라의 미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널리 알려진 이 비천상뿐만 아니라 상부의 용뉴(龍鈕) 조각 또한 기가 막히다.

용뉴란 종을 종각에 거는 부위로 용의 머리와 허리로 주조되어 있다. 용뉴의 용과 비천상의 힘차고 기백 있는 모습들은 서로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섬세하고 미려한 예술성으로 따지자면 전 세계 그 어떤 예술 작품에도 뒤지지 않는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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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문양으로 주조된 당좌